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연수는 다른 건 몰라도 암기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주입식 교육에는 이골이 난 연수였다.
비록 지방대를 나왔을지언정 21세기의 그것도 무시무시하다는 한국의 교육을 받은 그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암기와 반복 학습만큼은 확실히 영혼에 새겨져 있었다.
연수는 그날부터 하루 30자의 한문을 외우기로 했다.
일하다가 잠시 쉴 때도 탁자에 물을 부어놓고 글자를 반복적으로 적었으며 일을 하는 중에도 중얼거리며 뜻을 외었고 잠들기 전까지는 항상 천자문 책을 들여다봤다.
한자는 굉장히 어렵다.
한글이라는 우수한 글을 익힌 한국인에게 한자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연수는 그 어려운 천자문을 반복 학습과 막무가내식 암기로 불과 3개월 만에 다 떼어 버렸다.
연수가 천자문 공부에 박차를 가한지 한 달 반 만에 일이었다.
서점의 주인은 놀랐다.
천자의 한자를 모두 쓰고 읽고 뜻을 풀이한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 반년 안에 천자문을 떼게 되면 영재라고 지역에 소문이 자자해진다. 그걸 3개월 만에 해내다니 이건 천재가 아닌가?
그 이야기를 서점주인에게 전해 들은 화구진은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어째 당연하다는 반응이오?”
“그 아이가 영특하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소.”
“허허 그래요? 어쨌든 그 영특함 덕분에 쏠쏠하던 수입이 사라졌습니다.”
“소학까지는 가르쳐 주시오.”
“소학이요? 점소이에게 굳이 소학까지 가르쳐 줄 필요가 있을까요? 대충 문장풀이 정도나 배우면 사는 데 지장은 없을 텐데···.”
“점소이로 끝날 아이가 아니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장차 크게 될 아이가 아닐까 싶소. 멀쩡한 부모만 있었어도 서호에서 영재로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르오.”
“하긴 저렇게 영특하니 팔자가 더러워서 그렇지. 어쩌면 글공부로 크게 됐을지도 모르죠. 어쨌든 더 가르쳐 보고 싶었는데 잘 됐소. 나도 쏠쏠히 버는 수입도 유지되고.”
그렇게 연수의 글공부는 이어졌다.
하지만 무작정 외우고 받아들이는 주입식 교육에 특화된 연수에게 소학은 쉽지가 않았다.
글과 글을 붙여 뜻을 풀이하는 방식은 연수에게는 고뇌를 안겨 주었다.
물론 소학 정도는 어찌어찌 배워 나갔지만 생각한 것만큼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글공부에 매진하며 또 하루를 마감하는데 소개가 찾아 왔다.
“여어.”
“소개야! 인마, 자주 좀 오라니까.”
“헤헤 그동안 아주 바빴다. 잘 지냈지?”
“그럼. 일단 올라가자.”
연수는 바쁜 저녁 시간이 지나가고 한산했기에 무동에게 말하고 소개를 2층으로 올려보냈다.
“내 방에 가 있어.”
그리고는 숙수에게 만두 5개만 쪄달라고 부탁했다.
“친구가 왔나 보구나.”
“네.”
“그 같이 구걸하러 다니던 그 친구지?”
“네. 맞아요.”
“근데 그 친구는 여전히 거지 생활을 하는 거니?”
“아마 평생 거지로 살 거예요. 개방에 입방 했거든요.”
“아! 그럼 장차 무림 고수가 될 테니 잘 보여야겠구나.”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킥킥.”
“자 다 됐다. 가지고 올라가렴.”
연수는 작은 바구니에 만두를 담아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뭘 이런 걸 또 내와?”
“잔말 말고 먹어둬.”
“에휴, 고맙다 인마.”
“어째 너는 살이 하나도 안 붙는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야?”
“그럭저럭 먹고는 살아. 그것보다 네 덕분에 입문 공은 모두 익혀서 조금 있으면 1결 제자로 승결 할 것 같아. 평의개로 올라가는 거지.”
“그래?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했지? 다행이다. 술이 잘 먹혔나 봐?”
“잘 먹혀도 제대로 먹혔어. 특히 우리 분타주님은 그 후로 노골적으로 나를 잘 봐주셔서 요즘 살만해.”
“잘됐네. 그런데 소개야.”
“응?”
“너희 개방은 정파인 거지?”
소개는 입안 가득 넣은 만두를 몇 번 씹지도 않고 꿀떡 삼키며 말했다.
“당연하지. 정파 중의 정파인 구파 일 방중 일방이 우리 개방이니까.”
“그러면 사파는 나쁜 거냐?”
“사파? 글쎄 나도 그저 주워들은 것뿐이지만 사파야 거의 악의 축으로 취급하니까 나쁘겠지?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걸 물어?”
“아니 다른 건 아니고 몇 달 전에 객잔에서 싸움이 있었거든. 묵고 있던 손님이 사파의 무사였나 봐. 그런데 웬 소림사의 중들이 찾아와서 그 무사를 잡아갔거든. 그들이 싸우는 걸 봤는데 엄청나더라고. 특히 그 스님들 무슨 팔뚝이 네 허리만큼 두꺼웠다니까? 막 장풍을 쏘는데 객잔 벽이 펑펑 터져 나가고 대단했다.”
“진짜? 와 좋은 구경 했네?”
“그러게 말이다. 그런 걸 보고 나니까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이 다 안 오더라니까.”
“그러게 나랑 같이 입방하자니까.”
“그래도 거지로 살기는 싫다.”
“하긴 너는 거지로 죽기는 싫다고 했지.”
“그런데 사실 소림이면 정파잖아? 그런데 4대 1로 한 무사를 잡아가는 게 그다지 보기 좋지는 않더라고.”
“그 정도면 양호한 거야. 사실 사파든 정파든 다 대 일로 한 명 공격하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한데? 거기다 사파 놈들은 갖은 암습을 다 하기까지 하는데 뭘.”
“그러냐?”
“나도 주워들은 거라 잘은 몰라. 그런데 4결 선배들이 말하는걸 들었는데 사파 놈들에 대해 좋게 말하는 꼴을 못 봤어. 하긴 동기 중에 사파 놈들한테 당한 사람들도 많으니까 원한이 많이 쌓였겠지.”
“그렇긴 하겠네.”
“어쨌든 덕분에 잘 먹었다. 조금만 있으면 승결 하게 될 테고, 그러면 나도 더 자주 올 수 있으니까 다음에 또 보자.”
“또 벌써 가냐?”
“응. 사실은 분타주님이 몰래 입문 심법을 나한테만 전수해 주고 있거든. 원래는 1결을 단 후에나 배울 수 있는 건데 지난번 술을 대접한 후로 몰래 전수해 주고 있어. 동기 놈들보다 한발이라도 먼저 나가라고, 오늘도 분타 밖에서 몰래 전수 받고 잠시 들른 거다.”
“그 입문 심법이라는 게 내공을 쌓는 그거 말하는 거지?”
“응.”
“와···. 그건 조금 부럽네.”
“부럽긴 진짜는 어차피 입문 심법을 5성 이상 쌓아서 4결을 달고 상위 심법을 배워야 그게 진짜인데. 주워들어 보니까 개방의 진짜 고수는 4결 부터래.”
“그러냐? 그래도 부럽다 인마.”
“내가 몰래 가르쳐 줄까?”
“그래도 되냐?”
“당연히 안 되지. 걸리면 나만 죽는 게 아니라 너까지 죽을 텐데.”
“짜식이. 괜히 기대했잖아.”
“하하 어쨌든 다음에 보자.”
“야, 잠깐 기다려.”
연수는 소개를 붙들어 놓고는 침상 밑 상자를 열어 은자 2개와 철전 50개를 무명 전낭에 넣어 소개에 건넸다.
“은자 두 개랑 철전 50개다. 지난번같이 술사다가 윗사람들한테 줘.”
“또? 인마 네가 피땀 흘려 번 돈인데···.”
“이번에 일이 좀 있어서 제법 많은 돈이 들어왔어. 부담 없이 받아.”
“점소이가 큰돈이 들어와 봤자지.”
연수는 소개에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까 말한 무사의 방에서 은원보를 몰래 주워 왔어.”
“뭐?”
“쉿. 그러니까 받아. 분타주께는 꼭 오량주를 줘야 한다. 남은 돈은 잘 갖고 있다가 배고플 때 만두라도 사 먹고.”
“고맙다. 출세하면 갚을게.”
“그래. 나도 무림고수 친구 둔 덕 좀 보자.”
연수는 소개를 배웅하고 남은 객잔 일을 마무리하고는 글을 배우러 서점으로 향했다.
소개는 저번에 술을 샀던 진가 양조장에서 지난번과 같이 백화주5병과 오량주를 사서 어깨에 메고는 기분 좋게 분타로 향했다.
분타 안으로 들어서자 2결제자 차개와 3결제자 방소가 동기들의 취구보를 봐 주고 있었다.
“이제 형은 완벽하게 외웠구나. 하지만 아직 부드럽게 연결되지는 않는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연습해놔. 조금 있으면 승결 할 녀석들이 어설퍼서는 안 돼.”
“예!”
“다녀왔습니다.”
“어딜 쏘다니느라···.”
소개의 목소리를 듣고 한마디 쏘아 주려던 차개는 소개의 어깨에 메어 있는 술병들을 보고 뒷말을 삼켰다.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느라 잠시 외출했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그거···.”
“아 친구가 선배님들 접대하라며 챙겨주었습니다.”
방소는 순식간에 소개의 앞으로 달려와 어깨에 메어 있는 술병을 받아 들었다.
“정말 좋은 친구를 두었구나. 한서 객잔의 어린 점소이라고 했지?”
“예. 저번과 같이 3결 선배님들 3병 2결 선배님들 2병입니다.”
차개는 두 병의 백화주를 받아 들며 고급스러워 보이는 남은 한 병을 힐끗거렸다.
“그건 분타주님 꺼지?”
“예. 오량주라고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오, 오량주! 그게 오량주였어?”
“네.”
“그거 어떻게 한 입만 맛 좀 보면 안 되냐?”
“예? 그러다 분타주님이 눈치채면···.”
-딱!
방소는 차 개의 뒤통수에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아서라, 괜히 분타주님한테 찍히면 앞으로 괴롭다.”
“그, 그렇겠죠? 그럼 냄새라도···. 어떻게···.”
그때 문이 열리며 분타주가 들어 왔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지?”
무의개들은 허리를 접으며 분타주에게 인사를 했고, 차개와 방소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열린 분타의 문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어깨에 메여 있는 술병을 보고 분타주가 혹시나 해 소개에게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분타주가 소개 앞에 멈춰 서자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신법이었다.
“역시!”
“헤헤, 친구가 전해 주랍니다.”
술병의 마개를 열어 냄새를 맡은 분타주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오량주, 또 오량주로구나. 하하하 네 친구에게 꼭 고맙다고 전해줘야 한다.”
“네.”
“안 그래도 장타주 놈 때문에 화딱지가 나서 술 생각이 간절했는데 잘됐다.”
“장타주님이 오셨었습니까?”
장타주는 서호의 근처 부양 분타의 분타주였는데 지금 서호 분타주 신영방의 2년 선배였다.
당시 같이 서호의 분타에서 동문수학했는데 그 당시 영방과 동기들을 괴롭히고 부려먹어 동기들 사이에서는 원성이 자자했다.
후에 영방은 장타주 보다 먼저 5결에 승결하게 되었고 서호분타주를 맡게 되었는데 절강에서 제일 중요한 분타 중 하나인 서호를 영방이 맞게 되면서 당시 4결제자였던 장타주는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5결 승결한 장타주는 부양의 분타주가 되었고 그때부터 사사건건 영방에게 시비를 걸었는데 개방 내에서도 둘이 앙숙으로 지내는 건 유명했다.
“그래 그놈이 글쎄 서호에 색마로 악명 자자한 기취색주놈을 때려잡았다면서 염장을 지르지 않더냐!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번에 그 공으로 자신이 6결로 승결을 할 것 같다나 어쨌다나···. 그러면서 출셋길이 열렸네! 어쩌네 하면서 나더러 그 색마 놈을 안 잡아 줘서 고맙다고 하더군. 에잇 빌어 처먹을 놈. 아니 빌어먹지도 못할 놈 같으니라고! 퉤!”
“아 그러셨군요···.”
“그놈이 같은 분타에서 생활할 때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 아느냐? 아 글쎄 내가 무의개 시절에···.”
물론 소개는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분타주에게 100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니까, 이러다가 또 긴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아 소개는 말을 돌렸다.
“한데 분타주님, 소림에 넷이 몰려다니는 우락부락한 무승이 있습니까?”
“응? 웬 무승? 넷이라···. 넷이 몰려다니는 우락부락한 무승이라면 사대금강이 있지.”
“아, 그 무승들 팔뚝이 마치 제 허리만큼 두껍나요?”
“그래, 그들이 팔뚝과 다리통이 굵기로 유명하지. 소림 내에서도 독특한 외공과 기공을 익혀서 힘이 장사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들은 갑자기 왜?”
“다름이 아니고요, 얼마 전에 그들이 친구 놈 객잔에서 누굴 잡아갔다고 해서요.”
“뭐? 에이, 그럴 리가 있나? 다른 중들도 아니고 사대금강이 숭산을 벗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거기다 여기 서호에서 누굴 잡아가?”
“사파의 무사였다고 하던걸요?”
“사파의 무사? 그걸 사대금강이 잡아갔다? 말이 안 되는데···.”
“사대금강인 줄은 모르겠지만, 소림에서 나온 무승이었다는 데요. 게다가 팔뚝이 마치 제 허리보다 두꺼웠다고···.”
“그럼 사대금강이 틀림없는데···. 누굴 잡아갔다? 그게 누구지? 사파라···. 사파의 무사라···. 이게 진짜면 지급···. 아니 천 급 정보인데···. 소개야!”
“네?”
“너 진짜 이 이야기가 사실이냐?”
“제 친구가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그럼 지금 당장 가서 더 자세히 물어보거라. 이거 잘만 하면 엄청난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다. 너도 나중에 4결로 승결 할지도 몰라. 아니 확실하다. 구연공만 5성이상 쌓으면 틀림없이 4결 승급 감이다. 이런 정보는 흔한 게 아니야. 나 또한 승결해서 6결이 될 수도 있다. 장로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게다.”
“저, 정말요?”
“그럼 당연하지. 어서 가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보거라. 나는 본타로 정보를 보낼 준비를 해두마.”
“네!”
소개는 서둘러 분타를 벗어나 연수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