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호검문은 소개가 알기로는 전전대 종남파의 속가제자였던 서호검 낙연우의 3번째 제자가 세운 문파로 오래되진 않았지만, 아직도 간혹 종남파와 왕래를 하는 문파로 알려져 있었다.
이곳 서호는 사실 정파와 사파가 양립하고 있는 곳으로 서로 간에 마찰이 없도록 관여하지 않는지 오래되어 호검문이 최근세가 커지고 있다고 들었다.
스승에게 듣기를 한 10년 전만 해도 서호에서는 정파와 사파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져 그 치열한 싸움 안에서 호검문은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때마침 커지는 싸움을 종식 시키고 정사 간에 협약을 맺어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서호는 정과 사가 양립해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중의 하나라고 했다.
서호와 절강성은 지역 특성상 정파나 사파나 싸우지만 않는다면 먹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항주에서 가장 큰 주루와 객잔 들이몰려 있으며 관광이 발달한 서호이기에 조금만 과장하면 명나라의 가장 큰 이권이 있는 도시라고 해도 허언은 아니었다.
소개는 생각이 닿자 경공을 펼쳐 분타로 달려갔다.
분타의 문 여는 시간도 아까워 담장을 뛰어넘은 소개는 분타주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스승님!”
영방은 바닥에 앉아 구운 닭을 뜯으며 작은 잔에 오량주를 살살 따라 아껴 먹다가 갑자기 뛰쳐 들어온 소개 때문에 놀라 따라놓은 오량주를 흘렸다.
“헉! 아이고 이 아까운걸···. 이놈아! 본타에 불이라도 났다더냐? 웬 호들갑이야?”
“다른 게 아니고요, 호검문 말이에요.”
“호검문이 왜?”
“거기에서 대장이라고 불리는 놈은 어떤 놈이에요?”
“응? 대장이면···. 호검대 대장일 수도 있고, 암검대에 대장일 수도 있고, 주검대의 대장일 수도 있는데 그중에 누굴 말하는 거야?”
“검은 옷을 입고 등 뒤로 검을 메고 또···. 과하게 큰 삿갓을 썼다던데요?”
“그럼 암검대네. 근데 그게 왜?”
“아니 다른 게 아니고, 제 친구요. 연수 말이에요.”
“오, 그 인간성 바른 친구가 왜? 어디 멀리 떠난다는 것 같던데?”
“예. 잃었던 기억을 되찾아 부모님을 찾아간대요.”
“잘됐구나. 이제 그 친구가 떠나면 나는 누가 술을 대접해 주나, 예의를 아는 친구였는데, 근데 그 친구랑 호검문이 무슨 상관이냐?”
“아니 어젯밤에 그 암검대의 무사 놈들이 다짜고짜 연수네 객잔에 쳐들어와 없는 사람을 내놓으라며 연수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잖아요. 잘못하면 목이 잘릴 뻔했데요. 제가 보니까 목에 검상이 조금만 깊었으면 저 세상 갔겠던데, 그놈들 어떻게 혼 좀 못 내줘요?”
“뭐? 암검대에서 누굴 찾았는데?”
“모르죠, 처음 보는 조잡한 그림을 내밀고는 협박을 했다고 하던데요. 객방을 다 뒤지며 손님들을 깨워놓고 객잔을 한바탕 뒤엎고 갔대요.”
소개는 있는 대로 과장해서 사건을 뻥튀기시켰다.
반면 영방은 연수가 당한 억울한 일보다 호검문의 암검대에서 한밤중에 누굴 찾아다녔다는 것이 더 신경이 쓰였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암검대라···.”
“아니 스승님. 평소 연수가 스승님에게 대접한 술이 몇 병인데 반응이 이러십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수라고요!”
“이놈이 그렇다고 내가 가서 그 암검대 무사 놈을 쥐어박아야겠냐?”
“좀 그래 주면 안 돼요?”
“그랬다가 개방과 종남파 사이에 싸움이라도 붙으면?”
“아니 설마 그렇게까지야 되겠어요? 그리고 그깟 호검문이 이 서호에서 스승님이 귀여워하는 제자의 친구이자 스승님이 좋아하던 아이에게 협박하며 목을 자르려고 했는데, 스승님이 그거 하나 못 따질 정도로 개방의 영향력이 적습니까?”
문득 소개에게 듣다 보니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르는 영방이었다.
뭐 강호에서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고, 실제로 누가 다친 것도 아니기에 별거 아니라면 아닌 일이지만 종남도 아니고 호검문의 평무사 하나가 평소 자신에게 지극히도 정성을 보이던 기특한 아이를 핍박했다 하니 부아가 치미는 게 당연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그 연수라는 아이는 많이 다쳤느냐?”
“하필 목에 칼을 디밀어서 많이 놀랐나 보더라고요.”
“하긴 그랬겠지. 음···. 하기야 호검문 따위가 뭐라고.”
“그럼요. 게다가 사부님은 6결 제자잖아요. 배분으로 따져도 거기 장문인 따위보다 높지요.”
“하긴 호검문 장문인이 애송이인 건 사실이지.”
호검문은 10년 전 장문인이 사파와의 싸움으로 죽은 후에 당시 스무 살 남짓 되던 장자가 장문직을 이었다.
지금 나이가 서른을 조금 넘었으니 확실히 배분을 따지자면 서호 분타의 분타주 이자 개방의 6결 제자인 자신이 꿀릴 것도 없었다.
“좋다, 어디 따지러 가보자.”
영방은 오량주의 뚜껑을 꽉 막아 두고 남은 잔을 비운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소개는 위풍당당하게 스승의 앞에 서서 호검문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왼손에는 말린 대나무에 철사를 감아 쪼개지지 않게 만든 개구봉까지 들고 있었다.
평소 개방 거지들은 구걸할 때 적선하는 사람이 위협감이 들지 않도록 개구봉은 들고 다니지 않는 편이다.
개방 거지가 개구봉을 챙겨 들고 있다면 무림인으로서의 일을 볼 때뿐인데, 해서 개방 거지가 개구봉을 챙겨 드는 일은 무공수련이나 개방대회를 빼면 딱히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든 편이었다.
“스승님은 개구봉을 안 드셔도 됩니까?”
“나야 적수공권이 편하다. 그깟 호검문 따위야 맨손이면 충분해.”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저는 언제 취룡구장을 익힐 수 있을까요?”
“이놈이 무공욕심만 많아서, 구연 공이나 대성해 이놈아. 그 후에 취연공을 익히고 나서야 취룡구장을 익힐 수 있다. 나도 6결을 달고 나서야 전수받은 걸 날름 빼먹을 셈이냐?”
“빼먹다니요? 무슨 말을 그리도 섭섭하게 하십니까?”
둘은 이런저런 농을 주고받으며 호검문의 대문 앞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그동안 실실 웃으며 농을 주고받던 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대문을 지키던 무사가 찾아온 두 거지의 모습을 보고는 한소리 하려다가 입을 막았다.
개방에서 수련할 때와 개방대회를 빼면 싸울 때만 꺼내든 다는 개구봉을 쥔 소년 거지의 허리춤을 보자 수결이 네 개나 있었다.
강호에 개방의 고수는 사결부터다, 라는 말이 있다.
사실 3결까지는 별 신경 쓰이지 않는 수준이지만 4결부터가 진짜 고수의 반열에 든다는 것은 무림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한데 아직 소년티를 다 벗지 못한 거지가 네 개의 매듭을 메고 있다.
그 옆을 보자 여섯 개의 매듭을 멘 중년의 끝자락에 있는 듯한 거지가 있다.
머리가 희끗희끗 한 것이 조금 있으면 노인 소리도 듣게 생겼는데 허리춤에 여섯 개의 매듭이 매어졌다면 분명히 이 서호의 분타주쯤 되었을 게 분명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절대 좋은 일로 찾아온 것 같지가 않은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고민을 하는 문지기였다.
“문주는 안에 계시는가?”
아직 고민 중인 문지기는 물음에 놀라 얼떨결에 답했다.
“계십니다. 문주님을 뵈러 오셨습니까?”
“그렇다네. 내 문주에게 따질 게 좀 있어서 찾아 왔네.”
자신의 문파의 문주에게 따질 게 있어서 찾아 왔다는 거지의 말에 문지기의 고민은 깊어졌다. 저렇게 대놓고 나오는데 ‘아 그러십니까? 드시지요.’ 하고 문을 열어 줄 수도 없고 개방의 고수인데 문전 박대를 할 수도 없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될까요?”
“이봐 문지기 양반. 우리 스승님이 당신이랑 두런두런 이야기할 배분으로 보여? 문 열고 들어가 서호 분타의 분타주께서 납시었다고 전하고 안내해.”
소개의 거침없는 말에 문지기의 인상이 사나워졌다. 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기에 문지기는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따라서 오시지요.”
소개는 거들먹거리며 문지기의 뒤를 따랐다.
건들건들하는 꼴이 마치 뒷골목 왈패를 연상케 했지만, 본인도 분타주 영방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안으로 둘을 안내한 문지기는 내원으로 들기 전에 외원에 있는 외당으로 향해 외당 주에게 사실을 고하고 둘을 외당의 접객실로 안내했다.
외당의 접객실은 제법 분위기가 돈깨나 들인 것 같았는데, 의자에도 솜과 천을 덧대 엉덩이가 푹신한 것이 소개로서는 난생처음 맛보는 편안함이었다.
“스승님 호검문 돈벌이가 쏠쏠한 모양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외당의 접객실이 이 정도면 제법 알차게 돈을 버는 것 같구나. 밖으로 알려진 사업 말고도 다른 돈벌이가 있는 것 같군.”
영방은 개방의 고위 거지답게 호검문의 외당 접객실 하나만 보고도 호검문의 재력을 헤아렸다.
그때 문이 열리며 외당 주가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호검문의 외당 주 백석동이라고 합니다.”
“서호 분타주 신영방이다.”
“저는 스승님 제자 소개이외다.”
소개는 스승이 대뜸 반말을 해대자 외당 주라는 중년인에게 막말을 해버렸다.
외당 주의 웃는 낯이 잠시 지간 싸늘하게 식었는데 그 순간 분타주의 더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문주를 찾는다고 말했는데, 왜 자네가 나왔지? 호검문은 우리 개방을 물로 보는 건가?”
싸늘하게 식었던 외당 주의 얼굴에 순간 억지웃음 꽃이 피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안 그래도 문주님께 소식을 전했으니 금방 오실 겁니다. 혹여 어떤 일 때문에 그러는지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우리 스승님이 당신이랑 도란도란 말을 섞을 배분으로 보이쇼?”
순간 석동은 어금니로 볼살을 깨물며 웃는 낯을 지켜 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누가 봐도 시벌개진 것이 심사가 뒤틀렸음을 단번에 알아챌 것 같았다.
“하, 하하 이거 실례했군요. 한데 소형제의 기상이 참으로 높은 것이 개방의 기상이 엿보이는군요.”
“우리 개방은 이게 보통이지.”
“스승님 이 양반 사람 보는 눈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석동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냈다.
사실 석동은 소개의 노란 싹수를 가리켜 돌려서 개방을 욕했는데 욕도 못 알아듣고 저리 건방을 떠니 더 화가 치솟았다.
화가 치솟는 가슴을 차를 마시며 가라앉히는데 때마침 문주가 들어왔다.
“호검문의 문주 진수상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여기는 내 제자 소개라 하고, 나는 서호의 분타주 신영방이오.”
“평소 이야기는 자주 들었습니다. 항주에서는 첫 번째 6결 분타주라고 하던데 실제로 뵈니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마디를 나눠 봤음에도 영방은 수상이라는 자가 만만치 않음을 단번에 느꼈다. 외당 주를 봤을 때만 해도 그 무공의 깊이나 하는 짓이 눈에 뻔히 보여 만만했는데 호검문이 지금 서호에서 어떻게 이렇게 커질 수 있었는지 문주를 보자 단번에 감이 왔다.
‘무공만 봐도 내 아래는 아니군.’
“나도 평소 호검문의 문주가 수완이 좋고 인물 됨됨이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소. 실제로 보니 소문에 과장됨이 일 푼도 없소.”
“하하하 감사합니다.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한데 개방 선배님께서 어찌 저를 찾아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술상이라도 차려놓고 한잔하시며 이야기를 들어도 되겠습니까?”
순간 술상이라는 말에 군침이 꿀떡 넘어갔지만 애써 정신을 가다듬은 영방은 무언가 불만 어린 표정의 제자에게 전음을 보내며 차를 마시는 척 입을 가렸다.
-오만방자하지 마라. 만만한 놈이 아니다.
순간 한껏 건방을 떨 준비를 하며 다리를 꼬려던 소개의 다리가 조용히 가지런히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