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
배신자라…….
단목장룡은 사도명의 그러한 말을 듣고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배신한 것은 마교가 먼저였으며, 단목장룡은 복수를 하는 것에 불과했다. 뭐라고 부르든 단목장룡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이다. 기대가 있어야 실망도 하는 법이다.
또한, 복수는 이제 마지막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단목장룡은 세 명의 시선과 마주한다.
사마련주의 존재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회담에서부터 그는 삐딱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천마라는 괴물을 합공하여 이겨야 한다니 뭐니 했었지만, 그는 단목장룡을 경계했었다. 그가 생각하는 진짜 적이 천마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마련주의 옆에는 실로 오랜만에 얼굴을 드러낸 영령이 있었다.
과거와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얼굴. 아름다운 외모는 사내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이 지금 그녀를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마교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초탈한 듯 세상을 바라보는 저 시선.
단목장룡이 신녀를 만나며 인간의 감정을 느꼈듯, 그것은 신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 마지막에 결국 이별을 하긴 했었지만, 영령은 분명히 달라졌었다. 호남성에서 보았을 때도 그녀는 감정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지금 영령은…….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전혀 감정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단목장룡과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것인데도 그녀는 무표정하게 그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분노가 느껴졌다.
마교주를 죽였다는 걸 알고 저러는 걸까?
사실 단목장룡은 영령이 마교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것이 아닌가 추측했었다. 그것을 위해 사마련주와 함께 싸우려고 했을 터인데, 왜 마교주를 죽인 자신의 앞에 서 있는가? 거기다 소교주의 옆에 서서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단목장룡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영령과 싸우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그녀가 자신을 도와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아마 단목장룡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사정을 들어 줄 순 있으리라.
“사마련주께선 마교의 편에 섰나 보군요. 함께 천마를 막아 내야 한다고 하시던 분께서 말입니다.”
단목장룡의 말에 사마련주가 애석하다는 듯이 미소 짓는다. 그런 표정에도 사마련주의 외모가 빛을 발한다. 영령의 외모는 사마련주의 얼굴을 물려받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미안하다고 말하진 않겠네. 무림이라는 곳이 본래 이러한 곳이니.”
사마련주의 손은 검의 손잡이에 닿아 있었다.
언제든 검을 뽑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배신자.”
다시금 들려오는 소교주의 목소리.
“사공천, 네놈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구나. 불쌍하게도 말이야.”
“……!”
천마현신에 잔뜩 겁을 먹었던 마교의 교도들이 술렁인다. 그들은 오랫동안 마교에서 자라 왔다. 사공천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늘이 내린 천재라 불리며, 마교의 무학을 몇 단계나 더 진보시켰다.
“사공천 공자께서는 분명히 반역을 꾀하다가 죽음을 맞이하셨다고…….”
마교의 생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원로 잔혹마도만이 낮은 눈빛으로 단목장룡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모두 들어라! 이놈은 사공천! 본교에서 반역을 꾀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었다. 하지만 이놈은 더러운 배교의 무공으로 영혼을 이동시켜 새로운 육체를 얻게 되었다. 지금 저놈의 이름은 바로 단목장룡이다.”
혼란스러워하는 교도들에게 제대로 된 사실을 알려 주는 소교주였다.
물론, 혼란은 더 깊어졌다. 소교주의 말은 절대복종해야 한다. 아무리 쉽사리 믿을 수 없는 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 괴리감 속에서 교도들이 싸우고 있었다. 사공천이 단목장룡이라고? 이걸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리라.
단목장룡의 시선이 다시 한번 영령을 향한다.
그녀는 은은한 금빛이 맺힌 눈동자로 단목장룡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마교에선 단목장룡이 사공천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영령은 알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퍼트리지 않았다.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단목장룡이 깨달음을 얻어 성장하기 전 죽일 기회는 언제든지 있었다. 대주급 인사만 왔더라도 그를 죽이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영령이 그의 힘을 과소평가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다르다.’
처음엔 신교에서 살아갔던 시절의 영령과 표정이 똑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초탈한 눈빛. 그 시선에 이끌려 사공천은 그녀에게 사랑을 느꼈다. 그 안에 감추어진 따스함에 더욱 마음을 주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빛은 몹시 차가웠다.
단목장룡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어떠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가…….’
얼핏 스쳐 가는 불안한 추측.
어쩌면 영령은…….
“네가 천도신녀인가?”
영령, 아니 천도신녀는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분명히 공공 대사의 말로는 그녀는 운신하기 힘든 상태에 빠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공공 대사는 다른 말을 해 주었다. 그녀가 육체를 옮겨 다니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그렇다. 천도신녀, 그것이 본 녀의 이름이다.”
천도신녀의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혼란스러운 교도들마저 잠재우고 있었다. 모두 그녀의 말에 집중한다.
“너는 대지 위의 악(惡)이다.”
“악?”
딱히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자신이 선(善)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를 영웅으로 보는 사람들은 많았다. 적어도 정파인들은 단목장룡을 평화를 만들 대영웅으로 보고 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단목장룡은 그런 거창한 대영웅 행세를 하진 않는다.
사실 그가 마교와 대적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복수심 때문이었다.
남들이 대영웅으로 추앙한다고 하여 정말 자신이 그렇다고 착각에 빠지진 않았다.
하지만 천도신녀가 그런 말을 하니 웃기긴 했다.
“오히려 네가 중원의 악이 아니던가? 오백 년 전의 검후를 비롯하여 무영신투와 뇌왕 등 강호에서 의를 펼치는 이들을 모두 죽였지 않은가?”
“그러한 작은 개념의 악이 아니다.”
작은 개념의 악이라.
천도신녀가 말을 이어 나간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거대한 힘을 품으면 품을수록 세상은 종말에 가까워진다. 그래, 네가 선한 마음을 품었을 수도 있다. 종말 따위는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천도신녀의 눈동자가 더욱 진한 금빛을 띠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 자체로도 너는 악이다. 인간들에겐 그러한 힘이 허락되지 않았다. 허락되지 않은 힘을 거두는 것이 본 녀의 의무이자 사명이니라.”
이미 공공 대사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천도신녀가 사천자를 만든 이유. 중원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그녀는 이미 중원의 지배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역설적으로 중원의 평화를 바랐다.
한계를 뛰어넘은 고수의 숫자를 제어하고, 그 위치에 올라갈 이들을 죽이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천도신녀의 사상 따위는 단목장룡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단목장룡의 재능은 자신이 생각해도 위험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걸 어쩌란 말인가? 그는 소중한 사람들과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공천일 때도 그러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단목장룡의 재능을 진정으로 개화시킨 것은 천도신녀였다.
교주가 죽기 전 마지막에 했던 말.
그가 단목장룡을 죽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천도신녀의 명령 때문이라 했었다.
“네가 나를 만들었다.”
천도신녀가 침묵한다.
“그리고 네가 나를 만들었지.”
단목장룡의 시선을 마주한 소교주가 인상을 찌푸린다.
“세상의 종말이라……. 그래, 설령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진다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단목장룡이 말을 잇는다.
“오히려 내가 너보다 그것을 더 수월하게 막을 것 같군.”
단목장룡의 말에 소교주가 비웃음을 흘린다.
마지막에 생존하는 것은 언제나 그였다. 교주가 사공천의 재능에 경탄을 쏟아 냈을 때도, 장로들과 원로들이 그를 밀어주려 했을 때도 말이다.
소교주는 모든 위험을 물리치고 소교주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 이 순간 천마의 죽음이 닥쳐왔지만, 그는 천도신녀로 인해 상단전을 개방했다.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다.
단목장룡은 소교주에게 적당한 시련일 뿐이었다.
그를 천마로 만들어 줄 시련 말이다.
“잡담은 그만하도록 하지.”
그의 몸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힌다.
이제는 전대 천마라고 불릴 사군협의 기운과는 그 분위기가 달랐다. 같은 천마신공이라 할지라도 상단전을 개방하여 보는 것이 다른 것이다. 뭐, 상단전을 개방한 시간이 짧은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네놈은 여기서 죽을 것이다.”
소교주의 말에 사마련주도 검을 뽑았다.
그는 미안하다는 듯이 단목장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미안함은 당연히 단목장룡이 이 자리에서 죽는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린 것이리라.
천도신녀의 눈빛 또한 금빛을 발했다.
확실히 탈마에 오른 고수와 현재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추측되지 않은 두 사람. 어쩌면 소교주와 천도신녀 또한 그러한 경지에 올랐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단목장룡은 태평했다.
오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단목장룡의 시선이 천도신녀에게 향했다.
“영령은 어떻게 된 거지?”
천도신녀는 선심이라도 쓰듯이 대답한다.
“그 아이는 내 혼 속에서 안식을 찾았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마련주, 영령은 당신의 딸이 아니었나?”
단목장룡의 질문에 사마련주가 슬픈 표정을 짓는다.
그의 말대로 영령은 그의 딸이었다.
“영령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다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네. 자네 같은 괴물이 나타났으니 천도신녀의 존재가 필요한 법이지.”
“영령을 제물로 삼은 건가?”
“…….”
사마련주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단목장룡의 눈빛이 스산하게 변해 간다.
그의 등에 떠오른 천마현신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을 본 소교주가 비웃음을 흘린다.
“천마현신을 유지하려면 많은 내력을 소모하는 법이지. 좋은 선택이야. 셋을 상대하려면 내공을 아껴야 하지 않겠어?”
그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경계심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다. 단목장룡은 역대 최고라는 천마를 죽였다. 그의 힘이 약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천마와 비등한 실력에 오른 사마련주와 이젠 전대의 천마처럼 상단전을 개방한 자신이 있다. 거기다 천도신녀까지 있었다.
문득 떠오른 궁금증.
사마련주가 단목장룡에게 묻는다.
“자네는 검을 사용하지 않았나? 왜 검을 들고 오지 않았지?”
단목장룡의 허리춤엔 검이 없었다.
그의 수준이라면 권법이나 각법 또한 수준에 올라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검을 가장 잘 다룬다는 것이다. 소교주와 싸우기 위해서 이곳까지 급히 달려왔다고 하더라도 검을 놓고 온다는 건 조금 이상했다.
단목장룡이 오른손을 뻗는다.
그것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손에 투명한 백색의 기운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검의 형상을 만드는 듯했다.
“천마수라검?”
소교주 또한 저 무공을 알고 있었다.
천마신공의 무공 중 하나였다. 물론, 천마신공의 구결과는 달리 백색을 띠고 있었지만 말이다.
단목장룡이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천마가 죽었다는 건 들었겠지만, 그가 무엇에 당했는지는 듣지 못했겠군.”
“그 허약해 보이는 기운에 아버지께서 당했단 말인가?”
소교주가 비웃음을 흘린다.
지금 그의 손에 맺힌 기운은 바람만 불어도 흩어질 것 같았다. 본래 천마수라검은 저리 허약하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공포를 자아내고, 생명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위용을 드러내는 기술이었다.
“잠시만…….”
백색의 기운이 모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빠르게 형상을 갖춰 가는 검. 보통 내공으로 만들어진 검강 따위는 단색으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단목장룡의 손에 만들어지고 있는 그것은…….
“어떻게……!”
천도신녀가 경악한다.
내공은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힘. 그것은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천마 또한 단목장룡이 만든 뇌왕검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하지만 지금 단목장룡이 만든 내공의 검은 당시의 뇌왕검과도 확연히 달랐다.
천마와의 싸움에서 크게 성장한 단목장룡.
이제까지 얻은 심득을 모두 집약하여 만든 단목장룡의 마지막 오의.
환상검(幻像劍)이 세상에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