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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6화 (16/202)

# 16화

연수는 사부의 질문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평생 점소이나 하다 은퇴하는 것 보다는 그 무공이라도 배우는 게 좋죠. 삼재공이나 익힐까도 생각했었는데요.”

“그러면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느냐?”

“아무래도 기대가 너무 커서 그 반동으로 실망 또한 큰 가 봅니다.”

“원 이놈도, 네놈이 장차 큰 고수가 될지 누가 아느냐?”

“그렇겠죠. 그럼 사부에게 모든 걸 전수받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빠르면 4년 늦어도 6년이면 다 배우겠지.”

“그럼 그동안 생계는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죠?”

“걱정도 팔자구나. 그래도 내가 20년 동안 그 험한 강호에서 이 사파행을 해 왔는데 입에 풀칠 하나 못할까? 그동안 스스로 자부하는 다섯 번의 대박이 있었다. 그중 첫 번째는 삼독악주라는 악명이 자자하던 놈의 구사천독전을 훔쳐 그의 독문 독 제조법과 해독법을 얻은 것이고, 두 번째가 무당과 종남의 입문공을 얻은 것이며 세 번째가 소림의 외공중 하나인 낭심을 몸 안으로 흡수해 보호하는 남중무해라는 수법을 얻은 것이고 넷째가 어림 도독부에서 뇌물로 들어온 전표 중 은자 3천 냥짜리 전표 10장을 아무도 모르게 훔쳐낸 것이지. 마지막은 전대고수였던 천리주견 일정무의 독문경공 천리견보를 훔쳐낸 것이다.”

연수는 듣던 중 희한한 소리를 기억하고는 재빨리 물었다.

“아니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남중무해라는 그것은 뭐죠?”

“남자의 고환과 성기를 몸 안으로 흡수하듯 숨겨 남근 공격을 막는 수법이다.”

“아니 그런 해괴한 게 소림사에 있다는 말인가요?”

“남근 공격 자체가 훌륭한 공격법이라는 반증이다.”

“그렇군요. 그리고 3만 냥이나 되는 전표를 어찌 아무도 모르게 훔쳐내셨습니까?”

“음···. 당시 나는 어림 도독부 도독 강진령이 가전무공 강가 창법의 고수라는 소문을 듣고 그의 창법과 심법을 모두 훔칠 계획이었다. 그의 가전무공은 종남의 속가제자가 그 시초이므로 종남의 입문공과 큰 마찰 없이 상승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지. 그 후로 백일 정도를 그놈 주위를 맴돌며 그놈을 지켜보았다.”

말을 잇는 사부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짐을 본 연수는 직감적으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

사부는 씹어 뱉듯 말을 뱉고는 잠시 당시를 회상하듯 먼 산에 시선을 두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 강호에서 종남의 속가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던 죽심일창 강대천은 제법 강단이 있고 협의 지심이 뛰어나며 한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고 하여 별호에 대나무 같은 성정이라는 말까지 들어갈 정도로 유명했다. 대대로 군부 출신인 집안에서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가전 창법을 더욱 갈고 닦겠다며 강호에 투신한 사내다운 사람이었다.”

연수는 사부의 말에서 은연중 군부를 깔보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무관이 되지 않고 강호에 투신한 것만 가지고 그를 사내답다 표현하는 거로 보아 무림인의 특성상 나랏일 하는 양반들과는 일정 거리를 두는 거부감이 있는 듯했다.

“솔직히 말해 이 양반이 강호에 투신할 때만 해도 그의 성품이 좋고 대단한 호인이라 주위에 좋은 평가가 있기는 했지만, 그의 무공은 그에 비해 별 볼 일 없었다고 하지. 하기는 그게 군부에서나 먹히는 창법을 가지고 강호에 들어왔으니 뭐 별거 있었겠느냐? 소문에 의하면 그가 처음 강호행을 할 때만 해도 그의 실력은 이류의 평범한 실력이었다고 하더구나.”

“이류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데 평범하다 하십니까?”

“음.. 보통 강호에서 평가하기를 무기를 들고 휘두름에 있어 스스로 상하지 않을 정도로 육체적 수련이 되어 있다면 삼류 무사라고 구분을 짓고 거기에 내기를 닦아 소주천을 이뤄 조금이나마 축기한 내력을 이용할 줄 알면 이류 무사라 구분을 짓는다. 축기한 내력이 충만해 지고 운기가 자유로워져 몸 안에 쌓아 놓은 내기를 발출하여 외부에 영향력을 끼칠 정도가 되면 일류 고수라고 부르며 전신의 주요 혈맥 중 임독양맥을 빼고 모든 혈맥이 충만한 내력에 의해 뚫려 대주천을 이루고 온몸에 내력이 충만하고 이를 자유롭게 다루며 정기신의 조화가 절정에 올라 인간의 한계를 넘는 자들을 절정고수라 부르지.”

사부의 설명에 연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위도 있겠죠?”

“있지. 절정고수가 깨달음을 얻게 되면 흔히 말해 중단전이 열리며 초절정의 반열에 오른다고들 한다. 중단전이 열리게 되면 임독양맥을 자연스럽게 타통하게 된다고 하는데 비로소 온몸의 모든 혈맥을 뚫게 되어 운기의 자유로움이 무한하고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하여 초인의 반열에 올랐다고들 한다.”

연수는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 같은 무인들의 경지에 대해 듣는 것이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애가 탔다.

“그럼 그다음 경지도 있습니까?”

사부는 연수의 애타는 목소리를 들으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이제 15살이면 사부가 보기엔 한참이나 아이였다. 불우한 어린 시절에 의해 철이 빨리 든 것 같았지만 그래선지 연수는 미묘하게 어른의 티가 났다.

심하게 비약하면 마치 비슷한 나이대의 노인과 대화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연수가 눈을 빛내며 아이처럼 호기심을 내비치자 비로소 정상적인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그럼, 그 위의 경지가 있지. 큼큼”

사부는 안절부절못하는 연수를 보며 헛기침을 하더니 느긋하게 우물로 다가가 냉수를 한잔 퍼 올렸다.

“그 위의 경지는 어떤 경지인데요?”

“이놈아, 목 좀 축이고 이야기하자. 하도 말을 많이 해서 목이 타 죽겠구나.”

연수는 사부가 물을 마시는 그 잠시의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이제 좀 살 것 같구나. 그러니까 초절정의 다음 경지라면···. 흔히들 신화경의 경지 또는 입신경 이라고 부른단다. 인간이 한계를 넘고 초인의 경지에 들어 결국 신의 경지에 들게 된다는 입신경.”

“입신의 경지···.”

연수는 홀린 듯 무심코 사부의 말을 따라 했다.

“듣기로는 입신경에 든 무인 둘이 싸우게 되면 산이 무너지고 강줄기가 바뀐다고 하더라.”

“와···. 그, 그럼 혹시 그 이상의 경지도 있습니까?”

“어떨 것 같으냐?”

사부는 연수의 애타는 모습을 보며 놀리듯 물었다.

“흠···. 분명 있지 않을까요?”

“왜 그리 생각하느냐?”

“입신의 경지라면 완숙한 신의 경지라던가 탈신의 경지라던가···. 이어져야 하잖아요?”

연수의 말에 사부는 대소를 터트렸다.

“핫핫하 그리 따지니 또 그렇기도 하구나. 이제 입신하였으니 완숙하여 신을 벗어나야 한다라···. 하하하 재미있구나.”

“그러니까 분명 그 이상이 있는거죠?”

“그래. 있다. 흔히 말하는 현경이라는 경지인데 모든 움직임에 현묘한 무리가 섞여 있어 무의미한 움직임을 않는 경지라고 하더라.”

연수는 뭔가 실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래 단계인 신화경은 뭐 입신경이니 뭐니 대단하게 말씀하시더니 현경은 그게 끝인가요?”

“그래. 이게 끝이지. 왜냐하면, 고금을 통틀어 현경에 들었다는 무인을 다 합쳐 보아도 열 손가락을 넘지 않을 테니 당연하지 않겠느냐? 그저 그들을 본 인물들이 말하기를 차를 마시는 가벼운 움직임도 산책하는 걸음걸이도 밥을 먹는 숟가락질에도 대단한 무리가 담겨있어 보기만 해도 배우는 것이 있으며 그 경지를 헤아리려 했다가는 두통이 찾아온다고 하더라. 그리 말한 인물들이 대부분 신화경의 경지에 든 무인들이었으니 그저 현경이라 치할 뿐이지.”

“아···. 그럼 그 현경의 윗 단계 또한 있습니까?”

“그 위라···. 뭐 전설 속에서 전해지는 경지가 없지는 않다. 자연 경이라 하여 이미 자연과 하나 되어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고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흔히 말해 신선이라 불리는 경지라고 하더라. 듣기로는 자연 그 자체이며 세상 만물을 모두 깨닫게 되어 열이 되어 완전해져 오롯이 홀로 완벽한 인세의 굴레를 벗어 버린다나? 그런 말로만 전해지는 경지 또한 있다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와···. 등선하여 신선이 된다는 말이네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

연수는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호기심과 짓궂음이 섞인 짓궂은 얼굴로 사부에게 물었다.

“그럼 사부님의 경지는 어떠한 경지입니까?”

“나? 나야···. 일류의 끝에 와 있지.”

“일류면 일류지 일류의 끝은 뭐에요?”

“이놈아, 일류 고수라고 다 똑같은 일류 고수인 줄 아느냐? 그 안에도 다 격차가 있지. 내가 내력만 부족하지 않았으면 이미 절정고수의 반열에 올랐을 거다.”

“내력이 얼마나 있어야 절정 고수가 되는데요?”

“일류를 벗어나 절정의 경지 들려면 임독양맥을 뺀 모든 혈맥을 타통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한 갑자 반은 되는 내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평생 모은 공력이라 봐야 한 갑자 밖엔 되질 않아. 하여 내가 아직 일류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 그것만 아니라면 모든 실력 면에서 일류는 진작에 벗어났지 싶다. 아니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더라···.”

“강대천이라는 고수 이야기요.”

“아 그렇지 죽심일창! 그럼 이야기를 이어 가보마, 이 이류에 불과했던 호인이 약관이 지난 나이에 강호행을 시작하며 많은 비무를 이어가다가 종남과 연이 닿았던 모양이야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후 종남의 속가제자로 들어가 그가 다시 세상에 나온 게 그의 나이 이립이 지나서였지. 그런데 이류에 불과하던 그가 불과 십 년 남짓한 사이에 초절정의 고수가 되어서 강호에 나타났으니 그에 관한 관심은 가히 대단했다. 가문을 빼면 뭐 별 볼 일 없던 양반이 초절정의 고수가 되었다는 건 그만큼 강호에서는 누구나 바라는 기연이었으니까. 종남은 당시나 지금이나 검공과 권공에 능했지 창법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아. 그런 종남에서 어떤 가르침을 사사하였던 창법의 고수가 되었으니 당시에는 그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그 후 강대창은 강호행을 이어가다 불혹의 나이가 되자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알려져 있다. 그 이후 한 번도 강호의 일에 개입한 적도 그렇다고 군부에 개입한 적도 없지. 그런 그의 아들이 어림 도독부의 도독 강진령이다. 또 무위 또한 절정의 고수로 알려져 있었으니 그의 부친의 진전을 이은 게 확실했지.”

사부는 잠시 말을 끊고는 초록색 박 바가지에 남은 냉수를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해서 나는 당시 강진령의 주위를 100일이 넘도록 맴돌았어, 한데 이 빌어먹을 놈의 인사가 그토록 대단한 가전을 이었으면서 무공수련은 고사하고 매일을 기루나 돌아다니며 그곳 유지들에게 술대접받느라 바쁜 게 아니겠냐? 그렇다고 맡은 소임을 제대로 하는 인사냐 하면 그렇지도 않더군. 모든 일은 부장들에게 맡겨놓고 밤낮이 없이 그놈의 기루에서 시간을 보내는 쓸데없는 놈이었지. 그래서 나는 그놈의 가전 비급을 훔치기로 길을 바꾸고는 그놈의 집에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반년이 넘는 동안 머슴을 살며 그놈의 집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비급은커녕 흔한 서책 한 권 보기가 힘들더군. 그놈의 서재에는 웬 잡서들만 가득하고 음담을 엮은 소설들만 가득하더구나. 하여 지쳐 포기할 때쯤 그놈이 아끼는 첩실의 방에서 비밀 금고 방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찾은 것이 전가전장이 발급한 3천 냥짜리 전표 100장이다. 지금이야 전가 전장이 오대 전장이니 오대 금가니 하며 잘 나갔지 당시만 해도 전장사업에 뛰어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야. 당연히 사업을 위해 여기저기 뇌물을 먹이고 있었고 그중 술과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강 도독에게 큰 뇌물을 먹인 거지. 당시 전표는 어음전표였는데 향후 5년이 지나야 찾을 수 있는 전표였어. 서로에게 신뢰가 없었는지 어쨌는지 그 사정이야 잘 모르지만 나는 그길로 큰 빚을 져가며 유명한 위조꾼을 섭외했고 그에게 해당 전표 열 장을 위조해 줄 것을 의뢰했다. 당시 위조 꾼이 말하기를 일반인은 절대 모를 것이지만 전장에서는 십 중 십 백중 백 눈치를 챌 것이라고 하더군. 어쨌든 나는 위조전표 열 장을 그놈이 받은 전표 열 장과 바꿔치기했고, 그 후로 그 위조전표가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뭐 전가 전장에서는 도독의의 욕심이 과하다고 욕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본인들이 준 전표에 도독이 위조전표를 섞었다고 따지고 들기도 힘들었겠지. 그 후로 15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그 전표 중 두 장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이제보니 사부님께서는 알부자십니다?”

“내가 다 늙어서 계집질하는 것에도 취미가 없고 그렇다고 노름을 하지도 방탕한 생활을 하지도 않으니 큰돈을 쓸 곳인들 있겠느냐? 나름 심산유곡에서 무공이나 닦으며 사는 거지.”

“그런데 굳이 이런 심산유곡에 은거하신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사부는 아련한 표정으로 먼 산맥을 둘러보며 과거를 돌아보는 듯 잠시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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