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18화 (18/202)

# 18화

강호에 최고수중 곤륜 제일 검 무황의 목숨을 구해 주었는데 그런 고수가 자신의 사부의 무공을 보아 주었다면 어떤 무공을 가르쳐 주었을지 궁금한 연수였다.

“혹시 상승 무공은 안 배워 줬습니까?”

“나도 부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곤륜의 무학은 어느 것도 전수해 줄 수 없다고 하더구나. 대신 수련법과 자신의 평생의 심득이 담긴 비급을 주었지. 수련법은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 심득이 담긴 비급은 글쎄···. 아직도 내게는 너무 먼 경지의 이야기야. 그의 말로는 당시 자신의 품에는 세 권의 곤륜파의 핵심 비급이 있었다고 하더군. 왜 훔쳐가지 않았냐고 말이야. 하하”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부를 보며 연수는 본인이 다 안타까워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이고! 큰 보물을 놓쳤군요.”

“글쎄 그에게 별로 아까운 생각이 안 든다고 했더니 그 역시 나처럼 웃더구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에 와서는 아까워 죽겠죠?”

“그다지 그렇지는 않구나. 곤륜의 대단한 무공보다 더 중요한 걸 얻었지.”

“그게 뭔데요?”

연수가 시큰둥하게 묻자 사부는 피식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우.”

“아! 한 분 계시다는 그 친우분이 무황이였군요.”

“그래. 그는 내 벗이 된 덕에 무사하게 은거할 수 있었다. 나는 본색이 무공도둑인 만큼 독문 변장술이 뛰어나고 심계가 나름 깊은 편이지. 사실 그를 구출할 당시 나는 한 낭인의 시체에 그의 옷과 비슷한 모습을 하게 하고 목을 잘랐지. 이후 이리떼를 몰고와 시체들을 뜯어 먹게 하였어. 그러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소림에 의해 시체들이 발견되어 무황은 죽은 사람이 되었지.”

“아···. 그게 사부님의 협의로군요.”

“글쎄···. 협의란 건 항상 객관적이어야 하는 거지. 나는 그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이후로도 후회하지 않고 있으니 꽤 만족스러운 일이지.”

“그럼 지금은 무황과 함께 사시는 겁니까?”

“아니, 그저 멀지 않은 곳에 그의 집을 지어두어 자주 만나기는 하지.”

“어쨌든 이 이야기의 교훈을 잘 새겨 두어라. 당시 내가 무황의 적들과 손을 잡고 무황에게 덤벼들었다면 오 할의 확률로 나는 죽었다.”

“명심하겠습니다.”

“하면 그 이야기는 됐고, 무공의 이야기로 넘어가서, 네가 앞으로 명문정파의 무공을 훔치려 한다면 무당과 종남의 상승 무공을 훔쳐야 할 게다. 반대로 사파의 무공으로 대성하겠다고 하면 사황성 열두 가신들의 가전 무공이나 사황성주의 무공을 훔쳐야 할 것이고 그도 아니라면 신공절학이라 소문난 무공을 훔쳐야만 네가 대성하여 고수가 될 수 있을 것이야.”

“그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들어도 어려운 일 같은데요?”

“그건 그렇지.”“근데 왜 그래야 하죠?”

“쯔쯔 이놈아 벌써 잊었느냐? 그게 아니면 네놈이 고수가 되는 길은 요원하다 하지 않았느냐?”“아.. 그랬죠.”

연수는 한참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 있다가 자신이 무공에 입문하기에는 많이 늦은 나이라는 것에 생각이 닿지 다시 시무룩해졌다.

“기죽을 것 없다. 그게 힘들다면 소림이나 화산 무당 같은 곳에서 연단한다는 영약을 노릴 수도 있고 그도 안된다면 황궁 무고라도 털 거라.”

“황궁무고요?”

“그래. 나도 소싯적에 도전해 봤지만, 황궁 또한 만만치 않더군. 무고 쪽도 경계가 삼엄한 편이었고. 하지만 황궁의 특성상 황제가 기거하는 곳으로 다가갈수록 경비가 삼엄해지는 특성이 있더군. 황궁 무고라면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단 들어만 가면 삼천권이 넘는 비급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주워듣기로는 황궁의 무공은 명문 대파들의 무공에 비해 손색이 있다고 하던데요?”

“그야 없는 말은 아니지. 그래서 이미 입문공을 가지고 있는 종남과 무당의 무공이나 천고의 영약을 노리는 게 좋긴 하지만 그것도 완벽한 건 아니다.”

“어째서요?”

“생각해 보아라 무당과 종남 같은 명문은 속가의 수까지 하면 그 문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하지만 그중 유명 고수로 소문난 진짜 고수는 얼마나 되는 것 같으냐? 문하의 수에 비한다면 그 고수의 수는 손에 꼽는 편이다. 즉 어려서부터 수련시킨다 해서 꼭 모든 이들이 대성하는 건 아니란 거지.”

“아 그렇군요. 명문의 상승무공을 익힌다고 꼭 대성한다는 법이 없군요.”

“그래. 개인의 무재와 노력 여하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상승의 무공이라는 것은 반드시 기초가 되는 무공들을 잘 익혀놓았을 때 비로소 그 위력을 발휘하여 경지를 올려 주는 것이다. 개뿔도 없는 놈들이 입문공은 제쳐 놓고 상승의 무공만 판다고 고수가 되는 것이 아니야. 그런 식으로 고수가 될 수 있다면 굳이 입문공따위 만들어놓을 필요도 없겠지. 게다가 네놈이 무당이나 종남의 상승 무공을 익혀 고수가 된다고 해도 만만치는 않을 거다.”

“아니 고수가 되면 그만이지 뭐가 만만치 않다는 거예요?”

“그들의 문하도 아닌 놈이 그들의 상승무공을 쓰고 다니면 언제 잡혀서 주리가 틀릴 줄 알고? 강호에서 무공도둑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아느냐? 모르긴 해도 운 좋으면 폐인이 되거나 재수 없으면 죽을 거다. 결국, 쓰지를 못하던가 쓰더라도 많이 변형을 시켜서 그들의 속가 중 하나였다고 우겨야 할 거야. 하지만 이 또한 쉬운일이 아니야, 명문정파들은 자신들의 속가를 하나 빠짐없이 모두 기록해놓거든. 자신들의 무공이 혹여 잘못 사용되거나 밖으로 새는 것을 얼마나 경계하는데? 쉬울 리가 없지.”

“아···. 그 생각은 전혀 못 해 봤는데요.”

“세상일이라는 게 참 생각처럼 쉽지도 않거니와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지도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

“그런데 무공을 변형시키는 것이 쉬운 일인가요?”“그럴 리가 있느냐? 무공을 변형시키고 깨달음을 녹여내어 재창조하는 사람들을 일대 종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렇군요···.”

“그래서 황궁 무고를 털어볼 만한 게다. 그 안에 수많은 비급을 공부하며 안계를 넓힌다면 좋은 공부가 될 거야.”

“사부님 뭐 하나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언제부터 물어봤다고? 하던 대로 해라.”

“예. 그럼 여쭙겠습니다. 사부님은 언제 절정고수가 되나요?”

“글쎄···. 그것이 왜 궁금하냐?”

“절정고수가 된다면 그 벌모세수인지 하는 것을 통해 제 굳은 근골과 막힌 심맥을 뚫어 빠르게 경지를 높일 수 있다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그렇지. 적어도 내가 1갑자의 내력만 더 있었더라면···. 아니 반갑자만 더 되었어도 시도해 볼 수는 있겠지. 쩝, 지금 내가 익히고 있는 심법은 내가 처음 내력을 닦던 심법이 아니다. 폐공을 한번 겪었어. 덕분에 더 좋은 심법으로 갈아 탈수는 있었지만 본래 가지고 있던 내공을 다 잃었어. 폐공의 단점이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힘은 들어도 네놈에게 더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내가 반갑자의 내력을 더 쌓으려면 적어도 10년은 더 걸릴 거다.”

“그렇군요.”

연수는 풀죽은 소리로 대답했는데 사부는 그런 연수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연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공에 있어서 내가공부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공부가 꼭 내공의 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는 내공이 부족해 벽에 막혀있긴 하지만 모든 무인이 그런 것은 아니야. 내가의 공부라는 것은 내력의 수발 축기의 양 경락의 단련 기운의 단련 등 많은 것을 조화롭게 이루어 나가야 한다. 단순히 내력만 왕창 쌓는다고 내가의 공부를 대성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

“하지만 저는 너무 늦게 입문한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사실이지. 그렇다고 네가 꼭 대성할 수 없다고 장담할 순 없다. 무공이란 재능과 노력 집착에 가까운 집념이 있어야 해. 하지만 많은 무인의 수만큼이나 많은 예가 존재한다. 어떤 놈은 무재는 타고났음에도 평범한 경지에 머무는 예도 있고 어떤 놈은 죽으라고 노력하지만, 하수에 머물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너의 재능이 어떠한지 너의 노력이 얼마나 큰지 너의 집념이 얼마나 끈질긴지가 중요한 거야. 사실 내력의 양이 많다는 건 매우 유리하고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내력의 양만 많다고 고수 소리를 듣는 것 또한 아니다. 일례로 강호에는 왕왕 천고의 영약을 주워 처먹거나 기연을 만나 또래보다 비약적인 내공의 증진을 이룬 젊은 고수들이 나타나지만 그들의 실력과 내력의 양이 비례 한적은 별로 없지. 가진바 재주가 삼류인데 영약을 처먹어 몇 갑자의 내력이 생긴들 일류 고수에게도 패할 수밖엔 없을 것이다. 내력이라는 것은 때론 물과 같으며 때로는 불과도 같고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우주의 기운이다. 이런 내력을 사람의 몸 안에 담아 신체 일부처럼 사용하지만 사실 그렇다고 진짜 내 신체의 일부가 되지는 않아. 외부의 기운을 강제로 몸에 잡아놓는 것이기에 수발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혈맥이 바쳐 주지 못한다면 결국 제대로 써먹기 힘들다.”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심법이라는 것은 단순히 축기와 운기만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야. 축기를 할 때는 심법마다 기의 성질을 바꾸며 축기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혈맥에 기를 흘리고 막힌 혈맥을 뚫어나가며 혈맥을 넓히기도 하고 혈에 자극을 줘서 혈맥을 단단하게 만든다. 아무리 천고의 영약인들 이 혈맥의 단련이라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 꾸준한 시간을 드려 해야만 하는 수련이다. 만약 너에게 백이라는 내력이 있다고 해도 네 혈맥이 끌어다 쓰도록 버틸 수 있는 내력이 일이라면 너보다 1할에 불과한 십의 내력을 가진 자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 십의 내력을 가진 자가 오라는 내력을 끌어다 쓸 수 있다면 또 어떨까? 물론 극단적인 비교이고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런 것이다. 무공은 절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단시간에 얻는다고 좋은 것도 아니야. 특히나 명문정파에서 정기신의 조화를 매우 중요히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 사파로 넘어오면 또 이야기가 다르지만 결국 정사를 통틀어 진정한 고수들은 정기신 무엇하나 쳐지거나 넘치지 않게 된다. 결국, 시작점이 달라도 목표는 같다는 게다. 아무리 달라졌어도 뿌리는 하나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들었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너에게 가르칠 것을 설명해 줄 터이니 잘 기억하거라. 우선 심법으로는 종남의 입문공과 무당의 입문공 지금 내가 익히고 있는 대영심공 중 하나를 선택해서 기본심공으로 삼아야 한다. 전적으로 너의 결정에 맡기겠다. 물론 기초의 내가공부는 삼재 심법으로 시작할 테지만. 그리고 나는 너에게 두 가지의 검법과 세 가지의 권법 한가지의 운신법 한가지의 경공을 가르칠 게다. 무엇하나 쓸모없는 것이 없으니 이 또한 잘 배워 둬야 한다. 그리고 무공 외에도 보는 법 기억하는 법 듣는 법을 가르칠 것이고 생각하는 법 또한 가르칠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변장술까지 배우게 되면 내 밑에서는 더이상 배울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하는 법은 뭔가요?”

“말 그대로 생각을 하는 법이다. 궁리하는 법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사람은 의외로 단순한 동물이어서 생각을 할 때도 편한 대로 자주 하던 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해서 좁은 시야에 갇히게 된다는 말이지. 예를 들어 주마.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고 대답해 보아라. 너는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이다. 그런데 아침에 성안으로 소금장수 다섯이 들어가고 셋이 나왔다. 점심에는 곡물상인 여섯이 들어가고 다섯이 나왔지. 저녁에는 소금장수가 여덟 곡물 장수가 넷 어물전 상인이 셋 들어갔으며 소금장수 넷 곡물 장수 셋이 나왔다.”

사부의 말에 연수는 눈을 굴려 가며 머릿속으로 열심히 암산하고 있었다.

사부는 그런 연수의 행동에 고소를 머금고 물었다.

“자 그렇다면 성문의 경비를 서고 이 모든 걸 지켜본 경비의 나이는 올해 몇이냐?”

“네?”

“듣질 않았느냐, 성문 경비의 나이는 올해 몇이 되느냐?”

연수는 순간 당황했다. 열심히 암산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이라니. 연수는 고소를 짓는 사부의 얼굴을 보며 생각을 했다. 사실 당황하기는 했으나 21세기에 이런 트릭 문제는 인터넷만 뒤져 보아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편이다. 한참을 사부의 말을 곱씹던 중 연수는 무언가 떠오른 듯 무릎을 '탁' 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경비의 나이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올해 열다섯 즘 되었겠군요.”

사부는 연수의 대답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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