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거짓을 고했구나
“근데… 단목 공자가 공공 대사님을 이길 수 있는 거야?”
당연한 의문이었다.
공공 대사는 무려 오백 년 전의 인물이다. 화경에 이른 고수는 환골탈태를 통해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유추할 수 있다. 공공 대사는 두 번 이상 환골탈태를 했다고 말이다.
아니면 환골탈태를 하지 않더라도 일정 수준에 오르면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추측할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공공 대사는 그러한 긴 시간 동안 무공을 수련해 왔을 것이다. 단순히 비교해도 단목장룡보다 열 배는 넘게 살았다. 무공을 일 년간 익힌 무인보다 십 년을 익힌 이가 더 강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당연한 사실이다.
단목장룡이 과연 공공 대사에게 이길 수 있을까?
단상을 바라보는 이들은 모두 단목장룡의 패배를 예견했다.
“그래도 단목 공자가 이겼으면 좋겠군.”
“동감일세.”
전쟁을 치를 자격이 없다며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맹원을 내려다보았던 공공 대사.
오늘 그의 연설을 들은 이라면 반감을 품는 게 당연했다.
“최소한 단목 공자가 죽지만 않았으면…….”
“걱정하지 말게. 화산과 무당의 장문인께서 단상의 가까이에 있지 않은가?”
적하 진인과 대청 진인은 단상 근처에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쿠웅!
대피하듯 단상에서 멀어지는 맹원들의 시선이 굉음의 진원지로 향한다.
두 사람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 *
그는 과거에도 천하제일인으로 불렸으며, 지금도 천하제일인이라 불리고 있었다.
마교의 교주 천마를 패퇴시키고, 패배한 적이 없는 무인.
그는 고금제일인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공공 대사는 분명히 패배를 겪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교의 교주 천마에게 말이다. 그 전투에서 공공 대사는 죽음의 문턱을 밟았다. 소중한 사람들의 희생과 그 여인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공공 대사는 지금 이 땅 위에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공공 대사는 그 이후 더욱 강해졌다.
천도신녀의 은혜를 받고, 상단전을 개방했다. 우주의 진리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것은 온전히 무공에 적용이 된다. 결국, 기(氣)라는 것은 우주를 구성하는 힘이었고 진리를 본다는 것은 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공공 대사는 비로소 고금제일을 논할 수 있게 되었다.
금강불괴지신에 도달했다고 여기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단목장룡의 검에 얕은 상처가 나긴 했지만, 제대로 맞붙는다면 금세 제압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공공 대사의 등줄기에 스쳐 간다.
그의 검에 맺힌 잿빛의 검강은… 상단전을 열지 않고서는 다룰 수 없는 힘이었다. 거기다 자신을 응시하는 저 눈빛. 공공 대사는 분명히 그것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귀기(鬼氣)…….’
마주한 것만으로도 몸이 굳고, 원초적인 공포가 피어오른다.
대체 왜 단목장룡의 눈빛에서 마교주의 그것이 생각날까?
“감히.”
공공 대사는 그 섬뜩함을 부정했다.
제깟 놈이 뭐라고 벨 자신이 있다느니 헛소리를 하는 건가? 금강불괴에 가까워졌다느니 헛소리를 하는 건가? 그는 분노를 담아 단목장룡의 눈빛을 마주했다.
“삼 초식 안에 네놈을 죽여 주도록 하마.”
단목장룡은 대답하지 않았다.
귀기가 담긴 눈빛으로 공공 대사를 노려보고 있을 뿐. 언제든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자세를 취한다. 공공 대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타닷!
공공 대사가 앞으로 튀어 나간다.
잿빛의 기운을 가득 담은 주먹이 단목장룡의 복부를 노린다. 눈을 깜빡하기도 전에 단목장룡의 지척에 도달한 공공 대사. 그의 주먹이 단목장룡에게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단목장룡은 믿을 수 없게도 공공 대사의 움직임에 반응했다.
살짝 뒤로 물러서며 검을 찔렀다. 공공 대사의 주먹과 단목장룡의 검 끝이 마주한다. 강렬한 충격음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쿠웅!
순간적으로 손끝에 전해지는 고통에 공공 대사는 경악했다. 상단전을 연 후부터는 육체의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대지 위에선 그 자신에게 해를 입힐 수 없으리라 여겼다. 처음 단목장룡에게 손이 베였을 땐, 잿빛의 기운을 끌어 올리지 않았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손에 전해지는 이 고통은 뭐란 말인가?
단목장룡이 잿빛의 기운을 다루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그것을 더 잘 다룰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천도신녀의 은혜를 받고, 오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것을 연마한 자신이다.
그런데 왜?
어찌하여?
서걱!
단목장룡의 검이 또다시 빛을 발했다. 공공 대사의 어깨에 진한 고통이 스며든다. 베이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지만, 그의 검은 또다시 자신의 반탄지기를 뚫어 냈다. 물론, 공공 대사 또한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뇌왕검이 공공 대사의 어깨에 닿은 순간, 반대편 손가락을 펼쳤다. 그의 다섯 손가락에선 각기 다른 기운을 담은 기환이 쏘아졌다. 탄지공(彈指功)은 염주나 동전을 이용하여 활용한다고 하지만 공공 대사의 수준에서는 그러한 기물이 필요하지 않았다.
타다다다닷!
단목장룡은 이미 공공 대사의 어깨에 검격을 쏟아 넣은 터라 피할 겨를이 없었다. 순식간에 피부에 닿는 다섯 개의 기환. 단목장룡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
“…….”
일 합의 공방.
누가 더 이득을 보았는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느냐로 판단한다면 당연히 공공 대사가 손해였다. 그의 어깨엔 꽤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까딱 잘못했으면 어깨가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었다. 그의 잿빛 검강은 공공 대사의 반탄지기와 금강불괴지신을 쉽게 뚫어 냈다.
물론, 단목장룡 또한 공공 대사가 방출한 기환에 맞았지만, 피부가 뚫려 피가 흐르진 않았다. 내장 기관 근처에 맞은 것이라 내상을 입을 위험까지 고려한다면 단목장룡이 더 위험했을 수도 있지만.
공공 대사는 자신이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내공으로 피는 멈추었지만, 살짝 움직일 때마다 전해지는 고통이 공공 대사를 자극한다.
“네놈, 거짓을 고했구나!”
공공 대사가 생각할 방법은 그것뿐이다.
단목장룡은 천도신녀의 은혜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자신과 동등한 수준으로 기를 활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반탄지기는 화경의 고수가 전심전력을 다해도 쉽게 상처조차 나지 않는다. 반탄지기를 뚫는다고 해도, 금강불괴를 이뤘다고 자신했던 피부를 뚫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단목장룡은 자신과 같은 부류의 기운을 너무도 쉽게 다루고 있다.
은영전주에게 그에 대한 정보를 들었을 때, 나찰마궁주에게 겨우 승리했다고 했다. 기껏 해 봤자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
공공 대사는 나찰마궁주 따위는 쉽게 처죽일 수 있었다.
그에게 무공을 알려 준 것이 바로 공공 대사였으니까.
그런데 이게 무언가?
단목장룡은 결코 나찰마궁주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 아니다.
이런 성장은 결코 혼자 이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도신녀, 그 여인이 결국 깨어난 것인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어느샌가 단목장룡의 말이 짧아져 있었다. 그의 얼굴엔 은은한 짜증이 서려 있었다. 그 또한 공공 대사의 기환에 당한 것이 거슬렸다. 솔직히 말해서 공공 대사가 가볍게 튕겨 낸 듯한 기환은 그의 내장을 뒤흔들었다. 까딱 잘못했으면 입에서 피를 토해 냈으리라.
“갈! 거짓을 고하는구나! 그렇게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있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말이 안 통하는군.”
공공 대사는 자꾸 단목장룡을 천도신녀라는 인물에 끼워 맞추려는 듯했다.
그러는 이유는 얼추 예상할 수 있었다. 오백 년의 세월을 살아왔으며, 천도신녀에 의해 상단전까지 개방한 공공 대사가 이제 서른도 되지 않은 단목장룡에게 밀린다? 그걸 인정하려면 재능과 격의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분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공공 대사의 피부에 감돌던 잿빛의 기운이 더욱 진해진다.
그의 눈동자는 이제 푸른빛을 더하고 있었다. 사마련의 사마백혼처럼. 그리고 뇌왕을 죽였다는 그 의문의 무인처럼.
단목장룡이 묻는다.
“네가 뇌왕을 죽였나?”
그 질문에 단상 아래에 있던 누군가가 몸을 떤다.
당연히 당용아였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공공 대사에게 달려가 암기를 출수하고, 독으로 육신을 녹여 버리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꾸역꾸역 참고, 그나마 가까이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뇌왕?”
“그래.”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 내가 죽였던가? 동굴에 숨어 살던 도둑놈은 처단한 기억이 있는데 말이지. 그놈이 아마…….”
“무영신투.”
“그래, 그러한 이름이었던 것 같군.”
공공 대사가 그걸 왜 묻느냐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단목장룡을 응시한다.
“…….”
뇌왕을 죽인 것은 공공 대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천자 중 한 명이 뇌왕을 죽인 것이 된다.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당연히 사마련주였다. 단목장룡이 슬쩍 단상 아래로 시선을 내린다.
당용아가 입술을 깨물고 단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사천자 모두를 죽여야 한다.’
그 끝에는 마교의 교주 천마가 있었다.
결국, 모두와 싸우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 공공 대사와 마교주가 싸울 때까지 기다릴까도 생각했지만, 그의 행태로 볼 때 시간이 지날수록 정파의 죽음이 커질 것만 같았다.
파바밧!
단목장룡이 공공 대사의 일권을 피해 낸다. 단목장룡이 단상 아래를 내려다보는 틈을 이용해 공격해 온 것이다. 보통 정파의 명숙이라면 선택하지 않을 공격법이었지만, 실전을 중시하는 공공 대사에겐 어울리는 방법이다. 단목장룡 또한 그것을 탓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쉬잇!
기다렸다는 듯이 단목장룡의 검이 뱀처럼 휘어 공공 대사의 안면을 노린다. 단목장룡은 일부러 틈을 내보인 것이다.
“흐읍!”
공공 대사가 피하려고 했을 때, 검이 가속한다. 가속해 순식간에 속도를 더하기에 방비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단목장룡의 검은 평범한 가속의 수준이 아니었다. 유성은 지면으로 떨어질 때, 부딪치기 마지막 순간 최고의 속도를 보여 준다.
단목장룡의 검은 유성(流星).
부딪치는 순간 대지를 뒤흔들며,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 낸다.
유성이 공공 대사에게 닿는다.
쿠우우웅!
공공 대사 또한 가만히 맞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권법은 내공을 담지 않아도 강철을 부순다고 한다. 거기에 잿빛의 기운을 담는다면 어떠할까?
두 사람은 이제 힘을 조절하지 않았다.
단목장룡이 모두에게 물러나라고 했던 이유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고오오오-!
기와 기의 충돌은 파동을 만들어 낸다. 그 흔들림은 빠르고 넓게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특히 위험을 감수하고 초고수들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던 이들은, 그 충격에 내부가 뒤흔들리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당용아가 내공을 끌어 올렸는데도, 흠칫하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가장 가까이서 대결을 지켜보던 무당과 화산의 장문인은 경악한 표정으로 단상을 올려다볼 뿐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내력을 한 번에…….’
단전에 있는 내력을 한 번에 쏟아 낸다면, 절정의 고수라도 화경의 고수라도 상처 입힐 만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단전에 있는 내력은 세맥을 통한다. 단전의 모든 내력을 세맥으로 이동시키려 했다간 바로 주화입마에 빠지고, 내상을 입고 검은 피를 토하게 될 것이다. 세맥이 터져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기에 단전의 내공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얼마나 많이 사용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하지만 내공이 순환하는 세맥을 단련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다. 오죽하면 환골탈태만이 세맥을 단련하는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이 한 번의 격돌에 쏟아 내는 거대한 기운은, 결코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공방이 끊기지 않고 지속된다면?
쿵! 쿵! 쿵! 쿵! 쿵!
솨아아아아아-!
두 사람의 주변으로 이제 파동은 규칙적인 것처럼 퍼져 나간다. 처음엔 쉽게 버티고 있던 명문 거파의 장문인들도 이제는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로 물러서고 있었다. 당용아는 이미 질렸다는 얼굴로 멀찍이 떨어졌다.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가까이서 지켜보다가 내상을 입을 수도 있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격돌이다.
대체 어떻게 사람이 저 정도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는가? 저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인가?
당용아는 공공 대사의 상단전을 개방해 준 천도신녀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사실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대체 단목 공자의 재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오백 년 전의 고수.
고금제일인이라 불렸으며 천도신녀에게 상단전을 개방했다는 공공 대사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밀어붙이는 듯한 단목장룡이 보인다.
‘정말 역대급의 재능을 가졌구나…….’
이제는 경외심마저 느껴질 재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