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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80화 (180/236)

180화 숭산

당용아는 이미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새. 낮이 아닌 밤이었지만, 그 크기가 워낙 거대했기에 형체를 식별할 수 있었다. 저렇게 큰 새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난데없이 내려꽂히는 새의 먹잇감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용아가 암기를 출수하려는 순간이었다.

“고모님!”

“응?”

익숙한 목소리.

어찌 이 목소리를 잊을 수 있으랴? 그녀의 사랑스러운 조카의 목소리다. 그런데 왜 저 새가 옥정이의 목소리로 말을 하는 걸까? 설마 어릴 적 서책으로만 보았던 요괴? 그게 정말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어찌 저 요괴가 옥정이의 목소리를 알고 흉내를 낸단 말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고모님! 괜찮아요!”

다시금 들려오는 당옥정의 목소리.

마치 먹잇감을 습격하려는 듯이 엄청난 속도로 활강하던 괴조의 속도가 확 줄어들었다. 당용아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언제 돌변하여 발톱을 들이밀지 몰랐으니까.

그런 그녀의 걱정은 새가 거의 땅에 닿았을 때, 완전히 사라진다.

놀람과 당황이 섞인 목소리로 외치는 당용아.

“옥정이……? 단목 공자?”

폴짝!

당옥정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천응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고모님!”

두 사람의 얼굴을 본 당용아지만, 낮은 자세로 두 손에는 암기를 쥐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암기를 던질 자세였다. 그것을 본 천응이 끼엑, 하며 소리를 질러 댔지만 단목장룡이 쓰다듬자 금세 노기가 가라앉는다.

그것을 본 당용아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대체 저 새는 뭐지? 매와 비슷하게 생기긴 했는데… 세상에 저리 큰 매가 있다고?’

사람을 태울 정도로?

당용아는 ‘요괴’라는 설화에서나 등장할 존재를 떠올릴 만큼 놀란 상황이었다. 그 표정을 본 당옥정이 배시시 웃는다. 고모님이 저리 놀라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찰마궁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저리 놀라지는 않으셨다.

“많이 놀라셨어요?”

당옥정의 물음에 겨우 정신을 차리는 당용아.

“크음… 조금 놀랐구나. 그런데 저 새는 무엇이더냐?”

“이 아이는 천응이라고 해요. 장룡이가 키우는 영물이에요. 인사해, 천응아!”

“끽!”

간단하게 소리를 내는 천응.

대답을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지 당옥정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천응과 당옥정을 바라보는 당용아는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물을 키워?

저러한 영물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단목장룡이 저것의 주인이라니… 그는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처음에 사천성에서 보았을 땐 재능이 출중한 후배로만 보였지만, 이제는 아득히 높은 위치에 오른 사내. 그를 보고 있으면 뇌왕이 떠오른다. 외모는 전혀 달랐지만, 뇌왕 또한 중원을 뒤흔들었던 사내였다.

‘아니, 지금은 그이보다 더…….’

단목장룡이 당용아에게 다가와 포권지례로 예를 표했다.

“숭산으로 향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두 사람은 저 영물을 타고 무림맹으로 가던 길이었나요?”

두 사람 다 현재는 무림맹 소속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했다.

하지만 단목장룡의 입에서는 그녀의 예상과는 답이 흘러나왔다.

“저희도 숭산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소림사로 가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설마? 당용아가 당옥정을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을 마주한 당옥정의 눈에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전 청룡단원이기 전에 당문 사람이에요. 또 당문의 소속이기 전에 고모님의 조카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저도 고모님을 도울 수 있게 해 주세요. 고모님이 절 도와주셨던 것처럼요.”

“너…….”

홀로 짊어지려 했던 일이다.

위험할 수도 있었으며, 어쩌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정파 무림을 주름잡던 육왕 중 하나의 죽음이 결코 가벼운 사안일 리가 없으니까.

“옥정아, 이번 일은 위험할 수도 있단다.”

“열심히 할게요!”

당찬 당옥정의 대답에 당용아의 말문이 막힌다.

‘그래도 안 돼. 옥정이는 이 일에 관련이…….’

그런 당용아의 속을 꿰뚫고 있는 당옥정이다.

그녀는 준비해 온 말을 읊었다.

“전 뇌공검법의 후계자잖아요? 그러니까 전 뇌왕 대협의 죽음을 확실히 알아야 할 이유가 있어요.”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당용아는 당옥정의 다짐을 아이의 치기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 품어 줘야 할 어린애가 아니다. 이제는 중원에서 무인이 된 조카였다.

“후우우… 알겠구나. 네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을까?”

씨익.

당용아의 말에 당옥정이 미소 짓는다.

그것을 본 독봉이 사족을 붙인다.

“하나,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면…….”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당용아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독봉이라는 별호로도 그의 위에 설 순 없었다. 화경에 이른 고수. 나찰마궁주를 이긴 무인.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중원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이다. 물론, 뇌왕 또한 그러한 경지에 올라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라면 믿음이 갔다.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그가 곁에 있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끼이익!”

마치 주인만 믿으라는 듯, 뒤에서 천응이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낸다.

조금 전까지 세상에 홀로 떨어진 듯 우울했던 당용아. 속도 모르고 밝은 달빛이 왠지 모르게 미웠었다.

‘달이 참 밝네.’

사랑하는 조카와 그녀의 부군이 될 사내.

그리고 몸을 푸는 듯, 날개를 쭉 펼친 괴조.

그것을 눈동자에 담은 당용아의 입가엔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숭산(嵩山).

중원의 오악 중 하나로 중악이라 불리며 무림의 태산북두라 일컬어지는 소림사가 있는 곳이다. 수천에 달하는 승려가 고행과 수행으로 심신을 단련하는 이곳은 실상 구파일방 중에서도 그 세가 으뜸이라 할 수 있었다.

무인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불가의 가르침을 받고자 중원 각지에서 소림사로 몰려든다. 평소에도 수백의 사람이 높디높은 숭산을 오르곤 했다.

그리고 오늘은 평소보다 숭산을 방문하는 이가 훨씬 많았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한 정파에 속한 문파의 전령들이 속속 소림사를 방문하고 있었다. 그 유명한 마교의 소교주가 숭산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소림사가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마교도들이 왜 숭산을 오르게 허락했는지. 정파 무림의 시선은 숭산으로 향했다.

쭉 늘어선 줄을 보며 당옥정이 감탄한다.

“와, 이렇게나 사람이 많다니!”

“그러게나 말이구나.”

당용아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마 지금 소림사는 상당히 정신이 없으리라. 현 상황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이 몰려 있었다. 입구에서는 지금도 방문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림사가 객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누가 숭산에 오르는지 파악은 해야 했기 때문에 명부를 작성하느라 기다리는 줄이었다.

독봉이나 단목장룡 그리고 당옥정까지.

무림에서 그들의 배분과 명성을 생각하면 줄을 선다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숭산이었기에 세 사람은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각쯤 기다리자 드디어 세 사람의 차례가 왔다.

명부를 작성하던 소림의 제자가 그들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란다. 아무리 소림에서 심신을 단련하는 승려라 할지라도 인간의 감정을 모두 초탈하진 못한다. 사람이 타인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얼굴이다.

당용아 또한 과거에 무림오화로 불렸으며, 사실 그 나이대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현 무림오화 중 하나인 당옥정이나 단목장룡은 어떠한가? 선남선녀. 그들을 뜻하는 단어로 제격이었다.

“크음……!”

정(淨) 자 배 항렬인 정련(淨蓮)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시주분들의 성함과 소속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천당문의 당용아예요.”

“……?”

정련이 멈칫한다.

사천당문의 당용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강호에선 독봉(毒鳳)이라 불리고 있답니다.”

당용아의 말에 정련이 깜짝 놀란다.

독봉은 최근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으나 그녀의 명성은 중원에서도 드높았다. 거기다가 사천당문의 내당주라면 가주의 바로 아래 직위였다. 오대세가가 구파일방보다는 못하다는 말이 있으나 사천당문과는 절대 척지지 말라는 격언 또한 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포권지례를 했다.

“강호의 대선배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영광이에요.”

당용아 또한 그에게 포권지례로 예를 표했다. 소림의 승려들이 이렇게 예를 차리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그들은 보통 중원에서 배분이 높다 하여도 똑같은 시주로 대할 뿐이지만, 그렇다고 중원의 법도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소림사 또한 결국 강호에 속해 있었으니까.

소림사의 방명록에 당용아의 이름이 새겨지고.

“전 사천당문의 당옥정이에요.”

당옥정은 현 소속인 청룡단을 언급하진 않았다. 그녀는 사천당문의 이름으로 이곳에 찾아온 것이다.

정련은 이번엔 그리 놀라진 않았다.

당용아의 이름을 들으니 옆의 여인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최대한 당옥정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가 쌓아 올린 불심은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당옥정의 미모는 솔직히 현재 정련의 수행으로는 극복할 수준이 아니었다.

정련이 재빨리 당옥정의 이름을 방명록에 기입했다.

다음으로 그의 시선이 단목장룡을 향했다.

이미 사천당문을 적으려 준비하고 있던 정련.

“흑룡단의 단목장룡입니다.”

“다, 단목장룡!”

정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당용아의 이름을 듣고도 놀랐던 정련이지만, 이처럼 격한 반응을 보여 주진 않았다. 정련뿐만이 아니다. 다른 객들을 맞이하고 있던 승려들은 물론이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방문객들까지. 모두의 시선이 단목장룡에게로 향한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새로운 육왕, 아니 이제는 칠왕이라 불려야 하는가?

단순히 무공 경지로 따지자면, 소림사의 방장 대허 선사와 동급이었다. 그의 나이를 보면 말도 안 되는 성취였다. 솔직히 그가 정말 나찰마궁주를 이겼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 만큼 소림사 내에서도 그의 이름이 많이 거론되고 있었다.

정련 또한 소림의 대제자인 정현과 단목장룡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정말 그가 화경의 경지에 올랐을까? 나찰마궁주를 이겼다면 대체 그의 재능은 어느 정도인가? 수행을 얼마나 해야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소림사의 승려로서 그리 건전한 대화라고 할 순 없었지만, 그도 무인인 이상 그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저, 정말 유성검룡 시주이십니까……?”

단목장룡이 용봉지회가 끝나고 화산파의 장문인에게 받은 별호였다.

일각에서는 다른 별호로 불리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아직 보편화되진 않았다.

“예, 그렇습니다.”

“허어… 아미타불…….”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불경을 외는 정련.

단목장룡과는 심도 높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무림인이라면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단목장룡의 뒤로는 중원 각지에서 몰려든 객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다.

정련은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내쉬고, 겨우 방명록에 단목장룡의 이름을 기입했다.

“후우우… 이제 숭산을 오르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 향한다. 몇몇 용기 있는 자들이 그들과 말이라도 섞어 보려고 접근해 왔지만, 단목장룡은 시간 낭비를 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 소림사가 아니었다면 천응을 타고 바로 소림사가 있는 소실봉(少室峯)에 올랐으리라.

소림사에 원하는 목적이 있어 방문하는 것이니 그들의 규칙을 지키고자 했다.

이제 관례도 끝마쳤으니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타닷!

이미 경지에 오른 고수들. 가장 경지가 낮은 당옥정만 하더라도 절정의 상급에 올랐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산을 오르는 세 사람이다.

용기를 내어 말이라도 걸어 보려던 이들은 닭 쫓던 개처럼 허망한 표정으로 산을 올려다볼 뿐이다. 정련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얼른 흑구(黑鳩)를……!”

귀한 객이 왔을 땐, 입구에서 흑구를 소실봉으로 날려 보낸다.

최근엔 마교의 소교주가 왔을 때 숭산의 입구에서 흑구가 날았었다. 소교주가 방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또다시 한 마리의 흑구가 하늘을 날았다.

파다다닥!

힘찬 날갯짓으로 소실봉으로 날아가는 흑구.

‘설마 흑구가 시주들보다 느리게 도착하는 것은 아니겠지?’

흑구는 소림의 산문(山門)에서 귀한 객을 맞이하라고 보내는 신호라 할 수 있었다.

보통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숭산에서부터 전력 질주로 오르는 객들은 없었으니까. 거기다 하늘을 나는 전서구보다 빠른 것이 말이 되는가?

‘아미타불, 왠지 불안하도다…….’

* * *

소림사의 사찰 중앙엔 방장실(方丈室)이 있다.

방장은 문파로 따지자면 장문인, 세가로 따지자면 가주의 위치에 오른 이. 소림사에서 가장 수행의 경지가 높은 이가 기거하는 곳이다. 반들반들한 머리에 하얀 수염을 곧게 기른 노인이 방장실의 중앙에서 가부좌를 틀고 한 손에 붓을 들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손에 힘이 빠져 그 자세를 유지하기 힘들겠지만, 소림사의 방장 대허 선사는 전혀 미동도 없었다.

그의 붓에는 먹이 묻어 있지 않았는데, 사실 그가 붓을 들고 있은 지 꼬박 하루가 지난 상태였다. 대허 선사는 붓을 든 채로 고민하고 있었다.

평범한 백성들이 보면 자기 자신을 고문하는 게 아니냐고 놀랄 수도 있겠지만, 소림사에서 이런 것은 수행의 축에도 들지 못했다. 육신의 고통보다는 정신의 고통이 더욱 크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무엇이 옳은 길인가?

실로 오랜만에 번뇌와 씨름하던 대허 선사.

그가 마침내 붓을 움직인 순간이었다.

“방장님.”

뚝.

대허 선사의 움직임이 멈춘다. 이제 막 결정을 내리고 뜻을 써 내려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방해받은 것이다. 나찰마궁주였다면 당장에 목을 쳤을 상황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미동도 없었다.

작은 짜증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평온해 보이는 그 표정을 유지하며 대허 선사가 입을 연다.

“무슨 일인가?”

“사천당문의 독봉 시주와 단목세가의 유성검룡 시주가 방장님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유성검룡이라면?”

“나찰궁의 궁주와 충돌했던 그 시주입니다.”

대허 선사의 눈썹이 꿈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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