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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15화 (215/236)

215화 만남

중원 무림에서 마교의 교주를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연히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마교주와 직접 싸워 봤다는 사마련주나 과거 마교에서 나고 자랐던 단목장룡이 그러하리라.

당연히 마교도라고 하더라도 마교주의 얼굴을 보기란 참으로 힘들다. 말단에서 잡일이나 도맡아 하는 하급 교도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멀찍이 서서 높디높은 단상에 오른 교주를 올려다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서안에 정보 수집의 임무를 맡아 파견을 나온 흑응대의 대주 하청은 그나마 가까이서 교주의 존안을 뵌 적이 있었다. 일개 대대의 대주급이라면 교주와 말을 섞어 본 적은 없어도 그의 얼굴을 확실히 구분할 수준은 되었다.

천마의 교주는 외관부터가 범상치 않다.

으레 무림의 고수라는 이들이 그러하듯 낡은 옷을 입고 있어도 무언가 다른 분위기를 풍겨 댄다. 하물며 단일 세력으로는 최대 규모인 마교의 지존은 어떠하리? 마교주가 서안에 등장하자마자 무림맹이나 사마련의 무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분명히 예사롭지 않은 인물인데 누군지 유추할 수가 없었다.

개방의 거지들은 은근히 그의 뒤를 뒤따랐고, 사마련의 정보부대원들 또한 사내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결국 흑응대 대주가 마교주와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엔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감숙성 난주에 계셔야 할 지존께서 왜 여기까지 오셨단 말인가? 거기다가 수행원도 하나 없이 말이다. 천마신교의 교주는 그 자체로 일인군단이었다. 중원의 그 무엇도 그를 가로막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서안에는 무림맹과 사마련의 주인이 머무르고 있었다. 최대한 서안에 상주하는 무인들의 숫자를 줄였다고 할지라도, 정파와 사파의 무인들의 수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토끼를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을 쓰지 말라는 말이 있던가?

떨거지 같은 중원 놈들이 교주께 허튼소리라도 한다면?

그 존귀한 손으로 더러운 피를 묻혀야 할 수도 있었다.

‘혹시 모른다. 교주께서는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방문하는 것일지도…….’

하청은 당장이라도 교주께 달려가 오체투지를 하여 인사를 올리고 싶었지만,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정체를 숨기려 했는데 자신이 망쳐 버린다면 목을 내놓아야 하리라.

그렇게 생각한 하청이었것만.

그의 귀에 익숙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리로.”

이게 전음……?

전음은 목소리와는 다르다. 기를 이용하여 소리를 전달하는 수법이었다. 그렇기에 목소리에 담긴 감정 따위는 섞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천마의 목소리는 마치 바로 옆에서 속삭인 것처럼 또박또박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히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옛!”

저도 모르게 외친 하청이 경공을 펼쳐 교주에게 달려갔다.

그가 목숨을 끊으라면 어떠한 고민도 없이 자신의 목을 베어 내야 한다. 고작해야 가까이 오라는 명령에 다른 생각을 품는다면 교도라 할 수 없으리라. 그들은 상관의 말에 대한 절대복종이 기본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 왔다.

“만마… 뵙습니다!”

천마신교의 구호를 외치려던 하청.

그가 급하게 말을 바꾸고 절을 한다. 당연히 교주의 행방을 주목하는 이들이 꽤 있었기에 그 상황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경공을 펼친 것으로 볼 때 수준이 높은 무인이 분명한데, 젊은 청년에게 다짜고짜 절을 올린다.

나이도 절을 한 사내가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데도 말이다.

“흑응대 소속인가?”

“예! 그렇습니다! 흑응대 대주 하청입니다!”

하청은 다른 이들에게 정체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 구호를 외치지 않았건만 마교주는 흑응대를 그대로 언급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자신의 직위나 이름 정도는 밝혀도 된다는 말이었다. 재빠른 대답에 교주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날 보좌해야겠군. 다른 아이들은 워낙 발이 느려서 말이지.”

“존명! 목숨을 바쳐 모시겠습니다!”

교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청이 크게 답한다.

고작해야 수많은 정보대의 대주 따위가 마교주를 모실 기회였다. 개인적으로 득이 될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강자를 동경하는 마교도는 지척에서 마교주를 보필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에 겨웠다. 물론,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이다.

“일어서라.”

“예!”

이 기묘한 상황에 본래 교주를 추적하던 이들뿐 아니라 거리에 있던 사람들 또한 주목한다.

교주는 말한다.

“본 좌를 따르는 이들이 많구나.”

하청의 시선이 개방의 거지들과 사마련의 무인들을 향한다. 눈물이라도 흘릴 듯이 감격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지독한 살기에 개방도들이 흠칫 몸을 떨며 시선을 피했다. 청년의 앞에서는 순한 양이었건만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죽이면 되겠습니까?”

“전쟁하러 온 것은 아니다. 본 좌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알려 주도록.”

“존명!”

교주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의 말로 추정하건대 아마 그와 함께 서안으로 오던 이들은 교주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진 것 같았다. 그렇기에 홀로 서안에 도착한 것이다. 교주를 놓쳤다고 해도 대주 하청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자리에 오른 교도들일 것이다. 정보대의 대주였기에 하청의 머리 회전은 빨랐다.

‘그분들이 오기 전까지 내가 교주님을 확실히 모셔야 한다.’

다시금 각오를 되새기는 하청.

그가 정파와 사파의 무인들에게 다가간다.

천마신교의 교주께서 서안에 강림하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 * *

“맹주님, 마교주가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무림맹의 무사가 밖에서 보고를 올린다. 회담 중에는 함부로 방해할 수 없었지만 이건 그들끼리 감당할 수 없는 문제였다. 회담을 방해했다는 것보다 마교주의 등장을 알리지 않은 것이 더 큰 죄가 되리라.

“…….”

사마련주의 표정이 굳는다.

마교주와의 기억은 그에게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으로 패배를 느껴 보았던 사내였으니까. 천도신녀의 도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하여도 과거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교주 또한 똑같았으니까.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났으며, 사마련주 또한 과거보다 발전했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와 싸우게 된다면 과거처럼 패배만으로 끝나진 않으리라.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굳은 표정의 사마련주와는 다르게 단목장룡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약간의 흥분과 분노가 적절하게 섞인 표정이었다.

‘직접 행차하셨다. 이렇게 만남이 빠를 줄은 몰랐군.’

단목장룡의 궁극적인 목표는 마교의 몰락이었다.

그 핵심이 바로 마교의 교주 천마였다. 그가 없더라도 마교라는 세력은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절대 강자의 존재가 없다면 몰락 또한 빨라지리라. 당장이라도 그의 앞에 가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힌 다음 검을 휘두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아니, 급해지면 안 되지.’

단목장룡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복수하느냐가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복수의 기회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진 것이다. 단목장룡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직후 그는 평생을 바쳐 복수해야 할 것을 다짐했다. 단목세가의 둘째라는 신분으로 품기엔 허무맹랑한 꿈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마교에 대항할 거대 세력의 수장이 되었다.

그의 노력과 재능도 있었지만, 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목장룡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사마련과 무림맹의 무인들이 반반으로 나뉘어 서 있었다.

“마교와 같이 온 이들은? 소교주나 부교주들도 함께인가?”

“아닙니다. 마교도 한 명이 그를 보좌하고 있긴 하지만, 간부는 아닌 듯합니다. 흑응대의 대주라고 했었습니다.”

흑응대?

단목장룡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마교의 공자였더라도 그곳의 모든 조직을 알 순 없었다.

“흑응대주 하청과의 대화로 추정해 볼 때, 아마 교주를 수행하는 무인들보다 빨리 온 것 같습니다. ‘다른 이들은 발이 느려서’라는 것으로 추정해 볼 때, 경공을 펼쳐 이곳까지 달려온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럴 성격이지.’

세월이 흘렀어도 사람의 본바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답답한 일이 있으면 직접 나서곤 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단목장룡이 몸을 돌려 사마련주를 바라본다.

“그가 이곳에 방문한 목적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겠군.”

“목적은 뻔하지 않겠습니까?”

서안에선 무림맹주와 사마련주가 회담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아니고 마교주가 직접 이곳에 방문했다. 두 사람을 보러 온 것이 분명했다.

사마련주가 고민하고 있을 때, 단목장룡이 말을 잇는다.

“일단 회담을 더 하도록 하죠. 마교주가 서안 내에서 난동을 피우지 않는 한 먼저 나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가 먼저 오길 기다리자는 것이오?”

“예, 마교주가 왔다고 하여 쫄래쫄래 달려가는 모습은 그리 좋지 않은 듯하군요.”

사마련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그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마교주에게 패배한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굴복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좋소. 그럼 회담을 마저 이어 나가도록 합시다. 일이 생긴다면 바로 보고하도록 해라.”

“예, 련주님!”

련주의 명에 사마련의 무인들이 당차게 외친다.

마교도들에게 천마가 하늘이라면 그들의 하늘은 사마백혼이었다. 아무리 마교의 교주라 해도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저희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서안 지부 소속의 상관무군이 질문했다.

단목장룡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굳이 가까이 다가가서 정보를 캐려 하지 말고, 멀찍이 서서 일이 생기면 보고해 주게.”

“예, 맹주님!”

이미 서안에서 단목장룡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정파인들은 새로운 맹주에게 적극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백단부흥회의 덩치가 급격하게 불어나는 것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백단부흥회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전해 두게. 괜히 호기를 부리는 이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예! 확실히 전달하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두 세력의 무인들이 떠나가고, 단목장룡과 사마련주가 마주 앉았다.

“그래서 사마련주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사마련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꼴에 자존심들은 있는 건가.”

서안에 집입하고 나서 느껴졌던 시선들 대부분이 사라졌다. 감시의 숫자를 줄이고, 거리를 벌린 것이다. 그 정도는 마교주의 신경을 건드리진 않았다. 그런 것으로 분노하여 살육을 벌일 정도로 광기가 있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은 따로 있었다.

분명히 회담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마련과 무림맹 어느 한곳에서도 정식으로 만남을 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 바로 맹주나 련주가 달려올 것이라 예상했건만, 그의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뭐, 마찬가지로 그것으로도 천마는 분노하지 않았다. 강자는 여유가 있다. 어떤 상황이든지 의지만으로 상황을 역전시킬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객잔의 삼 층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하청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

“듣자 하니 천무광인의 팔이 잘렸다고?”

갑작스러운 질문에 하청은 당황하지 않는다.

“예! 그렇습니다! 무림맹주 단목장룡이 일을 벌인 듯합니다! 회담이 끝나고 그는 왼쪽 팔이 잘려 회담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사마련주는 그걸 가만히 지켜봤다는 것이군.”

“예! 그의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으음…….”

천마는 마교의 중원 진출 계획에 크게 관여한 바가 없었다.

그는 과거의 ‘그날’ 결단을 내린 직후, 수련에 온 정신을 쏟았다. 진정한 천마로 거듭나기 위하여 말이다. 언젠간 자신의 자리를 이어받을 아들의 능력이 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말이다.

사마련주를 끌어들인 것은 소교주의 계획이었다.

지금까지는 예상대로 잘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신녀가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인가.”

그의 말에 하청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드러난 정보를 분석하여 보고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은 그의 임무가 아니다. 애초에 교주가 그에게 물으려고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을진대, 꿈이 야무지군.”

사마련과 무림맹이 연합을 꾀했다면 마교에겐 분명한 위기였다.

하지만 천마는 전혀 걱정이 없는 듯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호오?”

신선이 인간들을 바라보듯, 통달한 표정의 천마.

그의 얼굴이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마치 신기한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하청이 교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그가 분노하여 외친다.

“이놈,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천마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객잔을 통으로 빌렸다. 그런데 저 젊은 놈은 겁도 없이 3층까지 올라온 것이다. 분수도 모르는 중원의 무인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청은 왠지 그의 얼굴이 낯이 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는……?”

그는 새로이 무림맹의 맹주가 된 단목장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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