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소식
“내가……?”
영령은 단목장룡의 목적이 복수라 생각했다.
천마신교의 지존이었던 교주와 바로 밑의 소교주 사도명 또한 죽음을 맞이했다. 듣자 하니 그 극악무도한 부교주 독각수라와 혈우검마 또한 그에게 죽임을 당했다. 다음 차례는 원로원과 교도들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단목장룡이 그녀에게 제안한 것은 ‘복수’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는 영령에게 부탁했다.
천마신교의 새로운 교주가 되어 달라고 말이다.
“당신은… 신교의 교도를 모두 몰살할 줄 알았어.”
단목장룡이 씁쓸하게 미소 짓는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지금 와서 인간의 목숨을 아끼는 척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 복수의 대상이란 명확했지만, 명확하지 않았다. 그가 죽여 왔던 교도 중에는 단목장룡의 죽음과 관련이 없었던 이들도 있었다.
그가 영령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협의심이나 정의 혹은 인간의 존엄성 따위를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이지. 네가 새로운 천마신교의 지존이 되어 그 복수를 막아 줬으면 해.”
“만약… 내가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영령이 단목장룡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단목장룡은 그녀가 과거에 알던 심약한 그 사내가 아니었다. 천마를 죽였고, 중원 정벌 따위는 쉽게 해낼 수 있으리라. 천도신녀의 말처럼 그는 세상의 근간을 뒤흔들 ‘힘’을 가지고 있었다. 영령 또한 신녀였기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그가 그러지 않길 바랄 뿐.
영령은 긴장하며 단목장룡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다.”
“…….”
“너는 내게 새로운 삶을 주었으니까.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어.”
“당신은 복수를 원하지 않는 건가?”
“처음엔 모두를 죽이려 했었지. 하지만 교주와 소교주를 죽이니 알겠더군.”
“무엇을?”
“나 같은 사람이 또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사실 천마신교에서 그를 죽이기로 결정한 것은 위협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나 사공천과 그의 주변을 모두 죽였다. 후환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 단목장룡은 상단전을 개방한 천마마저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하여 그들에게 복수했다.
복수의 칼날을 쥘 수 있는 건 단목장룡만이 아니다.
단목장룡이 마교도를 모두 몰살하고자 한다면, 가족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면…….
그들은 복수만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이들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물론, 그 칼날이 단목장룡 본인에겐 닿을 가능성이 전무했다.
현재 마교도 중에 천도신녀가 언급한 천살성을 타고난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단목장룡에겐 닿지 못할 것이다. 설령 비슷한 경지에 도달하여 단목장룡에게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단목장룡에겐 성장의 발판이 될 뿐이리라. 단목장룡의 재능은 미지의 것을 상대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었다.
다만, 그들이 단목장룡이 아닌 철저히 주변인을 노린다면 상황이 달라질 뿐이다.
그는 사공천이 아닌 단목장룡으로 살아가며 수많은 인연을 만들었다. 그들은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그들의 곁에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젠간 틈이 생긴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면 단목장룡은 다시금 복수의 칼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그는 영령에게 부탁했다.
우두머리를 잃은 마교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달라고.
당연히 강요는 아니었다. 단목장룡이 말했던 것처럼 영령은 그의 은인이다. 또한, 과거에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교주의 자리에 올라도 단목장룡이 원한 결말을 맞이할 순 없을 것이다.
사람의 근본.
사공천이 영령을 사랑했던 이유는 마교에 깔린 괴물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교인답지 않은 온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피를 보기를 싫어했다. 마치 썩은 시체들 사이에 고고하게 핀 한 송이의 꽃과 같았다고 할까? 그랬기에 단목장룡은 그녀를 사랑했었다.
영령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 또한 단목장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젠가 중원을 피로 물들일 천마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천도신녀라는 제약이 사라진 후 막을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탈마에 오른 고수뿐이었으니, 과거의 악연을 저버리고 사마련주를 찾아갔었다.
비록 그에게 또 배신당했지만 말이다.
“좋아. 하도록 할게.”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영령의 얼굴에 미소가 핀다.
마교에 있던 시절에도 그녀가 웃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없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야. 나도 그 길이 옳다고 보고 있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 거야.”
마교의 지존이 되면 매번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
어떤 비열한 수단이라도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하는 자리가 천마라는 자리다. 만약 그들을 힘으로 눌러 버리지 못한다면 당하는 것은 그녀가 될 것이다.
“각오도 없이 선택한 것이 아니니까.”
영령이 죽은 소교주의 품속을 뒤져 봉황선(鳳凰扇)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소교주의 머리를 들었다. 그것을 들고 마교에 찾아간다. 위험을 자초하는 행위였지만, 천마신교의 새로운 지존이 되기 위해서는 증명을 해야 했다.
그녀의 눈빛이 각오로 뜨겁게 타오른다.
당장이라도 신강으로 떠날 것 같은 그녀에게 단목장룡이 말한다.
“잠시만. 그냥 가면 안 되지.”
잠시 신강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던 영령의 시선이 단목장룡을 향한다.
“새로운 천마가 되려면 필요한 것이 있지 않겠어?”
그렇다.
천마가 왜 천마인가?
그들은 다른 무인들은 감히 손도 대지 못하는 절세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비록 그 무공을 익힌 이들이 단목장룡에게 패배했지만, 따지고 보면 단목장룡의 무공 또한 그 무공의 묘리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천마신공.
물론, 영령은 다른 무공을 익혔기에 천마신공을 새로이 익히기 어려움이 따를 테지만…….
“잠시 맥을 짚어도 될까?”
영령의 앞에는 그 누구도 아닌 단목장룡이 있었다.
그 천마신공마저 한 사람이 익히기 쉽게 수정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역대급을 가진 무인이었다.
영령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손목을 단목장룡에게 내어 주었다.
* * *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 무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습격. 몇몇 지역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육왕들이나 지역을 대표하는 고수들이 천마신교 본대와의 싸움을 위해 특정 지역으로 집중하지 않았던 덕택에 어찌 보면 잘 막아 냈다고 봐야 했다.
특히 그가 배포한 파훼식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단목장룡이 만든 그것엔 강력한 살상력을 담은 마교의 무공을 쉽게 막아 낼 방법이 수록되어 있었다. 물론, 근본적인 실력 차이를 극복하진 못했지만… 실력이 엇비슷하거나 다수가 소수를 상대할 땐 확실히 파훼법의 역할이 상당했다.
정파가 피해를 많이 입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만큼 마교도들도 많이 죽었다.
육왕 중 하나이자 천하제일가로 불리는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욱.
그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수하에게 묻는다.
“그래, 다른 곳은 어떻게 되고 있지?”
“그게…….”
남궁욱은 수하를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천마의 시신을 확실히 무림맹에서 확인했다고 공표했습니다.”
“다행이로군.”
처음엔 반신반의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이어지며 천마의 참전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고, 왠지 모르게 마교도들이 당황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천마라는 적의 확실한 죽음. 그것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강력한 이유였다.
하지만 수하의 보고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마련주 사마백혼과 마교의 소교주 사도명 또한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건 좀 의외였다.
소교주야 그렇다고 치고 사마백혼이라니? 남궁욱 또한 그를 만나 본 적이 있었다. 오래전 일이었지만, 그의 무위는 남궁세가의 가주라 할지라도 쉽게 재단할 수준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일대일로 싸운다면 자신이 패배한다고 봐야 했다.
그런 그가 죽었다?
“마교도와 싸우다가 죽은 건가?”
그 이유가 가장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남궁욱의 질문을 받은 전령의 표정은 기묘하게 변해 있었다.
“그게 아닙니다…….”
“그럼?”
“단목 맹주께서 보내신 서신이 맹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마련주와 소교주 그리고 천도신녀라는 의문의 고수가 합공을 했다고 했습니다.”
“뭐라……?”
남궁욱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합공이라니? 소교주 또한 극마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었다. 사마련주는 아마 그보다 더 강한 고수였으리라. 그리고 천도신녀는 대체 누구인가? 남궁욱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천도신녀에 대한 정보는?”
“자세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서신에는 천도신녀라는 여인과 공공 대사가 관계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허허허…….”
남궁욱은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고수를 상대하려면 정파 무림에서 육왕이 작정하여 연합을 구축해야 했다. 지금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자신의 지역만을 지켰다면 정파 무림의 요충지는 하나씩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고수 한 명의 존재로 인해 마교의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난주에 집결한 마교도들에 시선이 집중될 때, 마교는 중원 곳곳에서 혈겁을 일으켜 혼란을 만들려 했다. 마교의 본대와 싸우기 위해 무인들이 한 장소로 집중되었다면 아마 정파 무림은 극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으리라.
하지만 단목장룡의 존재로 인해, 육왕과 각 문파, 가문의 초고수들은 맹으로 집결하지 않았다. 마교와 싸우려면 정파 무림의 힘을 모두 합쳐서 마교에 대항해야 한다는 공공 대사가 만들어 놓은 전쟁의 상식을 깨 버렸다.
사실 처음엔 그래도 되나 싶었던 남궁세가주였지만…….
이 소식을 들으니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금제일인으로 평가받겠군…….”
마교와의 전쟁은 정파 영웅들이 힘을 합쳐야 했었다.
애초에 사마련과의 전쟁에서도 그러했다. 자신의 지역만을 지킨다면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주력 부대는 패퇴하고 말리라. 언젠간 하나로 뭉쳐진 적이 자신의 지역에 나타나게 된다면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되리라.
물론, 상대를 흔들기 위해 암살자 부대를 운용하거나 후방을 교란하는 것도 전쟁의 방법 중 하나였지만, 결국 무인들의 전쟁은 힘과 힘의 격돌로 승부를 가리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정파와 마교가 전력을 다해 부딪치기 전에 싸움이 끝나 버렸다.
마교의 지존인 천마가 죽었으며, 유일한 후계자인 소교주가 죽었다. 정파도 사파나 마교와의 전쟁을 수없이 겪었다. 남궁욱은 명문가의 가주였기에 이제까지의 전쟁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제껏 이렇게 흘러간 경우는 없었다.
보통 자신 있게 정파에게 선전포고 한 적들의 수장은 모두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고수였다. 피가 흐르는 대지 위에서 정파의 영웅들이 생겨나 적들에게 반격하고 결국엔 모두 극복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쟁의 흐름이었다.
대규모로 일어난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러한 흐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달랐다.
초반에는 확실히 불안했다.
새로이 무림맹주에 오른 복마 진인이 갑자기 병환으로 쓰러졌으며, 대허 선사는 마교와의 평화협정을 주장했다. 그 이후 공공 대사가 나타났지만, 너무 오래 살았던 탓인지 정신이 이상했다. 또한, 사마련은 왠지 모르게 마교의 진출을 찬성하고 있었다.
정파의 위기는 당연해 보였다.
육왕은 실제로 모두 모인 적은 없었으나 서신을 주고받고 있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모든 육왕이 모두 모여 천마를 합공하기로 말이다. 그만큼 우두머리의 존재를 죽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정파 제일의 고수들이라는 육왕도 웬만한 각오가 없이는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일이 기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천마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이제는 소교주와 사마련주 그리고 천도신녀라는 여인의 죽음까지 이어졌다.
“합비로 돌아간다. 일단 상황을 더 자세히 파악해야…….”
남궁욱이 수하들을 이끌고 복귀하려 할 때.
저 멀리서 누군가 경공을 펼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또한 남궁세가의 무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허억… 허어억……! 무림맹에서 도착한 서신입니다.”
“또?”
서신을 받아 주르륵 읽는다.
그것을 읽던 남궁세가주의 입이 서서히 벌어진다.
“이건 무슨…….”
곳곳에 출몰한 마교도들로 정파인들이 희생당하긴 했지만, 오히려 단목장룡의 파훼식 덕택에 마교도들의 피해가 더 컸다. 거기다 그가 혼자서 해낸 일들을 생각하면…….
“…합비로 가자. 확실히 알아봐야겠구나.”
이 서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사실상 단목장룡 혼자서 전쟁을 종결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이러한 소식이 전해진 것은 안휘성뿐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