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연수는 긴장된 마음을 숨기며 밝은 미소로 무사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사님, 이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무사가 연수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자 연수는 밝은 미소를 유지 하며 물었다.
“식사만 하시는 거죠?”
보통 오전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식사만 하고 간다.
저녁때 좀 찾는 손님들은 숙박하는 손님이 많지만, 오전에 찾아와 방을 내달라는 손님은 드물었기에 연수는 그리 물었다.
“아니, 며칠 묵을 방도 준비해놔.”
“아, 네. 알겠습니다. 방은 2층과 3층이 있는데, 2층이 편하시죠?”
“층은 상관없지만, 양 옆방에 다른 손님을 받지 않는 방이나 맨 끝 방으로 준비해 두어라, 그리고 옆방 역시 방값을 낼 테니, 다른 손님은 받지 않도록 해.”
“아, 알겠습니다. 무사님. 식사는 무엇으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소면과 간단히 먹을 몇 가지 알아서 갖다 주면 된다.”
“그러시면 소면과 저희 객 잔의 명물 왕만두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래.”
연수는 서둘러 주방에 주문을 넣고는 객잔의 주인에게 달려갔다. 객잔 주 화구진은 평소 아침 일찍 객잔에 출근해서 보통은 작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부족한 잠을 채우거나 매상 장부를 정리하며 정오는 되어야 1층으로 내려와 접객하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잠이 부족한지 집무실 구석 침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객주님. 객주님.”
문밖에서 연수가 불러 보았지만, 답이 없자 연수는 문을 두드리며 조금 더 크게 불렀다.
“객주님! 객주님!”
“으음, 들어와라, 무슨 일이 있는 게야?”
평소 웬만한 일들은 알아서 처리하던 연수가 아침 일찍부터 자신의 집무실을 찾아오니 구진은 의아함에 잠을 날려 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아 연수를 들였다.
“무림인으로 보이는 손님이 한 분 오셨는데, 며칠 묵다 가신다며 방을 달라 했습니다. 그런데 방을 구하는 조건이 특이해서요. 양 옆방이 비어 손님이 안 드는 방, 혹은 복도에서 맨 끝 방으로 주되 옆에 방은 값을 치른다고 비워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응? 지금 그렇게 줄 수 있는 방이 있느냐?”
“3층에 있기는 한데 이런 요구를 하는 손님은 처음이라서 객주님에게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잘했다. 혹시 다른 요구는 없더냐?”
“예, 아직은 별다른 요구는 없었습니다.”
“그래···. 또 무슨 요구를 하거나 일이 생기면 올라와서 전해다오. 그리고 평소보다 더 신경 좀 써주고.”
“예.”
연수는 보고를 끝내고는 1층으로 내려와 완성된 요리들을 날랐다. 혹시나 입에 음식 맛이 맞지 않을까 무사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무사는 별다른 기색 없이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무사가 일어서자 연수는 재빨리 무사의 곁으로 다가섰다.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계산을 먼저 받아야 했지만, 무림인에게는 절대 계산을 먼저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다.
혹시나 돈을 안 내고 그냥 나간다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냥 주는 대로 받는 것이 오래 사는 방법이었다.
“그전에 계산부터 하마.”
“네. 그럼 얼마나 머무르실 예정이신지···.”
“한 삼 일정도 머무를 것 같다.”
“그동안 식사는 방으로 올릴까요?”
“아니다. 알아서 챙겨 먹을 테니 절대 내가 있을 방으로 들어오지도 부르지도 말아라. 청소도 할 필요 없으니 가만 내두면 된다.”
“아, 예. 그러면 식사하신 것과 방 두 개 삼 일치 하여 은자 6냥과 50문입니다.”
무사는 품 안에서 전낭을 꺼내서는 은자 8개를 연수에게 쥐여줬다.
“절대 아무도 내 방에 들지 않아야 한다.”
“네. 침모에게도 두 방에는 사흘 동안 청소하지 말라 일러둘 테니 편히 쉬시면 됩니다.”
연수는 은자 두 냥은 품속에 집어넣고는 무사를 3층 구석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옆방에서 찻주전자를 꺼내와 무사의 방에 있는 찻주전자 옆에 놓고는 말했다.
“혹여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내려와 찾아 주시면 제가 올려 드리겠습니다. 부르지 않으시면 절대 올라오지 않을 테니 편히 쉬십시오.”
“그래.”
연수는 무사를 뒤로하고 손님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에서 철전 50개를 꺼내와서 무사에게 받은 은자와 합쳐 1층 계산대에 있는 전통에다 집어넣고는 옆에 장부에 표기해 넣었다.
사실 연수는 한자를 제대로 모르기에 최근부터 객잔 주에게 부탁해서 일이 끝나면 서점주인에게 한 시진씩 글을 배우고 있었다.
그중 장부기재에 필요한 글들을 먼저 배워 숫자와 은자 철전 금자 표기법과 간단한 장부 작성법을 배워 겨우 장부는 작성할 정도가 되었다.
천자문을 배운지 한 달 반 정도 되었지만, 아직 어렵기만 한 한자이기에 먼저 장부작성에 필요한 글자들을 배워 둔 것이 다행이었다.
같이 일하는 선임 점소이는 아예 까막눈에다 글을 배울 생각도 없었고, 연수가 글을 배우러 다닌다고 하며 장부를 간단히 써내자 화구진 또한 일이 편해져 글공부하는데 드는 삯도 내주고 있었다.
사실 어린아이가 힘든 일을 하며 글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 기특해서 한 달에 은자 두 냥씩 내주고 서점주인에게 글을 가르쳐주기를 부탁했는데 며칠 만에 장부 기재하는 글부터 배워온 연수를 보자 기분이 더 좋아진 객주였다.
처음에는 천자문이나 대충 떼면 되겠다 했지만, 이제는 소학까지는 가르쳐 줄 요량이었다.
보통 천자문을 떼는 데에 걸리는 기간이 영특한 아이라면 6개월 정도 걸린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 서당이나 학당을 다니며 하루 대부분을 열심히 공부했을 때에 영특한 아이가 걸리는 기간이고, 연수는 겨우 하루 한 시진 일이 끝난 후 걸리는 기간이기에 아마도 몇 해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기다가 소학까지 가려면 그전에 몇 개의 문장서 들은 더 떼야 하니 아마 5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한 달 은자 두 냥이면 점소이 한 명 월삭이다.
그걸 5년으로 계산하면 1년에 24냥씩 5년에 120냥, 금자로 치면 6냥.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하지만 이미 연수를 꽤 높이 보고 있는 객주는 그 정도 해 주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덕분에 출근해서 이렇게 여가 시간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연수가 장부기재부터 셈법까지 더 익숙해지면 아예 집무실에서만 일을 보며 취미나 즐겨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객주였다.
독특한 무사 손님을 받고 시간은 또 빠르게 지나 어느덧 바쁜 저녁장사가 끝이 나자 객잔이 조금 한산해졌다.
뒷정리를 끝내고 잠시 앉아 쉬는 연수의 눈에 객작에 들어서는 머리를 빡빡 깎은 스님이 들어왔다.
이 시대로 와서 몇몇 중을 본 적이 있었고, 객주가 불교 신자라서 가끔 시주받으러 오는 스님들에게 후하게 시주를 하는 편이기에 제법 중들을 봐 왔던 연수의 눈에 지금 보이는 중들은 굉장히 독특했다.
일단 복장부터 고급스러워 보이는 노란 색 가사에 한쪽 팔은 거의 내놓다시피 했는데 팔의 두께가 무슨 보디빌더 수준의 이 시대에서는 보기 힘든 근육 덩어리였다.
그 두께가 마치 연수의 다리통보다 훨씬 두꺼워 보였으니 운동을 정말 좋아하는 중 같았다.
어쨌거나 특이한 것은 특이한 것이고 저 중들도 시주를 받으러 온 것 같으니 연수는 장부를 보며 주판 튕기기에 여념 없는 객주를 불렀다.
“객주님, 스님께서 시주받으러 오셨나 봅니다.”
연수의 말에 객잔 입구를 돌아본 객주는 전통에서 은자 한 개를 꺼내어 스님에게 다가가 합장했다.
객주가 합장하며 인사하자 중은 연신 주위를 둘러보더니 마주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미타불.”
“시주 다니시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스님, 이거 얼마 되지는 않지만 받아 주시지요.”
중은 객주가 내미는 은자를 한참을 바라보더니 씁쓸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탁발하러 나온 게 아닙니다. 마음 씀씀이는 감사하오나 다른 일이 있어 찾아 왔습니다.”
“다른 일이요?”
중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홍구의 앞에 내밀었다.
“혹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중이 꺼낸 용모파기를 본 홍구는 한참을 봤지만 집히는 곳이 없어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요, 이런 사람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숭산의 일입니다. 잘 좀 생각해 봐주시지요.”
숭산이라는 말에 홍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도 그럴 것이 숭산의 중이라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밖에는 없었으니까.
“소, 소림···.”
“예, 저는 소림사의 무승입니다. 혹시 짚이는 곳이 없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겠습니까?”
“자, 잠시만요. 연수야, 황석아 이리와 봐라.”
객주는 두 점소이를 부르며 용모파기를 보여 줬다.
“혹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용모파기를 본 두 점소이의 표정이 굳어지자 막 누구이고 언제 보았냐고 물으려던 객주를 제치고 중이 캐물었다.
“본적이 있군! 어디서 언제 봤지?”
“저, 그게···.”
연수가 말을 못 하고 자신의 눈치를 보자 객주는 직감적으로 아침에 연수가 말한 손님이 생각났다.
자신의 객잔에 묵는 손님이다.
“연수야, 이 스님은 공명정대하기로 소문난 소림의 스님이시다. 절대 그릇됨이 없는 분이시니 사실대로 이야기해 보아라.”
“사실 이 그림과 비슷한 분이 아침에 저희 객잔에 찾아와서 지금까지 머무르고 계십니다.”
“역시! 그러면 지금도 있는지 확인 좀 해 줄 수 있겠느냐?”
“그것이···. 그분께서 절대 자신이 찾지 않는 한 방으로 찾아오지 말라 하셔서···.”
“그래? 역시 그놈이 확실하군.”
객주는 무승을 보며 어렵게 입을 떼 물었다.
“저, 스님. 그 손님께서 소림에 무슨 불경을 저질렀습니까?”
“큼, 큼! 그는 사파의 악종이요. 만사천우라는 별호로 유명한 놈인데 마침 근처에 놈이 보인다는 소문을 듣고 협행을 하고자 이리 찾게 되었소. 객주께선 걱정하지 마시고 계시면 다 알아서 할 테니 협조 좀 해 주시오.”
“어련히 그러시겠죠. 그럼 제가 뭘 도와 드리면 됩니까?”
“그저 평소와 같이 생활하시면 됩니다. 저와 있었던 일을 함구하고 계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럼 그리 알겠습니다.”
연수는 중이 뭔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용모파기까지 들고 다니며 쫓고 있으면서 마치 여행 중에 나쁜 놈 소문을 듣고 잡으러 왔다는 식의 말은 앞뒤가 잘 맞지 않게 들렸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연수와는 큰 상관은 없어 그저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게 일이 마무리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