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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21화 (221/236)

221화 천마의 앞에서

천마가 첫 번째로 의심한 것은 사마련주였다.

단목장룡이 그를 찾아왔던 날. 사마련주 또한 천마에게 방문했었다. 그는 과거의 패배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듯이 말하며 행동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더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을 자각한 천마였기에 당시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여차하면 사마련주와 단목장룡 둘을 상대하더라도 언제든 승리를 쟁취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천마는 중원 정복을 시작한 것이고, 마교 무공의 파훼식이 퍼져 나가도 이처럼 태평할 수 있었다.

사실 여유를 부리는 것이기도 했다.

너무 쉬운 정복은 재미없지 않겠는가? 아주 오랜 세월 바라 마지않은 염원이었기에 적절한 고난 또한 유흥이 될 수 있으리라. 그가 서안에 나타난 것도 위기감을 느낀 사마련과 무림맹이 서로 연합하기를 바랐던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자신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자 천마는 분노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었기 때문일까? 그들이 연합하는 것을 바랐지만, 이곳에서 혈우검마의 죽음은 계획에 없었다.

도전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해야 했다.

자신은 중원의 무림에서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이 되고자 했지 누구나 담장을 넘어 엿볼 수 있는 작은 장원 따위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사마련의 무인들이 모두 서안을 떠난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미 정파와 사파의 회담은 칠 주야 전에 끝이 났다.

그들이 무엇을 합의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위기로 보아서는 꽤 성공적이었다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사마련주가 범인이던가.”

“그럴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사마련주는 교주님의 진노를 감당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지요.”

독각수라는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상황이 딱 그렇지 않은가? 사마련주는 서안을 떠난 척 연기를 하다가 기회를 엿보고 혈우검마를 죽였다. 보란 듯이 그의 머리를 잘라 목함에 담아 교주에게 보내는 수고까지 하며 말이다.

“소교주에게 시작하라 전해라.”

“존명!”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던 흑응대. 천마신교의 부교주 독각수라가 다가오자 대주인 하청이 잔뜩 긴장한다. 독각수라는 독문의 출신으로 조금만 심기를 거스르면 극독으로 처벌을 내린다고 한다. 그의 앞에서 실수하는 것은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청.”

“예!”

“이걸 난주의 소교주님께 전달하도록 해라.”

독각수라가 전해 준 것은 붉은 천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드디어 진짜 전쟁을……!’

이미 천마신교에선 십 년 전부터 전쟁을 준비했다.

교주의 의지가 아니라 소교주의 의지였다. 그는 교주가 깨달음을 얻어 폐관에 들었던 동안 많은 것을 준비했다. 이미 중원 곳곳에 마교의 정예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이 일제히 나서서 중원을 혼란으로 빠트릴 수 있었다.

“존명! 기필코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감동의 물결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붉은 천을 받드는 하청.

독각수라는 무신경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하청 또한 독각수라의 명을 수행하고자 흑응대원들을 이끌고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흑응대에게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래.”

교주가 다시금 걸음을 옮긴다.

머리가 있다면 이미 사마련주는 서안에서 멀리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마의 분노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분노는 피를 보아야지만 끝이 난다.

지금 서안에는 천마의 진노를 어느 정도 잠재울 희생양이 있었다.

“단목장룡에게로 간다.”

“따르겠습니다.”

지금 당장 단목장룡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를 보면 누군가가 생각이 났기에, 조금 오래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번에 확실히 패배를 일깨워 주면 다음번엔 더 강해져서 자신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중원을 완전히 지배하는 날, 단목장룡 정도라면 괜찮은 전리품이 될 수 있으리라. 그 공공 대사를 이기고 맹주가 된 사내였으니까.

천마가 독각수라와 함께 단목장룡이 묵고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 * *

단목장룡은 천마가 찾아오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의 성격이라면 ‘도전’에 극도로 분노할 것이다. 서안에는 지금 단목장룡이 있으니 적당한 분풀이 상대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단목장룡은 그와 마주하기로 했다.

‘혈우검마와 천마는 다르다.’

당연한 말이다.

혈우검마는 극마에 이른 고수였지만, 천마는 그 이상의 경지에 올랐다.

무림에서는 흔히 언급되지 않는 경지. 현경(玄境)과 탈마(脫魔)로 불리기도 하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름은 자주 언급되지 않았다. 화경도 절대의 경지로 평가받는 무림에서 그 이상의 경지는 사실상 필요하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화경의 고수는 무림에서 그나마 탄생해 왔지만, 그 이상의 경지는 누군가가 직접 자신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밝힌 적도 없었으며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세심하게 무림에 알려 주지도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단목장룡은 천도신녀라는 여인이 그것을 통제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제껏 화경의 경지를 극복한 이들을 만나 본 결과 대부분 천도신녀의 ‘은혜’를 입어 상단전을 개방한 무인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천마신교의 천마마저 천도신녀와 연관이 있었다. 상단전을 개방했다는 것은 삼라만상의 진리, 즉 우주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는 걸 뜻한다.

공공 대사와의 싸움에서 단목장룡은 느꼈다.

상단전을 개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의 힘은 단목장룡조차 쉬이 감당할 수 없었다. 공공 대사가 혈우검마와 싸웠어도 아마 단목장룡과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 냈으리라.

상단전을 열었다고 해도 저마다 볼 수 있는 무공의 극의는 다르다.

공공 대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천마를 경계했었다. 그러니 단목장룡 또한 천마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단목장룡은 천도신녀의 도움을 받은 무인들처럼 상단전을 개방하지 않고도 그들과 비슷한 동등한 경지에 올랐다. 그것만으로 단목장룡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으며, 단목장룡은 그들과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단목장룡은 그것에 대해 딱히 불공평하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무인이 강해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명문 거파의 제자가 어릴 때부터 좋은 사부를 만나 절세 무공을 익히고 천혜의 영약을 취했다고 하여 그들이 비겁하게 강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도신녀가 내려 준 은혜, 상단전의 개방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했다.

사문의 철저한 지원 아래 성장한다고 한들, 매일 실전을 겪어 온, 생존을 위해 무공을 익힌 야인에게 패배할 수도 있었다. 내공이 많다고, 절세 무공을 익혔다고, 좋은 스승을 두었다고 무조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상단전의 개방을 하나의 수단으로 삼았을 뿐이다.

단목장룡은 그것을 비겁하다 여기지 않았다. 사실 상단전을 개방한 이들도 단목장룡의 재능이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단목장룡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천마와 자신의 수준을 가늠해 보고 있을 뿐이었다.

‘왔군.’

끼이이익.

문이 열린다.

객잔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 객잔에서 바로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에 객잔에 있던 이들을 모두 내보냈었다.

하지만 천마는 객잔의 문을 열자마자 공세를 취해 오진 않았다.

분명히 상당히 분노했다는 걸 눈빛으로 느낄 수 있었지만, 그는 단목장룡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본 좌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천마는 객잔의 기묘한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단목장룡이 전세를 냈다고 하더라도, 주방에서 일하는 숙수나 점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객잔에서 다른 이들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예.”

단목장룡이 짧게 대답했다.

천마가 진한 미소를 머금는다.

뚜벅뚜벅.

그가 느긋한 걸음으로 단목장룡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의자에 앉아 단목장룡과 마주했다. 입구에선 독각수라가 눈을 빛내며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마의 성격상 합공을 하려 하진 않을 테지만, 아무리 단목장룡이라도 천마와 독각수라의 합공은 그리 달갑진 않았다. 천마 하나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이상하군, 이상해. 분명히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마련주가 벌인 짓이라고 생각했거늘.”

천마의 귀기 어린 눈동자가 단목장룡을 향한다.

“네가 벌인 짓인가?”

단목장룡은 별것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혈우검마의 일이라면… 맞습니다. 제가 죽였습니다.”

“…….”

천마는 순간 자신이 노호성을 터트려야 하나 고민했다. 그만큼 단목장룡의 표정은 기묘했다. 왜 그것으로 화를 내냐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분노보다는 황당함이 앞선다. 그 누가 천마의 앞에서 이렇게 당돌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 사마련주마저도 천마의 앞에서는 긴장한다.

대체 이놈은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할까?

그것이 천마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분노보다는 궁금증이 더 앞서 나간 것이다. 뭐, 이미 먹잇감이 앞에 있으니 언제든지 먹어 치울 수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린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왜 혈우검마를 죽였지?”

“그는 죽어야 했습니다.”

“죽어야 했다?”

“예.”

“그렇다면 혈우검마의 죽음이 네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겠군.”

“그럴 수도 있겠지요.”

천마의 눈썹이 꿈틀한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태평하지 않은가? 이놈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일까? 자신의 실력에 그리도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뭐, 그것도 있겠지만…….

천마는 단목장룡을 흔들어 보기로 했다.

순수하게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너는 지킬 것이 많더군. 나찰마궁의 졸개들이 단목세가를 위협하자 다짜고짜 나찰마궁의 성에 쳐들어가서 궁주를 죽였었지.”

“…….”

천마신교는 오래전부터 무림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무림맹이나 사마련에서 지금까지 그들의 꼬리를 잡아내지 못한 것을 보더라도 마교 정예들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그곳엔 네가 아끼는 부모와 여동생이 있더군.”

단목장룡이 작은 한숨을 내쉰다.

그들은 분명 단목장룡에게 소중한 사람들이긴 했다. 이런 협박에 흔들릴 만큼 단목장룡은 유약하진 않았다.

단지…….

어이가 없었을 뿐이다.

단목장룡의 진짜 아버지는 바로 눈앞에 있는 천마였기에.

부성애를 보여 준 적은 거의 없었지만, 단목장룡은 그를 아버지로 생각해 왔었다. 혈우검마가 독단적으로 단목장룡을 해한 것이 아니다. 소공자를 해하기 위해선 교주의 명령이 떨어져야 한다.

아들을 죽이라 명했던 천마가 가족을 들먹이며 감정을 자극하려 하니 짜증이 난다.

그리고 천마는 단목장룡의 표정을 오해했다.

그가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파 놈들은 강해질 수 없는 이유가 있지.’

그들은 감정에 휘둘린다.

정의니 의리니 협의심이니 뭐든 갖다 붙여도 천마에겐 부질없는 감정일 뿐이다. 그런 것을 생각할 바에야 자신의 생존을 생각해야 한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아랫것들을 지배해야 한다. 강자존은 천마신교의 기본적인 신념과도 같았다.

“미래를 약조한 여인도 있더군. 사천당문의 여식이라 했던가?”

천마는 단목장룡에게 물은 것이 아니었다.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예, 교주님. 당옥정입니다. 현재 무림맹에 머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

천마의 눈동자가 변한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그것으로. 단목장룡은 유흥을 위한 사냥감에 불과했다. 지금 당장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대가는 치러야 한다.

“남의 물건을 건드렸으면, 자신의 것도 잃어버릴 각오를 해야지. 정파의 종자들은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잘 모르더군.”

“…….”

“이제야 실감이 나나? 네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말이야.”

천마의 눈에서 귀기가 번뜩인다.

단목장룡이 그 눈빛을 마주하며 한숨을 내쉰다. 지금 천마는 한참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잃어버릴 각오를 해야 하는 건 제가 아닙니다.”

“내가 각오를 해야 한단 말인가?”

“예, 제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드르륵.

단목장룡이 의자에서 일어선다. 천마는 한쪽 입꼬리를 올릴 뿐이다. 단목장룡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때.

천하의 천마조차 놀랄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단목장룡의 뒤편에 떠오른 여섯 개의 손을 가진 인간의 형상. 인간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괴이하다. 따지고 보면 기(氣)로 만들어 낸 형상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천마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천마현신(天魔現身)의 마지막 단계에서만 나타나는 징표와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천마현신은 마인을 천마(天魔)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무공이다.

천마신교에선 천마신공을 경전으로 떠받든다.

“네놈……?”

그러니까 지금…….

그 누구도 아닌 무림맹주가 완벽한 천마신공을 펼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천마신교의 교주 천마의 앞에서 말이다.

“잃을 각오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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