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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00화 (200/236)

200화 천혜성

“흐으응… 크응……!”

소리가 들려왔다.

단목장룡이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얼굴이 코를 킁킁대며 공간에 담긴 냄새를 맡고 있었다.

“너…….”

“냄새 좋아요오.”

마치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말투. 그녀는 몸을 흐물흐물하게 하여 단목장룡의 곁으로 다가온다. 과거처럼 그에게 안겨 냄새라도 맡겠다는 요량인가? 제갈교아는 기억을 잃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했었다. 단목장룡은 가끔 그녀에게 냄새를 맡게 해 주었다.

“그만.”

뚝.

단목장룡의 말에 그녀의 움직임이 멈춘다. 단목장룡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누워 있는 맹주와 가까워지는 것을 그가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것인가? 제갈교아는 여전히 그 코끝을 움직여 냄새를 맡으면서도, 단목장룡의 말에 반항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거지?”

“으음! 일단 냄새부터 맡고 설명을 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네에?”

칭얼대는 말투로 단목장룡에게 요구한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단목장룡의 온몸을 훑는다. 그의 몸 전체에서 황홀한 내음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과거보다 더욱 진하고 농밀한 것이 그의 코를 잠식하고 있었다.

당연히 단목장룡은 지금 그녀에게 냄새를 맡게 해 줄 생각이 없었다.

“아니.”

“히잉…….”

제갈교아가 힘이 빠진 듯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인상이 확실히 바뀐 것 같기도 했다. 처음 용봉지회에서 그녀를 볼 때만 하더라도 얼굴에 음침함이 가득했다. 외형적인 부분이라기보다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그 분위기와 눈빛에 어두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아예 음침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보다는 확실히 그 분위기가 밝아져 있었다.

“소영.”

“네에!”

“제갈교아.”

“네.”

다른 이름을 불러 보니 그녀의 대답에서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소영은 단목장룡이 그녀에게 붙여 준 이름이었다. 기억을 잃을 당시 그녀는 천진난만하고 순수하여 귀여움이 가득했었다.

“기억을 되찾았나?”

“네, 다시금 기억을 되찾았어요. 모두 단목 공자님 덕분이랍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서 이제야 감사 인사를 드리네요. 정말 감사해요.”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제갈교아였다.

하지만 단목장룡의 눈빛엔 의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당연하다. 제갈교아는 방구의 장원에서 일언반구 없이 사라졌었다. 만약 제갈교아보다 소영의 자아가 강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진 않았으리라. 더군다나 그녀의 아버지 제갈강량에게 들은 것도 있었다.

‘스스로 강시가 되려고 했다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제갈강량의 말이 신빙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갈강량이나 제갈교아 두 사람 다 의심이 된다.

“저어, 이제 냄새를 맡아도 될까요……?”

“묻는 말에 거짓 없이 모두 답한다면.”

“뭐든 물어보세요. 얼른요!”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눈을 빛내는 제갈교아였다.

단목장룡은 바로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그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다. 만약 제갈교아가 거짓을 말하는 것 같거나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고문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단목장룡이 남의 고통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사천자에 대한 존재를 듣고도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다가는 소중한 이들을 잃을 수도 있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그것이 죽음을 겪었던 단목장룡의 깨달음이다.

그런 단목장룡의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제갈교아의 얼굴도 조금은 진지해졌다.

“넌 왜 스스로 강시가 되려 했었지?”

“그건… 네……?”

제갈교아가 순간 멍한 얼굴을 한다.

대답을 회피하려 하는 것인가? 아니면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고 당황한 것인가? 단목장룡은 언제든 움직일 준비를 마치고, 그녀를 마주한다. 눈꺼풀을 움직이는 작은 표정의 변화도 지켜보고 있었다.

“그걸 누구에게 들으신 건가요?”

그녀가 반문한다.

당연히 대답해 주지 않는다.

“대답을 피하려 하는 건가?”

“아니에요. 단지…….”

“단지?”

“부끄러워서요…….”

고개를 푹 숙이는 제갈교아.

이제 그녀의 표정을 살펴보지 못한다. 그것이 짜증이 난다. 연기에 아무리 익숙한 자라도 정곡을 찔리면 표정 관리가 어렵다. 언제든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 그러하리라.

“고개를 들어라.”

들지 않으면… 따위의 협박은 없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이 낮게 내리깐 목소리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담겨 있었다. 제갈교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만다. 그녀의 말처럼 얼굴엔 부끄러움에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왜 부끄럽지?”

“당연히 부끄럽죠.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 했던 건데요. 뭐, 강림체(降臨體)가 된다고 제 삶이 완전히 끝난다고 볼 순 없겠지만… 그래도 단목 공자님껜 죄송해요. 왜냐면…….”

“왜냐면?”

“제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셨으니까요.”

그녀의 면면이 더없이 붉어졌다.

냄새를 맡고 싶다는 말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면서도, 저런 말은 부끄러워한다. 솔직히 단목장룡조차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저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제갈강량에게 들은 신녀문은 뒤에서 중원을 조종하는 거대 단체였다.

제갈교아는 그런 신녀문의 계승자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은 단어 중 걸리는 게 있었다.

“강시가 아니라 강림체라 했나?”

“네, 강시가 맡긴 하지만… 저희 쪽에선 강림체라 이름을 붙였거든요. 제가 성공할지 못 할지는 미지수였지만 말이에요.”

순간적으로 단목장룡의 머릿속엔 한 무공이 떠올랐다.

육신끼리의 혼을 뒤바꾼다는 이혼대법. 설마?

“다른 이의 영혼을 네 몸속에 받아들이려 했던 건가?”

“네, 맞아요. 그러려고 했었죠.”

그녀는 부정하지 않았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왜지?”

“왜냐고 물으시면, 으으음… 당연하게 생각했달까요? 인간이 태어나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식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본능에 새겨진 것과 같았어요. 전 당연하게 그것을 선택했어요. 조금 급하게 진행한 것은 있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도 의미도 없었으니 받아들였어요.”

묘하다.

지금의 그녀는 용봉지회에서 보았던 제갈교아나 기억을 잃었던 소영과도 조금 달랐다.

몽롱하게 빛나는 눈.

마치 신교에서 보았던 영령과 마주하는 듯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눈빛에 당시의 사공천은 안심했었다. 누구도 사공천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만은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이제는 생각을 달리 먹었어요. 당시 본능에 충실했던 소영의 삶 덕분에, 전 인간의 삶에 대해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되었답니다.”

“새로운 목표?”

“평범한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요. 뭐, 아직은 예전 버릇을 고치지 못하긴 했지만요. 킁.”

마지막으로 냄새를 맡는 제갈교아.

그녀에게 단목장룡은 질문 공세를 이어 나간다.

“사천자를 알고 있나?”

“벌써 그것까지 알아내신 건가요? 크응.”

제갈교아가 놀란 얼굴로 단목장룡을 바라본다. 놀란 와중에도 냄새를 맡는 것을 보니 조금 어이가 없긴 했지만 말이다.

“알고 있나?”

“네, 알고 있어요. 그들은 위험하답니다.”

“그들이 누구지?”

“공공 대사, 사마련주, 천마 그리고 천도신녀(天都神女).”

단목장룡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공공 대사는 이미 제갈강량 덕분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라는 이름은 단목장룡에게 큰 울림을 준다. 결국, 마교를 잡기 위해서는 사천자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다 사마련주까지 포함이 되어 있으니, 마교와 싸운다면 사마련까지…….

가까워지던 복수가 멀어진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멈출 생각은 없었지만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천도신녀는 누구지?”

“천도신녀는… 신녀문의 일 대 문주예요.”

설마 그것이 영령인가?

아니다. 영령은 어릴 때부터 보아 왔다. 단목장룡이 영령을 처음 보았던 것은 그녀가 일곱 살일 때다. 아무리 반로환동을 한다고 해도 어린아이로 변하는 일은 없었다.

“궁금증은 모두 풀리셨나요?”

제갈교아는 얼른 냄새를 맡고 싶어 코를 킁킁대고 있었다. 물론, 단목장룡의 명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에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녀와는 할 이야기가 더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더 물어볼 수는 없겠군.’

하루에 세 번 맹주전 직속의 무림의가 방문하여 맹주의 상태를 확인한다고 했었다.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녀 또한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단목장룡이 묻는 것을 모두 대답해 주고 있지 않은가?

“자리를 옮기지.”

“네, 따를게요.”

“그런데 무슨 방법으로 맹주전에 쉽게 들어왔지? 맹주전을 호위하는 이들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던데?”

제갈교아가 무언가 죄를 지은 표정으로 답한다.

“그들의 혼을 건드렸어요.”

“혼을 건드려?”

“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자주 하지만 않으면 그들의 정신이 망가질 일은 없어요. 아주 잠깐 상대를 현혹하는 것에 불과해서…….”

신녀라는 존재는 그런 것까지 가능하다는 말인가?

혼이라는 것은 단목장룡조차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무리 한눈에 무공을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어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그는 영혼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만약 그녀가 적이 된다면…….

단목장룡이 더없이 진중한 얼굴로 묻는다.

“네 그런 능력으로 나도 현혹할 수 있는 건가?”

“당연히 불가능하죠.”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제갈교아였다.

* * *

단목장룡이 향한 곳은 당옥정의 숙소였다.

당용아 또한 함께 청룡단으로 왔기에 그녀의 숙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현 무림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각 전투단의 경쟁은 없어진 것이 아니다. 사천당문의 내당주는 단번에 청룡단의 단주 직위를 꿰찰 수 있는 수준. 그렇기에 당옥정에 대한 대우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도 당연했다.

단목장룡은 두 여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에 들어와 제갈교아를 심문하고 있었다.

물어볼 것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지만.

“천혜성(天慧星)?”

“네, 단목 공자님은 천혜성을 타고나셨어요.”

도교에서 말하는 백팔 개의 흉성.

그러니까 삼십육 천강 칠십이 지살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중원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천살성(天殺星). 태어날 때부터 살기를 지니고 태어난 이를 칭하는 것으로, 그들이 무공을 익히면 중원에서 혈겁이 분다고 한다. 살기를 주체하지 못하기에 힘을 가지면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희생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그것에 환상 따위는 지니고 있지 않았다.

천살성이니 뭐니 살기를 주체할 수 없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중원에는 심지어 자신이 천살성을 타고났다며 자랑하는 대마두들이 여럿 존재했다.

“내가 도교에서 말하는 그 운명을 타고났다는 건가?”

그러자 제갈교아가 고개를 젓는다.

“운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운명을 결정한 듯한 ‘천혜성’이라는 단어로 단목장룡을 지칭했다. 그것을 타고났다고 했으면서 운명이라는 것은 없다? 역설적인 말이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천혜성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지?”

“하늘에 떠 있는 무한한 숫자의 별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무한하다.

단목장룡은 별이 많은 것은 알았지만, 무한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에서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그녀는 무한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

“본 적은 있지.”

“그 별들은 손에 닿지 않습니다. 단지, 볼 수 있을 뿐이죠. 저희는 그것을 드러난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있어요. 혼을 보는 눈이랄까? 그렇게 설명하면 편하겠네요.”

제갈교아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천혜성은 가장 빛나는 백팔 개의 별 중 하나에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해요. 신녀의 자질을 타고난 이들은 별의 감정? 아니,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고 할까요? 천도신녀께선 도교의 백팔 흉성을 따서 별들에 이름을 붙이셨답니다. 당연히 저도 그것을 배웠고요.”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혼이라는 것이 대체 어떻게 느껴지는 것일까? 단목장룡은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다. 심지어 이혼대법을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냥 영혼이라는 게 존재하는구나…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천혜성의 냄새… 아니, 분위기와 단목 공자님의 분위기는 같아요. 그러니 천혜성을 타고나신 거죠. 사실 따지자면 혼을 지닌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별을 가지고 있답니다. 단지, 미약하게 빛나는 별의 분위기를 느낄 정도로 제 자질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 문제랄까요?”

어려운 이야기였다.

단목장룡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별과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 그게 가능한가? 그렇다면 저 멀리 떨어진 별들은 대체 무언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다 아는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사실 삼라만상이라는 거대한 진리에서 제가 아는 것은 티끌과도 같은 수준이에요. 단지, 다른 이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감각을 가지고 있기에 조금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뿐이에요.”

“그렇다면 신녀라는 존재들은, 그 별이라는 것에 영향을 끼칠 수 있나?”

“불가능해요. 하지만… 가능해요.”

단목장룡은 반박하지 않고 들었다.

“제가 천괴성의 별을 타고났다고 가정하면…….”

그녀가 검을 꺼내 자신의 목에 겨눈다.

“이대로 제가 자결한다면 천괴성은 빛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 별의 운명 따위는 정해지지 않았어요. 제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니까요. 맹주전에서 제가 말했잖아요?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요. 소영으로 잠시 살았던 기억으로 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여 운명을 바꾸었답니다.”

제갈교아의 말은 단목장룡에게 울림을 준다.

천혜성이니 천살성이니 그런 것은 솔직히 크게 와닿지 않는다.

다만…….

‘사공천으로 살아갈 때와 단목장룡으로 살아갈 때의 선택이… 전혀 다르긴 하지.’

자신의 별은 과연 어떻게 움직였을까?

그것이 궁금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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