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11화 (211/236)

211화 추앙의 대상

올해 들어 무림맹의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처음 공공 대사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정파 무림엔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고금제일인이라 불렸던 전설적인 무인의 등장. 처음엔 공공 대사의 존재를 믿지 않은 이들이 많았지만, 같은 소림사 출신이자 현 소림사의 방장인 대허 선사가 그의 존재를 인정하였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공공 대사의 등장은 정파 무림에 있어서는 호재라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마교의 진출이니 뭐니 가뜩이나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과거 마교와의 전쟁을 끝냈던 장본인이 등장했으니 조만간 위기에서 벗어나리라 예상했다.

어느 객잔이든지 공공 대사의 찬양이 끊이질 않았다.

그가 면벽 수련을 깨고 무림에 나왔을 땐, 정파 무림은 멸망 직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가 검을 휘두르면 그 잔악무도한 마교도들이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쳤다고 했다.

공공 대사에 대한 강호인들의 신뢰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그를 찬양하지 않으면 사파나 마교의 첩자가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어도 아무 말 하지 못할 만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공공 대사는 제대로 뜻도 펼쳐 보지 못하고, 일선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듣기로는 새로이 무림맹주가 된 단목장룡과의 싸움에서 큰 내상을 입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공공 대사가 죽은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지만, 설마 같은 정파인끼리 서로를 죽이겠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단목장룡은 공공 대사를 꺾고 새로운 정파 무림의 주인이 되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 이십 대의 나이로 무림맹주가 된 것은 당연히 단목장룡이 최초였다. 아무리 무공의 실력이 뛰어나도 덕망과 인덕이 없다면 맹주로 추대될 수 없었기에 단목장룡에 대한 평가는 공공 대사에 비해 박한 편이었다.

단목장룡을 신뢰하지 못한다기보다는 공공 대사와 비교하여 무림맹을 잘 이끌 수 있겠느냐가 대다수의 우려였다. 물론, 당시 공공 대사의 연설을 듣고 단목장룡과의 비무를 감상했던 무림맹원들은 단목장룡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왔지만, 그런 인식이 중원인 모두에게 퍼지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새로운 맹주에 대한 인식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하여 완전히 뒤집혔다.

바로 마교 무공에 대한 파훼식 덕분이었다.

각 성에 자리 잡은 무리맹 지부로 전달된 마교 무공의 파훼식.

그것은 지부에서 또 복제하여 중소 문파나, 심지어는 일정 수준의 관원을 거느린 무관(武館)에도 전달이 되었다. 보통 파훼식이라는 것은 어떤한 무공을 오랜 세월 연구해야 만들어 낼 수 있는 물건이다.

명문 거파들이 비무 대회를 제외하곤 자신들의 절기들을 선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수련하는 것을 훔쳐보지 못하게 하는 것 또한 무공을 훔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다른 문파의 무공을 눈과 귀로 훔치는 것은 지금도 왕왕 일어나는 일이다.

파훼식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단지 어려울 뿐.

또, 파훼식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하여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무인은 소수에 불과하겠지만… 파훼식의 대대적인 배포는 현 무림맹주 단목장룡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대허 선사는 마교나 사마련과의 화합을 주장했으며, 공공 대사는 맹주로 취임한 이후 딱히 이렇다 할 행보가 없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이 맹주직에 오르자마자 파훼식이 배포되었다.

그것이 정확하고 아니고는 윗분들이 판단해 줄 일이다. 그렇기에 호사꾼들은 단목장룡의 의지와 재능 그리고 마교에 승리하기 위한 노력 등을 몹시 높게 평가했다.

동네마다 정세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퍼트리기 좋아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언변이 좋고 주변인들에게서 평이 좋았다. 그가 물어다 주는 소식을 잘 이용하면 소소하게나마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순진한 이들은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나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이들은 그들의 말 전부가 진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도 영월 객잔에서는 호사꾼 장무근이 단목장룡에 대한 이야기를 널리 퍼트리는 중이었다.

“자네, 그 말 사실인가?”

장무근의 말에 놀란 중년인이 반문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의 말은 믿기가 어려웠다.

“잘 생각해 보시게. 단목 대협께서 등장하시기 전의 무림은 어떠했는가? 난데없이 마교가 중원의 진출을 선언했으며, 사파에선 사마련주의 후계자 사마공이 나타났다네! 혈겁이 올 것은 누구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네. 당연히 사파에서도 정파를 침공하려 했겠지! 그랬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백성들은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 떼죽음이야! 단목 대협께서 등장하시지 않았다면 말일세!”

“아무리 그래도 도덕천존(道德天尊)의 환생이라니…….”

도덕천존은 도가에서 신격화된 신선으로 태상노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장무근은 단목장룡을 태상노군의 환생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하늘에선 영웅을 내린다고 한다. 하지만 마교와 사파의 위협에서 정파를 구할 수 있는 영웅은 필히 평범하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그는 도덕천존을 언급하고 있었다.

“허허허! 이보게, 믿지 못하겠으면 당장 객잔을 뛰쳐나가 주변을 둘러보시게. 무림맹 섬서 지부에선 그 마교의 무공을 파훼하는 구결을 배포하고 있다네. 그게 평범한 무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보는가?”

“그건…….”

“단목 대협께서는 하늘이 내린 대영웅일세! 정파인들을 지켜 주시고자 신선에서 인간이 되어 내려오신 분이란 말일세!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순 없어! 그 공공 대사를 몇 합에 이기신 분일세. 자네도 공공 대사는 알고 있지?”

“알다마다…….”

“지금 문파란 문파는 모두 파훼식을 익히고 있다네. 내 말이 거짓말 같은가? 당장 청해 무관에 가 보게. 마교도들을 막아 내기 위해 파훼식을 익히고 있을 테니까. 그 파훼식이 거짓이라면 높으신 분들이 익히도록 두었겠는가? 당연히 진짜니까 익히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만이 마교도를 막아 낼 수 있는 수단이란 말일세!”

“그, 그렇군. 듣고 보니 자네의 말이 맞아.”

중년인이 인정하자 장무근이 만족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남을 믿게 하려면 자신부터 세뇌하라. 처음엔 들려오는 소문을 조합할 뿐이었지만, 어느샌가 장무근은 진정으로 단목장룡이 태상노군의 환생이라 믿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이 사실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모두에게 퍼트리고 있을 뿐이다.

“들어 보게. 그분께서 용봉지회에 참가할 당시엔 어떤 일이 있었냐면 말일세…….”

과거의 공공 대사가 호사꾼들의 찬양을 받았다면, 이젠 그 대상이 단목장룡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섬서성 서안의 청해 객잔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감숙성, 사천성, 호북성, 하남성, 안휘성, 산동성, 하북성…….

정파의 권역이라 부를 수 있는 모든 지역에서 단목장룡에 대한 찬양이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청해 객잔의 한구석.

한 사내가 죽립을 푹 눌러쓴 채로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장무근은 객잔에 있는 모두가 자신에게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껏 목소리를 냈지만, 그 사내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파훼식이라……?’

장무근의 예상과는 달리 죽립 사내는 연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그의 기대처럼 무조건적으로 단목장룡을 찬양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상하긴 하군. 어떻게 파훼식을 그리 빠르게 만들 수 있었을까?’

사내는 단목장룡과 만난 적이 있었다.

분명히 그 재능은 높게 평가하지만, 파훼식을 만든다는 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상대와 몇 번 비무해 봤다고 하여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단순히 외형만 파악한다고 하여 만들 수 있는 부류가 아닌 것이다.

‘직접 확인해 봐야겠군. 청해 무관이라 했던가?’

사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흐흐흐, 네놈도 더 참기 힘들지?’

은근히 죽립 사내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가던 장무근.

그는 객잔의 모든 이가 자신의 말을 듣는다는 생각에 행복이 가득 찼다. 그가 단목장룡을 찬양하는 것은 맞았지만, 기저에 깔린 감정은 자신에게 모두가 귀를 기울이는 상황이 좋았던 것이다.

‘으응?’

하지만 죽립 사내는 그대로 장무근 일행을 지나쳐 객잔을 빠져나갔다.

마치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이놈이…….’

장무근은 분노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는다. 오히려 더욱 활기찬 목소리로 외칠 뿐이었다.

“단목 대협의 행사에 토를 달아서는 안 돼! 그분은 정파 무림을 구원해 주실 분이시네!”

그 의도야 어찌 됐든 간에.

무림에서의 단목장룡의 평은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었다.

* * *

“곧 회담이구나.”

당용아가 초췌한 얼굴로 말한다.

“정말 그러네요.”

걱정이 담긴 듯한 목소리로 동조하는 당옥정. 왠지 모르게 그녀의 얼굴은 뽀송뽀송하고 피부의 윤기가 가득했다. 당용아는 그런 조카를 보며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뭐, 이제 외관에 신경 쓸 나이는 지났으니까… 그녀의 시선이 단목장룡을 향한다.

‘그러고 보니 맹주께선 정말 체력이 대단하시구나.’

단목장룡은 맹주에 오른 직후 그 누구보다 하루를 알차게 썼다.

화산과 무당의 장문인들과 비무를 하고,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모두 결재하면서 마교에 대항하기 위한 부대를 재편했다.

그는 조금 전에 흑룡단을 방문하고 왔다.

거기에 과거 연이 있었던 흑룡단원들에게 가르침을 내려 줬단다. 보통 무림맹주라면 일개 조원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의 특권 의식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몹시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선 더더욱 말이다.

이제 곧 그는 이 업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더 좋다곤 할 수 없었다.

조금만 삐끗해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단목장룡이 강하다고 하지만 상대하는 적들도 만만치 않았다.

당옥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장룡, 회담장에 같이 갈 인원은 꾸렸어?”

“아니.”

흑룡단주를 만나고 온 것도 그것을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무램맹을 떠받치는 네 개의 무력단 중 가장 대세가 된 것은 흑룡단이었다. 지금 흑룡단은 넘쳐나는 지원자들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제어가 가능할 만큼 인원을 추리고 있었기에 흑룡단에는 수많은 인재가 포진해 있었다.

이번 회담에서 혹시 몰랐기에 단목장룡을 위한 호위대를 꾸리기로 했다.

호위대장으론 거의 화경에 근접한 고수인 남궁일몽이 일순위로 거론되고 있었다.

“남궁 조장은 네 호위를 맡고 싶다고 하던데……?”

“보니까 안 되겠더라고.”

단목장룡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당옥정의 앞으로 다가왔다.

“남궁일몽은 조금 더 성장해야 해. 내 옆에 있으려면 벽을 뛰어넘으라고 조언했지. 아마 지금쯤 열심히 수련하고 있을걸.”

투기 넘치는 남궁일몽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의 재능은 단목장룡도 인정할 수준이었다. 아마 단목장룡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그가 마교나 사파에 대항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었으리라.

“설마 혼자 가려고?”

걱정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그를 타박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그게 맞는 선택이기도 하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 해도 단목장룡 혼자서라면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대동하는 인원이 많다면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도주보단 싸움을 택해야 한다. 최악의 최악까지 상정하면 오히려 단목장룡 홀로 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

“천응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당옥정은 당연히 같이 가고 싶었지만, 같이 가면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단지, 그를 돕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감이 들 뿐.

“나한텐 이게 있잖아?”

단목장룡이 당옥정의 손을 끌어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다 댄다.

순간 흠칫한 당옥정이었지만, 그것이 자신이 선물한 심보망임을 알아챈다.

“이게 있으면 누구도 내 심장을 꿰뚫지 못할 거야.”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심보망은 단목장룡이 익힌 해우심법과 찰떡처럼 어울렸다. 특히 거기에 연옥의 기운을 덧씌우면 그 강도는 더욱 강해진다. 물론,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는 없었지만… 한 번의 기회가 승부를 결정짓는 고수들의 싸움에선 심보망의 존재는 회심의 수가 될 수 있었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오히려 도구의 효용을 극대화하여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장인이다. 그들은 극한을 추구한다.

“헤헤…….”

자신이 선물해 준 심보망을 매일 차고 있다는 사실에 당옥정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당용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잠시 한 시진 정도 쉬었다가 올게요.”

보통 그러한 말을 잘 내뱉지 않는 그녀였다.

의외의 말에 당옥정이 당황한다. 많이 피곤하신가?

“고모님, 몸이 안 좋으신……?”

그런데 당용아는 당옥정에게 한쪽 눈을 깜빡였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던 당옥정의 눈이 빠르게 끔뻑였다.

“응? 고모님?”

“…….”

- 한 시진 동안 집무실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당용아는 그런 전음을 남기고 방에서 떠나갔다.

그리고…….

“응?”

당옥정은 자신의 손이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깨닫는다.

* * *

그 시각.

죽립 사내가 마교 파훼식이라 이름을 붙인 서적 세 권을 살펴보고 있었다.

툭.

그것을 모두 읽은 사내가 천천히 죽립을 벗는다. 그의 머리칼은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또한, 그의 눈에는 푸른 광채가 번뜩이고 있다.

“대체 이놈의 정체가 뭐지?”

단목장룡.

처음 볼 때부터 재능이 대단하다고 여겼건만, 이건…….

“정말 위험한 놈이로군.”

백발의 사내.

사마련주 사마백혼의 얼굴이 더없이 진중하게 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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