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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24화 (224/236)

224화 고백

천마의 그릇은 하늘이 내려 준다고 한다.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천마 사군협은 그 사실을 태어날 때부터 알았다. 수많은 형제자매를 모두 제치고 소교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선택’을 받았다는 걸 알았다. 하나를 알면 둘을 깨우쳤으며, 같은 무공을 익히더라도 월등히 성장이 빨랐다.

그의 형제자매들 또한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도팔문에서 태어났다면 언젠가 장로까지는 충분히 오를 이들. 분명히 천마의 피를 받아 태어난 것은 그들에게 행운이었지만, 독보적인 사군협의 존재는 그들에게 불행이었다. 천마신교는 약육강식의 세계.

약한 이들을 잡아먹힌다.

특히 소교주가 되기 위한 싸움에서 그들은 모두 사군협에게 잡아먹혔다.

개중엔 무력보단 머리가 뛰어난 이들도 존재했다.

이제는 마도육문이 되어 버렸지만, 당시 천마신교를 주름잡던 여덟 가문의 도움을 받아 사군협을 해하려 했었다. 당대의 천마는 그것을 지켜만 보았다. 적어도 천마의 자리에 오르려면, 그런 위기 따위에서는 비겁한 수법을 쓰더라도 생존해야 한다.

그것이 천마의 조건이다.

천마신교는 모두가 약자를 혐오한다. 강자는 약자에게 어떠한 명령도 내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에도 당하지 않을 압도적인 힘이 필요하다. 사군협은 당연히 숱한 위협에서도 살아남았다.

교주가 되어서도 아랫것들의 도전을 받아 내야 했다.

장로들은 새로운 천마를 시험하기 위해 도전해 왔다. 승리의 대가는 천마신공. 무(武)를 추구한다면, 천마신교의 교도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얻으려 하는 무공이었다.

당연히 사군협은 그 모든 도전에서 승리했으며 살아남았다.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생존했다는 건 그가 ‘강자’라는 것을 방증한다. 사군협은 진정한 의미의 교주가 되었으며, 새로운 천마가 되었다.

당장이라도 세상을 손에 넣을 것 같은 자신감에 차 있던 사군협.

모든 내공을 새로운 천마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평범한… 아니, 평범함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태상교주에게 향했다.

이제는 그가 천마신교의 모든 결정권을 가졌지만, 그래도 전대 천마에 대한 도리라는 게 있었다. 천마라는 존재는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 또, 태상교주가 ‘약자’가 된 것은 새로운 교주의 힘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더 천마(天魔)에 다가가기 위한 천마신교의 전통이다.

그는 중원 정벌을 시작하고자 했다.

태상가주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면 흡족하게 웃으리라. 마지막을 기다리며 죽을 태상가주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리라.

천마가 된 사군협은 그러한 생각으로 태상가주의 거처로 찾아갔었다.

그날, 사군협은 ‘진짜 신녀’와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 * *

“암혼뢰!”

경악하며 기술의 이름을 외치는 독각수라. 그런 외침 따위는 천마의 귀에 들려오지 않는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전투에 임했다. 공공 대사를 이긴 단목장룡?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천마신공을 익혔다? 그것 또한 문제가 아니다.

대체 어떤 경로로 천마신공을 익힌 것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천마는 알고 있었다. 단목장룡이 익힌 천마신공은 고작해야 아류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상단전을 개방한 후, 새롭게 태어난 천마신공은 전보다 몇 차원 높은 수준의 무공이 되었다.

천마군림보는 단순한 보법이 아니게 되었으며.

지금 펼친 암혼뢰는 일 장 길이의 단단한 석벽을 손쉽게 뚫을 만큼 파괴력을 더했다.

그는 진짜 천마가 되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섰다. 중원의 그 누구도, 심지어 오백 년을 살아왔던 노괴였던 공공 대사 또한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왜일까?

단목장룡을 상대하면 할수록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묘한 느낌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처음 전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금방 단목장룡을 처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몇 번 손짓해 주면 약자답게 바닥을 기고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일각, 이각이 넘도록 단목장룡은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그것뿐인가?

왜인지 단목장룡은 점점 더 쌩쌩해지는 것 같았다. 그건 순리에 맞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가 상대하는 것은 그저 그런 적이 아니라 완전히 천마가 된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극마의 고수라도 그의 암혼뢰를 막으려면 막대한 수준의 내공을 소모해야 한다.

쿠릉!

짙은 보랏빛의 뇌전이 단목장룡을 강타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의 뇌왕검은 뇌전을 튕겨 냈다. 방향을 잃은 암혼뢰의 기운이 대지를 강타한다. 막대한 힘이 담긴 기운이 폭발하며 자옥하게 흙먼지를 만들어 낸다.

끼아아아악-!

천마가 다시금 천마군림보를 밟는다.

장거리에서의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면, 근거리전으로 돌입한다. 천마신공이 가진 최고의 힘은 다름 아닌 지칠 줄 모르고 어떤 것에도 상처 입지 않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육체였다.

흙먼지가 높고 넓게 퍼졌지만, 천마의 안력을 가로막을 순 없었다.

천마는 금세 단목장룡을 찾아 주먹을 휘두른다.

당연히 단순한 주먹질은 아니다. 그의 손에 담긴 내공은 암혼뢰의 두 배였다. 거기에 천마의 근력이 합쳐지니 그 파괴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끼아아아악-!

동시에 사방에서 밀려오는 천마군림보의 귀곡성. 겹쳐지고 증폭된 파동이 단목장룡의 육신을 헤집어 놓을 때, 그의 주먹이 단목장룡에게 닿았다.

우웅-!

당연히 단목장룡은 반응했다. 뇌왕검으로 천마의 철마권(鐵魔拳)을 마주한다.

쿠웅-!

뇌왕검이 부서질 듯이 크게 흔들린다. 철마권에 담긴 힘도 대단했지만, 사방에서 밀려오는 귀곡성의 파장도 단목장룡을 짓누른다. 하지만 그런데도 단목장룡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로지 천마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번쩍!

천마는 한 번 주먹을 내지른 것이 아니다.

오른손을 뻗은 다음엔 왼손을 뻗었으며, 주먹을 모두 이용하고 난 뒤에는 각법을 펼쳤다. 천마의 몸에 깃든 보랏빛이 마치 용암처럼 들끓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의 주먹은 평범한 주먹이 아니다.

새롭게 태어난 천마신공의 정수가 담긴… 과거 공공 대사가 보여 주었던 기의 결정체인 잿빛을 발했던 강기보다 더욱 파괴에 중점을 두었다. 과거 공공 대사는 이 거대한 힘에 교주에게 패배했다. 금강불괴에 올랐다고 생각한 육신으로도 천마에겐 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처음 단목장룡은 이러한 파괴의 기운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천마는 그것을 보고 수준의 격차를 단번에 깨달았다. 방심? 그런 게 아니다. 천마 수준의 경지에 오르면, 한번 부딪쳐 보는 것으로 상대와의 격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히.

장담컨대.

처음에는 단목장룡이 자신보다 훨씬 밑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확신하고 있었다.

문제는…….

‘싸우면서 더 강해지는 게 말이 되는가?’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는 왕왕 있었다.

무인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이 익혀 왔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수련으로 터득한 경험을 만개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무림인이 이제까지 내지 못했던 실력을 내는 것은, 이제까지 갈고닦았던 노력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깨닫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힘을 끌어내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단목장룡의 경우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완성에 다다른 존재였고, 현재의 싸움에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기보다는 좌절을 느꼈어야 정상이었다.

굳이 현재 단목장룡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각성이나 깨달음 따위로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 부류의 성장이라면 천마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처음부터 천마가 아니었고, 숱한 위기를 떨쳐 내며 그는 각성하고 깨달음을 얻었으니까.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깨달음을 얻어 지금의 경지에 올랐다.

문제는 각성이나 깨달음을 얻고 그걸 즉각 적용될 수 있냐는 것이다.

분명히 단목장룡은 ‘완성’에 가까웠다. 천마절혼폭을 정면으로 맞고도, 진정한 천마의 기운을 마주하고도 버티는 것은 분명히 대단했다. 천마조차도 단목장룡의 실력에 감탄했다.

처음엔 거기까지라 생각했다.

단목장룡은 그의 한계 내에서 완성되었다.

그 한계점은 상단전을 개방하고 진정한 천마신공을 익힌 자신이 더 높으리라. 분명히 그러했어야 했으며, 처음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천마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단목장룡이 강해지는 것은 단순한 ‘성장’으로 부를 만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진정한 천마신공에 익숙해지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쿠르으응-!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흑색의 뇌전.

그것은 분명히 천마가 펼쳤던 암혼뢰였다. 단단한 검지로 기준을 잡은 상태로,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모은다. 모인 기운은 뇌전으로 변환하여 앞으로 쏘아 낸다. 방향을 제어하는 것이 관건인 무공이다.

사실 이 암혼뢰는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뇌전이라는 것은 압축하면 압축할수록 제어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상단전을 개방하지 않았을 때의 천마신공의 암혼뢰는 검지가 아닌 ‘손바닥’으로 방출하고 다섯 손가락으로 방향을 제어한다.

단목장룡이 방금 사용한 암혼뢰는…….

‘분명히 검지를 사용했지.’

위력 또한 천마가 펼친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겉으로만 위협적인 것도 아니다. 주먹을 뻗어 막아 냈음에도 뼈가 시큰거린다. 상처는 남지 않았지만, 고통이 전해지고 있었다.

완벽한 암혼뢰.

단목장룡은 보란 듯이 천마에게 그것을 펼쳐 냈다.

천마에 이른 육신에 고통을 안겨 줄 정도로 그 위력이 강력했다. 보고 따라 한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결코 아니다.

‘설마 본 좌와 싸우면서 암혼뢰를 익혔다고?’

뭐, 비슷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니긴 했다.

검법을 펼치면 초식의 검로를 완벽하게 기억하여 비슷하게 펼쳐 내는 재능의 무인들은 천마신교에서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외형적인 부분을 따라 하더라도 내공을 어떻게 운용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것은 불가능했다.

단목장룡의 눈은 귀기가 번뜩이고 있다.

그의 눈은 천마의 몸에 흐르는 내공의 움직임까지 볼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것도 말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다.

분명히 말했지만, 전투가 시작된 초반에는 단목장룡이 밀렸다. 언제 천마의 손에 곤죽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천마의 무공을 분석했다고?

애초에 단목장룡의 실력이 천마보다 월등했다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체 이놈… 뭐지?’

공공 대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천마도 혼란을 느꼈다.

단목장룡은 상단전을 개방하여 우주의 진리를 엿본 절대자들에게도 미지의 존재였다.

‘한 번 더.’

끼아아아악-!

천마가 발을 디딘다. 또다시 천마군림보였다. 이제는 소모되는 내공의 양을 두 배로 늘렸다. 절규와도 같은 귀곡성이 다시금 공간 전체를 메우고, 그것이 압축되듯 단목장룡에게로 향한다.

그의 양손에서는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보랏빛의 강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단목장룡을 끝장내겠다는 일념으로 내력을 집약시켰다. 인간을 초월한 천마의 육체로도 쉬이 제어할 수 없는 기운.

천마군림보의 파동이 단목장룡에 닿은 순간, 천마가 손을 뻗었다.

심장을 쥐어뜯기 위해 마왕천겁수(魔王千劫手)를 펼치는 천마.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속도로, 천마의 손끝이 단목장룡에게 닿았다.

“……!”

하지만 천마의 손에 느껴진 것은 단목장룡의 펄펄 뛰는 심장 따위가 아니었다.

“너…….”

이미 뇌왕검은 천마의 공세를 수없이 감당하며 한계에 도달한 상태. 검으로 막았다면, 단목장룡은 천마의 손에 심장을 내줘야 했으리라.

단목장룡은 검을 버렸다.

천마의 마왕천겁수를 막아 낸 것은… 이제까지 단목장룡이 사용하던 검이 아니었다.

단목장룡은 천마와 똑같이 마왕천겁수를 펼쳤다.

그리고 그의 손톱에는…….

“어떻게 종말의 힘을……?”

파괴의 끝은 종말이다.

상단전을 개방하여 천마가 완성한 내공심법. 그것은 이전까지의 천마신공의 기운과는 궤를 달리했다. 같은 양의 내력을 활용해도 더 강렬한 파멸의 힘이 내포되어 있었다.

“하… 이걸 종말의 힘이라 부르는 겁니까?”

명백한 비웃음.

단목장룡의 표정에 천마의 표정이 구겨진다. 아직도 사방엔 흙먼지가 흩날리고 있었지만, 단목장룡의 표정이 똑똑히 보인다. 왠지 모르게 그의 표정이 익숙한 것은 착각일까?

“예나 지금이나 이름을 짓는 건 미숙하시군요.”

천마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지금 이놈이 무엇을 말하는 건가?

“너…….”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단목장룡의 눈빛이 회한에 젖는다.

천마의 외관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복수를 마음먹었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의 과거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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