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의지
사실 사마백혼이 천무광인을 회담에 데려온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다.
가장 첫째로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단목장룡은 공공 대사에게 승리했다. 그러한 급격한 성장은 천재라는 범주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화경이나 극마에 오르는 고수들은 모두 천재라 부른다. 그런데 단목장룡이 그러한 천재들을 모두 압도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을까?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았지만… 공공 대사는 상단전을 개방한 상태였다.
사마백혼 또한 상단전을 열어 현재의 실력에 이르렀으니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천무광인은 일종의 보험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함정을 파 놓고 자신을 공격하려 든다면 버리는 패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으로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도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B22
‘싸움을 피하지 않는군.’
그렇기에 천무광인을 데려온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단목장룡의 성향이나 실력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그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많이 없었다. 사마련의 정보로 그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캐 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단목장룡의 모든 것을 알 순 없었다. 그가 의창현에서 무공을 수련했던 시절, 스무 살까지는 가문의 수치라 불리며 망나니 취급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저렇게 나오긴 힘든데 말이지.’
현재 정파 무림은 마교와의 싸움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자잘하게 몇 번 부딪쳐서 정파인들이 꽤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다. 상식적으로 사마련과는 최대한 마찰을 피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당연하다는 듯이 천무광인에게 검을 뽑아 들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천도신녀의 은혜를 입은 걸까?
천도신녀는 이제 마교를 견제하는 걸까?
두 사람의 대립에도 사마련주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고, 단목장룡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천무광인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앞에서 검을 뽑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건 무림인이라면 얼핏 상식이었지만, 직접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가 광인이라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미친 사람은 상대의 권력이나 자신의 처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천무광인 또한 검을 뽑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만.”
사마백혼의 기운이 실내를 잠식해 온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은은히 비추는 그 기운은 천무광인의 움직임을 우뚝 멈추게 했다.
“이런 좋은 자리에서 싸우면 되겠는가? 안 그래도 마교의 위협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데 우리끼리 싸워서야 되겠는가? 다 마교 좋은 일만 하는 거지. 안 그런가?”
사마백혼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마교와의 싸움으로 무림은 폭풍전야였다. 이미 단목장룡이 마교 무공의 파훼식을 대대적으로 배포한 마당에 마교에서도 분명히 조치를 취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사마련과의 대립? 너무도 위험했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헛웃음을 삼켰다.
“재밌군요.”
“어떤 것이 재밌는 건가?”
“마교의 진출을 그토록 바랐던 것이 사마련 아닙니까? 장사에서의 회담에선 분명히 마교의 중원 진출을 찬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마교의 중원 진출과 지금의 갈등 상황은 아무런 상관이 없지. 대허 선사였으면 그러한 분쟁 따위는 생기지 않았을 거라 보는데, 내 말이 틀린 건가?”
그건 모두 정파의 어지러운 상황 때문이 아니냐는 말이다.
어찌 보면 그것도 맞았다.
하지만 문제는 사마련주 또한 사천자 중 하나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공 대사에게 많은 것을 들었다. 사마련주와 얽힌 여러 가지 사연을 말이다. 그는 결코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다.
“맞습니다.”
단목장룡이 순순히 인정하자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하는 사마련주.
“그럼 이제 그만하고 앉도록 하지. 운량, 자네도 그만하게.”
“그렇기에 천무광인과는 조용히 끝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단목장룡은 검을 집어넣지 않았다.
“사마련과 싸우겠다는 건가?”
“아뇨. 사마련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근데 왜?”
“말씀하신 것처럼 전 대허 선사나 공공 대사와는 다릅니다. 그들이 이전에 어떤 정책을 내세웠든 간에 저는 그들과는 다릅니다. 오늘 천무광인은 유망한 정파 후기지수의 팔을 잘랐습니다. 그것을 묵인하고 넘어간다면 결국 감정의 골이 쌓이고 쌓이겠지요. 전 케케묵은 감정이 남지 않았으면 하는군요.”
“크흡, 유망한 후기지수라고? 그놈을 본 적이라도 있나? 상대의 실력도 파악하지 못한 채로 여인 앞에서 으스대려 검을 뽑았던 놈이다. 그게 정파의 후기지수라면…….”
천무광인이 단목장룡의 말을 비꼰다.
그런 놈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하루살이 같은 놈이다. 반대로 단목장룡이 그러한 사파의 후기지수를 교육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은 단목장룡을 비난하긴커녕 잘했다고 손뼉을 쳤으리라.
단목장룡의 서늘한 눈빛이 천무광인을 향한다.
비아냥대려던 천무광인이 잠시 멈칫했을 때.
“……!”
단목장룡이 움직였다.
쿠웅!
단목장룡의 검에선 잿빛의 기운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듯한 기운. 공공 대사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단목장룡과 사마련주의 눈이 마주친다.
사마련주가 나서지 않았다면 이미 천무광인은 단목장룡에게 당해 팔이 날아갔으리라. 천무광인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듯이 멍한 눈빛을 했다.
“이놈…….”
그에게 화를 내고,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마주했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나?”
“천무광인을 데려오신 것은 실수입니다. 사마련이 진심으로 무림맹과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싶으셨다면 데려오지 않으셨겠지요.”
그러면서도 두 사람의 검을 마주하고 있었다.
사마련주의 여의대천신공의 기운과 잿빛의 기운이 서로 부딪치며 파장을 만들어 낸다. 지척에 있는 천무광인이 그 기운에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직접 힘을 마주하는 것도 아니고 그 여파에 자신이 이토록 영향을 받는다니?
“그건 공공 대사의…….”
“아니, 단목 맹주는 공공 대사와는 다른 무공을 익혔다. 힘은 비슷할지 모르겠으나 근본적인 것은 다르군.”
사마련주가 천무광인의 말을 부정했다.
기와 기의 충돌. 끝까지 하면 둘 중 하나는 죽게 될 것이다. 당장은 두 사람 다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마련주의 무공은 공공 대사와는 또 다르군.’
그러는 와중에도 단목장룡은 사마련주의 기운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의 검에 흐르는 내공은 대단한 압축력을 가지고 있었다. 응축되고 응축된 그 기운이 폭발하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리라. 또한, 그것을 폭발시키지 않아도 그 자체로 대단히 강렬했다. 보통 많은 기운을 한 번에 응축시키면 저리 예리한 형태의 검강을 만들어 내진 못한다.
아주 얇은 부분에서 거대한 힘이 밀어붙였기에 단목장룡으로서도 꽤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단목장룡, 정말 천도신녀의 은혜를 입은 건가……?’
그리고 사마련주도 마찬가지로 단목장룡의 무공을 분석하고 있었다.
사실 천무광인과의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지켜보고 그의 실력을 확인하려 했었지만, 자신이 직접 마주하는 것이 더 빠르다. 공공 대사를 이겼다는 것은 결코 헛소문이 아니었다. 단지 검을 마주했을 뿐인데도, 단목장룡의 그릇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사마백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군.”
“계속하실 겁니까?”
“맹주도 알지 않소?”
사마련주의 말투가 바뀌었다.
단목장룡을 ‘자네’라고 불렀지만, 사마련주는 이제 단목장룡을 맹주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잠시! 무슨 소리!”
멍하니 두 초고수의 기 싸움을 지켜보던 천무광인, 그가 버럭 소리친다. 그의 몸에서 광인의 기운이 넘쳐흐른다. 그가 정신이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이 흐름을 읽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무한히 이어질 것 같은 사마련주와 단목장룡의 대치.
그것은 사마련주의 양보로 끝이 났다.
사마련주가 힘을 빼고 뒤로 물러서자 단목장룡의 신형이 순식간에 천무광인의 앞으로 움직였다. 뇌왕검이 잿빛의 기운을 흘리며 수직으로 베어졌고, 천무광인은 핏발이 선 눈동자로 악을 쓰며 그것을 막아 내려 했다.
사마련주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동자로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뭐지……?”
“저 사람, 천무광인… 왜 팔이……?”
첫 회담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예상외로 빨리 끝난 것에 의아함을 품고 있던 군중. 그들은 한 사내의 몰골을 보고 경악했다. 천무광인이 누구던가? 사파에서 오성이라 불리는 절대 고수였다. 당당하게 군중을 보며 닥치라고 했던 게 아직도 떠오른다.
하지만 회담장을 빠져나오는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팔이 잘렸어?”
“……?”
팔이 잘렸다는 말에 한 여인이 두 눈을 부릅뜬다. 천무광인은 한쪽 팔이 잘린 상태로, 붕대를 감고 있었으며 얼굴은 허옇게 질려 있었다. 대체 저게 무슨 일이지? 설마……?
‘설마 내가 외친 것을 듣고?’
단목장룡은 사실 여인의 외침을 듣긴 했었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결정을 내렸던 것은 여인의 외침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이런 과격한 방법을 택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는 선택이었다. 정파인을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보여 주려는 것도 있었으며, 사마련과의 회담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도 있었다.
정파 내에서의 입지 또한 이번 일로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만약 단목장룡이 이러한 선택을 하여 사마련과도 전쟁을 하게 된다면 비난을 면치 못하겠지만, 단목장룡과 사마련주는 나란히 서서 회담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주, 주향아… 저게 대체…….”
그녀의 친우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떨고 있었다.
“소진아.”
“어……? 저거 맞지? 맹주님께서… 우리의 일을 듣고…….”
“나 결정했어.”
“뭘……?”
주향은 결정했다.
“나, 백단부흥회에 들어갈 거야.”
“…….”
무림에서 백단부흥회의 평은 갈리고 있었다. 순수한 감정으로 누군가를 흠모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 넷이 모이면 한 명은 문제가 있다는 말처럼, 완벽한 단체는 아니었다.
“맹주님을 위해 살 거야.”
여인으로서 살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향의 마음은 그런 부류와는 조금 달랐다. 주군을 모시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라고 할까?
그렇게 단목장룡을 추앙하는 세력, 백단부흥회에는 자신의 이익이 아닌 순수하게 단목장룡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사실 단목장룡은 순수한 기반 세력으로는 가장 약한 맹주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니게 된 것이다.
* * *
무림맹주와 사마련주의 첫 번째 회담이 끝이 났을 때.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번 봐야겠군.”
그의 얼굴에선 분노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교 무공의 파훼식이라며 널리 퍼진 것을 보았다. 그것은 놀랍게도,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방식으로 마교의 무공을 막아 낼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짧은 기간 동안 준비한 것은 결코 아니리라.
그것을 만들었다는 단목장룡에겐 무언가 있었다.
본래 정파와의 전쟁까지는 소교주에게 모두 맡기려 했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교주가 직접 나서야 할 때가 왔다. 물론, 그가 전면전에 나서 전쟁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너무 쉽게 끝이 나면 싱겁지 않겠는가?
“단목장룡이라…….”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떻게 하여 마교의 무공을 손에 넣고 그 파훼식을 만들어 냈을까? 마도육문 중에 배신자가 있을까? 폐쇄적인 마교가 적극적으로 정파 무림에 개입하게 된 것은 이제 고작 십 년이 되었을 뿐이다.
고작 십 년 동안 이것을 준비한 건가?
하지만 정말 천마신교의 교도가 배신한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는 마교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천마신교에는 천마(天魔)가 있었으니까.
천마신공 자체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고 한다.
그런 천마신공에 상단전까지 개방했다면?
천마는 가볍게 산보를 나간다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