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연수는 그 후 소개와 같이 다니며 많은 일을 겪었다.
대부분 먹고살기 위한 처절한 투쟁의 연속이었지만 그 속에서 연수와 소개의 정은 돈독해졌다.
거지의 삶은 고달프다.
특히나 이 시대의 거지의 삶은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 먹고살기 막막한 이들은 살기 위해 구걸을 하게 되고 시대의 특성상 그런 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적선하는 이의 수는 적고 구걸하는 자의 수는 많다.
공급은 적고 수요는 많다면 수요자들끼리의 경쟁은 필수적이 된다. 그 경쟁에서 어린 소개와 연수의 삶이 편치 않음은 당연했다.
어느 날 지칠 대로 지친 연수는 소개에 물었다.
“우리 굳이 이 서호에서 빌어먹을 필요가 있냐? 절강의 거지라는 거지는 다 서호로 몰려오는데 우리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쯧쯧 바보야. 너 왜 절강의 거지 대부분이 이 서호로 모이는지 알아?”
“그야 서호가 객잔과 주루가 많고 돈 많은 인사가 많이 모이니까 그렇지.”
“그래. 다른 곳에 있는 거지들이 모일 만큼 서호는 빌어먹기 나쁘지 않은 곳이야. 우리가 돈 한 푼 없이 다른 곳을 가려면 구걸을 하며 다녀야 하는데, 이 서호를 벗어나면 구걸해서는 3일에 한 끼 먹기도 힘들어.”
“그 정도야?”
“그래 지금 황제가 무슨 사업을 한다고 배를 만드느라 백성들에게 강도질에 가까운 세금을 물려서 다들 먹고 살기가 쉽지 않데. 도적이 되거나 거지가 되거나 굶어 죽는 사람들의 수가 셀 수가 없어.”
“아···.”
얼핏 알 것도 같았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야. 그나마 우리 둘이 굶어 죽지 않고 이리 사는 것도 다 서호의 축복이라고 생각해.”
그럼에도 서호에서 거지 생활을 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서호에만 거지 패가 셀 수가 없도록 많았고, 그 많은 패거리에 치이다 보니 어린 두 소년이 먹고살기 편할 리 없었다.
특히나 소년 둘이서 하루가 멀다고 살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지치는 일이었다.
둘은 하루건너 한 번씩 다른 거지들과 싸움을 했는데 그로 인해 온몸에 멍이 가시는 날이 없었다.
“소개야 괜찮냐?”
소개는 절뚝이며 대답했다.
“보기보단 괜찮아. 그 뚱땡이 새끼가 날붙이를 꺼낼 줄은 몰랐어.”
“하필 다리를 다쳐서···.”
“그래도 다행이지. 잘못하면 죽을 뻔했어.”
“그놈도 놀랐는지 요 며칠 보이질 않아.”
“아마 우리가 관아에 신고했는지 알 테니까 앞으로 서호에서는 안 보일걸?”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잘된 일이야. 그놈들 패거리 때문에 요즘 굶어 죽을 뻔했잖아.”
“그러게 말이다. 근데 너는 괜찮냐?”
“나야 팔을 베였으니까 너보다야 괜찮지.”
둘은 여느 날과 같이 서호의 뒷거리를 다니며 구걸을 해서 연명해갔다.
둘이 같이 다닌 지 꼭 1년째 되던 날 소개가 연수에게 선언했다.
“나 개방에 입방할 거야.”
“개방?”
“그래. 서호 분타에서 14세 이하의 거지를 뽑는다고 했어. 자질을 검사하고 배경검사에 통과하면 입방할 수 있게 된대.”
“그래서 평생 거지가 되려고?”
“그냥 거지가 아니야. 무림인이 되는 거라고. 잘만 하면 고수가 되어 세상을 호령하고 사는 거야.”
“그러냐?”
연수가 시큰둥 하자 소개는 다급하게 말했다.
“같이 가자.”
“글쎄···.”
“어차피 지금도 거지고 개방에 들어가도 거지야. 하지만 세상에 감히 개방 거지를 무시하거나, 한대하는 사람은 없어.”
“그 무공이란 것 때문에?”
“그래! 내가 매번 말했잖아 우리 같은 가진 것 없는 고아가 세상에 당당히 살려면 힘이 있어야 돼. 그 힘은 결국 무공밖에는 없어.”
“글쎄···.”
연수의 반응은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21세기를 살던 연수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보던 무협 세계이건만 따지고 보면 그저 과거의 역사이다.
실제로 장풍을 쏘고 하늘은 난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기껏해야 육체적인 수련과 기술일 뿐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만 아무리 잘난 과거의 무술이라 해도 결국 21세기의 미래의 격투 기술보다 나을 수 있을까?
연수의 생각으로는 회의적일 뿐이었다.
인터넷에서 많이 보아왔다.
유명한 고전 무술가와 현대의 격투가와의 격돌. 그 어떤 무술도 현대의 과학적인 격투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과거의 무술은 미래의 격투기를 이길 수 없다는 게 연수의 생각이었다.
21세기의 격투기의 기술들은 발전을 거듭한 수많은 무술들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알려져 있기를 중국의 권법이 각 나라로 흘러들어 변형 발전하여 많은 격투기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그중 중국 권법이 오키나와로 건너가 실전적인 당수와 가라데가 되고 태국으로 흘러가 무에타이가 되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유명 격투기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군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발전하기 시작한 실전 무술들까지, 거기에 최근에 나온 종합격투기는 최소한의 룰 만으로 최고의 효율을 보인다며 무술의 최종진화라는 평가까지 있었다.
그런 격투가의 싸움들을 많은 영상매체로 보았던 연수이기에 결국 개방이니 소림이니 하는 무인들의 무술들은 그다지 탐이 나질 않았다.
결국, 그들은 무공의 힘보다는 머릿수에 기대어 백성들의 피나 빨아먹는 건달무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거지 생활을 하며 많은 무림인의 이야기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태반이었고, 그들은 결국 그들의 세력을 위주로 막대한 부를 쌓아가는 현대의 조폭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단체들이었다.
하물며 그중에서 하필 거지라니···.
“소개야 내가 고아로 세상에 나서 거지로 사는 건 내 선택이 아니야. 하지만 내가 거지로 죽는다면 그건 내 선택이 되고 만다. 나는 거지로 살고 있을지언정 거지로 죽지는 않을 거다.”
연수의 말에 소개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연수야, 너나, 나나 가진 것 없는 천애 고아인데, 그래도 사람답게는 살아봐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돌파구를 찾아야 해. 그건 결국 우리의 힘을 키우는 것뿐이야.”
“그래. 그 말은 동의하지만 난 죽을 때 절대 거지로 죽지는 않을 거다.”
“그러면 앞으로 어쩔 건데?”
“네가 개방에 입방한다면 나도 어딘가 몸을 의탁해 볼 생각이다.”
“어디 갈 만한 곳은 있는 거야?”
“평소 우리에게 호의적이었던 몇몇 객잔에서 점소이를 구한다는 소리를 들었어.”
“점소이? 겨우 점소이가 되겠다고?”
“소개야, 점소이만 되어도 하루 두 끼 밥은 먹고 살 수 있어. 또 땀 흘려 돈도 벌 수 있고.”
“너와 나는 결국 가는 길이 다르구나.”
“그래. 그래도 우리의 우정은 변치 않을 거야.”
“그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든 넌 내 친구지.”
둘은 그렇게 헤어졌다.
소개는 그날로 서호 분타의 제자로 입방 할 수 있었고, 연수도 며칠 동안 서호의 객잔을 돌며 한서 객잔이란 곳에 취직할 수 있었다.
지난 1년간 구걸하며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객잔의 주인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어온 것이 결국 취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어리고 더러운 몰골의 거지를 직원으로 채용한다는 건 사실 맘씨 좋은 객잔의 주인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내 객잔에 점소이로 일하고 싶다고?”
“예.”
“내가 왜 너를 써야 하지?”
깡마른 체구의 꼬장꼬장해 보이는 중년인은 생김새 와는 다르게 동정심이 강한 양반이다.
매번 구걸하다 지쳐 개잔 앞을 지나가면 소개와 연수를 불러서 남은 음식을 주고는 했다.
명절에는 명절 음식을 주기도 했고, 항상 음식을 받아가는 둘에게 사람은 직접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고 훈계해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일을 시켜주는 곳이 없다며 푸념했지만 주인 양반은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 삶의 보람을 주구장창 떠들기만 했다.
그런 주인 양반의 반문에 연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 정도 면접쯤이야.’
“저는 아직 어립니다. 당연히 성인 점소이를 쓰는 그것보다 월삭을 아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인보다 먹는 양도 적으니 밥값도 더 아껴질 겁니다. 또 점소이는 힘을 많이 쓰기보다 자주 움직이고 손님을 접대해야 하니 어린 저도 충분히 업무를 해낼 수 있습니다. 저는 태생이 고아이고 빌어먹다 보니 남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에 탁월하고 눈치가 빠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절실합니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연수의 말에 객잔의 주인은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깜냥이나 볼 생각으로 물어봤는데 이렇게 영민하게 입을 놀릴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평소 자주 본 거지 소년이 이렇게 영민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거지 소년의 눈을 바라보자 소년의 말대로 절실함이 느껴졌다.
‘거지나 점소이로 끝날 아이가 아니다.’
크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뭐가 되든, 크게 될 아이라고 느끼며 전율한 객잔 주인 화구진은 더 물을 것도 없이 연수를 채용했다.
화구진의 생각과는 다르게 연수로서는 이 정도 면접은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다. 이런 면접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 누구라도 구워삶을 자신이 있었다.
21세기에서 지방대에서 취업준비를 하며 수많은 자소서와 면접에 대비했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이런 갑작스러운 면접 따위는 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면접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누구도 어리고 더러운 거지에게는 관심이 없었기에.
그렇게 일을 시작한 연수는 열심히 일했다.
객잔에서 자신을 가르치는 또 다른 점소이인 황석이라는 점소이가 있었는데, 항상 그보다 일찍 일어나 물을 기어와 하루 장사의 준비를 시작했고, 제일 늦게 일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점소이 월삭이 보통의 점소이들이 받는 은자 2냥의 삼분지 일인 철전 80개뿐이었지만 하루 두 끼 먹여주고 따뜻한 곳에 재워주고, 무명옷이지만 여기저기 기운 것이 아닌 온전하고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에 연수는 충분히 만족했다.
지금 육체의 나이가 얼추 소개와 비슷한 열두, 세 살쯤 된다고 생각할 때, 앞으로 열심히 돈을 모으면 충분히 이곳에서도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은자 1냥이 철전 120문 정도이고 금지한 냥이 은자 스무 냥 정도 된다.
보통 은자 1개 정도면 4인 가족이 소박하게나마 한 달을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성인 점소이의 월삭이 은자 2냥 정도 된다.
기루의 점소이 같은 경우는 은자 5냥 정도 된다고도 한다.
즉 1년을 벌면 얼추 금자 1냥이 넘는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면서 먹여주고 재워주기에 돈 쓸 일도 없다.
금자가 20냥이면 사람이 살만한 기와집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서호에서는 무리겠지만···. 한적한 외각에서 작게나마 여유 있는 집을 가질 수가 있다.
금자가 10냥이면 소작을 줄 수 있는 작은 땅도 살 수 있다고 했다. 즉 30년만 뼈 빠지게 일해서 돈을 모으면 집도 사고 앞으로 일 안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자본을 모을 수 있다.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만 해도 당장 먹고 살 수가 없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지금은 열심히 일만 하면 잘 먹고 살 길이 보였다.
연수에게 드디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점소이로 채용되었을 때, 아니 점소이로 일할 수 있다고 기대하였을 때 이미 이곳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자신의 장점은 성실함과 검소함이었다.
목표만 확실하다면 얼마든지 아낄 수 있고 또 지치지 않고 성실히 일할 수 있었다.
이미 전 삶에서 경험해 보았다.
그가 일했던 그 환경이란 얼마나 열악했던가?
분명 중소기업의 사무직이었건만 잦은 현장으로의 외근 때문에 노가다에 가까운 육체노동도 많이 했으며 한 달 15만 원 상한선이 정해진 잔업수당에 비해 매일 이다 시피 야근을 시켜대도 단 한 번도 불평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감사했다.
연봉제로 일하면서 추가로 그나마 수당을 준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조차 가졌다.
회사의 상사들이 온갖 일을 떠맡겨도 열심히 그리고 잘해나갔다.
물론 연수가 호구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연수는 천천히 많은 업무를 맡아가며 점점 자신의 가치를 올려갔다.
그러자 어느 순간 연수의 부서는 그가 없이는 돌아가지 않았고, 그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만 갔다.
당연하게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몇몇 또라이 같은 상사들이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연수는 개의치 않았다.
회식이라도 하면 그 누구보다 탬버린을 열심히 흔들며 비굴하리 만치 윗사람들 비위를 맞추었고, 2년여의 사회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지각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2년 만에 대리라는 직함을 갖게 되었다.
보통 3년 차가 주임의 직급임을 생각해 보면 나름 쾌속 승진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작은 회사에서의 아주 작은 성공이었지만 연수는 독하게 그 성공을 쟁취했다.
그 경험이 그의 정신에 당당히 새겨져 있었고 연수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이 척박한 곳에서 홀로 떨어졌지만 나는 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