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진짜 천마
잃을 각오가 되었냐고 묻는 단목장룡.
그의 표정이 기묘했다. 분명히 먼저 도발을 했던 것은 단목장룡이었다. 그는 그 누구도 아닌 천마신교의 부교주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목함에 담아 교주에게 보냈다. 당연히 지금 잃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은 천마가 아니라 단목장룡이었다.
그가 천마에게 잃을 각오가 되었냐고 묻는다.
그리고 더 황당한 것은 따로 있었다.
“어떻게 네가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지?”
굳이 따지자면 천마현신은 천마신공에 포함된 무공 중 하나일 뿐이다. 천마신공은 심법이나 보법과 권법 모든 천마의 ‘기술’을 총망라한 무공이다. 완벽한 마인의 신체를 추구하며, 그 신체를 다루는 방법을 제시한다.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는 말이 결코 부족하지 않은 무공이었다.
그렇기에 이 무공은 오직 신교의 교주나 교주가 될 사람만 익힐 수 있었다.
신교의 무공이 유출되어 파훼식이 만들어졌다고 했지만, 천마신공만은 유출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마도육문의 문주들뿐만 아니라 신교의 원로원이 작정하더라도 천마신공을 빼앗을 순 없었다.
그걸 가지고 있는 것은 천마였으니까.
천마에게서 그것을 강탈할 사람이 신교에 누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천마는 분노하면서도 의아해했다.
대체 어떻게 저놈이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을까? 그것도 저리도 완벽하게 말인가? 단목장룡이 펼친 천마현신은 소교주인 사도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난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게 중요합니까?”
“그래,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지…….”
천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혈우검마의 죽음으로 그는 분노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당장 단목장룡을 죽이려곤 하지 않았다. 중원을 지배할 때, 단목장룡은 마지막 유흥의 제물이 될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파 출신의 무인이… 더군다나 무림맹의 맹주가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왜 네놈이 이곳에 머물렀는지 알 것 같군. 천마신공을 익히고 자신감을 얻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공공 대사나 혈우검마를 죽이고 본 좌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야.”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떻게 그가 천마신공을 익혔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행동하지 않고 입으로만 떠드는 것은 신교의 방식이 아니었다. 단목장룡의 무릎을 꿇린다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떻게 천마신공을 익힐 수 있게 되었는지.
왜 저리도 당당할 수 있는지.
천마의 몸 주변으로 보랏빛의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동시에 그의 등 뒤로 아수라의 형상이 떠올랐다. 기라는 것은 결국 의지의 발현이다. 천마현신은 기로써 천마를 강림시키는 무공. 그 위세만으로 일만 대군을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의지의 발현이었다.
천마의 아수라는 단목장룡과는 조금 외형이 달랐다.
툭 튀어나온 송곳니. 여섯 개의 손에는 온갖 병장기들이 들려 있었다. 또한, 조류의 날개와 같은 것이 돋아나 있었는데 그것이 천마의 형상을 더욱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천마신공을 익혔는지는 지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알려 주지.”
천마의 신형이 움직였다.
아니, 움직였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속도. 어떠한 전조나 기척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공간을 뛰어넘는 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단목장룡의 뒤였다.
탁!
그리 커다란 충격음은 아니었다.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려치는 수준 정도랄까? 하지만 그것이 준 충격은 대단했다. 압축되고 또 압축된 보랏빛의 기운이 단목장룡의 등에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쿠다아아앙!
압축된 힘이 폭발한다. 단목장룡에게 쏘아진 그 거대한 보랏빛 악의는 형상을 갖추어 폭발했다. 객잔의 내부는 쑥대밭이 되었으며, 단목장룡은 그 힘에 밀려나 객잔 밖으로 튕겨 나갔다. 당연히 문을 통해 나간 것은 아니었다.
객잔의 벽면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게 천마신공의 힘이다.”
천마의 말에 독각수라가 감동을 받은 듯이 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단목장룡이 천마현신을 펼쳤을 때, 그는 당황했었다. 완벽한 천마현신을 마주하는 것은 그조차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강자를 숭배하는 천마신교에서 단목장룡이 보여 준 그것의 위용은 독각수라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보라.
보란 듯이 천마가 힘을 보여 주었다. 단목장룡은 진짜 천마의 힘에 밀려 객잔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았는가? 저게 바로 진짜 천마의 힘이었다.
“확실히…….”
“……?”
자옥한 흙먼지 사이로 단목장룡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목소리에는 당황 따위는 섞여 있지 않았다. 천마의 힘을 온전히 받아 내고도 무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독각수라가 안력을 돋워 흙먼지를 노려본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대체 어디……?’
쿠웅!
또 다른 충격음이 들린다. 객잔 안에서 들려오는 것이다. 독각수라가 황급히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뜨인다. 조금 전까지 객잔 안에서 오연히 서 있던 것은 천마였다. 하지만 지금은 천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단목장룡의 등만이 보이고 있었다.
또, 단목장룡이 객잔 밖으로 튕겨 나갔을 때처럼 반대편 벽면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교주님……!”
약한 이가 강자를 걱정한다는 것은 웃긴 일이다.
애초에 독각수라는 천마를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이 자라나 목소리로 그것을 표출하고 만다.
“공공 대사보단 낫군요.”
단목장룡의 말이 끝나자마자 천마 또한 흙먼지 사이를 벗어났다.
두 개의 구멍이 뻥 뚫린 객잔. 그 사이로 대치한 두 사내가 보인다. 천마와 단목장룡이었다.
단목장룡이나 천마나 의복은 찢어진 상태였지만, 그 아래로 상처가 보이진 않았다. 천마에 이른 육신은 단순히 벽에 부딪힌다고 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
“…….”
두 절대자가 낮은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독각수라는 불안감에 내공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천마가 패배한다는 것은 이제껏 전혀 떠올릴 수 없었지만, 상대 또한 천마신공을 익혔다면 말이 달라진다. 당최 어떻게 무림맹의 맹주가 천마신공을 익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천마가 당하는 것은 천마신교가 무너진다는 말과 동일했다.
독각수라는 지금 상황을 살펴보고만 있었지만, 그 또한 극마의 고수였다.
두 절대자의 싸움에서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절대 고수 중 하나. 단목장룡과 천마의 경지가 엇비슷하다면, 독각수라의 난입이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물론 강자존을 숭배하는 신교의 특성상 그러한 승리는 수치이긴 했지만,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독각수라의 손이 혈천시독수(血天屍毒手)의 영향으로 녹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을 때였다.
쿠웅!
“무인들의 싸움에 끼어들려고 하면 쓰나.”
“너는…….”
죽립을 푹 눌러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독각수라는 그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 그것이 독각수라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당연히 진짜 종이 울리는 것은 아니었으며, 죽립 사내가 자랑하는 무공이었다.
그 무공의 이름은 마고파심탁(魔叩破心鐸).
사파에서 다섯 고수로 꼽히는 오성(五星) 중 일인. 암천회주 갈천능의 절기였다.
“네놈은 나와 놀자꾸나.”
갈천능의 등장에 천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혈우검마를 먼저 친 것은 이런 이유였던가? 조력자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요.”
갈천능의 등장은 단목장룡이 예상했던 바였다.
무림맹에 있을 때, 갈유화의 서신으로 갈천능이 해남도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마련주에게 당했던 그가 해남도를 나섰다면 향할 곳은 사마련주와 무림맹주의 회담이 있는 서안뿐이다.
이로써 단목장룡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천마와 독대할 수 있게 되었다.
“우습군.”
물론, 그것은 천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독각수라가 혹시나 하는 걱정에 전투에 끼어들려고 했었지만, 천마는 그것을 허락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목장룡은 자신의 손으로 눌러 버려야 한다. 진짜 천마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보여 줘야 했다.
“본 좌에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이 오기 전에 도망쳤겠지요.”
“하하, 참으로 우습게 보였군.”
천마의 몸에서 마(魔)의 기운이 흐르기 시작한다.
만마를 앙복하는 거대한 악의. 보랏빛으로 점철된 그의 몸은 아수라 그 자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미 등에 떠올랐던 아수라의 형상은 천마의 몸에 녹아 사라져 버린 후였다.
“좋다. 진짜를 보여 주마.”
천마는 조금 전의 격돌로 단목장룡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마절혼폭(天魔絶魂暴)을 맞고 무사히 돌아와서는 똑같이 천마절혼폭으로 자신을 공격했다. 어지간히 자신이 있지 않으면 그런 우습지도 않은 짓을 할 수 없었다.
천마가 우습게 보였다?
이제는 유흥이 아니었다.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르는 이들은 신교에도 꽤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주검이 되어 흙으로 뿌려졌다.
천마의 눈동자가 완전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내공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공공 대사가 잿빛 기운을 흡수하여 육신의 형상을 바꾼 것처럼 말이다. 어저면 공공 대사가 천마의 무공을 따라 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이것은 단목장룡이 연구했던 천마신공과는 조금 달랐다.
“네가 누구에게서 천마신공을 배웠는진 묻지 않겠다. 하지만 알아 둬야 할 것은…….”
끼아아아악……!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영혼이 절규하듯, 처절하디처절한 곡소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본 좌가 익힌 천마신공은 네놈이 익힌 것과는 다를 것이다.”
천마신공이 완성된 무공이었냐고 묻는다면, 단목장룡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분명히 천마신공은 천하제일의 무공으로 불릴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따지자면 화산의 매화검법이나 무당파의 태극신공 또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로 따지자면 천마신공에 밀리지 않는다.
그렇게 단목장룡은 새로운 무공을 창조했다.
창조라기보다는 그가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무공들의 장점만을 모아 조합했다는 말이 더 적절할 수도 있으리라. 아무튼, 단목장룡이 천마신공을 펼칠 수 있지만 그가 진짜로 익힌 것은 천마신공이 아니다.
그러한 것처럼.
상단전을 개방한 천마가 펼치는 천마신공 또한 과거 단목장룡이 알던 천마신공과는 달랐다.
이렇듯 보랏빛 강기가 신체를 뒤덮는 구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공 대사가 상단전을 개방하고 대야반야금강공을 자미소로 변환한 것처럼 천마 또한 새로운 천마신공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차기 교주로 내정된 소교주 사도명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단목장룡의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보랏빛 강기에서 풍기는 기운은 단목장룡 또한 긴장시켰다. 무려 상단전을 개방하고 얻은 깨달음. 본래 천하제일공이라 불리던 천마신공보다 한 차원 더 나아간 무공이다.
보랏빛으로 점철된 교주는 긴장한 태가 역력한 단목장룡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것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천마신공 안에는 여러 이름이 있다.
천마현신, 천마절혼폭, 천마강림보……. 그 모든 것을 총망라한 것이 천마신공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천마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천마신공을 익히면,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 그의 전신에서 흐르는 보랏빛의 광채는, 사방을 공포로 물들이고 있었다. 심지어 이미 벌목되어 도구로 쓰이는 목재들이 썩어 가고 있다. 객잔 내부의 모든 기물의 형태가 기괴하게 변해 간다.
당연히 단목장룡 또한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또한 생명체였다. 진정한 천마신공의 앞에서는 생명이라면 당연히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본 좌의 힘에 경배하라.”
천마가 발을 디뎠다.
쿵쿵!
천마군림보가 펼쳐지고 지진이라도 난 듯이 객잔 건물이 흔들린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거대한 파동이 만들어져 퍼져 나간다. 그것은 전혀 난잡하지 않았다. 마치 치밀하게 계산된 듯이 중앙에 있는 단목장룡을 노려 왔다.
당연히 그것은 단목장룡이 알던 천마군림보가 아니었다.
끼아아아아아-!
마치 지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악의가 끊임없이 차오른다.
공간 자체를 잠식해 오는 진득한 보랏빛의 악의.
그것이 단목장룡을 덮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