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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31화 (231/236)

231화 죽음

소교주 사도명은 떠올렸다.

어릴 적 보여 주었던 사공천의 모습을 말이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천마신교 대공자가 위기의식을 느끼게 했던 사내였다. 그가 보여 줬던 재능을 아직 기억한다. 그는 일각 만에 기(氣)를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기를 운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와의 격차는 오랫동안 사도명을 괴롭혀 왔다.

자는 중에도 미친 재능을 가진 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로 깨어났다. 매번 사공천이 자신의 목을 베는 장면에서 잠을 깼다. 그것은 마치 예지몽과 같았다. 사공천이 보여 준 재능이라면 오 년 먼저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따라잡히는 것은 순식간일 테니까.

그렇기에 사도명은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사도명이 한 시진을 수련하면 밤잠을 줄여 가며 무공을 익혔다. 또한, 그는 무공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열정을 드러냈다. 순수 무공으로 밀린다면 정치나 잡기를 이용해서라도 이겨야 했기 때문이다.

사도명은 동생인 사공천에게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서.

소교주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그러한 노력의 과실인지는 몰라도 사공천의 재능은 빛을 잃었으며, 사도명은 점점 성장했다.

그리고 결국 사도명은 소교주의 자리에 오르고, 사공천은 죽음을 맞이했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가 죽은 후로는 목이 잘리는 악몽으로 잠에서 깬 적이 없었다. 이대로만 시간이 흐른다면 그는 언젠간 천마의 자리에 올랐을 것이며, 중원의 지배자가 되었을 것이다.

반 시진 전, 상단전을 개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사도명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허업……!”

단목장룡의 환상검에 잠깐 정신을 잃었던 소교주.

그가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벌떡 일어섰다.

십 년도 넘게 꾸지 않았던 악몽을 또 꾸었다.

사공천이 나타나 비릿한 미소와 조롱의 눈빛으로 자신의 목을 베었다. 꿈이었지만 너무도 생생했다. 사도명은 순간 자신의 목이 잘려 나가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그 감정도 찰나에 불과했다.

실제로 목이 잘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곧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단목장룡의 뒷모습이 보인다. 청해성 서녕 지부로 도망친 한심한 동생 사공천. 그가 단목장룡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조금 전 꾸었던 꿈이 그의 눈앞에 환상처럼 떠오른다.

“가만히 당하고 있을 줄 아느냐…….”

소교주가 일어선다.

이미 사마련주는 자세를 잡고 단목장룡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직 승부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네놈, 정녕……!”

그 순간.

단목장룡이 인간의 시력으로는 제대로 판별할 수 없는 색을 지닌 검을 휘둘렀다. 단숨에 천도신녀… 아니, 영령의 목이 잘려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그녀의 목이 잘리진 않았다. 단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을 뿐.

대체 저 검으로 무엇을 가른 건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괴이한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자신의 천마신공의 내력이 ‘소멸’한다. 생에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각. 사도명은 동생인 사공천의 재능을 확인했을 때도, 이 정도로 두렵지는 않았다.

또다시 환상검이 휘둘러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는 천마신공의 내력이 아닌 무엇이 베일 것인가?

“깨어났나?”

단목장룡의 목소리는 뒤에서 들린다.

사도명이 기겁하며 주먹을 휘두른다. 반사적인 움직임이라 해도 그의 주먹엔 천마신공의 묘리가 깃들어 있었다. 단목장룡에게 너무도 허무하게 당하고 있긴 했지만, 그 또한 극마의 고수였다.

쿠웅!

정확히 느껴지는 주먹의 감각. 막무가내로 휘두른 주먹이 단목장룡의 가슴에 닿았다. 기뻐해야 하는 건가? 이제 드디어 자신의 주먹이 먹히는 건가? 방금 생존을 위해 휘두른 주먹이 자신도 모르는 천마신공의 묘리를 담고 있었나?

온갖 의문이 소교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상단전을 열었다고 해도 그 정도인가?”

하지만 그러한 소교주의 착각은 단목장룡의 한마디에 모조리 부서진다.

“이노옴……!”

분노가 치민다.

단목장룡은 자신의 주먹을 피하거나 막지 않았다. 단지 몸으로 막아 냈을 뿐이다.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가? 아무리 급하게 휘두른 주먹이라 해도, 천마신공의 내공을 담은 권격이었다.

“죽여 버리겠다.”

소교주가 주먹을 내지른다.

천마신공을 익힌 무인의 육신으로 단목장룡을 박살 낸다. 저 기이하고 괴이한 검을 휘두르기 전에 끝장을 본다. 그런 일념 하나로 단목장룡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여기서 그를 극복하지 못하면 만마를 지배하는 천마가 될 수 없었다.

파천수라장(破天修羅掌).

마왕천겁수(魔王千劫手).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천마신공의 극의를 모두 펼쳐 보였다.

단목장룡을 이기기 위해선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무공을 펼쳐야 했다.

쿠우웅!

환상검에 당해 기혈이 뒤틀려 있었지만, 소교주의 공세는 매서웠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실력은 암천회주보다 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익힌 무공이 천마신공이라는 탓도 있었지만, 상단전을 개방하여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에게 시간이 주어졌다면 이제는 전대의 천마가 되어 버린 사군협과 비등한 경지까지 올랐을 가능성이 있었다. 소교주 사도명의 재능 또한 뛰어났으며, 상단전을 개방한 지식과 심득을 받아들일 유연성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적어도 십 년 이상은 말이다.

거기다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설령 운이 좋아 소교주가 그의 아버지의 경지에 십 년 만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대체……!”

단목장룡에겐 절대 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지금의 소교주는 단목장룡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가 환상검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컥!”

단목장룡의 반격에 소교주가 무릎을 꿇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목을 감싸 쥐었다. 오랜 기간 이어졌던 그 악몽처럼 단목장룡에게 목이 베일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목이 잘리진 않았다. 단목장룡은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 시선을 마주하자 소교주의 가슴속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단목장룡.

아니, 사공천은 재능을 타고 났다.

대체 왜 자신이 아닌 그가 저러한 재능을 타고난 것인가? 재능을 타고 나서 사공천이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없다. 그는 기루에 미쳐 술과 계집질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자신이 소교주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련했던 십 년 동안 그는 허송세월로 살아갔을 뿐이다.

사공천은 재능을 가질 자격이 없었다.

그는 무공에 대한 열정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교주가 되었더라도 변변찮은 업적 하나 세우지 못했으리라. 분명히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늘은 저놈에게 재능을 주었을까?

“어찌… 어찌 네놈이 그러한 재능을 가지게 된 것이더냐.”

단목장룡은 무표정하게 그를 내려다보았을 뿐이다.

“난 너보다 더 노력했다. 소교주의 자리에 오르려 잠도 자지 않으며 노력했다. 그런데 왜! 왜 네가 나보다 강하단 말이더냐! 대체! 왜!”

불공평했다.

하늘이 저주스럽다. 왜 저딴 자식에게 하늘은 재능을 내려 주었는가? 저러한 재능이 아니었다면 단목장룡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뿐이다.

“마찬가지가 아닌가?”

“뭐라고?”

“너는 소교주의 자리에 다른 형제자매들을 죽이고 올랐지. 그들은 너를 보며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너보다 약했었지.”

“그건……!”

다르다.

아니… 정말 다른가?

소교주는 강자를 추앙하는 천마신교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자신의 약함을 변명하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며 죄악으로 여겨진다. 지금 소교주는 자신의 패배를 변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그런 것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네가 죽는 건 약해서가 아니다. 나와 내 소중한 이들을 건드렸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단목장룡이 환상검을 들어 올렸다.

“안 돼……!”

소교주가 목을 감싼다.

천마신공의 내력으로 반탄지기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환상검을 막을 수 없었다.

툭.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 왔던 그 악몽처럼.

소교주의 머리는 바닥에 떨어졌다.

단목장룡은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복수를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그였다. 여기서 멈추고 자비를 베푼다면 소교주는 언젠가 단목장룡에게 복수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천마신교 전체를 몰살하진 않더라도 소교주는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나도 단목장룡에게 닿지 못하겠지만, 그 또한 지존이 될 자질을 가진 사내였다.

단목장룡의 주변을 노린다면, 또다시 과거를 되풀이해야 했으리라.

그는 이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다.

잠시 소교주의 시신을 내려다보던 단목장룡.

그가 고개를 돌린다.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사마련주가 힘없이 웃는다.

“…천도신녀가 있었음에도 자네를 감당하지 못했지. 두 명의 힘을 합친다고 하여도 자네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네.”

“포기하신 겁니까?”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도 하지.”

사마련주가 말을 이어 나간다.

“기회를 줄 수 없겠나?”

단목장룡의 눈썹이 꿈틀인다.

“무슨 기회 말입니까?”

“난 오랫동안 사파인들을 이끌어 왔네. 무력으로 굴복시킬 순 있겠지만 모두를 통제하기란 쉽지 않을 걸세. 내 직접 자네를 보좌하겠네. 분명 도움이 될 걸세.”

“진심입니까?”

“난 허튼 말을 하지 않는다네.”

여기까지 와서 생존을 바라는 것인가?

영령의 상태를 보고 깨달았지만, 이제는 사마련주가 어떤 사내인지 확실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지독한 기회주의자였을 뿐이다.

“내게 기회를…….”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

단목장룡이 말을 건넨 대상은 사마련주가 아니었다.

사마련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설마?

그의 시선이 천도신녀가 쓰러진 곳으로 향했다.

새하얗게 질린 안색. 호흡이 거칠어 불안해 보였지만, 영령은 깨어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몹시 차가웠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령아.”

“또 저를 버렸군요.”

“…….”

사마련주는 과거 자신의 딸을 팔아넘겼다.

천도신녀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그에 대한 속죄로 사파의 지존이 되었지만, 다른 자식을 두지 않았었지만, 그것은 속죄가 아니었다. 천도신녀가 힘을 잃고 운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마련주는 영령을 위해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에 또 소중한 딸을 버렸다.

그가 과거를 후회한다고 판단했던 영령이었지만,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령아.”

영령은 그의 말을 듣기도 싫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을 연다.

“사마백혼을 죽이는 것은 네가 결정하는 거야. 그래도 내 생각을 묻는 거라면…….”

영령이 다시 눈을 떴다.

그녀는 계획했던 모든 일이 끝나면 평범한 부녀 사이처럼 지낼 순 없더라도 적어도 그를 증오하진 않게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결국 사마련주는 자기 자신을 위해 딸을 팔아넘겼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눈을 뜬 영령이 사마련주를 응시한다.

“죽으면 좋겠어.”

사마련주는 소교주처럼 생존하기 위해 발악하지 않았다.

단목장룡은 마찬가지로 망설이지 않았다. 영령의 말도 있었으며, 당용아와의 약조 때문이라도 사마련주는 죽어야 한다.

“내…….”

마지막 순간 말을 내뱉으려 했던 사마련주였지만, 목이 잘려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또한 목이 잘려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사파제일인이라 칭송받았던 무인의 죽음치고는 참으로 허망했다. 사실 죽음 자체가 허망하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영령은 묘한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바라보다가 단목장룡에게 고개를 돌렸다.

막상 그와 마주하자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먼저 사과를 해야 할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까?

다행히도 단목장룡이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어 주었다.

“영령, 네가 정말 원했던 것이 뭐지?”

“…마교주와 천도신녀의 죽음.”

이미 두 가지 모두 이루어졌다.

소교주가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중원 정복의 계획을 세울 때, 그녀 또한 마교의 배신을 꿈꾸었다. 소교주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성사됐다. 영령이 계획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말이다.

“고마워. 네 덕분에 내 바람을 이루었네.”

영령이 인사했다.

단목장룡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감사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두 번째 삶은 그녀 덕분에 시작되었으니까. 빚을 갚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적은 단목장룡의 목표이기도 했을 뿐이다.

그런 단목장룡의 표정을 마주한 영령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처음부터 그와 함께 복수를 꿈꿨다면 어땠을까? 그에겐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그 사이에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건… 신녀의 능력이 아니라 여인으로서의 감각이 말해 주고 있었다. 과거 먼저 이별을 고한 것 또한 자신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그에게 다시 연심을 품는 것은 너무도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가정도 꾸리지 못하는 몸뚱이니까…….’

영령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가 자신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단목장룡이 수고스럽게 ‘천도신녀’만을 떼어 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예전부터 눈치가 몹시 빨랐다.

“내가 뭘 해 주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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