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99화 (199/236)

199화 돌아오다

무림맹주가 병환으로 쓰러졌다는 것이 무림 전체에 뻗어 나갔다. 무림맹에선 맹주전의 일부만 알고 있던 사실이 퍼진 것이니, 맹주전의 인물 중 간자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일부러 그것을 퍼트린 것이다. 당연히 은영전주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도록 바빠졌다. 무림맹 내부의 분위기는 믿을 수 없이 가라앉았으며, 무림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었다.

마교가 고개를 들이미는데, 정파 무림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무림맹주가 쓰러진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심지어 몇몇 성격이 급한 무인들은 임시 무림맹주를 세우거나 새로운 무림맹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현 맹주 복마 진인과 급이 맞는 이들이 올라가야 했다. 또, 지금 무림맹에는 소림사의 방장을 비롯하여 화산파와 무당파의 장문인이 있었다. 그들이 무림맹을 이끈다면 무림맹의 위신이 설 수 있으리라.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지 않았다면 이런 말도 새어 나올 일이 없었다.

당연히 병상에 누워 있는 무림맹주에겐 그 소식이 들리지 않도록 했다.

맹주전에선 지금도 세 사람이 모여 토의를 하고 있었다.

“이걸 어찌해야 한다는 말이외까?”

무당의 장문인 대청 진인이 씁쓸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한다. 그는 원론을 중시했으며, 평화를 중시했다. 누군가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 맹주 복마 진인이 쓰러진 것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복마 진인께선 분명히 회복하실 것이오. 그러니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소? 그분은 정당하게 무림맹의 맹주가 되신 분이오.”

화산의 장문인이 그의 말을 받았다.

무림맹주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복은 할 것이다. 맹주전 전담 무림의의 말대로라면 적어도 일 년 이상은 기다려야 할 테지만……. 그것도 병상에 누워서 말이다.

마교에 대한 입장은 다른 두 장문인이었지만, 이번에는 의견이 맞는다.

“빈도 또한 그리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소림의 방장 대허 선사는 전혀 다르게 반응했다.

그 또한 무림맹주가 쓰러진 것을 안타깝고, 슬픈 일이라 생각한다. 의원의 말로는 화기가 쌓이고 쌓여 폭발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겪어 왔던 것이다. 그런 그가 회복하자마자 다시 맹주의 자리로 복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다.

현재의 무림맹주는 가시밭길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런 자리라도 오르려고 하는 이들은 수두룩했지만, 그중에 실질적인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허 선사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었다.

그리고 맹주로서 자신을 희생할 각오까지 다지고 있었다.

“두 장문인께 부탁드리고자 하오.”

두 사람이 소림의 방장 대허 선사를 바라본다.

“빈승이 임시로 맹주직을 수행하였으면 좋겠소이다. 당연히 무림맹 수뇌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할 것이며 또한 현 무림맹주이신 복마 진인께서 쾌차하신다면,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외다.”

진중한 각오.

대허 선사는 절대 거짓을 말할 인물이 아니었다. 두 장문인도 소림사 방장의 의지를 읽었다. 이제까지 소림사는 무림맹주라는 자리에 크게 욕심내지 않았었다. 초대 무림맹주가 소림사의 방장이었지만, 그 이후 맹주직을 맡은 소림사의 승려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고난을 짊어지려 하는 것이다.

“빈승이 맹주의 직에 올라도 되겠소이까?”

화산파와 무당파의 장문인.

당연히 두 사람은 그 대허 선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단목장룡 또한 소식을 들었다.

무림맹주가 갑자기 병환으로 쓰러졌다? 그것도 놀라웠지만, 감숙성에도 이미 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는 점이 수상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소문이 퍼져 나가지 않았는가? 물론 파급력이 강한 소문일수록 더욱 빠르게 확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건 비상식적으로 빠르다.

당연히 단목장룡 또한 무림맹에 간자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무림맹주가 쓰러진 것이 누군가의 계획일 수도 있겠다는 가정이 생겼다.

‘화경에 이른 고수를 병환으로 쓰러지게 할 수 있는지가 문제겠지만.’

만약 그것이 쉬웠다면, 현 무림에서 화경의 경지가 차지하는 위상이 이 정도까진 아니었으리라. 화경의 고수는 화경의 고수만 상대할 수 있다. 이런 말은 무림에서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으니까.

단목장룡은 제갈강량을 찾아가서 이에 대한 것을 물었다. 그 또한 무림맹주로 있었지만, 병환으로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그는 원래 앓던 병이 재발했을 뿐이라고 답했을 뿐이다. 그 또한 복마 진인이 병환으로 쓰러진 것에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

맹주가 쓰러졌다는 것을 들은 제갈강량은 단목장룡에게 신녀문에 접촉하는 걸 다시 한번 고려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미 행보를 결정한 단목장룡이다. 언젠간 신녀문에 접촉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힘을 빌려 성장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그는 진리를 잘 알고 있었다.

힘에는 대가가 따른다. 특히 남의 힘을 빌린 것이라면 더더욱.

“가자, 천응.”

이제 진가장에서 얻을 것은 없다고 봐야 했다.

단목장룡은 혈우검마를 기다렸지만, 기다려도 마교의 초고수들이 이곳에 방문할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됐다.

“끼이익!”

“일단 등봉으로 가자. 어딘지 알지?”

“끼엑!”

당연하다는 듯이 소리를 빽 지르는 천응. 이제 녀석은 단목장룡이 지역명만 말하면 알아서 찾아갈 수준이 되었다. 물론, 이제까지 들렀던 곳에 한해서였지만 말이다.

* * *

사마련.

넓은 공동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았지만, 앞의 미공자는 흐뭇한 얼굴로 가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마련주 사마백혼과 영령이었다.

“네 계획대로 됐구나.”

- 소교주는 온전히 약문의 성과라 생각하겠죠.

“약문의 그것이 대단하긴 하지만 화경의 고수를 병석에 눕게 만드는 것은 힘들지. 그곳에 다른 고수들이 없었다면 위험할 뻔했다는군.”

- 차라리 죽었다면 좋았겠지만, 상관없습니다. 분명히 대허 선사가 맹주직에 오르겠죠.

“이제 뭘 하면 되겠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 말해 보라는 표정. 평범한 여인이었다면, 그의 그 표정에 혼이 쏙 빠질 터였지만 영령은 그것에 영향을 일절 받지 않는다. 사마련주를 저렇게 다룰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으리라.

- 마교를 도와 소문을 더 퍼트리도록 하세요. 그 사람에게 이야기가 들어가게끔 말이에요.

사마백혼은 사파의 지배자였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소림사를 강조하면 되겠구나.”

- 네.

“그러하마.”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마백혼.

하지만 영령은 그에게 감사하긴커녕 고개를 홱 돌리곤 사마련주의 집무실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참, 공아.”

- 말씀하시죠.

전음에서도 묻어나는 냉기.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훤히 보인다.

“단목장룡이 요즘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니더구나.”

- …….

“내가 해 줄 것이 있겠느냐?”

은근한 눈빛으로 영령을 바라보는 사마백혼.

그녀의 어떤 반응을 기대한 것일까?

하지만 영령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 아무것도 없습니다.

“회담에서 보니 네가 관심이 있던 것 같던데……? 정녕 괜찮으냐?”

- 예.

영령은 더는 말할 것이 없다는 듯 몸을 돌리고 방을 빠져나갔다. 그것을 본 사마백혼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놈 때문에 ‘말’을 하기에 뭔가 있지 않을까 싶었더니… 착각에 불과한 건가?”

단목장룡이라…….

신경 쓰이는 놈이긴 하다. 처음엔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애송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를 생각하면 무언가 가슴이 답답해진다. 왜일까? 그의 재능이 뛰어나서? 아니면…….

“내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그는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갈 놈이지. 때가 되면…….”

알 수 있으리라.

단목장룡이 어떠한 그릇을 가졌는지.

영령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 * *

단목장룡은 당용아, 당옥정과 함께 무림맹으로 되돌아왔다.

무림맹의 초대 맹주인 공공 대사가 뇌왕을 죽인 범인일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사마련주 또한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것을 고려해 보면 공공 대사나 사마련주가 그 사천자라는 미지의 단체의 일원인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러니 이대로 두 여인이 등봉현에서 그들을 파고드는 것은 위험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당용아나 당옥정 또한 언제든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려 하는 것이 아니니,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무림맹으로 왔다. 또 단목장룡이 이미 알아낸 정보가 있었으니 그것을 토대로 무림맹에서 추적을 시작해도 관계없으리라.

당용아는 당분간 당옥정과 함께 청룡단에서 생활하기로 했으며, 단목장룡은 무림맹주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맹주전으로 향했다. 흑룡단에도 들러야 하겠지만, 무림맹주의 안위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맹주님의 맥을 살펴볼 수 있게끔 허락을 해 주려나…….’

뭐, 무력을 동원한다면 강제로라도 맹주의 맥을 살펴볼 수 있겠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차라리 늦은 밤에 기척을 숨기고 몰래 맹주의 맥을 살펴보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

맹주전에 도착하여 맹주의 병문안을 왔다고 하니 호위 무사들이 난색을 표했지만, 소식을 들은 은영전주가 단목장룡의 출입을 단번에 허가해 주었다. 그는 맹주에게서 호남성 장사에서 단목장룡이 맹주의 회담을 도왔다는 걸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또, 단목장룡이 무림맹에 입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

물론,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은영전주와 대동하여 맹주의 방으로 향했다.

숙연한 분위기. 은영전주는 슬픈 눈빛으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누워 있는 맹주를 바라보았다. 은영전주 또한 터져 나오는 격무의 해일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무림맹주 수준의 부담감은 아니었다.

맹주전 전담의 무림의는 맹주가 정신적인 요인으로 소위 말하는 화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었다. 화병이란 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병이었지만, 무림인들에겐 상당한 위험으로 작용한다. 거대한 힘을 단전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니만큼 까딱 잘못하면 그 거대한 기운이 육신을 집어삼킬 수도 있었다. 무림인들은 그것을 주화입마라 한다.

다행히도 대허 선사를 비롯한 초고수들이 복마 진인의 거대한 기운이 뇌까지 침범하는 것을 막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복마 진인은 적어도 일 년을 누워 있어야 한다. 거기다 일 년이 지나도 완전히 회복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단목장룡도 씁쓸한 표정으로 맹주의 맥을 짚어 본다.

과거 태상가주의 세맥이 얽힌 것을 풀어 주었던 경험으로 그를 치료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맥을 짚어 갈수록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들겠군.’

해우심법의 기운이 만능은 아니다.

터지고, 찢어지고, 꼬인 세맥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겨야 하겠군.’

주화입마에 빠졌다면, 정녕 돌이킬 수 없었다.

무림인들이 가장 겁내는 그것은 하늘이 돕는다고 하더라도 회복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했다. 마교에서도 주화입마에 빠졌던 무인을 여럿 본 적이 있는 단목장룡이었다.

“어떤가?”

단목장룡이 진맥을 하고 나니 약간이지만 맹주의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았다. 그렇기에 기대감이 잔뜩 드러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군요. 맹주님께서 스스로 털고 일어나셔야 합니다.”

물론, 약간의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뿐이다.

단목장룡이 내공을 쏟아붓는다고 하여 대단한 차이가 생겨나진 않는다. 단목장룡 또한 맹주의 일이 안타깝긴 했지만, 그는 맹주의 곁에만 붙어 있을 수 없었다.

“후우우, 그런가.”

“죄송합니다.”

“아닐세. 자네가 죄송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자네 덕에 맹주님의 얼굴이 잠시나마 나아진 것 같아서 다행일세. 맹주님께서도 자네가 온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로군.”

맹주는 지금 눈을 감은 채로 누워 있었다.

정신은 깨어 있는 것일까? 무림의의 말로는 정신은 깨어 있지만, 그것이 온전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자네랑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아서 말일세. 새벽에 은영전으로 찾아올 수 있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자네는 여기에 더 있어도 된다네. 맹주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좋네. 아마 맹주님께선 듣고 계실 것이야.”

“그래도 됩니까?”

단목장룡의 반문에, 은영전주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를 믿지 못하면 누굴 믿겠는가? 그럼 천천히 있다가 가게.”

은영전주가 빠져나가고.

방 안에는 맹주와 단목장룡만이 남게 되었다. 은영전주가 자신을 저리 신뢰할 줄은 몰랐기에 조금은 얼떨떨한 마음도 있었다.

‘조금 기분이 묘하긴 하군.’

뭐, 당연히 단목장룡은 맹주를 어떻게 할 생각이 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병상에 누운 무인에게 해코지를 하겠는가?

단목장룡은 잠시 맹주를 바라본다.

장사현에서 보았던 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정파 무림을 위해 쉬지 않고 나아가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무림맹에 와서 정파인들에게 실망한 경우가 많았지만, 복마 진인은 존경을 받을 만한 무인이었다.

그렇게 앉아서 맹주의 얼굴을 바라보던 단목장룡.

순식간의 그의 표정이 굳는다.

끼이이익…….

문이 열린다.

분명히 맹주의 방에는 호위가 있었다. 만약 이곳에 들어오려면 그들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심지어 은영전주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인은 호위들이 검문하지 않았다.

아니, 검문은커녕 여인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전방을 경계하고 있을 뿐이다. 넋이 나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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