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9화 (9/202)

# 9화

“객잔은 영업이 끝났습니다. 손님. 식사는 안 되고, 혹여 방을 빌리실···.”

“혹시 이런 영감을 못 보았느냐?”

연수의 말을 끊은 남자는 연수의 얼굴 앞에 조악한 용모파기를 내밀었다.

매부리코와 찢어진 눈 비록 대충 그린 조악한 그림이었으나 연수는 단번에 그 그림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림을 보는 척하며 남자의 기색을 살펴본 연수는 남자의 성미가 굉장히 조급해 보였다.

남자의 뒤로는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자들이 여럿 보였고, 모두 하나같이 복장이 비슷했다.

삿갓을 얼굴 밑으로 눌러쓰고 어두운색 옷을 입고 등 뒤로는 검을 차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런 손님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확실한 것이냐? 혹여 이놈을 숨겨 주었다가는 이 객잔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

“아이고, 무사님. 제가 생전 본적도 없는 늙은이를 뭐 한다고 숨겨 주겠습니까? 보아하니 높은 고수분이신 것 같은데 제 간이 아무리 커도 그런 분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연수가 말을 끝내자 무사의 뒤로 다른 무사가 달려오더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혈흔이 이 근처에서 끊겼습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숨어 있을 겁니다.”

무사의 보고를 듣고는 눈매가 날카로워진 무사는 연수를 노려보았다.

무사의 감이 분명히 이곳에 영감이 숨어 있다고 말하고 있었고, 수하의 보고를 들어 봐도 이 근처가 분명했다.

“1조와 2조는 저 앞에 있는 객잔과 주루를 살펴라. 3조와 4조는 이 뒤편으로 있는 객잔 들을 살펴라. 방 하나하나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

무사의 말에 근처를 살피며 바삐 움직이던 무사들이 순식간에 흩어지며 사라졌다.

‘역시 무림인!’

연수는 가뜩이나 어두운 행색을 하고는 마치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인영들을 보고는 감탄했다.

“네가 숨기는 것이 없다면 내 직접 확인해도 되겠지.”

“예? 한데 이미 묵고 계신 손님들께 폐를 끼치기에는···.”

무사의 뒤에 기립해 있던 부하로 보이는 사내가 언제 꺼냈는지 차가운 검을 연수의 목에 들이밀었다.

목에 차가운 날이 닿고 나서야 무사가 검을 꺼냈음을 확인한 연수의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차갑고 예리한 검이 목의 피부를 파고드는 느낌은 연수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감히 네놈 주제에 토를 다느냐?”

“어허, 상대는 어린 점소이다. 검을 치워라.”

“예.”

무사가 조용히 나무라자 부하의 검이 어느새 등 뒤 검갑에 들어가 있다.

검을 회수하는 무사의 동작이 눈에 채 보이지도 않았기에 자신의 목 옆으로 흐르는 한 방울의 피가 아니었다면 무사의 부하가 자신의 목에 검을 들이댄 것이 착각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무사의 움직임은 놀라웠다.

순식간에 검이 사라지자 연수의 몸이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부들부들 떨려왔다.

“우리는 종남에게서 부탁을 받은 호검문이다. 감히 서호에서는 우리의 행사에 불만을 표출할 사람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말을 마친 무사는 연수를 지나쳐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갔다.

연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2층과 3층에서 잠시 소란이 일었지만, 감히 무사들에게 항의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각 정도 지나자 떨림이 자자 들고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연수는 수색을 끝내고 내려오는 무사와 눈이 마주쳤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히 꿀꺽하고 침이 넘어갔다.

무사는 잠시 1층에서 주위를 주욱 둘러보더니 주방 쪽에 눈길을 두었다.

“저쪽에는 주방 말고 다른 공간이 있느냐?”

무사의 질문에 연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식자재 창고가 있습니다.”

“안내해라.”

연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한발 한발 떼며 하늘에 기도했다.

‘부디 굽어살펴 주소서.’

주방 이곳저곳을 살피며 연수의 뒤를 따르던 무사 둘은 연수가 창고 문 앞에서 어물쩍거리자 짜증스럽게 물었다.

“뭣 하느냐?”

“저, 그게···. 이곳은 저희 숙수가 장을 발효시키느라 냄새가 좀···.”

“이놈! 어서 열어라!”

연수가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자 안에서 역한 냄새가 훅 풍겨 나왔다.

무사 둘은 순간 나는 냄새에 인상을 쓰며 코를 막았다.

“지독하군! 살펴보아라.”

중년의 무사는 안을 슬쩍 보고는 부하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주방 밖으로 나갔다.

무사의 부하는 인상을 쓰며 안을 대충 둘러보고는 나갔다.

“무슨 놈의 장 냄새가 이리 역한 것이냐?”

“저희 숙수가 직접 담근 장이라 합니다. 항아리 뚜껑을 열어 저리 숙성을 시키는 게 비법이라는데 어디에 쓰는 장인지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별 거지 같은 장이 다 있네.”

무사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며 행여 옷에 냄새가 배었을까 옷에 코를 대고 킁킁대며 옷을 손으로 털었다.

‘뚜껑을 열어나서 천만다행이었지.’

혹시 몰라 냄새가 지독한 장독 뚜껑 하나를 열어 놓았는데, 그것이 유효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객잔은 아닌가 봅니다. 하기야 생각이 있다면 사람이 많은 객잔이 아니라 사람이 적은 민가로 숨어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그렇긴 하다만 이 근처에서 흔적이 끊긴 것이 이상하지 않으냐?”

“강호에 비열하기로 소문이 난 작자입니다. 이 정도 술수야 기본 아니겠습니까?”

“흠···. 그 망할 노친네를 잡을 기회였는데···. 망할!”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대장님의 소화장에 적중되었으니 아무리 그 영감탱이라도 멀리 도망갈 수는 없었을 겁니다.”

“글쎄, 워낙에 요망한 늙은이다 보니 모르겠군. 일단 주변을 더 수색한다. 다른 조들의 상황을 들어 보고 수색망을 넓혀 보지.”

“예.”

두 명의 무사는 말을 마치고는 잠시 연수를 보다가 사과 한마디 없이 객잔을 나가 버렸다.

‘정파라더니 개 같네.’

연수는 생각과는 달리 무사들이 나가고는 서둘러 문을 걸어 잠그고는 잠시 기다리다 식자재 창고로 달려갔다.

노인을 숨긴 항아리 뚜껑을 열자 노인이 코를 막은 채 위를 바라보며 물었다.

“놈들은 갔는가?”

“예. 다행히 물러갔네요. 정파라고 하더니 잘못하면 목 날아갈 뻔했습니다.”

노인은 목을 어루만지는 연수의 목 주변에 얇은 검상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큰 빚을 졌군. 덕분에 살았어.”

“아직 주위를 수색하고 있을 겁니다. 일단 나오세요.”

연수는 노인을 부축해서 항아리에서 꺼내고 두 개의 항아리 뚜껑을 닫았다.

“그나저나 대단한 악취군. 저게 사람이 먹는 장이 맞나?”

“냄새는 저래도 불에 볶으면 악취는 달아나고 맛난 냄새가 납니다. 저희 숙수가 직접 만든 장인데 다음에 한 번 드셔보세요.”

“사양하고 싶군.”

“일단 따라서 오십시오.”

연수는 2층에 혹 나와 있는 사람이 있나 살피고는 조용히 노인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왔다.

방에 들어서자 목소리를 죽이며 소곤거리듯 물었다.

“뭘 하셨길래 저렇게 살벌한 놈들이 쫓는 겁니까?”

노인 역시 목소리를 죽여 대답했다.

“과거에 뭘 좀 훔쳤지.”

“오래된 일입니까?”

“십 년도 넘은 일이지.”

“도대체 뭘 훔쳤기에 아직도 쫓깁니까?”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닐세. 어쨌든 이리 도와줘서 고맙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보게. 이리 보여도 자네 하나쯤 도와줄 수 있으니, 돈을 원하는가?”

“정말 제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습니까?”

“허허 사양하지는 않는군. 똑똑해. 뭐든 말해 보게.”

“그전에 하나 물어도 됩니까?”

“얼마든지.”

노인은 너그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무림인이십니까?”

“응? 무림인이라면 무림인이지.”

연수는 시원찮은 노인의 말에 아리송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림인이면 무림인이고 아니면 아니지, 애매하게 답하십니까?”

“흠···. 무림에 몸을 담았으니 무림인이라면 그렇기도 하지만 최근 십 년 넘게 강호에는 나온 적이 없으니 무림인이 아니라면 또 아니지 않은가?”

“그럼 무공을 하실 줄 알겠네요?”

“그야 당연하지.”

“그럼 노인은 고수 십니까?”

“흠···. 고수라면···.”

“고수고 아니라면 아니라고요?”

연수가 노인의 말을 가로채 먼저 해 버리자 노인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쉿. 조용히 하세요.”

“보기보다 더 영민하구나.”

“보기엔 어떤데요?”

“보기에는···. 순박해 보이지.”

“그럼 노인장은 고수가 아닌 겁니까? 맞는 겁니까?”

“강호에서는 나 정도면 나름대로 고수로 쳐준다.”

“그래요? 그러면···. 무공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무공을 배우고 싶으냐?”

“예.”

“왜?”

“배우고 싶은데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그럼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배우고 싶단 말이냐?”

“음···.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우리같이 가진 것 없는 고아들은 성공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같은 처지에는 그 힘은 무공밖에 없데요.”

“고아인 게냐?”

“그러니까 이 나이에 점소이로 일하고 있죠. 그나마 몇 년 전까지는 친구랑 둘이 빌어먹고 살았습니다.”

노인은 순간 연민의 표정으로 연수를 봤다.

“무공 배워주실 수 있습니까?”

“흠···. 몇 가지 조건만 들어 준다면 가르쳐주마.”

“뭔데요?”

“일단 이곳을 그만두고 나를 따라서 와야 한다.”

“음···. 그리고요?”

“나를 사부로 모셔야 한다.”

“또 그리고요?”

“마지막으로 한번 결정하면 뒤로 되돌릴 수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무공 배워주시는 겁니다?”

“그래. 쿨럭!”

노인이 기침하자 피가 튀었다.

“괜찮으세요? 위험한 거 아닙니까?”

“괜찮다. 내상을 좀 입었을 뿐이니까. 며칠 요양하면 금방 났는다.”

“검상도 입으신 것 같은데요?”

“얕은 상처야. 지혈도 다 됐고.”

노인은 품에서 작은 보합을 꺼내 열어서는 안에든 노란 덩어리를 살살 퍼내어 옷을 벗고는 상처에 발랐다.

“금창약이라는 연고다. 등에 좀 발라 다오.”

노인의 양팔과 어깨에는 긴 검상이 나아 있었고, 등 뒤에는 사선으로 등을 가로지르는 제법 깊은 검상이 있었다.

“이거 상처가 깊은데요?”

“그 정도는 괜찮아. 피부만 상했다. 뼈도 멀쩡하고 근막도 괜찮아.”

연수는 상처에 연고를 바르며 물었다.

“이 정도면 꿰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의원도 없는데 무슨 수로 꿰매겠느냐. 지금 의원에게 갔다가는 놈들에게 잡힌다.”

“그냥 실이랑 바늘로 꿰매면 되죠. 제가 꿰맬까요?”

“네가?”

“예.”

연수는 옷장 서랍 밑에서 작은 바늘 하나와 실을 꺼내와서는 노인의 뒤에 앉았다.

“꿰맬 수 있겠느냐?”

“봉합만 하면 되겠죠.”

연수는 검상의 끝에서부터 한 땀을 꿰매 실을 끊고 묶으며 상처를 한군데씩 봉합했다.

검상을 다 꿰매니 총 28 땀이나 되었다.

모두 꿰맨 후에는 그 위로 금창약을 덧발랐다.

“덧나면 안 될 텐데···.”

연수의 상식으로는 깊은 상처가 나면 제대로 된 조치를 받아야 한다.

병원에서 염증이 생기지 않게 항생제도 맞아야 하고 소독과 약도 발라야 한다.

예전에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 넘어져서 발목이 제법 깊게 찢어진 적이 있었는데 TV에서 본대로 깨끗한 물로 씻고 하얀 소독약 빨간 소독약을 번갈아 바르고 연고를 찢어진 곳에 대충 짜 넣은 적이 있었다.

며칠 동안은 괜찮았는데 4일째 아침이 되자 발을 땅에 딛는 순간 그대로 쓰러져 일어날 수가 없도록 아팠다.

병원을 갔더니 염증이 생겨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뼈에 난 염증까지 긁어내야 한다고 했는데, 덕분에 하반신 마취라는 걸 처음 해본 연수는 찢어진 상처가 얼마나 위험하며 염증이 생겨 덧나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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