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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20화 (220/236)

220화 천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

천마신교의 역대급 천재라 불렸던 소공자 사공천은 죽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손으로 끝장을 내지 않았던가? 목이 잘리고 살아날 사람이 어딨겠는가? 아무리 사술을 썼다고 하더라도 거의 극마의 경지에 올랐던 혈우검마가 그런 것에 당했을 리가 없었다.

당시 소교주의 자리에 오른 사도명이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라 지시했었기에 천마신교 최고의 정예라 불리는 수라대(修羅隊)까지 대동했었다. 그들 또한 사공천의 죽음을 직접 확인했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아무리 사공천이 대단한 재능을 가졌다고 한들, 목이 잘려서는 되살아날 수 없었다. 거기다가 저놈은 사공천이 아니다. 단목장룡이다. 저렇게 얼굴도 체형도 다르지 않은가?

혈우검마가 입술을 깨물었다.

진득한 피가 목을 적신다. 비릿한 피 맛과 아릿한 고통이 전해진다.

이미 죽은 사공천의 환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네놈… 어떻게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는 거지?”

“천마신공 또한 제가 보았던 무공이지요. 지금 생각하니 이해는 갑니다. 누구나 쥘 수 있는 명검은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지요. 제가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신교는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겠지요.”

“뭐……?”

입술을 찢어 겨우 흐리게 했던 환영이 또다시 떠오른다.

분명히 자신이 했던 말이다. 사공천의 목을 자르기 전에 말이다.

“전 그때 처음으로 후회했습니다. 무공을 익혔더라면 죽지도 않았을 것이고 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었겠지요. 지금도 그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된다. 어찌 그것을 나보고 믿으라는…….”

“믿고 안 믿고는 장로님… 아니, 이젠 부교주가 되셨지요. 부교주님의 마음입니다. 당신을 설득한다고 하여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요.”

“거짓이다! 날 흔들려는 계책임을 모를 것 같으냐!”

순간.

단목장룡이 공간에서 사라졌다.

극마에 오른 혈우검마조차 그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법을 밟아야…….

툭.

무언가가 혈우검마의 어깨를 건든다. 반사적으로 뒤로 돌며 검을 휘둘렀다. 혈천혼암의 검강이 터지듯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하지만 그곳엔 단목장룡이 없었다.

스걱!

무언가가 혈우검마의 등을 스쳤다. 극마에 오른 육신이다 보니 바로 반응을 했지만, 완전히 피해 낼 순 없었다. 진득한 피가 등에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살을 지지는 고통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 낸다.

“크윽…….”

도망치듯 경공을 펼친다.

어디에 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극마에 오른 고수의 감각을 이리도 쉽게 속일 수 있다는 말인가? 혈우검마는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의 무인이었다면 자포자기하여 무너졌을 테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

생존.

그것만이 그의 목표였다. 살아서 이 상황을 교주께 보고해야 한다. 그래야만…….

스걱!

또다시 무언가가 혈우검마의 몸을 스쳤다.

쿠웅!

균형을 잃어버린 혈우검마가 볼썽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묵직한 것이 혈우검마의 등을 밟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혈천혼암으로 내공을 많이 소모했지만, 아직 내공은 꽤 남아 있었다. 혈우검마의 몸에서 사방으로 강기가 맺히고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내공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사용하면 안 되지.”

수준이 낮은 무인이었다면 그것에도 치명상을 입었을 테지만, 단목장룡의 호신강기는 뚫어 낼 수 없었다.

거대한 힘에 눌려 발악하던 혈우검마.

어느샌가 등에 전해지던 힘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미 대지는 자신이 흘린 피로 붉게 젖어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이 정도 출혈로 쓰러질 순 없었다.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본질을 꿰뚫는 듯한 눈빛. 귀기가 담긴 눈빛이 자신을 직시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네가 보기엔 어떤가?”

이제 완전히 말을 놓아 버린 단목장룡.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내가 천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가?”

“……!”

이미 피로 젖어 버린 등골에 소름이 돋아난다.

천마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설마… 교주가 되려고…….”

단목장룡의 마지막 목표는 천마였다.

만마가 앙복하여 군림하는 존재. 강자존의 세계에서 정점에 오른 무인.

“나 또한 천마신공을 대성했으니까. 자격은 충분하지 않은가?”

혈우검마는 그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보여 준 실력. 그것은 사술 따위가 아닌 진짜였다. 극마의 고수를 이토록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는 건, 만마의 지배자인 천마뿐이었다.

“당신은 정말 사공천인가? 분명히 목이 잘린 것을 보았었다. 내가 직접 그의 목을 잘랐다. 그건…….”

“알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거든.”

단목장룡이 목을 쓰다듬는다.

사실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찰나의 순간 목이 잘린 자신의 몸뚱이를 보는 광경은 그 누구도 잊을 수 없을 뿐.

천마신공을 익혔다는 증거.

귀기가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절대적인 존재. 그를 마주하고 있으면 천마를 보는 기분이다. 아니, 이런 상황이니 더욱 높게만 보인다. 감히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마신공을 대성했으며 자신이 사공천이라 주장하니 그를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끝까지 대항하여야 할 것인가?

전자를 선택하면 생존할 수 있다.

그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가 정말 사공천이라면, 교주가 되려 할 것이다. 당연히 기반 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죽었다. 그건 내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모르겠다.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사실 그가 단목장룡이 아닌 사공천이라면, 그를 교주로 추대하는 것도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사공천이 무공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능력은 현 교주 또한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으니까.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계. 그곳에서 사공천은 충분히 지존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짧았지만 긴 침묵이 지나갔다.

단목장룡은 다시 한번 물었다.

“어떤가? 난 천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가?”

혈우검마가 숙였던 고개를 든다.

그의 눈빛에 결의가 담겨 있었다.

“난 너를 천마로 인정할 수 없다.”

혈우검마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생존을 택하여 결국 부교주가 되었다.

어릴 적 하급 교도의 시험을 통과했을 땐, 몇 년 동안 함께했던 동기들의 목을 베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는 소중한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베어 왔다. 천마신교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강자로 올라서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지금도 사실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를 천마로 인정해야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천마신공을 익혔으며, 자신이 사공천이라 주장하고 있었기에 천마가 될 자격은 충분하고 넘쳤다.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혈우검마는 생존을 택하지 않았다.

생존?

당연히 그 또한 살고 싶었다.

살아남아 더 높은 무(武)를 바라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에 현재 자신이 모시는 천마(天魔)를 떠올려 보았다. 과연 자신이 사공천이라 주장하는 단목장룡이 그를 이길 수 있을까?

그의 결론은…….

“네놈은 천마가 될 수 없다. 그분께 패배하게 될 것이다. 네놈이 이뤄 놓은 모든 것이 그분에게 파괴될 것이다. 그분은 지존이며 만마를 지배하는 분이시다.”

혈우검마가 일어선다.

그의 눈동자에 핏빛이 물들었다.

“난 천마신교의 혈우검마다.”

쉴 새 없이 흔들리던 그의 손목에 힘이 들어간다. 혈천혼암이 그의 검에 맺히고 있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검강. 그것으로 마지막 한 방을 먹인다. 생존할 수 없더라도, 혼을 걸어야 할 때가 있다.

혈우검마는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

단목장룡을 천마로 인정하여, 목숨값을 벌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단목장룡을 인정한다고 하여 그가 천마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씨익.

단목장룡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다행이군.”

그의 검에 심연의 검강이 맺힌다. 혈우검마가 그토록 바랐던 혈천혼암의 극의. 피처럼 붉은 검강이 마(魔)를 다루게 되면 나타나는 징표. 그것은 단목장룡이 제시한 혈우신공의 이상향이었다.

“이걸로 베어 주지.”

혈우검마는 살아남기 위해 단목장룡을 천마로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구차하게 살아남으려 했다면, 단목장룡의 흥이 깨졌을 것이다. 고작 이런 놈에게 복수하겠다고 달려왔던 것이니까. 하지만 혈우검마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단목장룡이 생각했던 대로의 혈우검마였다.

타다닷!

혈우검마와 단목장룡이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이미 패배를 직감한 혈우검마였지만, 자포자기로 검을 휘두른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생존을 모색하고 있었다. 영원히 내공을 소실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의 검강을 깨야 한다.

부글부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내력이 집중되어 검신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혈우검마의 손이 그것에 녹아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순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

스걱…….

한 합의 격돌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났다.

쿵.

혈우검마가 무릎을 꿇는다.

단목장룡은 그의 앞에서 심연의 검강이 발현된 뇌왕검을 내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의 목을 벨 듯이 말이다. 혈우검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것이… 그것이… 완성된 혈천혼암……?”

코와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흐르는 혈우검마.

그가 묻는다.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그의 눈에는 열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극의를 추구했던 무인이라면 당연한 일이이라.

“아니.”

“……?”

단목장룡의 단호한 대답에 혈우검마의 눈빛이 크게 흔들린다.

분명히 저것은 사공천이 말했던 완성된 혈천혼암의 모습이었다. 순수한 어둠이 깃든 검. 그의 검에 담긴 것은 분명히 마(魔)의 기운이었다.

“혈우신공만으로는… 이걸 완성할 수 없었을 거다.”

“쿨럭……! 그러했던가…….”

허망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개운하기도 했다. 남은 평생을 수련에 매진했다고 하더라도 저것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 아닌가? 어차피 혈우검마는 사공천처럼 무공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재능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그가 극마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공천 덕분이었다.

“베어 주십시오.”

혈우검마는 사공천의 목을 벨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자신 또한 수많은 목숨을 빼앗았다.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건 마음속에 항상 담아 두고 있었다.

“그러지.”

단목장룡은 망설이지 않았다.

심연의 검강이 공간을 갈랐으며, 동시에 혈우검마의 목이 잘려 나갔다.

‘이게 당신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사공천이 찰나의 순간, 목이 잘려 나간 몸뚱이를 보았던 것처럼.

혈우검마 또한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캄캄한 어둠이 공간을 먹어 치웠다.

혈우검마의 의식은 심연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

바닥에 떨어진 혈우검마의 머리통을 바라보던 단목장룡.

그가 천천히 그것에 다가간다.

“이제 하나.”

복수가 끝나면 허망함만이 남는다고 했던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허망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에겐 적당한 선물이 되겠군.”

아직 그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진짜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 * *

“…….”

천마가 목함에 담긴 누군가의 머리를 바라본다. 익히 알던 사내의 머리였다.

“혈우검마.”

목함에는 혈우검마의 머리가 담겨 있었다.

천마는 무표정하게 그것을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피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는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정성스럽게 그 머리를 쓰다듬는 천마. 그의 넋을 위로해 주려는 것일까?

콰지직.

갑자기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천마의 앞에서 부복한 독각수라의 몸이 떨린다. 자연스레 공간을 지배하는 귀기(鬼氣).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여 두려움을 자아낸다. 독각수라는 입술을 깨물어 신음을 내뱉지 않으려 노력했다.

“감히 본 좌의 허락도 없이 죽었구나.”

그는 혈우검마의 넋을 위로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범인이 누군지 알 것 같으냐?”

“그게…….”

독각수라의 목소리가 떨린다.

“사마련주나 무림맹주, 둘 중 하나겠지.”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가자.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겠지.”

“따르겠습니다!”

마치 산보를 나가는 듯 가벼운 걸음으로 방을 나서는 천마.

그의 손끝에서는 혈우검마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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