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사부는 한참을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가 깨어나오며 연수를 나무랐다.
“어허, 이놈아 말 끊지 말고 들어라.”
“예.”
연수는 다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짧은 자신의 인내심을 탓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사파라고 꼭 다 나쁜 놈은 아니라는 거고, 협의라는 것이 객관적이어야지. 주관적이 되면 그저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말을 이어 보자면 결국 사파는 정의 심법을 지들 입맛대로 바꾸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정에 비하자면 부작용이 심하지만, 정에 비해 빠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의 심법에 비해 폐공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폐공이 뭡니까?”
“그동안 익힌 심법으로 생긴 내공을 폐하여 없애는 것이다.”
“그게 장점입니까?”
“당연하지. 정의 심법은 그 뿌리가 깊을수록 정순하다. 당연하지, 역근과 세수라는 그 지고한 호흡법에서 호신과 정신의 수양을 위해 발전시켜 이어지고 있으니.
하지만 사의 심법은 너무 많이 변칙적으로 바뀌며 그 뿌리에서 멀어져 왔어. 쉽게 말하자면 손을 너무 많이 탄 게지. 그러다 보니 정순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 대신 호흡법끼리 부딪치지만 않으면 여러 심법을 수련할 수도 있고 언제든 폐공시켜 다른 호흡법으로 갈아탈 수 있지. 하지만 정순한 정의 심법일수록 같은 뿌리의 상승 심법으로만 갈아탈 수 있게 만들어져있어 폐공하면 육체의 균형이 무너지며 큰 부작용을 불러온다. 명문정파에 있어 폐공이라 하면 단전의 폐해라는 말과 같다. 즉 정과 사, 이 반대되는 무공의 특징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내 생각으로는 사파의 심법이 유리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그러면 마교의 심법은 어떤가요?”
“일월신교라···. 그곳의 호흡법은 역근과 세수와는 연관이 없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호흡법이지. 역근과 세수와는 내기를 닦는 길이 반대라 하여 흔히 역천의 심법이라고들 하는데 그 내력이 쌓이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고 하지. 물론 인성이 변한다든가 주화입마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부작용이 있다고도 하지만. 일월신교야 그 뿌리가 외도이니 그에 대해 자세한 사정은 알 수가 없구나.”
“그렇군요. 그런데 사부님, 이 제자에게 어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아직 이해가 안 됩니다만.”
“그러냐? 큼큼 올해, 네 나이가 몇이냐?”
“아마 열여섯 즘 됩니다.”
“아마?”
“어릴 때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어 나이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제 친구인 소개가 12살일 때 저도 체구가 그만했으니 얼추 12살쯤 되겠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보통 무가의 자식들이 몇 살에 무공에 입문하는지 아느냐?”
“잘은 모르겠습니다.”
“빠르면 다섯 살이고 늦으면 아홉 살이다. 적어도 열 살 이전에는 입문하게 되지. 열 살이 넘으면 몸 안에 쌓인 탁기가 굳기 시작하고 자연히 혈맥이 좁아지고 경락이 막힌다. 그러니 당연히 십 세 이전에 운기를 시켜 혈맥을 튼튼히 키우고 혈을 뚫어놔야 후에 대성할 확률이 올라가지. 그리고 근골 또한 굳기 시작하기 전에 몸을 만들어놔야 조금이라도 무골에 가깝게 크게 된다. 그런데 열다섯이면 근골은 굳을 대로 굳었고, 전신 세맥은 탁기로 막힐 대로 막혀있겠지. 그 상태로 내가공부에 입문하면 어린아이 보다 대성할 확률은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
“그럼···. 전 고수가 될 수 없습니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다.”
“그럼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심각하던 연수의 표정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크게 보자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두 개나요?”
“그래. 그 외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가장 확실한 그 두 가지 방법부터 설명해 주마. 첫 번째 방법은 흔히 말하는 신공이라 불리는 절세의 무공을 익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들보다 훨씬 빠른 축기와 굳은 세맥과 근골을 되돌릴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흔히 말하는 영약이라는 것인데 그것도 절세의 영약을 복용해서 굳은 혈도와 혈맥을 뚫고 막대한 내공을 한 번에 쌓는 것이지.“
“아···. 어째 둘 다 쉽지 않아 보입니다만···. 그 외에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내가의 고수에게 내공을 전수받아 그의 내공을 최대한 흡수하는 방법 또한 있지. 위험하고 얼마나 내공을 흡수할지 미지수에 엄청난 고통이 따르겠지만 좋은 방법이다.”
“하아···. 또 없습니까?”
연수는 사부의 말을 들을수록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외에도 소문으로 전해지는 사마외도의 대법이라던가 아니면 내가 고수의 벌모세수를 꾸준히 받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 말씀은 저는 고수가 될 수 없다는 말이군요.”
“아니 저렇게 많은 방법이 있잖느냐?”
연수의 얼굴에 기대의 빛이 어렸다.
“그럼 사부님께서 제게 전수하실 무공이 절세의 신공이로군요.”
“그럴 리가 있느냐.”
“그럼 사부님께서 아껴두신 사문에 전해지는 절세의 영약이 있다거나···. 연단법이 있는 거군요.”
“그런 영약이나 연단법이 있었으면 내가 천하의 내가 고수가 되었겠지.”
“후우···. 그렇다면 사부님의 내공을 제게?”
“미쳤느냐? 이놈아 얼마 되지도 않은 내공 네놈에게 전수해 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게?”
“그럼 벌모세수를 해주실 겁니까?”
“그거 아무나 하는거 아니다. 최소 2갑자는 넘는 내공을 쌓아야 하고 그마저도 소모되는 내공이 많아 쉽지가 않다.”
“그럼 사마외도의 대법이란 것을..”
“그런 대법 들어나 봤지, 알 턱이 있겠느냐?”
“그럼 대체 저는 어찌 고수가 됩니까?”
“말해지 않았느냐? 진정한 사파인이 되면 된다. 좋은 무공을 훔치고 빼앗아 고수가 되어라. 나는 그 발판을 만들어 주마.”
연수는 순간 얼굴이 핼쑥해지며 하얗게 변했다.
“사부님 아무리 그래도 훔치고 빼앗다니···.”
“말했듯 사파의 방식일 뿐. 훔치고 빼앗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사부께서 사파라고 꼭 나쁜 놈은 아니라면서요. 협의란 것은 객관적이어야 한다지 않았습니까?”
“훔친 무공을 객관적인 협의에 쓰면 되지 않느냐? 그저 수단을 훔치는 것일 뿐이다. 그 수단을 어찌 쓰느냐에 따라 정의가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지. 탐관이나 악덕 상인에게 돈을 훔쳐 삶이 힘든 백성에게 나눠주는 이를 뭐라 부르는지 아느냐?”
“의적이라고···. 합니다만.”
“그래. 의적! 도적이 아니라 의적이다.”
연수는 사부의 궤변에 반쯤 포기한 심정이 되었다.
“하아, 네 뭐 그렇다고 합시다. 그런데 저보다 강한 고수의 무공을 무슨 수로 빼앗을 수 있습니까?”
“이놈아! 죽으려면 호랑이 불알을 못 만지겠냐? 너보다 강한 놈 무공을 무슨 수로 뺏어?”
인내심이 다 했는지 연수는 벌컥 짜증을 냈다.
“사부가 뺏으라면서요?!”
“너보다 강한 놈의 무공은 뺏기보단 훔쳐야지.”
“아···. 그렇군요. 그런데 뭐 초식이야 그렇게 훔친다고 치고 심법을 무슨 수로 훔칩니까?”
“비급을 훔치면 되지.”
“그 중한 비급을 들고 다니는 무인이 얼마나 됩니까?”
“거의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꽤 된다. 물론 명문정파의 무인은 거의 없지만.”
“그럼 명문의 무공은 못 훔치겠군요.”
“꼭 그렇지도 않다.”
“네?”
“궁리해 보거라. 정파의 무인인들 꼭 너보다 강할까?”
“그럼요.”
“정말?”
“네!”
연수는 다시 차오르는 짜증을 담아 대답했다.
“그럼 무당을 예로 들어보자. 무당의 장문인 손자가 일곱 살이라고 치자. 이놈은 무공을 익힌 지 반년쯤 되었다. 입문공을 익힌 이놈이 강할까?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지금의 네놈이 강할까?”
“음. 아무래도 제가 강합니다.”
“당연하다.”
“아, 그럼 어린애들을 노리라는 겁니까?”
“꼭 그렇지도 않지. 그런 아해들은 웬만해서는 혼자 밖으로 나올 일이 없으니까.”
“거, 속 시원히 말 좀 해 주십쇼.”
“예를 들자면 30대의 명문정파의 일대 제자와 네가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
“당연히 제가···! 죽겠죠.”
“그렇지 그건 상대가 더 강하니까. 그런데 궁리해봐라. 항상 그럴까? 과연 항상 상대가 이길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약 상대가 잠을 자고 있다면 어떨까? 똥간에서 볼일을 보고 있다면? 큰 부상을 입고 기식이 엄연하다면? 운기 중에 있다면 상대가 고수라고 항상 너보다 아니, 하수보다 강한 건 아니다.”
“아······.”
연수는 묘하게 사부의 말에 공감이 갔다.
“상대가 너보다 고수라면 항상 궁리해라 상대가 약해질 시기와 상황을. 그때를 기다리거나 그런 상황을 만들면 된다.”
“그렇군요.”
연수는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렇게 해서 사부께서는 좋은 무공을 건졌습니까?”
“그랬으면 네게 전해 주면 그만이지 이 장황한 이야기를 하겠느냐?”
“그럼 지금껏 무얼 얻으셨습니까?”
“훔치거나 빼앗을 방법을 궁리하고 수련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
“그럼 결과는 없는 거군요.”
“없진 않지. 종남과 무당의 입문공과 수련법을 훔쳤고, 많은 사파 고수들의 절초와 구명지초를 훔쳤지.”
“그럼 그걸 제게 전수해 주시면 되잖아요?”
“그런 걸 가르쳐서 네가 고수가 된다면 그러겠지만 그렇지 않다.”
“왜죠?”
“입문공 이래 봤자 말 그대로 입문공에 지나지 않아. 게다가 그 입문 심법을 익혀 버리면 그 심법과 연결되는 상승의 심법밖엔 쓸 수 없다. 평생 명문정파의 입문 심법 따위 닦아봐야 대성하기 힘들다. 괜히 상승의 무학을 배우기를 꿈꾸겠느냐?”
“그렇군요.”
“나는 나이 40이 넘어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너는 적어도 20대 초에는 움직일 수 있고 내가 얻은 결실을 모두 갖고 시작한다면 나보다 낫지 않겠느냐?”“그렇긴 합니다만.”
사부는 연수의 표정이 뚱한 것이 뭔가 마음에 꼭 차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구나. 왜 뺏고 훔치는 게 싫은 게냐?”
“어려서부터 굶어 죽기 싫어서 무던히 훔치고 빼앗았는데요. 뭘.”
“그럼 앞으로 배울 무공이 보잘것없어 보여 그러느냐?”
사부는 우려되는 마음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