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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02화 (202/236)

202화 난세에 영웅이 난다

공공 대사.

그는 초대의 무림맹주였으며, 소림사의 십팔나한 중 가장 강한 무인이었다. 소림사는 지금도 그러하듯, 무림맹이 만들어질 당시에도 정파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며 무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천하제일인으로 꼽히는 인물이었고, 마교의 괴물, 당대의 천마를 막아 낼 유일한 인물로 추앙받았다.

그는 거룩한 의지와 사명을 가지고 무림맹을 이끌었다. 구심점이 없었기에 마교도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무림의 영웅들이 공공 대사의 곁으로 집결했다. 정파 무림의 힘은 강하다. 특히 위기가 닥치면 닥칠수록 말이다.

이제껏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물러서기만 했던 정파 무림은 무림맹이라는 이름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중원인들과 전혀 다른 행동 양식을 가진 마교도들에게 두려움이 커져 있던 정파 무림이었지만, 공공 대사의 등장은 한 줄기 빛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등장하면 어김없이 마교들은 전멸했으며.

심지어는 퇴각하기까지 했다. 광인처럼 피를 탐하던 그 마교도들이 말이다.

공포라는 감정이 흥분과 환희로 바뀌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공 대사는 소림의 의지를 받들며 성장해 온 고승이었다.

그는 부처가 되기 위해… 달마가 되기 위해, 그 달마 대사처럼 면벽 수련을 하며 속세와는 담을 쌓고 평생을 살아왔었다. 당연히 그의 모든 것은 수련이었지만, 속세의 어떠한 것도 경험해 보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취할 수밖에 없었다.

승리라는 것에 말이다.

무공은 남을 이기기 위해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익히는 것이다. 그것이 소림의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승리한다는 것은 모호한 개념일 뿐이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달마가 전해 준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그는 손쉽게 드러나는 승리에 취하고 말았다.

살인이 옳지 못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이의 목숨을 취하는 이들을 죽이는 것은 죄가 될까?

아니다. 소림사에선 이미 그것을 각오하고 공공 대사를 내려보낸 것이다. 달마 이후 최고의 고수로 손꼽히는 공공 대사를 마교를 막기 위해서 하산시켰다. 숭산에서 내려온 무공의 천재는 십만대산에서 야수처럼 살아온 마교도들조차 물러서게 만들었다.

호남성까지 밀려났던 정파의 무인들은 어느새 중경과 사천을 거쳐 청해성에 도달한다.

그곳엔 마교의 정예들이 득실거렸지만, 정파의 무인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공공 대사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오랜 전쟁에서 경험을 쌓은 대영웅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한다. 마교도들의 습격은 수많은 정파의 영웅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중심엔 공공 대사가 있었다.

“공공, 이길 수 있겠어? 상대는 마교주라고. 쫀 건 아니지? 응?”

정파인들에게 존경을 넘어 추앙받는 공공 대사에게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으리라. 말투만 보면 영락없는 파락호나 다름없었지만, 공공 대사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불가에선 여인과의 사랑을 금하지만, 이미 그러한 규율은 공공 대사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가 죽인 마교도만 해도 거의 오백 명에 달한다. 이미 그는 과거와 달라졌다.

“허허, 빈승이 겁먹은 것을 보았소이까?”

공공 대사의 말에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위험할 것 같으면 이 누님 뒤에 숨으라고. 알겠지?”

평소였다면 그럴 일은 없다며 말했을 공공 대사였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마지막 전투라 그랬던 걸까? 오늘은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고 싶었다. 여인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알겠소이다.”

“응……?”

“그리하겠다는 말이외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짜식이 이제야 누님을 인정하는구나!”

여인이 공공 대사의 민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는다. 마치 강아지를 대하듯이 말이다. 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군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면 제갈 군사가 길길이 날뛰었으리라.

하지만 공공 대사는 이 상황이 마냥 행복할 뿐이었다.

자신에게 이렇게 격의 없이 다가오는 그녀가.

그 어떤 여인보다 강한 그녀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세간에서 검후(劍侯)라 불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공공 대사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중원에서 자신과 가장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 * *

“…….”

머리를 짧게 자른 사내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코에서 뜨거운 숨이 흘러나온다. 그렇지만 그의 눈빛은 무덤덤했다.

“또 이 꿈인가.”

무릇 꿈이라는 것은 깨게 되면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법이거늘.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 꿈은 잠에서 깨어나도 흩어지는 법이 없었다. 더욱 선명하게 뇌리에 각인될 뿐. 시간이 흐르고 흘렀음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은 있는 법이었다. 다 잊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다시금 고개를 들고 사내를 도발한다.

“곧 잊어 주도록 하마.”

어떤 방법으로도 잊을 수 없던 기억이었지만, 사내는 이제 잊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과거 우스꽝스럽고 어린 감정은 모두 사라졌다. 치욕스러운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 기회가 없다고 여겼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또 그는 과거의 자리를 되찾았다.

“힘들지 않으냐?”

사내가 고개를 돌린다. 그곳엔 하얀 수염이 검붉은색으로 물든 노인이 잘게 몸을 떨며 벽면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로 있었다. 그의 몸엔 잿빛의 사슬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 손목과 발목은 어찌나 강하게 묶여 있는지 그 주위가 시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아이야.”

사내는 노인에게 다가간다.

그의 손이 노인의 머리에 닿는 순간, 노인의 떨림은 더욱 거세졌다.

“힘들면 언제든지 포기해도 된다. 포기하라는 건 아니지만, 후배가 이리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보고 있기 힘들어서 말이야. 내 마음을 알겠느냐?”

사내는 노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듯이. 그러나 마지막까지 그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을 풀어 준다거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해 주진 않았다.

단지 딱하다는 듯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을 뿐.

거의 한 시진 동안 노인의 머리를 쓰다듬은 사내는 얼핏 웃음기가 감도는 얼굴로 다시금 잠을 청했다. 본래 사내는 하루에 한 시진만 잠을 자도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피곤해서 잠을 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 자면 꿈을 꾸지 않을 것 같기에 잠을 청할 뿐이었다.

* * *

공공 대사의 등장 후.

무림의 상황은 급변했다. 무림맹은 지금까지의 태도를 모두 버리고 마교를 적대했다. 초대 맹주로서 마교와 싸웠던 공공 대사가 나타났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걸 이상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분명히 현 소림사의 방장인 대허 선사는 평화와 공존을 주장했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교의 감숙성 진출을 허용했다. 그런데 왜 공공 대사와 대허 선사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일까?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맹주전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뭐, 대부분의 정파인들은 무림맹이 마교를 밀어붙였던 극적인 역사를 떠올리며 흥분에 떨긴 했다. 솔직히 평화라는 이름 아래에 마교의 요구를 딱딱 맞춰 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마땅한 대책도 없었기에, 대허 선사라는 인물을 믿고 지켜보았을 뿐.

하지만 이제는 공공 대사가 나타났다.

공공 대사가 누군가?

초대 무림맹주이며, 마교에게 밀려 전멸할 뻔한 정파 무림을 한데 모아 마교에게 반격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다. 처음 공공 대사가 등장했다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것을 믿는 이들은 없었다. 임시 맹주가 된 대허 선사가 선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림맹은 새로운 지존의 지휘 아래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지금 맹주전에선 임시 맹주가 아닌, 진짜 맹주가 된 공공 대사가 은영전주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마교의 반응과 정파 무림에서 동원할 수 있는 고수들의 정보를 나열하고 있다.

“화경의 고수는 일곱이었지만 아시다시피 전대 맹주님이신 복마 진인께서 저리되시는 바람에…….”

그런데 공공 대사는 복마 진인의 일을 궁금해하기보단 일곱 번째 화경의 고수에게 관심이 있는 듯했다.

“하마터면 칠왕이 될 뻔했군?”

“예? 예… 그런데 육왕이라는 이름이 워낙 오랫동안 전통처럼 내려와서 말입니다. 세인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긴 했습니다만, 그것이 본격화되기 전에 전대 맹주께서 당하셨습니다.”

“단목장룡이라 했던가? 그 아이를 보고 싶은데.”

“지금 단목 조장은… 마교와 싸우기 위해 홀로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홀로 움직인다?”

“예, 단목 조장은 처음 무림맹에 왔을 때부터 흑룡단을 콕 집어 입단했습니다. 평범한 다른 후기지수와는 전혀 다른 행보였지요. 제가 대화를 나눠 본 결과 실로 보기 드문 무인입니다. 자신의 출세나 욕망이 아닌 대의를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은영전주는 공공 대사 앞에서 단목장룡을 띄워 주었다.

언젠가 두 사람이 보게 됐을 때, 공공 대사가 단목장룡을 좋게 봐 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다.

“그렇지. 전쟁으로 영웅이 탄생하는 법이지.”

왠지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짓는 공공 대사.

혹여나 단목장룡의 단독 행동에 괘씸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은영전주의 마음이 놓인다. 저렇게 생각해 준다면 다행이다. 은영전주는 단목장룡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다. 사실 그를 혈세귀막으로 특사로 보냈을 땐 실패할 것을 각오했었으니까. 처음엔 당연하다고 생각한 선택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또?”

그 이후 은영전주는 조사해 온 자료를 바탕으로 공공 대사에게 고수들의 정보를 나열했다. 당연히 그중에는 오랫동안 강호에서 굴러 잔뼈가 굵은 기성 고수들도 있었으며, 젊지만 탁월한 재능으로 선배들을 제치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흑룡단의 남궁일몽과 설비연이었다.

“두 사람의 재능은 정말 대단합니다. 차기 육왕은 분명히 두 사람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합니다.”

“호오, 그래?”

“예, 맹주님.”

“오늘 저녁에 맹주전에 들르라 전해. 한번 보고 싶군. 작은 가르침 정도는 내려 줄 수 있겠지.”

가르침이라는 말에 은영전주는 깜짝 놀랐다.

그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기회인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젊음을 유지하는 고수.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는 무인이지 않은가?

“보고드립니다! 사마련에서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들어와.”

공공 대사가 서신을 받아 들고 쓱 읽어 나간다.

그것에는 그가 원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 사마련은 마교와 정파의 싸움에 관여치 않을 예정.

그러나 현 맹주가 된 공공 대사는 뭔가 불만인 표정이다. 은영전주는 서신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감히 그것을 보여 달라고 말하진 못했다. 공공 대사에겐 알게 모르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압감이 존재했다. 은영전주의 감이 좋다고나 할까?

“궁금한 모양이군. 읽어 봐라.”

황급히 서신을 받아 읽어 나가는 은영전주.

당연히 머릿속엔 의아함이 생겨났다. 왜 맹주는 이 서신을 보고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사마련이 이러한 약조를 지키지 않을 것을 예상한 걸까?

‘으음, 아니면 마교와의 싸움에서 전력이 약화되고 사마련이 어부지리를 노릴 것을 걱정하신 것일지도.’

꿈보다 해몽이라 했던가.

사실 은영전주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맹주의 전언을 정파 무림에 모두 전하도록 해라.”

“예, 맹주님.”

공공 대사의 말에 은영전주가 붓을 잡아 받아 적을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의 전언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진짜 전쟁을 대비하라고.”

꿀꺽.

전쟁이라는 단어에 침이 넘어가는 은영전주였다. 공공 대사가 대허 선사를 밀어내고 맹주의 자리를 차지할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긴장감이 차올랐다.

“무림맹으로 소집령을 내리는 겁니까?”

그러자 공공 대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난세에 영웅이 나는 법이니까.”

공공 대사는 과거의 기억을 잊고자 했다.

그러려면 과거를 재현해야 한다.

설령 정파 무림의 피가 대지에 흐르더라도 말이다.

* * *

단목장룡이 작은 창문의 틈 사이로 멀찍이 떨어진 맹주전을 바라본다.

그의 표정은 어두워져 있었다.

‘공공 대사는…….’

천자산의 주인이자 고금제일인이라 불렸던 공공 대사는 정상이 아니다. 정파 무림 곳곳에서 비보가 들려오고 있었다. 무림맹에서 대응을 하고 있긴 하지만 마교는 한 몸처럼 움직였기에 뭉치지 않은 정파는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했다.

공공 대사를 이용하여 마교를 견제하려 했었지만, 그는 무언가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이.

“…….”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쁘게 뛰어다니는 당옥정이 보였다. 그녀는 청룡단의 일원으로 무림의 정보를 분석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단목장룡은 계산을 시작했다. 무엇이 이득인지. 이대로 무림맹을 나서 천응을 타고 정파 무림을 공격하는 마교도들을 학살할 수도 있었다. 운이 좋다면 장로급 이상과도 마주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공공 대사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사천자 중 하나인 공공 대사의 목적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단목장룡은 슬슬 마음을 굳혀 가고 있었다.

‘만나 봐야겠군.’

그의 시선이 다시금 맹주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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