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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14화 (214/236)

214화 엎질러진 물

사마백혼은 실로 오랜만에 고민에 빠져들었다.

오늘 단목장룡이 보여 준 모습은 확실히 예상 밖이었다. 그는 마교와의 전쟁을 코앞에 두고도 사마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주었다. 복마 진인이나 대허 선사가 자신의 앞에서 그런 행동을 취했다면 오히려 이런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일 뿐이니까.

‘하지만 단목장룡은 힘이 있었지.’

사마련주는 자신의 애검인 여의신검(如意神劍)을 내려다본다. 주의력이 깊지 않은 이들은 오랫동안 바라보아도 눈치채지 못할 작디작은 흠집이 보였다. 그것을 본 사마련주의 눈이 깊어진다.

‘마교의 소교주와 싸울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히 또래 중에서는 ‘역대급’이라 불릴 만한 재능이었다. 사마련주 또한 단목장룡의 나이에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으니까. 하지만 경험과 연륜이 쌓이고, 여러 상황이 겹치다 보니 사마련주는 천하제일을 자칭할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

그렇기에 그는 매사에 여유가 있었다.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고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그의 손에 쥐여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가 자신하던 힘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단목장룡의 검 또한 자신처럼 흠집이 나 있을까?

“…….”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

애초에 그의 검은 한철(寒鐵)을 바탕으로 하여 장인이 오 년에 걸쳐 두드린 명검이었다. 사마련주가 본 실력을 다 내보이지 않았다는 변명 또한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목장룡 또한 마찬가지니까.

본래 사마련주는 단목장룡이 ‘그쪽’ 편에 붙은 것이 아닐까 우려했었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그의 생각이 변하게 된 것은 마교 무공의 파훼식을 본 이후였다. 단목장룡은 위험한 놈이다. 설사 상단전을 열었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역시 천도신녀의 말이 맞군.”

사마련주가 검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위험해지기 전에 싹을 잘랐어야 했나?”

문득, 한 사내가 떠오른다.

명문 거파의 출신이 아닌데도 화경에 이르렀던 사내였다. 그는 뇌왕이라는 이름으로 무림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결국, 누군가의 손에 죽긴 했지만 말이다.

“일단 더 지켜봐야겠군.”

그가 마교 무공의 파훼식을 만들었다는 게 확실한 것은 아니다. 단목장룡이 천도신녀와 연관이 있다면, 그녀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해도 오늘 그가 보여 준 무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긴 했지만 말이다.

* * *

다음 날.

바로 이 차 회담이 시작됐다.

첫날에는 천무광인의 일 때문에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이번 회담에는 당연히 천무광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절망했는지 객잔 방에서 나오고 있지 않다고 했다.

“사마련주님, 어젠 죄송했습니다.”

단목장룡이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정파 후기지수의 팔과 오성에 오른 절대 고수의 팔은 결코 같은 급으로 취급될 순 없었다. 사파의 소중한 전력이 팔을 잘렸으니 당연히 사마련의 입장이 불쾌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부분에 대해선 확실하게 사과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 않소? 그리고 나 또한 용인했던 일이니 사과할 필요는 없소.”

마지막엔 사마련주가 단목장룡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아무튼, 이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려?”

“예, 그렇겠군요.”

“일단 식사부터 합시다.”

사마련주는 젓가락을 놀려 탁상 위에 올려진 요리들을 맛보기 시작한다. 절도 있는 젓가락질로 전투적인 식사를 한다.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의 외모가 특출 난 탓도 있겠지만, 극한으로 익힌 무공이 젓가락질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단목장룡은 그런 사마련주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시장하지 않으시오?”

“아닙니다.”

단목장룡 또한 젓가락을 놀린다.

사마련주는 식사하며 회담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무림맹, 마교, 사마련 삼 대 세력이 회담을 가졌을 때도 이렇게 식사 자리와 함께 회담을 진행했었다.

“참, 마교 파훼식은 어떻게 된 것이오?”

적당히 배를 채운 사마련주가 묻는다.

단목장룡은 젓가락을 놀리며 답했다.

“마교도 중 한 명과 연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 누구보다 깊은 연이라 할 수 있었다.

단목장룡 그 자신이 마교도였으니까. 당연히 그걸 알지 못하는 사마련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마교도가 단목장룡에게 협력했다면 그 방대한 분량의 파훼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마도육문의 문주급이나 부교주 수준은 되는 자와 연이 있나 보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군요.”

단목장룡은 마교의 공자 중 한 명이었다. 만약 그가 패도의 길을 걸으려 했다면, 그들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올라갔으리라. 소천마의 자리가 바로 그의 것이었을 테니까.

“언제 그러한 연을 만들어 놓은 것이오?”

사마련의 정보력은 무림 전역에 깔려 있었다. 단목장룡의 어린 시절부터 행적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드러난 행적으로 판단하면 마교와 단목장룡이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단목장룡이 이런 상황을 모두 예상하고 어릴 적부터 실력을 철저히 숨겨 왔다면 가능성이 없진 않겠지만…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마교의 배신자가 단목장룡의 재능을 알아보고 접근해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게 언제인지는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닌 듯하군요.”

“맞는 말이오.”

두 사람은 은근슬쩍 서로의 의중을 떠보고 있었다.

단목장룡은 영령이 사마련주에게 자신에 대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사마련주는 대체 마교의 누구와 내통하고 있는 것인지 고심했다.

“사마련주께서는 왜 급히 본 맹에 회담을 요청하셨습니까?”

이젠 단목장룡이 질문할 차례였다.

사마련주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 공공 대사를 이기고 새로운 맹주가 탄생했으니 어떤 인물인지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소?”

“그게 끝입니까?”

“끝은 아니오. 무림맹과 마교가 전쟁을 벌인다면 다음 차례는 사마련이 될 것이 뻔하지 않겠소? 궁극적으론 그 부분을 대비하기 위함이오.”

“이상하군요.”

“뭐가 말이오?”

“그런 분이 왜 마교의 난주 진출을 찬성했던 겁니까? 복마 진인께서 맹주로 계셨을 때, 같이 반대했다면 마교도 함부로 중원에 진출하지 못했을 텐데 말입니다. 솔직히 당시엔 마교와 사마련이 같은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하, 같은 꿍꿍이라니? 무림맹이 마교와 악연이 있듯 사마련 또한 마찬가지로 마교와의 악연이 가득하오. 그들은 정사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해 왔으니 말이오. 그건 단목 맹주께서 더 잘 알지 않소?”

혈세귀막의 특사로 갔던 것을 넌지시 언급했다.

만약 마교가 정파 무림을 정복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분명히 다음 차례는 사마련이었다. 그들이 어떤 거래를 했는진 모르겠지만… 사마련주도 그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단목장룡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와 말장난을 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단목장룡은 이번 회담을 길게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마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작질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련주께서 원하셨던 것은 공공 대사와 마교주의 공멸입니까?”

“…….”

밑도 끝도 없는 질문.

사실 단목장룡의 그 물음은 사마련주의 의중을 정확히 짚은 것이었다.

단목장룡은 영령과의 만남을 기억한다. 그녀는 마교의 신녀인데도 불구하고 사마련주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과거 마교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공공 대사가 무림맹주가 되는 것까지 사마련이 설계했다는 건 억측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는 부분은 또 아니었다.

또, 그녀는 신교에 복수심이 있다면 버리라고 했었다. 죽다 살아났으면 괜한 일에 목숨을 걸지 말라고 했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당시엔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마교의 신녀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공공 대사에게 사천자라 불리는 이들의 관계를 듣고 난 뒤에는 자신의 예상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틀렸소.”

하지만 사마련주는 단목장룡의 말을 부정했다.

“공멸이라는 것은 서로의 힘이 박빙일 때 펼쳐지는 상황이지. 한쪽이 압도적이라면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소. 어제 맹주께서 천무광인에게 보여 줬던 것처럼 말이오. 물론, 천무광인이 죽음을 무릅쓰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다면 빈틈을 찌를 순 있었을 것이오. 하지만 그게 끝이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모두가 다 무용지물이지.”

“마교주를 높게 평가하시는군요?”

단목장룡의 말에 사마련주가 진한 미소를 짓는다.

“마교주를 한 번이라도 만나 봤다면 그렇게 물을 수 없을 것이오. 그는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괴물이오.”

사실 단목장룡은 마교주와 수없이 많이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했었다. 단순히 대화뿐 아니라 어릴 때는 무공에 대한 담론도 자주 나누곤 했었다. 하늘이 내린 천재라며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

물론, 단목장룡이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십 년도 지난 과거였기에 당시의 마교주와 지금의 마교주는 분명히 다르긴 할 것이다.

과거의 정보로 그를 판단하는 것은 실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공 대사에게 승리했다고 하여 자신만만해서는 아니 된다. 사마련주가 저렇게 말하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마련주께선 그와 싸워 본 적이 있나 보군요.”

“두 번 싸워 보았지. 모두 다 패배했소.”

선선히 인정하는 사마련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태도가 모두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마교와 연합했던 것처럼 그들의 중원 진출을 찬성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가? 마교가 난주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상황은 불편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단목장룡의 생각을 예측이라도 한 듯이 사마련주가 말한다.

“마교는 이제껏 누군가를 공격해 본 적만 있지, 지켜 본 적은 없소. 난주는 제이의 십만대산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의미가 크오. 그곳이 공격당한다면 전력을 다해 막을 것이오.”

“지킬 것을 만들어 주고 그들을 공격할 셈이었습니까?”

“정확하오.”

이것으로 그의 행동이 모두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의심은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밀어낼 필요는 없었다.

“좋습니다.”

“음? 뭐가 좋단 말이오?”

“제가 공공 대사가 맡아야 했던 역할을 하도록 하죠.”

단목장룡의 최종 목표는 마교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혼자서 마교와 싸워야 한다면 지금의 단목장룡이라도 불가능하다. 마교의 힘은 마교주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사마련주까지 합류한다면 그의 목표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맹주께선 마교와 꼭 싸우고 싶은 듯이 행동하는군. 전대 맹주들이 마교와의 싸움을 피해 왔던 것과 다르게 말이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묻는 사마련주였다.

단목장룡의 배후에 천도신녀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의심하고 있었다. 사실 천도신녀의 손발이 잘렸던 것이 마교주가 벌인 짓이 아닌가 생각했던 사마련주였다. 영령 또한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단목장룡은 천도신녀의 마지막 남은 회심의 패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단목장룡은 그런 사마련주의 의도를 간파했다.

공공 대사 또한 자신을 바라볼 때, 천도신녀에게 은혜를 받은 것인지 의심했었다. 다른 이의 도움으로 힘을 가지게 된 이들은 상대를 판단할 때 자신의 경우를 대입하곤 한다. 너도 천도신녀의 힘으로 그렇게 강해진 것이냐고 말이다.

공공 대사는 승부가 끝나 갈 때쯤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었다.

“여기까지 와서 싸움을 피할 수는 없지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니겠습니까?”

사마련주가 처음 했던 말을 되돌려 준다.

그렇다. 이미 마교는 난주에 지부를 세웠다. 여기서 다시 마교에게 평화를 제안한다? 그 평화가 거짓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단목장룡은 기세를 타고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단목장룡의 눈을 마주한 사마련주.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문밖에서 몹시도 급박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련주님, 특급 상황입니다! 지금 서안에 마교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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