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98화 (198/236)

198화 순식간에 퍼진 소문

제갈강량은 단목장룡을 설득하려 했다.

그가 전대 맹주로서 알아낸 것들은 쉬이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단목장룡의 재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 나이에 화경에 오른 것도 대단했는데, 사파의 오성 중 하나인 나찰마궁주에게도 승리했다. 그 재능이 어디 보통 재능이랴?

그렇지만 재능이라는 건 한계가 있다고 여겼다.

정파의 육왕이나 사파의 오성들이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다 사천자라 불리는 이들은 분명히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재능뿐 아니라 수많은 요소가 지금의 그들을 만들었다. 제갈강량은 단목장룡이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단목장룡은 제갈강량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의 정보를 처음 얻게 된 경위는 뇌왕의 장보도였다. 뇌공검법의 마지막 장엔 네 개의 하늘을 조심하라는 문장이 있었다. 대충 어떤 것인지는 감을 잡았으나 명확한 목적이 있는 단목장룡에겐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그러한 인식은 천자산과 천목산의 진법과 조우하고 바뀌었다.

단목장룡도 감탄할 만한 진법을 만들고, 천마신교조차 만들 수 없었던 강시를 만들었다. 이걸 비밀리에 계획하고 진행할 세력이라면 당연히 그 힘이 대단하리라.

단목장룡은 그들을 쉽게 보는 게 아니었다.

제갈강량의 ‘방법’에 동의하지 않을 뿐. 오히려 신녀문 쪽으로 자신을 끌어들이는 느낌에 의심이 가기도 했다. 그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 여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조건 그를 신뢰할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모든 것을 말해 주는 척하고 있지만…….

‘내게 제갈교아를 찾아 달라고 했을 때, 배후 세력이 어딘지 알고 있었음에도 전혀 말해 주지 않았지.’

그렇지만 단목장룡을 티를 내지 않았다.

그가 말해 준 정보들은 유용했다.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 주었다. 공공 대사나 신녀문의 존재를 이렇게 아는 것만으로도 단목장룡에겐 도움이 된다.

단목장룡이 말한다.

“공공 대사 말고 다른 사천자는 누굽니까?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으신 겁니까?”

“이건 전적으로 내 추측에 불과하네만, 현 마교주나 사마련주가 아닐까 한다네.”

“신녀문과 관계된 정파인은 공공 대사인데 왜 사파나 마교에선 현재의 인물이 관계가 되어 있다고 여기시는 겁니까?”

타당한 의문이다.

그렇지만 제갈강량은 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진 못한다. 애초에 공공 대사라는 것도 그의 추측일 뿐이었다.

“감… 이라 해야 할까?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이유를 나열하자면, 글쎄… 최근 두 세력의 행보가 과거와는 달라진 점을 꼽아야 할까? 전대 맹주로서 쌓아 온 안목으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천자에 속한 이가 누구냐가 아니라네.”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가 더 중요하겠지요.”

단목장룡에 대답에 제갈강량이 격하게 공감한다.

“그렇지. 그들은 초고수… 화경에 이른 고수의 수를 조절한 이들이네. 적어도 그들을 막으려면 화경의 고수가 두 명이서 똘똘 뭉쳐 다녀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가능하리라 보나? 육왕들은 자존심 하나로 죽고 사는 이들이라네.”

은근히 너도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니라는 시선이다.

단목장룡은 가볍게 도발을 무시한다.

“죄송합니다만, 미리 말씀드린 대로 저만의 길을 걷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게 어떤가.”

그 이후에도 제갈강량은 단목장룡을 설득하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결국 단목장룡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고, 제갈강량은 만약 마음이 바뀌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여지를 남겨 둔 채로 진가장에서 떠나갔다. 그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단목장룡은 제갈강량이 빠져나간 정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 언제든 제갈강량을 볼 수 있겠군.’

그는 자신이 머물 곳을 알려 주고 갔다.

제갈강량은 단목장룡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것이다.

* * *

무림맹주는 육왕의 모두를 소집했지만, 당연히 모두가 무림맹에 온 것은 아니다.

아미파의 장문인 여여신니(如如神尼)는 폐관에 들어간 상태였으며, 남궁세가의 가주 패왕(覇王) 남궁욱은 항주의 패자인 나찰마궁의 멸문으로 절강성의 치안이 극도로 악화되어 당분간 안휘성을 떠날 수 없다고 서신을 보내 왔다.

무림맹주 복마 진인.

소람사의 방장 대허 선사.

무당파의 장문인 대청 진인.

화산파의 장문인 적하 진인.

육왕 중 네 명이 무림맹에 모여 여러 차례 회동을 가졌다. 육왕이 모두 모인 것은 아니었지만, 과반 이상이 모였으니 이번에 확실히 결정을 내리고 통일해야 했다. 남궁세가는 무림맹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으며, 아미파 또한 그런 말이 없었지만 여여신니는 무림맹의 결정에 반기를 들 여인은 아니었다.

이대로 무림맹의 의견을 통합하여 밀고 나가는 게 최선이었지만, 사람의 생각은 모두 같지 않았다. 아무리 같은 정파라고 해도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대청 진인께서는 마교에 가진 원한이 없는 것 같소?”

화산의 장문인이 무당의 장문인을 빤히 바라본다.

현재 상황은 이러했다. 무림맹주와 화산파는 마교의 중원 진출에 적극적으로 반대를 표명한다. 그들이 중원에 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소림사의 대허 선사와 무당파의 대청 진인은 조금 더 여유로운 관점에서 마교를 판단했다.

“과거의 원한을 따지고 들자면 같은 정파끼리도 자유로울 수 없소이다.”

화산의 장문인 적하 진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정파와 마교와 같소? 정파 내부에서의 다툼은…….”

“먼 옛날엔 무당과 화산 또한 검을 맞댄 적이 있었소이다. 그렇지만 빈도는 화산에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소. 그것은 마교라 해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기준이외다. 높고 낮음과 크고 작음에 연연하다 보면 영원히 맞닿지 못할 것이외다.”

“대청 진인께서 말을 잘해 주셨소이다. 과거의 악연만을 고집하면 진정한 평화엔 닿을 수 없지요.”

소림사의 방장과 무당의 대청 진인은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이 진리라는 듯. 물론, 그들 또한 현실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교의 진출 범위를 감숙성으로 제한하고, 그곳에 무림맹의 주력 부대를 주둔시킴으로 그들의 돌발 행동을 막을 수 있겠지요.”

당연히 무림맹주 복마 진인은 머리가 아파 왔다.

지끈…….

“그건 대응책이 되지 못하오! 내가 알기로 마교엔 극마의 고수만 최소 셋이요. 거기다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인단 말이오. 그들이 나서면 맹의 주력은 순식간에 와해되고 말 것이오!”

적하 진인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방장과 대청 진인을 바라본다.

화산의 장문인으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리 용서를 하지 못해서 안달이란 말인가? 거기다 마교의 위험성을 너무 축소해서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적하 진인께서는 전쟁을 하자는 말씀이외까? 맹주께선 사마련과 마교의 회담에서 두 세력의 사이가 예사롭지 않다고 이야기하셨지요. 만약 정파가 마교에게 검을 들이댄다면 밑에선 사마련이 공세를 취할 것이외다. 그걸 감당할 방법이 있소이까?”

무당의 장문인 대청 진인의 말에 적하 진인이 순간 입을 다문다.

저 논리라면 적하 진인의 논리도 의미가 퇴색된다.

“그건…….”

그때 적하 진인을 구해 주는 것은 맹주였다.

“후우우우… 여러분께서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흑룡단의 조장이었던 단목 조장이 혈세귀막에 특사로 가서 그들과 협약을 맺었습니다. 만약 싸운다고 하더라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무림맹주.

첫 회동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몇 차례 회동이 진행되며 상황은 나아지긴커녕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그가 차를 꿀꺽꿀꺽 마신 후,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간다.

“사마련의 모두와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사파는 믿을 수 있고, 마교는 믿을 수 없다는 말이외까?”

무당파의 장문인 대청 진인이 무림맹주의 말을 반박하고 나선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무림맹주는 대청 진인이 지적하는 바를 단번에 파악했다. 하지만 일단은 모른 척을 했을 뿐이다.

“혈세귀막에 특사를 보내 그들과 협약을 맺었다고 하였지요. 혈세귀막 또한 정파 무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을 가졌지요. 그들의 전신은 혈교이외다. 마교는 믿지 못하지만 혈교는 믿을 수 있다? 어불성설이 아니외까?”

“어허! 마교와 혈세귀막은 경우가 다르지 않소이까!”

적하 진인이 발끈하고 나섰고, 무림맹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처음엔 네 명만 온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차라리 한 명이 더 와서 확실하게 이 회동을 끝내 줬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결론이든 말이다.

“오늘은 그만 회동을 멈추는 게 좋겠소이다.”

소림의 방장이 엄중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의 목소리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어느 정도로 목소리를 높이게 되면 대허 선사가 회동을 중지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교도 품어 주자고 주장하는 그였으니, 정파 내부의 감정싸움이 악화되는 것 또한 결코 반기지 않는다.

대청 진인과 적하 진인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지금 당장 대립을 하더라도, 결국 신뢰할 수 있는 건 여기 있는 이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림맹주는 달랐다.

그는 또다시 회동이 미뤄졌다는 것에 극한의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 최종 결정권자로서의 부담감과 또 자료를 준비하고 저들을 납득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이 회동이 끝나더라도 또 마교와 사마련과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만약 그가 책임감이 없었다면 이런 것에 고통을 받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였다.

‘언제까지… 대체 언제까지 회동해야 한단 말인가. 그것 말고도 또… 또……!’

그리고…….

이제까지 천천히 쌓이고 쌓여 왔던 무언가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크으으윽-!”

빠직!

그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다. 맹주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 귀에선 이명이 들려오고, 머릿속은 하얗게 변한다.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단지, 처음으로 느껴 보는 고통에 발작하듯 몸을 떨 뿐이었다.

“맹주?”

“왜 그러시오!”

“아미타불!”

대허 선사는 물론이고 각 문파의 장문인들 또한 벌떡 일어섰다.

대표격인 대허 선사가 손가락을 뻗어 그의 맥을 짚는다. 내기가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내상 같은 것은 아니다. 단지, 화기(火氣)가 머릿속으로 침범하고 있을 뿐. 이대로 두게 된다면…….

“두 분께서 도와주셔야 할 것 같소이다!”

오늘 처음으로 대허 선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의 말에는 긴박함이 담겨 있었다.

“이대로 두면 맹주께선 광인(狂人)이 될 것이외다. 상부로 치밀어 오르는 기운을 억눌러야 하오!”

“그럼 맹주께서 내상을 입을 수도 있는데…….”

대허 선사의 판단은 빨랐다.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보다는 내상이 낫소이다. 두 분께서 도와주셔야 하외다.”

“알겠소!”

“그러하리다.”

소림의 방장과 구파일방의 장문인.

정파의 절대 고수 세 명이 맹주의 치밀어 오르는 화기를 막기 위해 합심했다.

* * *

“소교주니이임!”

적의 장삼을 걸친 여인이 한 사내에게 달려왔다. 그녀는 마도육문 중 하나인 약문의 소문주 탕음선녀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환희가 가득 차 있었다.

“소식을 들으셨나요?”

“그래.”

탕음선녀가 들은 것을 소교주가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무림맹주 복마 진인이 쓰러졌다. 그 소식은 당연히 특급 비밀 중 하나였지만, 오랜 세월 무림맹에 간자를 투입하던 마교에선 그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약문이 큰일을 해 주었다. 어떤 마도육문도 해내지 못한 성과야.”

“감사하옵니다. 평생 소교주님을 모시겠사옵니다.”

소교주의 칭찬에 다시 한번 충성을 맹세하는 탕음선녀. 그녀의 절을 받으며 소교주가 미소를 머금었다. 십 년이 넘은 계획. 과거의 마교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림을 침공한다는 그 계획은 맹주 복마 진인을 제거함으로써 진정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물론, 복마 진인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꽤 오랜 시간 요양할 필요가 있을 뿐. 병상에 누운 이가 무림맹주의 자리를 유지할 순 없으리라.

“일살.”

“예, 주군.”

소교주의 말에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무인이 나타난다.

“이 소문을 널리 퍼트려라. 정파인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말이야.”

이대로 둔다면 맹주가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끌려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교주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존명.”

이제 중원 전체가 무림맹주의 사건을 알게 되리라.

“이리 와라. 상을 내려 주마.”

“어머, 소교주니임…….”

기분이 좋은 소교주.

탕음선녀가 쑥스러운 척을 하며 그에게 흐물흐물 다가갔다.

* * *

어느 중원의 객잔.

한 젊은 사내는 잘 삶긴 닭을 뜯으며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고기라는 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자연의 산물이다. 그런 생각에 깨달음을 얻은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사내가 식사에 열중하고 있을 때.

금방 객잔에 들어온 두 사내가 은밀하게 대화를 나눈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당연히 들었지. 무림맹주께서 병환으로 쓰러졌다면서?”

“예끼, 작게 말하게. 이건 사파인들이 알아서는 안 돼! 그놈들이라면 이때다 싶어서 쳐들어올 것이 분명하네!”

“헙! 그렇군.”

중년 사내의 타박에 마주 앉은 이가 진중하게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인다. 저들은 이제 입을 맞대려는 듯이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고,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손으로 닭고기를 뜯던 사내가 툭 손을 내린다. 그의 시선이 객잔 전체를 훑는다.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비밀이랍시고 나누고 있군.’

객잔에 들어온 모든 이들이 자기네들끼리 아는 비밀처럼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모양새가 웃겼다.

‘그건 그렇고, 맹주가 병환으로 쓰러졌다고?’

잠시 고민하던 사내.

그가 다시금 닭고기를 뜯기 시작한다.

‘일단 다 먹고 생각해야겠군.’

잘 익은 닭고기가 배 속으로 들어오자 그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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