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6화 (6/202)

# 6화

무승의 말대로 별다를 것 없이 평소처럼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잠자리에 든 연수는 그 무승의 팔뚝이 떠올랐다.

그가 알기로는 현시대의 운동으로 그런 팔뚝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예전 보디빌딩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 웨이트 트레이닝은 옛날 그리스나 중국에서도 했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21세기의 선수들과 비교하긴 힘들다고 했다.

확실히 19세기 초의 운동선수들의 몸과 21세기의 운동선수들의 몸만 비교해 봐도 그 차이가 확연했는데, 15세기의 지금 소림사의 중 팔뚝이 마치 보디빌더를 보는 듯 선명하고 거대한 근육이 가득 차 있는 것이 잘 믿기지를 않았다.

“역시 소림사인가?”

하기는 21세기에 와서는 그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해도 21세기까지 실존하고 있는 조직답게 소림사는 소림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인지 한참을 잠을 못 이루며 잡념에 빠져 있는데 1층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 같은 놈들!”

연수는 놀라 밖으로 뛰쳐나오는데 선임 점소이 황석이 방문을 빼꼼 열며 달려가는 연수를 막았다.

“막내야! 가지 마라.”

“예?”

“아까 왔던 무승이 찾아온 거야, 괜히 무림인들 싸움에 잘못 끼어들면 우리처럼 가벼운 목숨 순식간에 날아간다. 가지마.”

“그래도 뭔가 부서지는 소리까지 나는데 확인은 해 봐야죠.”

연수는 무동의 만류를 뒤로하고 조심히 계단을 내려가며 밑을 살폈다.

1층에는 탁자 두 개가 부서져 있고 3층에 머무르는 손님이 검을 빼 들고 4명의 중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무사하나를 사방으로 중들이 둘러싼 형국이었다.

“이놈! 이만 포기하고 순순히 따라라.”

“흥! 더러운 땡중 놈들아 정파의 태산이라는 네놈들 하는 짓이 고작 협공이냐?”

“끝까지 저항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말이 끝나자 네 명의 중들은 짠 듯이 무사를 향해 달려들었는데 는 탁자를 밟고 뛰어오르며 다가오는 네 명의 무승들을 향해 무사는 검을 휘둘렀다.

마치 체조 선수처럼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물구나무서듯 떨어져 내리며 검을 휘두르는 무사의 몸짓에 몰래 지켜보던 연수는 충격에 입이 딱 벌어졌다. ‘

무승 들은 봉을 꺼내 들고 무사와 맞서 싸웠는데 신기하게도 무사의 검과 봉이 맞닿는 것만으로 무사는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마치 무협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삼 층에서 몰래 내려다보며 무사의 몸에 와이어가 연결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저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야?’

상식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불가능 한 일이었다.

무사가 공중에서 몸을 뒤집는 정도야 체조 선수 또는 서커스단원들이 하는 걸 TV에서 본 적은 있지만, 검 한 자루 휘두르며 중들의 봉과 교착하며 그대로 몸을 공중에 유지하고 싸운다니 말이 되지 않는 장면을 목격한 연수로서는 정신적인 충격이 대단했다.

‘하, 이런 게 가능하다니···. 잘하면 장풍도 쏘겠구만.’

막 생각을 했을 때 연수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이 무사의 뒤를 점하던 두 중이 봉을 놓고는 쌍장을 내밀었는데 무사가 몸을 뒤집으며 피하자 반대편 벽이 퍼억 하며 터져 나갔다.

‘아···.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연수는 믿을 수가 없어서 볼을 꼬집어 봤지만,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이라는 것만 깨달을 뿐이었다.

결국, 땅에 내려선 무사는 격렬히 반항했지만 긴 봉으로 사방을 점하고 공격하는 중들의 공격에 힘이 빠져 중들에게 포박당하고 말았다.

얼굴에 긴 흉터가 사선으로 난 승려가 포박된 후에도 발악하는 무사의 뒷목을 손가락으로 누르자 무사는 그대로 기절했다.

“이제 나와도 되오.”

저녁에 본 승려의 말에 문득 정신을 차린 연수는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깨닫고 일어나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몰래 볼 생각은 없었는데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지켜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스님.”

“새벽에 잠을 깨워 미안하게 됐소. 혹여 이자가 눈치챌까 미리 언질을 못 드렸소.”

“아닙니다. 일이 잘 풀린 것 같아 다행입니다.”

중은 품속에서 전낭 하나를 꺼내 연수에게 내밀었다.

“객잔에 손해를 끼쳤으니 객주께 전해 주시오. 보상으로는 넉넉할게요.”

“네.”

두 손으로 전낭을 받는 연수를 잠시 바라본 중은 품에서 금자 한 냥을 꺼내더니 연수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많이 놀랐을 텐데 미안한 마음이라 생각하고 받아 두시오.”

“아니 이런 큰돈을 받을 수는···.”

“저희 소림은 작은 은혜라도 꼭 갚소이다.”

말을 남기도 돌아서는 중을 보며 연수는 금자를 품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하기는 어린 자신에게 끝까지 존대하는 중년의 중을 보면 과연 소림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슨 놈의 중들이 이렇게 돈이 많나 생각되기도 했다.

기절한 무사를 어깨에 들쳐 메고 나가는 그들을 확인하고 문단속을 한 연수는 여기저기 망가진 객잔을 한번 돌아봤다.

특히 무승의 장풍에 터져 나간 벽을 유심히 확인해 봤는데 아마 사람 몸에 맞았다면 결코 무사하긴 힘들 것 같았다.

한 차례 돌아본 연수는 문득 호기심이 일어 제법 묵직한 전낭을 열어보았다.

“헉!”

전낭 안에는 금자가 자그마치 12개나 들어 있었다. 금자가 열두 개면 연수가 10년을 넘게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하는 액수다.

이런 어마어마한 액수를 그대로 자신에게 던져주고 가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수는 잠시 이 돈을 가지고 도망갈까 생각했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차피 어린 몸으로 큰돈을 갖고 있어 봤자 정상적으로 사용하며 호의호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연수는 전통에 전낭을 통째로 넣고는 위층으로 올라가다 문득 생각난 듯 무사가 있던 방으로 올라갔다.

방 안은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는데, 침상에는 풀어 헤쳐진 무사의 봇짐이 보였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무사의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가 나왔고 그 속에 금원보 한 개와 은원보 3개가 나왔다.

마치 배처럼 생긴 4개의 원보를 보며 연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무개와 크기를 재보니 열 냥에서 열다섯 냥은 되는 것 같았다.

이 돈과 무승들이 준 돈을 갖고 달아날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연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연수는 은원보 두 개를 품에 챙기고는 1층으로 내려와 전낭까지 챙겨서는 객잔 밖으로 나와 화구진의 집으로 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큰 돈이기에 지금 화구진에게 전하지 않으면 사달이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승에게 받은 금자와 따로 챙긴 은 원보 두 개는 자신의 침상 밑에 숨겨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 홍구의 집에 도착한 연수는 대문을 두드렸다.

“객주님! 객주님! 저 연수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자 집안이 밝아지며 객주가 나왔다.

“아니 네가 이 시간에 왜 찾아온 게냐?”

연수는 다짜고짜 한 손엔 전낭과 한 손엔 다 쥐기 버거운 금원보와 은원보를 내밀었다.

객주는 연수의 손에서 큰돈이 들려 내밀어지자 뭔가 사연이 있음을 알고는 일단 받아 놓고는 연수를 안으로 들였다.

자신의 서재에 불을 밝히고는 연수에게 차를 한잔 따라 주며 말했다.

“일단 앉아서 숨부터 돌리거라.”

연수는 객주가 따라주는 차를 단숨에 마시고는 숨을 진정시키고 방금 겪은 일을 모두 말해 주었다.

물론 자신이 중에게 받은 금자의 이야기나 따로 챙긴 두 개의 은원보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했다.

“하면 객잔은 많이 상했느냐?”

“1층의 탁자 두 개와 의자 네 개가 부서졌고 벽 여섯 곳에 구멍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무승이 이런 큰돈을 물어 주었다고?”

“예.”

“허허···. 이거 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삼 층으로 올라가 보니 침상에 봇짐과 이 원보 두 개가 놓여 있었단 말이지?”

“예. 혹여나 방이 상했을까 올라가 보니 그런 큰돈이 있었어요.”

“그럼 네가 몰래 챙기지. 어째서 이 돈까지 나에게 주었느냐?”

“예? 어찌 그래요?”

홍구의 농담조의 말에 연수는 일부러 정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허허 농이다. 농이야. 그리고 다른 일은 없었느냐?”

연수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히 입을 뗐다.

“그 스님께서 제게 은자 두 냥을 주시며 잠을 방해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홍구는 은자 두 냥이라는 말에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 원 녀석도 그 돈을 내가 뺏기라도 할까 봐 숨겼느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연수를 보며 홍구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어린 마음에 큰돈을 받고 그럴 수도 있지. 은자 두 냥이면 네 한 달 월삭인데. 어쨌든 경위는 잘 알았으니 돌아가 보거라.”

“한데 그 무사가 훗날 찾아와 해코지하지 않을까요?”

연수의 말에 잠시 인상을 쓰며 고민하던 객주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이건 받아 두어라.”

객주는 서재 금고에서 은자를 다섯 냥이나 꺼내어 연수에게 주었다.

“이건?”

멍한 눈으로 돈을 받아든 연수에게 홍구는 웃으며 짓궂게 말했다.

“무사의 돈을 너도 받았으니 이제 공범인게다. 허허허”

“아, 예. 이제 저도 공범이네요.”

연수는 그길로 객잔으로 돌아왔다. 하룻밤 새에 15냥짜리 은원보와 금자 한 냥 그리고 은자 5냥이 생겼다.

1년 8개월은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할 돈이 하루 밤새에 손에 들어왔지만 그다지 크게 기쁘지 않았다.

큰돈이 생긴 것 보다 믿을 수 없는 무림인들의 힘에 가슴이 더 두근거렸다.

객잔에 도착해 2층으로 올라가자 황석이 안 자고 있었는지 연수를 불렀다.

“막내야! 무사했구나. 어딜 다녀온 길이야?”

연수는 아까 있었던 일을 대충 말해 주었다. 물론 3층에서 돈을 발견한 이야기는 뺐다.

“금자가 열두 냥이나?”

“네. 아무래도 너무 큰돈이라 보관하기도 겁이 나서 객주님께 갖다 드렸어요.”

“아···. 그랬구나. 허 그런 큰돈을 구경하다니 대단하다. 갖고 도망갔으면···.”

“네?”

“하하, 농이다. 농.”

연수가 볼 때 절대 농담인 표정은 아니었지만, 자신도 아마 나이가 좀 더 있었다면 진지하게 해 볼 고민이었다.

연수는 아쉬워하는 석동을 보며 품에서 은자 한 개를 꺼내서 건넸다.

“응? 이건 무슨 돈이야?”

“아까 그 스님이 밤잠 깨워 미안하다며 은자 두 개를 줬어요. 형도 같이 못 잤으니 반으로 나눠야죠.”

“역시! 우리 막둥이, 의리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고맙다.”

“그럼 놀라셨을 텐데 푹 주무세요. 아마도 객잔 수리 때문에 며칠은 쉴 것 같아요.”

“알았다. 아침에 보자.”

“예.”

연수는 방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갔다.

침상 밑에 작은 상자를 꺼내서 아까 홍구에게 받은 은자를 넣었다. 상자에는 철전 200개와 은자 14개 금자 한 냥 은원보 한개가 들어 있었다.

“와···. 부자 된 느낌이네.”

연수는 갑자기 큰돈이 생기자 침상 밑에 보관하기가 왠지 불안해졌다.

‘이 기회에 전장에 돈을 좀 맡겨볼까? 적지만 이자도 붙여 준다는데···.’

숙수가 저번에 받는 월삭을 전장에 맡겨 보관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씩 빼 쓴다고 했고, 사장은 큰돈을 맡기고 전표를 받아 보관한다고도 했었다.

‘아니야. 괜히 어린 나이에 큰돈 들고 갔다가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지.’

연수가 얼마 전까지 서호에서 거지였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괜히 갑자기 큰돈을 전장에 들고 갔다가 그 출처를 의심받으면 난감해진다.

연수는 하는 수 없이 어디 숨겨 놓을 곳이 없나 궁리를 했다. 한참을 궁리해봐도 딱히 안심할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상자를 침상 밑에 두려는데 항상 상자를 두는 침상 밑 구석에 쑥 들어가는 구멍이 보였다.

바닥이 뚫려 작은 구멍이 나 있던 것이다.

연수는 이거다 싶어 상자 안에 작고 오래된 무명천 주머니에 은원보와 금자, 은자 몇 개를 담아 구멍 구석에다 숨겨 두었다.

상자에는 철전과 은자만 남겨 두어 만약을 대비했다.

한결 안심된 연수는 침상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까 보았던 무림인들의 무위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배우고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개를 따라 개방에 입방할걸···. 아니야. 그래도 거지는 아니지.’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 어느덧 잠든 연수는 꿈에 무림의 고수가 되어 무위를 펼치는 꿈을 꾸었다.

이날부터 연수는 무림에 대해 무림인에 대해 무공에 대해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황석에게 무림에 관한 이야기를 묻기도 했고 무공을 배우는 방법에 대해서도 물었었다.

하지만 황석은 죽었다가 무가에서 다시 태어나거나 천고의 기연이 닿아야 한다는 말밖에는 해주지 않았다.

사실 무공을 배울 보편적인 방법이 있다면 무동이 여기서 점소이나 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숙수에게 서점에 가면 삼재공을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당의 검법과 심법이었던 삼재공이 속세에 전해져 웬만한 낭인부터 뒷골목 왈패까지 익혔다는 이야기.

하지만 연수는 한자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호기심에 글을 가르쳐 주는 서점주인에게 물어봤지만, 삼재공은 무공 축에도 못 든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래도 무당의 무공이라고 두 권짜리 책이 은자 세 냥이나 하는 가격도 무시 못 했다.

‘하긴 무협 소설을 봐도 삼재검법이니 하는 것은 다 하류 중의 하류로 표현되었지.’

어찌 되었든 글을 제대로 모르는 연수로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일단은 천자문이나 떼자.’

그때부터 연수는 글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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