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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96화 (196/236)

196화 찾아온 손님

소림사의 방장과 무림맹주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눈다.

“방장께서는 마교의 중원 진출을 지켜보자는 입장이시군요.”

“그렇소이다.”

방장의 대답에 맹주가 한숨을 내쉰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진 알 것 같았다. 적의를 드러내고 칼을 뽑는 것보다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 생각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해결법이 될 수 있을까? 마교는 언젠간 숨겨진 발톱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하면 돌이킬 수 없다.

“마교는 믿을 수 없습니다.”

“본디 인간이란 지킬 것이 있을 때, 소극적으로 변하는 법이외다. 이제까지 마교에선 중원에 땅을 가져 본 적이 없소. 그들의 땅을 인정해 준다면 분명히 마교도 과거처럼 행동하진 못할 것이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과거엔 그러한 이유로 정파 무림이 마교의 침공을 막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선택으로 인해 정파 무림이 진정으로 마교에 잡아먹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외다.”

“그건 아무리 선사님의 말씀이라도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방장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장담하오.”

“…….”

머리가 또 지끈거린다. 맹주는 다시금 차를 홀짝였다.

“일단 이 이야기는 방장님과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도 고려해야 하겠지요.”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여기에선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진 않았다. 대허 선사도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다른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을 뿐이다.

“마교나 사파와의 전쟁은 무림인들뿐 아니라 백성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외다. 만약 이번에 전쟁이 일어나면 정파 무림은 마교뿐 아니라 사파와도 싸워야 할 것이오. 그 부분을 고려해야 할 것이외다.”

대허 선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맹주의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마교의 진출을 허가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빌미로 마교는 무력행사를 할 수도 있었다. 남쪽으로는 사파에서 또 행동을 취할 것이다.

정파의 입장이 하나로 뭉쳐졌다면 모를까, 지금 맹주와 소림사의 방장조차도 이렇게 의견이 충돌하고 있었으니…….

차를 마시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 * *

“오랜만이군.”

“제갈 가주님.”

밤중에 진가장으로 찾아온 손님. 그것은 전대 맹주인 제갈강량이었다. 그는 맹에서 봤을 때보다 안색이 확연히 좋아져 있었다. 정치판의 중심인 무림맹을 떠나 강호행을 하며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무림맹에선 그에게 물어보려 했던 것이 많았다. 전대 맹주라면 소림사에서 말한 이의 정체를 알고 있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제갈교아를 구출했던 것을 털어놓으려 했었다. 그러나 갑자기 진가장에 찾아오는 것을 보니 다시금 의심이 생겨난다.

마치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찾아온 것 같지 않은가?

“제가 진가장에 있다는 걸 알고 찾아오신 겁니까?”

제갈강량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다.

“지나가다 이야기를 들었다네. 진가장에 새로운 주인이 생겼다고 말이야. 장천이라는 이름은 다른 곳에서 몇 번 들어 보아서 말이야. 확신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의심은 했었지.”

아리송한 대답이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제갈강량은 전대의 무림맹주였지만, 한 명의 수행원도 없었다. 뭐, 홀로 강호행을 하는데 굳이 수행원이 있을 필요는 없긴 했지만 말이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차를 마신다.

단목장룡은 차를 잘 즐기지 않았지만, 왕립이 그에게 잘 보이겠답시고 유명한 찻잎이나 고기 등을 바치곤 했다. 난주에서 제일가는 상인이라 그런지 상등품 중에서도 최고 등급이었다. 제갈강량은 당연히 그것을 알아보았다.

“동정벽라춘(洞庭碧螺春). 최상등품이로군. 차에 취미가 생긴 건가?”

차의 이름까지는 몰랐지만, 제갈강량은 향을 맡더니 바로 그것을 알아보았다. 정파의 높으신 분들의 담화에서 차는 빠지지 않는 물건이었고, 제갈세가는 중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이었다. 그곳의 가주였으니 차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단목장룡이 그것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별것 아니라고 선물을 받았는데, 좋은 물건인가 보군요.”

“그래? 좋은 인연을 뒀군. 아니지. 자네와 연을 맺을 수 있다면 이런 선물 정도는 약과에 불과할 터이니… 하하.”

은근슬쩍 단목장룡을 칭찬하는 제갈강량이다.

단목장룡은 그와 두루뭉술한 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차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고, 제갈강량의 눈을 응시한다.

“이곳에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찾아오신 듯한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 지나가다가…….”

“강호행을 하시다가 문득 제가 있는 장원에 들를 확률은 거의 없겠지요.”

“그건 그러하지.”

선선히 인정하는 제갈강량이다.

“자네는 확실히 중원의 평범한 무인들과는 다르군. 명성을 탐하는 것 같다가도…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하지. 사실 자네가 무림맹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네. 보통 그런 경우엔 더 높은 직위로 올라가기 마련이니까. 솔직히 자네가 차기 부맹주에 오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네.”

“현 맹주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핫핫, 늙은이들의 생각은 다 비슷한 건가? 아무튼, 내가 맹주직에 있었다면 자네를 절대 놓치지 않았을 것이야. 이제까지 이뤄 온 것들만 해도 자네는 영웅이 될 자질을 충분히 보여 줬거든. 전쟁이 일어나면 영웅의 존재가 필요한 법이지.”

“전 중원의 영웅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보통 영웅들이 그렇게 말한다네. 스스로 영웅이 아니라 하지만 어느샌가 영웅이 되어 있지.”

“그렇습니까.”

단목장룡은 영웅이라는 말에 전혀 감흥이 없었다. 그 또한 사람이기에 다른 누군가의 존경과 선망을 싫어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서문이 너무 길었지? 자네를 이렇게 찾아온 것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라네.”

“그건 궁금하군요.”

단목장룡이 관심을 보이자 제갈강량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이런 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현 맹주 복마진인도 마찬가지지만 제갈강량 또한 숱한 정치를 이겨 내고 정점에 올랐던 인물이다. 무림맹의 맹주라면 공명정대하고 의협심이 깊다고 알고 있겠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맹주가 될 순 없었다. 그러한 자리였다.

단목장룡은 분명히 같은 편에 서 있다면 든든하기 그지없겠지만, 상대의 입장에선 껄끄럽기 그지없는 패였다. 웬만한 정치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인물. 상대가 무림맹의 장로라도 비무첩을 내던지는 용기. 그것은 정파 무림의 통제와 규칙 속에서 성장한 무인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방법이었다.

“자네에게 내 딸아이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지?”

“예.”

“사실 난 그 일의 범인을 알고 있다네.”

단목장룡의 눈썹이 꿈틀한다.

알고 있었다? 천자산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진법을 만든 놈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 단목장룡의 표정에 제갈강량의 얼굴에 미안한 감정이 깃든다.

“미안하네. 당시엔 말할 수 없던 사정이 있었다네. 남들은 내가 전대 맹주이며 제갈세가의 가주이니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자네도 알지 않나?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임을 말일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굳이 제게 그런 부탁을 했는지는 궁금하군요.”

“자네는 천하제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뜬금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육왕이니 오성이니 정사를 통틀어 최강의 무인들을 가리키는 명칭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가 최고인지 묻는다면 아마 여러 이름이 나올 것이다. 천하제일인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목장룡은 자신이 생각하는 천하제일인을 말한다.

“마교의 교주, 천마라 생각합니다.”

제갈강량은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 또한 천하제일인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겠지. 그의 아들인 소교주가 극마에 올랐다지? 그렇다면 천마라 불리는 그의 경지도 예상할 수 있지.”

“제갈 가주께서는 누구를 천하제일인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건…….”

잠시 뜸을 들이던 제갈강량.

“사실 나도 모른다네.”

“…….”

말장난하는 건가? 제갈세가의 출신이라면 언어유희는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장난을 치고자 이런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으리라.

“제갈교아 소저를 납치한 범인과 천하제일인이 관련이 있는 겁니까?”

제갈강량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역시 자네는 똑똑하군.”

“이런 대답이 나오게끔 의도하신 것 아닙니까?”

“하하, 내가 그렇게 똑똑하진 않다네. 단지… 자네의 반응을 보고 싶었어.”

솔직히 지금 단목장룡은 제갈강량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의심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을 뿐. 만약 제갈교아를 납치한 사람이 천하제일이라는 칭호에 가깝다면, 단목장룡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진법을 보고 놀라긴 했었지.’

만약 단목장룡이 당시에 천자산에 설치된 진법의 주인과 마주했다면?

그는 과연 살아 있을 수 있을까?

당시엔 화경의 경지에 올라서지 못했었다.

“교아를 납치한 것은 능히 천하제일인이라 불릴 사람이 행한 것이라네. 그리고… 교아는 그자의 뜻에 반항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네.”

자의로 강시가 되려 했다?

과거 용봉지회에서 제갈교아를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여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거기다 그녀를 직접 구출했지 않은가? 또한, 무공도 알려 주었으며 기억을 되찾길 기다려 주었다.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지만 말이다.

‘설마…….’

단목장룡의 표정 변화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 분위기는 확실히 어두워져 있었다. 정치판에서 평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갈강량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미안함이 더욱 깊어졌다.

“미안하네. 자네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자네에게 그 일을 맡겼다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약 제가 제갈 소저를 구출해 냈다면…….”

“아마 성공하지 못했겠지.”

사실 단목장룡은 제갈교아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제갈강량은 그것을 아예 모르고 있는 듯했다. 만약 천하제일인으로 거론되는 그 사람과 연관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진 않으리라. 아니면 혹시… 자신을 떠보기 위해 찾아온 것일 수도 있었다.

“이제 와 굳이 밝힐 일은 아니로군요.”

“그렇지.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지. 사실 끝까지 묻어 두려 했다네. 그래서 무림맹에서 떠난 것이고… 평생 강호를 여정하다 마음 편히 흙에 묻히려 했었지.”

“그런데 왜 마음이 바뀌신 겁니까?”

“별다른 이유는 아니라네. 장천이라는 이름을 듣고, 궁금해서 진가장에 찾아왔을 뿐이야. 하늘이 자네에게 모든 것을 밝힐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네.”

단목장룡은 제갈강량의 눈빛에 담긴 진심을 보았다.

물론, 그것만으로 진위를 파악할 순 없었지만.

“그럼 제게 모든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자네는 내게 분노하지 않나? 다른 이들이었다면… 아니, 나였다면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말을 듣고 당연히 화를 냈을 것이네.”

“화를 내는 것보단 진상을 듣는 것이 이로우니까요. 굳이 몸이 좋지 않으신 가주님을 핍박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래도 모든 것을 밝히기 위해 직접 찾아오셨지 않습니까?”

“허허허…….”

제갈강량의 몸은 확실히 약화되어 있었다.

단목장룡은 그것을 이미 파악한 것이다. 당최 어떤 방법으로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구나.’

제갈강량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는…….

“자네는… 네 개의 하늘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

“예.”

단목장룡의 단호한 대답에 제갈강량이 눈을 빛냈다.

“그래? 어디서 들은 건가?”

“그건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군요.”

단목장룡은 제갈강량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없었다. 그것을 이해한다는 듯이 제갈강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자네의 입장을 이해한다네.”

“그것과 제갈 소저의 납치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겁니까?”

“자네는 신녀문(神女門)이라는 곳을 알고 있나?”

단목장룡은 이미 제갈교아에게 들었던 내용이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신녀문의 계승자라고 소개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밝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천마신교의 신녀인 영령과도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군요.”

“신녀문은 아주 오랜 세월 중원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문파지. 네 개의 하늘, 사천자(四天子)는 그들과 연관이 아주 깊다네.”

“그러니까 네 개의 하늘이라는 이들이 신녀문의 소속이라는 겁니까?”

하지만 제갈강량은 단목장룡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닐세.”

사천자는 신녀문의 소속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천자는 각자 다른 세력에 속해 있다네. 하나, 나 또한 그들의 면면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네. 제갈세가에서… 아니, 만월(滿月)에서는 사내들의 힘보다는 여인들의 힘이 더욱 강하다네.”

만월은 알게 모르게 중원 무림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용봉지회에서 도박판을 벌여 돈을 쓸어 담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제갈 가주께선 그 사천자가 누군지 알고 있으신 겁니까?”

“사실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있다네.”

영 신뢰가 가는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들어 볼 가치는 충분했다. 사천자라는 이들이 누군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단목장룡의 눈을 응시하던 제갈강량.

그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첫째로 의심되는 인물은… 무림맹의 초대 맹주인 공공 대사(空空大師)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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