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89화 (189/236)

189화 전음을 받다

“그게 사실인가?”

“예, 그리고…….”

단목장룡의 말에 무림맹주의 표정이 진중해진다.

사실 현 무림맹주 복마진인은 사마련주를 처음 보는 것이다. 전대 무림맹주와 사마련주가 마지막으로 회담을 가졌던 것은 팔 년 전. 당시에도 사마련주는 사파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이긴 했지만, 사파제일인으로 불리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암천회주의 존재 때문이었다.

나찰마궁주나 혈세귀막주가 있었지만, 암천회주는 후기지수 시절부터 중원을 뒤흔들었던 고수다. 해남도의 지배자. 쾌락과 환락의 주인. 그를 지칭하는 이름은 많았지만, 일각에서는 그를 사파제일인으로 칭하기도 했다.

현재 무당파의 장문인직에 오른 대청진인(大靑眞人)마저 과거엔 암천회주에게 패배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대청진인이 직접 나서 소문을 잠식시켰겠지만, 그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진실로 받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런 암천회주가 사마련주에게 패배했다?

높은 것이 있다면 낮은 것도 있다지만, 오늘 만나 본 사마련주는 너무도 쌩쌩했다. 만약 비등한 경지였다면 그 또한 크게 내상을 입었을 터. 물론, 고수라면 안색을 숨기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아무리 소교주와 제가 마지막 순간에 힘을 줄였다고 해도, 그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것을 막아 냈습니다.”

상대의 힘을 가장 손쉽게 확인하는 방법.

공격해 보면 된다. 어떻게 그것을 막는지. 피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흘려 냈는지. 그런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의 움직임은 남달랐지.”

찰나에 불과했지만, 무림맹주가 반응하기도 전에 사마련주는 행동에 나섰다.

그것으로 모든 것을 판가름할 순 없겠지만 단적으로 그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를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흐음…….”

무림맹주가 침음성을 흘린다.

전쟁이란 한 명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존재가 가지는 의미는 아주 크다. 만약 사마련주가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면, 정사대전은 쉽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문제는 사파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저 신강에서 오래도록 힘을 키워 온 마교도 있었다.

사파와 마교가 싸워 준다면 좋겠지만… 그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의 승패는 아마 곧 무림에 알려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비밀로 해 주십시오.”

“알겠네.”

맹주가 침묵한다.

상황이 생각보다 좋진 않았다. 사마련주는 그 제멋대로인 사파를 이끌었다는 것만으로도 역량이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공 또한 그리 고강하다면…….

‘과연 내가 그를 감당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사마련주가 사파의 지존이라면.

무림맹주는 정파의 지존이다.

사마련주의 상대는 맹주가 돼야 한다. 다른 육왕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합공을 하는 것도 애매하다. 정파의 무인들은 협의를 추구하며, 그 자존심이 대단히 높다. 아무리 고강한 상대라도 패배하면 패배했지 ‘비겁하게’ 합공을 하진 않으리라.

물론, 정파가 궤멸 직전으로 간다면 처음 무림맹을 만들었을 당시처럼 힘을 합하겠지만… 그 과정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겠는가? 무조건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는 정파 무림을 이끄는 맹주로서 최악의 최악까지 상정해야 한다.

심각하게 고민하던 무림맹주.

그가 단목장룡의 눈을 마주한다.

“그런데 자네가 탈맹을 해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만약 사마련주가 그렇게 고강하다면 흑룡단의 조장으로서… 아니, 그의 실력이라면 단주급의 직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굳이 탈맹하여 그가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전 마교의 몰락을 바랍니다.”

“허허…….”

쉬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무림의 그 어떤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 꿈이다. 언제나 중원 무림을 위협하던 마교. 그들에게 무공을 약탈당하고 소중한 제자들을 잃었지만, 끝끝내 이루지 못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탈맹은 그걸 위한 각오란 말인가……?”

“각오… 라기보다는 전략적인 선택입니다. 마교와 사파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전략적 선택이라.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단호한 대답이었다.

단목장룡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은영전주도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혈세귀막의 특사 일도 잘해 냈으며, 나찰마궁주까지 죽였다. 그것만으로 그의 능력은 증명되었다.

“자네를 적극적으로 돕고 싶네만, 자네가 말했다시피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네. 그들이 만약 정말 손을 잡았다면…….”

“예, 괜찮습니다. 맹주님께선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켜 주시는 것이 절 도와주는 겁니다.”

그것만으로 도와준다고 할 수 있을까?

맹주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라고 호기롭게 중원의 악을 처단하겠다고 공표하고 사파와 마교를 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는 정파 무림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맹주라면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 시원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부탁할 일이 있다면 말이라도 해 주게. 그것을 모두 들어줄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말일세.”

그게 지금 맹주로서의 최선이었다.

일단 그가 회담을 받아들인 이유는 사마련과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였다. 소림사의 방장처럼 마교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완전한 공존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정파 무림의 최고수들인 육왕과 모여 이야기라도 해 보아야 한다.

요즘 상황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서 그들을 소집하진 못했지만, 회담이 끝나는 대로 그들을 무림맹에 초대할 생각이었다. 물론, 육왕 중 몇 명이 모일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아,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편하게 말하게.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라도 그걸 다른 이들에게 발설하지 않을 터이니.”

“회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사마련주가 회담에 참석하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거대 세력의 수장끼리 만나는 자리였다. 단목장룡이 그곳에서 발언권을 얻기 힘들었다. 거기다 지금 그는 무림맹에서 탈맹한 상태였다.

무림맹주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 부탁은 충분히 들어줄 수 있었다.

“알겠네. 그럼 회담 후에 보도록 하지.”

“그리고 만약 회담장에서 그들이 수작을 부린다면 대비할 수 있도록 가까이서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탈맹을 했다지만, 무림맹주가 위협에 처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단목장룡은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회담 장소인 청룡루 근처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소림사에 방문하여 대허 선사에게 평화협정을 제안한 것을 보면, 회담에서 수작을 부리진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 * *

무림맹, 사마련 그리고 마교.

거대 세력 간의 회담은 열흘에 걸쳐 진행된다. 공식적으로 세 번의 회담이 계획되어 있지만, 각 세력의 수장이 요청하면 비공식 회담을 열 수 있었다.

‘이제 세 번째인가.’

공식적으로는 두 번째 회담이고, 비공식적으로는 첫 번째 회담이었다.

단목장룡이 맹주에게 듣기로 사마련주는 단목장룡이 참석하지 않음에 아쉬워했다고 한다. 당연히 단목장룡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예상대로 흘러가는군.’

첫 회담에서 마교는 중원 진출을 선언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공포와 파괴로 중원을 침략하지 않겠다고도 선언했다. 당연히 신뢰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맹주는 양씨세가를 비롯한 정파의 세력들을 마교의 교도들이 비열하게 집어삼키려 했던 것을 들어 그것에 반대했다. 그런 행동을 해 놓고 어찌 신뢰를 바란단 말인가? 마교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겠지만, 중원에 진출하려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반대를 표명했다.

마교 측에서는 어이없게도 과도한 충성심을 가진 수하들이 벌인 사건이라 변명했다. 주모자들은 마교 내부에서 처형했으며, 다음번에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며 말했다.

거기서 문제인 점은 사마련에서 마교의 중원 진출을 받아들였단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사마련이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니 어려운 상황이다.

다행인 점은 무림맹주가 도사답지 않게 정치력이 있다는 점일까?

사실 맹주라는 직책은 아무나 맡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단목장룡이 처음 무림맹에 가서 느꼈던 점은, 고이고 고였다는 점이었다. 맹에 도착하자마자 각 전투단의 간부들이 나와 그를 회유하려 했었으니까.

구파일방, 오대세가 그리고 중소 문파의 연합까지.

그들은 서로 협력하지만 동시에 경쟁하는 관계였다. 무림맹주에 오르려면 사실 ‘세속적이다’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온갖 더러운 꼴을 보고 참아 내야 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전대 맹주 제갈강량은 제갈세가 출신이라 그런 것에 능통했다고 하지만, 현 무림맹주 복마진인은 도가 계열인 공동파 출신이다. 대부분 도인은 정치 같은 것에 학을 뗀다. 그런 것에 시간을 허비할 시간에 명상이라도 한 시진 더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맹주는 무공도 고강하지만, 무림맹을 더 진보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그럴 능력도 있었다.

물론, 그 능력이 사마련주나 소교주에게도 통할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다행히도 회담이 시작되기 전 소교주가 먼저 시비를 걸어 주었고, 단목장룡이 약간이나마 앞서 있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맹주의 행동에 힘이 실렸다는 점이다.

‘오늘은 나찰마궁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했던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히 단목장룡의 잘못은 없다.

선전포고를 했기에 직접 가서 그를 처단했을 뿐이다. 사실 말은 쉬웠지만, 누구도 실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또 문제가 된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지만, 문제로 삼으면 문제가 된다.

역설적인 말 같지만 현 상황에 딱 들어맞았다.

분명히 사마련주도 일을 자초한 것은 나찰마궁주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가 문제였다. 단목세가는 피해가 전무한데, 오히려 나찰마궁이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맹주가 잘 처리하겠다고 약조했지만, 그리 쉽게 풀릴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정치라…….’

어찌 보면 기괴한 상황이다.

매번 말보다는 주먹과 검이 앞서던 이들이 모여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끝에는 분명 파국이 기다리고 있겠지.’

단목장룡은 마교를 믿지 않는다.

그들 속에서 자라 왔기에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거짓된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애초에 평화를 원했다면 중원에 진출하려 하지도 않았으리라. 방식은 바뀌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무림일통.’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단지, 단목장룡은 마교의 몰락을 바랄 뿐이다.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의 몸속에 연옥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완성되면 선택의 폭이 상당히 넓어지리라.

햇볕을 피해 청룡루 옆의 나무에 등을 기댄다.

아마 이번 회담은 꽤 길어지리라.

- 왜 회담에 참석하지 않고, 매번 밖에서 기다리는 겁니까?

전음이 들려온다.

꽤 먼 거리였는데 이렇듯 선명하게 전음이 들려오는 것을 보니, 기를 제어하는 수준이 상당했다.

단목장룡의 시선이 청룡루의 삼 층으로 향한다.

작은 창틈으로 가면을 쓴 사내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뭐지?’

그 가면을 확인하고 나서 단목장룡의 머릿속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사마공이라고 했던가? 알려지기로는 사마련주의 아들이라 했지만, 그가 마교도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저렇듯 친근하게 전음을 보내오니 의아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친근하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지?

전음에는 감정이 깃들지 못한다. 아니, 사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지 전음이라는 것에 내력의 효율을 위해 감정을 담지 않는 것이다. 높낮이를 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실제 말보다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일단 단목장룡은 대답하기로 했다.

- 전 무림맹의 소속이 아닙니다. 그리고 수장분들의 회담에 제가 참석할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군요.

- 참가할 자격은 충분하지 않나요?

- 사마 소협께서도 사마련주님의 자제분이지만 회담에 참석하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잠시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가면이기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이지 않았다.

단목장룡은 이번 기회에 그에게 정보를 얻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화하다 보면 무엇이든 발견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에게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 근데 그 팔찌.

“……?”

-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

단목장룡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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