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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87화 (187/236)

187화 떠오르는 기억

마교의 소교주 사도명.

그는 태어날 때부터 절대자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그의 아버지는 중원에 두려움을 안겨 주는 천마신교의 교주였으며, 어머니는 마교팔문(魔道八門) 중 하나인 독문(毒門)의 장녀였다.

타고난 혈통이라는 게 있었다.

어떤 이들은 내공심법을 익히기 위해 기(氣)의 존재를 자각하는 데에만 몇 년이 소요되곤 한다. 사도명이 처음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고 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힘을 가졌는지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이틀에 불과했다.

천마신교의 교도들은 모두 사도명을 칭송했다.

그의 재능은 현 교주인 사군협보다 못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를 느끼는 데 걸리는 시간은 더 빨랐다고 봐야 했다. 거기다 그의 곁에는 어머니 단희궁이 있었다. 독문에선 인간을 죽이는 독도 개발했지만, 인간을 이롭게 하는 약물들도 개발했다.

무공을 익히는 그 순간부터 벌모세수(伐毛洗髓)를 받아 막힌 혈도가 없었으며, 근골 또한 교정되었다. 벌모세수에도 급이 나뉘는 법이었다. 천마신교의 교주가 직접 행한 벌모세수를 받은 사도명은 더욱 높이 비상할 준비를 마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존(至尊).

타고난 재능과 천마신교의 전폭적인 지원은 그를 더욱 높이 비상하게 만들었다. 정파의 남궁일몽이 열세 살이 되던 해에 검기를 다루었다고 했던가? 그는 고작 열한 살에 검기를 다룰 수 있었다.

물론, 대기만성이라는 것도 있다.

아주 어릴 땐 천재나 신동이라 불렸던 이들이 성인이 되고부터는 범재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오히려 어린 시절 많은 이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 역효과가 나서 성장이 정체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사도명은 달랐다.

그는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그는 교주 사군협을 우러러보았다.

강인한 육신. 도검(刀劍)도 훼손하지 못하는 그 강인한 육신을 보며 경외심이 생겼다. 언젠간 꼭 그와 동등하게 서리라. 꼭 교주의 자리에 올라 교도들을 지휘하리라. 그런 생각으로 부단히 노력했다. 그 독한 성정의 독문의 장녀, 그러니까 사도명의 어미가 불안하게 생각할 정도로.

사도명은 타고난 재능으로 노력했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 교주를 포함한 모든 천마신교의 교도는, 그가 새로운 천마가 되리라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당연하고 당연한 일. 절대 무너지지 않을 절대 명제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절대’를 함부로 논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잘못 안 것이 아니더냐?’

사도명은 처음 그 소식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었다.

사 공자 사공천. 그와는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었다. 다만,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음흉한 구석이 있어 딱히 예뻐하진 않았다. 아니, 애초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형제라고 할지라도 어미가 다르다. 사도명은 제왕이었다. 그들의 형제들은 그를 빛내 주는 부속품에 불과하다.

분명히 그러했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뜻대로만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일각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

천마신교에선 다섯 살이 되는 해에 내공심법을 배우게 된다. 그 전에 내공심법을 익히면 더 좋지 않으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자아를 갖추지 못한 상태로 무공을 익히게 되면 역효과가 난다.

어느 정도 자아를 확립하고, 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다섯 살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최소한의 조건이란 말이다.

오히려 열 살의 나이에 내공심법을 익힌다면,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더 빠르게 기를 느낄 수도 있었다. 오 년의 차이지만 그 세월 동안 세상을 오감으로 느끼며 육신의 지각 능력이 발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조건이었다.

사도명의 동생은 이제 막 다섯 살이 되었다.

열 살이 된 해에 내공심법을 배우게 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분명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아무리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었다.

사도명과 같은 조건에서 내공심법을 익혔다. 이제까지 마교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던 어떤 이들도 이틀 이전에 기를 느끼진 못했다. 그 전까지는 전혀 그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는 것이 직계들의 규율이다.

그런데 이틀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한 시진도 아니고.

‘일각이라고?’

사도명은 짜증이 났다.

괜한 헛소리로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수하 놈을 호통치고 싶었다. 하지만 사소한 일에 흥분하면 지존이 되지 못한다. 언제든지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쯧, 가 보자.’

철판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권법을 수련하던 사도명. 그가 손을 훅훅 털고, 교주 연공실로 향했다. 교주의 자식들은 모두 그곳에서 처음 내공심법을 배우게 된다.

긴장? 걱정?

사실 그런 감정은 아니었다.

그냥 믿지 않았을 뿐이다. 누가 그런 허무맹랑한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물론 처음 기를 느끼는 시간이 짧았다고 하여, 무조건 천하제일인이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무공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아예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도명은 교주조차 감탄할 정도로 빨리 기를 느끼고 단전에 내공을 쌓았다.

그게 이틀이었다.

이제 막 무공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되고 배우기 시작하여 기를 느끼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사도명은 ‘천재’라 불렸었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교주의 연공실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그곳은 조용했다.

‘거짓이로군. 만약 그 말이 사실이었다면 난리가 났겠지.’

웃음이 나온다.

오랜만에 교주님께 가르침을 청하고, 이제까지의 성장을 확인받기로 했다. 그는 재능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노력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식의 성장에 기꺼워할 것이며, 그런 아버지의 칭찬에 또 성장할 동력을 얻으리라.

‘교주님, 첫째이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꽤 오랜 시간 대답이 없었다.

안에 안 계신 건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들어오너라.’

연공실의 높은 단상에는 천마신교의 교주가 위엄을 드러내며 앉아 있었다. 그 앞의 작은 단상엔 작은 꼬마가 흔들림 없는 자세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눈을 감고 명상하고 있다고 하여 심법을 운용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아직 사도명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웃기지도 않은 소리였으니까. 일각이라니 누가 믿을 수 있는가?

‘멈춰라.’

작은 단상과 사도명의 거리가 좁혀지자 교주의 명령이 떨어진다.

사도명은 교주의 명령에 복종하여 그 자리에 곧장 멈춰 섰다.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

평소 교주는 과묵했으며, 무뚝뚝했다. 그의 말에는 감정이 거의 깃들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사도명은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했다. 절대자의 풍모가 느껴졌으니까. 언젠가 그 또한 그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왠지… 들뜬 듯한 목소리였다.

착각인가?

사도명은 생각을 지워 내고 말한다.

‘소천단주가 넷째가 일각 만에 기를 느꼈다고 해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겠지요. 사실은 그걸 확인하는 핑계로 교주님께 이제까지의 성과를 평가받고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왔습니다.’

성장할 때마다 교주는 따스한 눈길을 보내 준다.

평소 감정이 없던 그의 눈빛에 기특함이 새겨질 때면, 사도명은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사실 이곳에 직접 찾아온 것도, 그의 말처럼 넷째의 일이 궁금한 것도 있지만 그의 칭찬을 받기 위한 이유가 컸다.

‘네 말대로 사실이 아니다.’

‘역시 그럴 줄…….’

그런데 교주의 표정이 이상하다.

들뜬 듯한? 그의 눈빛에는 희열이 깃들어 있었다. 왜 아버지는 저런 얼굴을 하고 계시는가? 사도명은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넷째는 일다경이 지나기 전에 기를 느꼈다.’

‘……?’

‘일각은 넷째가 기를 운용하게 된 시간이다.’

교주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도명. 그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일다경 만에 기를 느끼고, 일각 안에 기를 운용하게 됐다고? 그럼 지금 넷째가 하고 있는 건 뭐란 말인가? 기를 느끼기 위해서 명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설마 운기조식이라도 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게 말이…….

‘놀랐다. 아니… 경악했다.’

‘……!’

‘자리가 위태롭겠구나.’

평범한 아비였다면.

이 자리에서 첫째에게 응원을 해 줬으리라. 넷째의 재능을 더 지켜보자며 첫째를 달래 주었으리라. 그런데 교주는 다르다.

이곳은 천마신교.

강자를 숭배하는 곳.

사실 사도명이 가진 일 공자라는 자리는 그가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허울뿐인 자리였다. 약자는 도태되고 잡아먹힌다. 살기 위해선 강해지는 수밖에 없는 곳.

그야말로 마교(魔敎)였다.

‘나가 보거라.’

부들부들.

사도명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그의 시선은 교주가 아닌 넷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저 자리는 넷째가 아닌 자신이 가졌어야 한다. 교주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만이 독차지해야 했다. 그것이 제왕이 걸어갈 길이었으니까.

살심(殺心).

사도명은 난생처음, 진심으로 죽여 버리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

한껏 사공천을 노려보던 첫째가 연공실을 나가고.

교주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첫째야, 넌 또 어떤 모습을 보여 줄 것이더냐.’

그의 시선이 넷째 사공천에게 향한다.

‘하늘이 내려 준 재능. 그것을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이더냐.’

천마신교의 교주.

그는 실로 오랜만에 환희를 느꼈다.

* * *

쿵! 쿵! 쿵!

봉환선과 뇌왕검이 부딪칠 때마다 공간을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진다. 사도명은 이미 극마의 경지에 올랐다. 천마신공은 그의 재능을 꽃피우게 해 주는 최고의 무공이다. 환골탈태로 천마의 육신을 얻은 그는 부채를 들든 주먹을 휘두르든… 모든 것을 파괴한다.

분명히 눈앞의 사내는 쓰러졌어야 한다.

그는 절대자로 자라 왔다. 제왕으로 키워졌다.

그리고 결국 온전한 교주의 후계가 되었으며.

천마신교의 소교주에 등극했다.

단목장룡이 정파에서 명성을 떨쳤다?

나찰마궁주를 이겼다?

상관없었다.

그는 천마가 될 사내였으니까.

카아앙!

분명히 느리게 다가온다고 생각했던 단목장룡의 검이, 부딪치기 직전 속도를 올린다. 마치 유성처럼 부딪쳐 오는 그 일격에 번번이 봉환선이 튕겨 나간다. 마교에서도 최고의 병기 중 하나로 손꼽힌다. 거기에 내력까지 담는다면 절대 부서질 일이 없었다.

그런 봉황선이 부서지려 하고 있다.

구조가 뒤틀리고, 거죽이 찢어지고, 한철이 비명을 지른다.

거죽에 새겨진 봉황의 그림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빛을 발하건만, 봉황선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이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을 쥐고 있는 사도명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단목장룡의 검은 굳건했다.

유성과도 같은 일격을 몇 번이나 찌르고 베어 왔음에도 전혀 그 힘이 줄어들지 않았다.

보법은 또 어떤가?

현란하진 않았다. 오히려 단조롭다고 봐도 무방할 보법이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으며, 뿌리칠 수 없었다. 그의 한 걸음에 사도명은 두 걸음을 내디뎌야 했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사도명이 그리 놀라진 않았으리라.

그 또한 모든 것을 펼친 것이 아니기에.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무림맹주와 사마련주에게 모든 것을 보여 줄 순 없었기에.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이렇게 밀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천마신공.

천마신교의 교주가 될 사람만이 익힐 수 있는 그 무공은,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이는 무공이 아니다. 그 속에는 무(武)의 현묘함이 모두 담겨 있다.

그런데 왜일까?

대체 왜…….

‘천마신공을 알고 있는 것처럼……!’

카아앙!

번번이 소교주의 공격이 가로막힌다. 천마신공에는 파훼법이 없었다. 그 거대한 힘의 논리 앞에서는 어떠한 잡기술도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목장룡이라는 놈은 너무도 쉽게 사도명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멀찍이 서서 구경한다면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직접 단목장룡과 마주한 사도명은 느끼고 있었다.

거대한 벽을.

어떤 보법을 펼쳐도.

어떤 초식을 펼치더라도.

마치 미래를 읽고 있는 것처럼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사도명의 머릿속에 ‘그놈’이 그려지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압도적이었으니까.

천재라 불리던 사도명에게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던 괴물, 사공천. 단목장룡과 마주하고 있으면, 그때가 떠오른다. 처음 그의 천재성을 확인한 그날이.

“갈!”

분노를 터뜨린다.

이제는 온전히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고작 정파의 고수 한 명에게 그딴 나약한 감정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온전한 천마신공의 극의를 펼쳐 낸다면, 그 압도적인 힘을 드러낸다면 이깟 놈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보여 주도록 하마…….’

순간 사도명의 눈빛에 귀기가 어린다.

어떠한 생명도 그 앞에선 존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눈빛.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원초적인 공포를 떠올리는 천마의 눈동자가 그의 눈동자에 떠오른다.

쿠릉!

사도명의 단전에서 천둥이라도 친 듯이 굉음이 울렸으며, 진정한 천마신공을 이 자리에 펼쳐 낸다. 단목장룡 또한 그 압도적인 위용에 공포에 떨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진짜 천마신공을 펼쳐 내려는 순간.

‘…웃어?’

사도명은 볼 수 있었다.

단목장룡의 입가에 맺히는 미소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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