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12화 (12/202)

# 12화

영방은 소개에게 전음을 보내고는 짐짓 능청을 떨며 입을 열었다.

“차 맛이 좋군요. 호검문의 술맛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오늘 용건이 술이나 마시면서 하기에는 적절치가 않구려.”

“어떤 용무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럼 이야기 해 드리겠소. 어젯밤 호검문의 암검대가 누군가를 찾느라 여기저기 수색을 했던 모양이오?”

순간 문주 수상의 눈썹이 꿈틀했다. 암검대가 조용히 일을 처리했을 것으로 생각했던 수상은 그렇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놈을 놓친 것도 짜증이 나는데 개방에서 냄새를 맡고 찾아 왔다면 늙은이 하나 제대로 못 잡았다고 강호의 비웃음을 살 수도 있었다.

“역시 개방이로군요. 저희 암검대가 조용히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개방의 눈을 피하긴 어려웠나 봅니다. 한데 저희가 누굴 찾았다고 따지러 오시지는 않았겠지요?”

문주가 영방이 문지기에게 한 말을 물고 들어오자 영방의 눈썹이 꿈틀했다.

‘만만치 않군.’

하지만 영방은 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개방과 상관도 없는 늙은이를 호검문이 찾든 못 찾든 그건 개방과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오.”

영방은 마치 그 늙은이가 누구인지 결과가 어땠는지 다 안다는 투로 말했다.

그 말에 수상의 눈에 수심이 깊어졌다.

‘이놈이 다 알고 찾아 왔군. 한데 왜?’

수상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 일에서 개방에게 뭐하나 실수한 게 없거늘 어째서 찾아 왔단 말인가?

영방은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며 목을 축이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호검문은 정파지요?”

순간 외당 주가 벌컥 화를 내듯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호검문에 따져 물을 것이 있다며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자신의 반도 못 산 어린 4결 제자 놈이 개방의 이름을 믿고 망발을 해대는 것도 화가 치미는데 자신들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말을 영방이 꺼내어 놓자 순간 이성을 잃은 것이다.

“당연한! 그럼 우리 호검문이 사파라는 말이오?”

영방은 순간 외당 주를 노려보며 뭐라 말하려 했는데 그보다 수상이 빨랐다.

“어허! 외당주! 개방 분타주께 무슨 결례요?”

“죄, 죄송합니다. 문주.”

“저희 외당 주가 혈기가 솟구쳐 무례를 범했습니다.”

“뭐 되었소.”

“계속 이야기하시지요. 저희 호검문은 당연히 정파입니다만.”

“그렇다면 당연히 양민을 협박하거나 핍박하는 일 따위 없어야겠죠?”

문주 수상은 영방의 말에 무언가 함정이 있음을 느꼈지만 간단한 질문이기에 간단하게 답했다.

“당연히 양민뿐만 아니라 약자를 핍박하는 일은 무림 정파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은근히 개방의 분타주인 자신을 끌어들여 개방이 호검문을 핍박해서는 정파가 아니라고 말하는 수상이었다.

영방은 수상의 말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군.’

영방은 짐짓 모르는 척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어제 호검문 암검대의 무사가 수색 중에 어린 점소이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핍박하는 사건이 있었소.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고아 출신의 점소이인데 어린 것이 먹고 살겠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기특해 내 평소 눈여겨보던 아이 오만. 목에 작은 검상을 입고 오줌을 지리는 모습을 보니 내 가슴이 다 아팠다오.”

이야기를 들은 문주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물론 이런 일이야 정파든 사파든 수도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한데 그 장면을 하필이면 개방의 분타주가 보아버렸다. 강호에 호검문이 양민을 핍박한다는 소문이 난다면 절대 좋을 일이 없었다. 게다가 그 소문의 진원이 개방이라면? 지난 10년간 노력하여 세워놓은 가세와 명예가 순식간에 바닥에 처박힐 것이 분명했다.

‘하필 그 점소이가 이놈이 아는 놈이고, 하필 봐도 이놈이 그 오밤중에 그 장면을 봤다.’

“내 그 자리에서 개입하자니 살 초는 쓰지 않았고, 나름 중요한 일을 하기에 그 자리는 넘겼소만, 호검문의 기강이 걱정되고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 이리 따지러 왔소. 사파 무리도 아니고 양민을 함부로 겁박하고 다녀서야 어디 명문정파라 할 수 있겠소?”

호검문 문주 진수상은 차를 들이켜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거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부덕하여 무사들의 기강이 해이해졌나 봅니다. 외당 주 당장 암검대의 대장과 해당 무사를 불러오시오.”

싸늘한 문주의 목소리에 외당 주는 잔뜩 긴장해서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서둘러 접객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필이면!”

외당 주는 어금니를 꽉 물며 씹어 뱉듯 말했다.

“이거 참 그 점소이에게 미안하게 되어 어찌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내 제자가 그 아이와는 친우라오. 아이가 싹싹하여 나도 평소 아들처럼 생각하던 아입니다.”

혹여나 해코지할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엄포였다.

“아, 그렇군요. 이 일은 제가 직접 일벌백계하여 문 내에 무사들의 기강을 바로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저희 호검문의 기강까지 신경 써 주셔서 분타주께 뭐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영방은 겉과 속이 전혀 다른 문주의 말에 뭐라 대답하지 않고 차만 마셨다.

뼈가 있는 문주의 말이 끝나자 암검대의 대장과 무사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어제 수색 중에 객잔에서 일하는 점소이 하나를 핍박한 일이 있나?”

대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장의 옆에 기립해 있던 무사가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제가 너무 다급한 나머지 그런 일이 있었사옵니다.”

“어째서 그런 무도를 저질렀나?”

“죄송합니다.”

순간 수상은 무사가 등에 멘 검을 뽑아 들어 무사의 어깨를 베어 갔다. 놀란 영방은 손에 내기를 가득 담으며 맨손으로 수상의 검을 쳐냈다.

깡!

취룡장으로 막았음에도 손이 울릴 정도로 얼얼한 것이 막지 않았으면 무사의 왼쪽 팔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문주, 일벌백계도 좋으나 과한 벌을 주면 내가 미안하지 않겠소? 자칫 개방과 호검문의 의기가 상할 수 있으니 내 얼굴을 보아 적당한 벌을 내리는 게 어떻겠소?”

수상은 날이 깨진 검을 슬쩍 뒤로 치우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하하 그 생각을 못 했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영진! 앞으로 3일 동안 굶으며 네가 한 잘못을 반성하라.”

“예!.”

문주는 손아귀가 찢어질 듯 욱신거리는 손을 뒤로 숨기며 눈앞의 거지 놈이 생각보다 고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문주도 바쁠 터이니 이만 가보겠소.”

“저희의 과오로 인해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 시키겠습니다. 또 조만간에 개봉에 직접 찾아가 속죄하겠습니다.”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뭐 알아서 잘하시겠지.”

영방은 그 말을 끝으로 소개를 데리고 서둘러 호검문을 나왔다.

호검문을 나서자 소개는 사부에게 소리를 낮춰 이야기했다.

“사부님 저 젊은 문주 놈이 악독하기 그지없지 않습니까?”

“쿨럭!”

영방은 제자의 물음에 대답 대신 한 움큼의 피를 게워냈다.

“스승님!”

“별거 아니다 수선떨지 마라.”

“피를 토하셨는데요?”

“내상을 조금 입어 죽은 피를 몰아낸 것이다. 그놈 나이도 어린놈이 보통내력이 아니야.”

“그 문주 놈이 그렇게 대단했나요?”

“알려지기로는 절정이 될까 말까 하다 했는데 아니야, 이미 완숙한 절정의 고수이다. 자칫 쉽게 막아내려 했으면 내 손이 잘렸을 거야.”

“설마요?”

“그놈 내가 막아서자 검세를 더 강하게 했다. 빌어먹을 놈 실수인 척 내 손목을 날리려 했어.”

“에? 그런 놈을 그냥 놔두셨어요?”

“흥! 그 자리에서 패주고 싶었다만 자칫 일이 커질 수 있으니까. 어쨌든 잘만 하면 본타에서 두둑이 공돈이라도 받겠구나.”

“어째서요?”“아마 조만간에 그놈이 본타에 큰돈을 적선 할거다.”

“왜죠?”

“내 입을 막기 위해서.”

“그럼 직접 돈이라도 줄 것이지 왜 본타에다가 돈을 줘요?”

“그래야 내가 헛소리를 안 하게 확실히 입을 막을 수 있으니까. 자칫 내가 소문이라도 내면 호검문의 명예는 그야말로 땅바닥에 처박힐 테니 별수 없을 게다.”

“저 때문에 괜히 스승님이 내상을 입게 되어 죄송합니다.”

“되었다. 덕분에 적지 않은 정보를 얻었어. 본타에다 보고할 중요한 정보다. 이렇게 공적 쌓을 일이 생겨서 오히려 득이 되었다.”

“그런데 저 문주 놈 정말 정파인이 맞는 겁니까? 하는 짓이 완전 사파인 같던데요?”

“소개야, 정파라고 선이고 사파라고 꼭 악은 아니다. 세상에 별의별 놈들이 많듯이 정파든 사파든 그 안에 별의별 놈들이 다 있다. 그러니까 항상 사람을 봐라. 배경을 보지 말고.”“예.”

“네놈은 무공에는 자질이 제법 있는 편이다만 눈이 어두워 걱정이구나.”

“제가 그래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편인데요?”

“그러면 말해봐라. 호검문에서 무엇을 느꼈느냐?”

“음···. 일단 문주 놈의 권력이 호검문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고 느꼈고, 아까 말한 것과 다르게 호검문의 기강이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외당 주는 속내를 잘 못 숨기는 놈에 무공도 뛰어나지 않아 보이는 것이 아마 문주의 친족쯤 되는 것 같고요. 문주 놈은 뱃속에 구렁이가 아홉 마리는 들어찬 음흉한 놈이라고 느꼈습니다.”

“호오 제법인데? 문주는 왜 음흉한 놈 같더냐?”

“개방을 등에 업고 사부님이 자신을 핍박하면 정파도 아니라고 협박했잖아요.”

“너 둔 한 줄 알았는데 제법 눈치는 있구나.”

“제가 몇 년을 빌어먹고 살았는데 이 정도 눈치는 있지요.”

“허허 제법이야. 그런데 호검문에서는 왜 그렇게 오만방자하게 굴었느냐?”

“그래야 개방의 위세가 살고 사부님의 위세가 높아지죠.”

“허허 그런 그것까지 생각했느냐?”

“아무렴 제가 사부님 위세에 기대어 건방이나 떨었을까 봐요.”

영방은 자기 생각보다 제자의 영특함이 뛰어나자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다. 오늘 수련은 건너뛰고 만두나 사 먹자. 이 사부가 사주마.”

“그러지 마시고 호대객잔에서 탕수육이나 사 먹죠. 이 제자가 내겠습니다.”“뭐? 탕수육? 네놈이 돈이 어디 있어서?”

“뭐 이래저래 생겼습니다. 가시죠.”

“그럼 가는 길에 분타에 들러 오량주 좀 챙겨 가자.”

“객잔에서 밖에서 사 온 술 먹으면 욕해요.”

“할 테면 하라지.”

“내상을 입었는데 술 드셔도 됩니까?”

“이 정도 내상은 운기 한번 하면 말끔히 사라진다.”

“그래도 그냥 가시죠. 백화주 정도는 사겠습니다.”

“소개야 근데 어디서 돈이 났느냐?”

“출처는 묻지 마시죠. 훔친 돈 아니니까.”

“허허허, 그래 일단 가자.”

소개와 영방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호 시내로 발길을 옮겼다.

다음 날이 되자 연수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서호에서의 마지막 날을 준비했다. 미리 노인과 말을 맞춰 나서 노인에게 받은 돈을 들고 마차와 말을 사놓았고, 마차에 노숙할 때 필요한 식량과 모포 옷가지와 작은 천막까지 준비해 놓았다.

마차와 말을 사는 데에만 금자 4냥이 들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자기 돈도 아니고 사부라는 사람은 이 정도 돈은 별거 아니라는 투였기에.

그 후에는 마부를 구하러 다녔는데, 평소에 이런저런 일을 하며 가끔 객잔에 손님으로 오는 중년인에게 부탁하여 20여 일 마차를 몰아주면 금자 2냥을 삯으로 주기로 하고 선금으로 금자 한 냥을 주었다. 중년인은 높은 임금이 마음에 들었는지 두말하지 않고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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