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깨달음
나찰마궁의 무공은 소림사와 맞닿아 있었다.
저런 파괴적이고 난폭한 기운이 어찌 정파 무림의 태산북두라는 소림과 닿아 있을까? 간단했다. 누군가 소림사의 무공을 훔쳤거나 소림의 고승이 타락하여 나찰마궁을 만들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불가(佛家).
단목장룡은 불가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무공은 잘 알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 소림사의 무공은 세상의 수많은 고통에서 초탈하고자 한다. 그들 모두가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한다. 부처라는 것은 유일(唯一)한 존재가 아니었다.
흔히들 중원에서는 금강불괴라는 것을 외공의 극한으로 치부하긴 하지만, 단목장룡은 그 무공의 지향점을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피부와 뼈가 단단해지게 해서 도검불침(刀劍不侵)을 추구하는 것은 금강불괴의 진정한 목표가 아니다.
인간의 육신이 단단해지는 것은 금강불괴라는 깨달음에 다가서는 과정에서 얻는 부산물일 뿐이었다. 대야반야금강공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단단해지고 또 단단해지게 해서 세상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목표인 무공이다.
소림사에서 말하는 수행이란 달구어진 쇠를 담금질하는 것처럼 자신의 몸과 정신을 단련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금강불괴가 외공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그들의 수련 방식에 있었다.
유약한 인간의 육신.
뜨겁게 달아오른 솥에 쇠구슬과 모래를 넣어 손을 집어넣는다. 철사장(鐵沙掌)이라는 유명한 수련 방식이다. 주먹을 단단하게 키우는 것 같지만, 결국 정신 또한 육체의 고통에 비례하여 성장한다. 고통을 잊고 종국에는 무감각해진다. 육신의 단련은 정신의 단련과 일맥상통한다.
철사장은 대야반야금강공의 수련 방식 중 하나일 뿐이며, 소림사엔 그러한 고통에 기반한 수련 방식이 많다. 고통에서 초탈하고자 고통과 마주하는 이 수련 방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뢰마유의 자미소를 보고 생각할 여지가 생겼을 뿐이다.
뢰마유가 펼치는 자미소의 연옥이 단순히 상대의 생을 앗아 가기 위한 무공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처음 그의 연옥에 갇혔을 때, 코로 들어오는 자줏빛의 연기는 단목장룡의 기도를 막으려 했다. 몸 안의 피와 세맥을 파괴하려 했었다. 그것은 단목장룡을 노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되돌아가려는 특성일 뿐이었다. 뢰마유의 코와 입으로 말이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자미소를 펼친 것이 뢰마유이기에 그는 피해를 입지 않아서?
아니다. 연옥의 기운은 설사 그것을 펼친 자신이라 할지라도 피해를 입는 무공이다. 뢰마유라 할지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리 없었다.
그것은 두 번째 연옥에서 확실히 느꼈다.
뢰마유가 연옥에서 호흡할 때 순간순간 멈칫할 때가 있었다. 뢰마유는 미약하게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고통을 느꼈다는 것이다. 단목장룡조차도 해우심법으로 겨우 몰아내고 있는 것. 천마에 가까워진 신체로도 버거운 기운. 아무리 뢰마유라 할지라도 그것을 온전히 버텨 낼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단목장룡은 대야반야금강공을 떠올렸다.
육신의 단련이 곧 정신의 단련이라는, 금강불괴지신을 추구하는 소림의 절기 중 하나. 철사장에 손을 집어넣어 육신을 단련하고 고통을 둔화하는 그 무공의 구결이 떠올랐다.
사실 자미소와 대야반야금강공의 내력은 꽤 다르다.
소림사는 정파의 무공 중에서도 가장 정순한 내공심법을 가지고 있었고, 자미소는 그 기운과 비교하면 사특한 기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식이 같다.
자미소는 대야반야금강공처럼 육신의 단련을 목표로 하는 무공이다. 소림사의 무공은 남들과의 경쟁보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우선시한다.
‘그러니까 자미소의 연옥이라는 것은…….’
그것은 사실 타인을 가두기 위한 무공이 아니었다.
상대를 가두고, 그들의 생명을 갈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가두기 위한 감옥.’
자신을 가두고, 연옥 속에서 생존할 수 있게 육신과 정신을 단련하는 무공이었을 뿐이다. 연옥이 이처럼 넓은 범위까지 닿을 수 있는 이유는, 오직 나찰마궁주의 괴물 같은 내공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전혀 다른 듯한 소림사의 대야반야금강공과 나찰마궁의 자미소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단목장룡은 실로 오랜만에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사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들이 한 번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 단목장룡이 이제까지 무공에 대해 고찰하지 않았다면, 자미소를 보더라도 꽤 괜찮은 무공이라 생각하고 넘겼을 뿐이리라.
나찰마궁이 마정대흡인술과 같은 패륜의 무공을 익힌 이유도, 어쩌면 더 강한 연옥을 만들기 위해. 더 강한 육신을 만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강력한 연옥을 구축하려면 무시무시한 내공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기서 단목장룡은 더 나아갔다.
‘내공의 양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내공심법의 질 또한 중요하다.
내공이라고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다. 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쓰임새가 바뀌게 된다.
단목장룡의 머릿속에서 대야반야금강공의 구결이 떠오른다.
엄청난 수의 활자들이 빛을 내며 그의 주위를 떠돌았다. 단목장룡은 손을 뻗어 그것을 음미하며, 또한 실제로는 자미소의 기운을 마주했다.
그것은 단목장룡의 몸을 파괴하고 있었지만, 수련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그것을 활용할 방법이 떠오른다.
단목장룡은 그러한 고찰을 하며 뢰마유와 싸웠다.
그렇다고 대충 싸운 것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그의 주먹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기에 진지하게 전투에 임했다. 정신과 육신 모두를 극한까지 활용했다.
그리고 지금.
단목장룡의 검 끝에는 둥그스름하면서 진한 자줏빛의 검강이 맺혀 있었다. 그것에선 연옥의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다.
어떻게 단목장룡이 자미소를 사용하고 있는가?
대체 어떻게?
“어찌……?”
“네놈의 자미소는 여기 한 방울에 맺혀 있다.”
“개소리!”
발끈하는 뢰마유.
말이 안 된다. 대야반야금강공을 언급한 것은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다. 소림사의 유명한 무공이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 자미소의 기운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무공의 이름을 아는 것과 그 무공을 다루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천마신공이라는 천마의 무공을 안다고, 모두가 천마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저놈은 대체 뭐란 말인가? 어찌 단목장룡의 검에 자미소의 기운이 맺혀 있단 말인가? 저것을 어찌 다룰 수 있단 말인가!
뢰마유의 피부에서 자줏빛의 연기가 치솟는다.
저것은 가짜가 분명하다. 눈속임에 불과하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진짜 자미소를 보여 주는 방법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뢰마유였지만…….
그의 피부에서 솟아난 연기가 자연스레 단목장룡의 검으로 흡수되기 시작한다.
마치 광활한 대지가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자신 쪽으로 빨아들이는 것처럼. 가공할 만한 흡입력이다.
“분명히 자미소는 뛰어난 무공이다.”
“네놈이 뭘 안다고…….”
“허나, 그 방식이 잘못됐다.”
뢰마유의 이마에 핏줄이 솟는다.
“네놈은 연옥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아니, 이해는 했지만 도망친 건가?”
“개소리 집어치워라!”
번쩍하는 순간 뢰마유가 단목장룡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 그의 내력이 많이 소진됐다고 한들, 육체의 힘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강철도 부술 만한 거대한 힘이 단목장룡을 노린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이전처럼 이형환위를 펼쳐 피해 냈을 뿐이다.
“연옥은 본래 자기 자신만을 가두는 무공이지. 너는 그 범위를 늘렸다.”
움찔.
뢰마유의 몸이 움찔한다.
“무서웠지 않나? 이 지독한 자미소의 기운이 네 몸을 파괴할까 봐?”
“네가 뭘 안다고…….”
슬쩍 단목장룡이 검을 앞으로 내민다.
그러자 뢰마유의 얼굴에 공포가 떠오른다. 그의 검에 맺힌 연옥의 결정체. 진득한 파멸의 힘이 번쩍이고 있었다.
“연옥은 이런 상태로 존재해야 한다. 네가 펼친 연옥은 위력을 줄이기 위한 열화판이지.”
“닥! 쳐! 라!”
뢰마유가 눈에 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돌진해 왔다.
단목장룡은 그의 공격을 피해 냈다. 동시에 검을 그의 목에 겨눈다. 조금만 움직여도 뢰마유의 몸에 연옥이 닿게 된다.
기화되어 약화된 연옥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연옥이.
강철마저 녹여 버리는 연옥이 말이다.
꿀꺽…….
뢰마유가 침을 삼킨다.
이대로 끝날 수는 없었다. 저것이 정말 연옥이라면… 저것이 피부에 닿는 순간…….
고통이 떠오른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고, 세맥이 터져 나가는 그러한 고통이.
뢰마유는 고통이 싫었다.
쾌락이 좋았다. 그렇기에 환락을 탐하고, 여체를 탐했다.
‘이것만은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고통이 싫었지만, 단목장룡을 해치우려면…….
그의 눈빛에서 푸른 안광이 짙어지고 있을 때.
푸욱.
무언가가 뢰마유의 목을 찔렀다.
찌리리리릿!
목의 피부에서부터 전해진 극악의 고통. 그것이 척수를 통해 온몸에 전해진다. 손끝과 발끝, 심장과 장기 그리고 머리카락 한 올에까지. 응축되고 또 응축된 연옥이 뢰마유의 몸에 파고들었다. 그가 만들어 낸 연옥이 그의 몸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커륵!”
그의 칠공에서 피가 쏟아진다.
뇌를 뒤흔드는 고통은 신체의 모든 것을 마비시킨다.
“이… 이이이… 이노오오… 오오오옴……!”
뢰마유는 그것에 저항했다.
당장이라도 이 고통을 준 단목장룡을 찢어 죽여야 한다. 고통을 버텨야 한다. 이 뒤에는 쾌락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고통을 견딘 대가는 쾌락이어야만 했다.
“네놈으으으을!”
쉬이이이익!
그의 주변으로 강렬한 기세가 퍼져 나간다.
“하나만 묻지.”
“죽여 주마아아아… 내 기필코…….”
“네가 뇌왕을 죽인 건가?”
단목장룡은 그의 푸른 눈동자를 보고 있었다.
뇌왕을 죽인 것은 푸른 눈동자를 가진 괴물이라 했다. 과연 나찰마궁주가 뇌왕을 죽였을까?
하지만 뢰마유는 연옥에 저항하고 있을 뿐이다.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해 참아 내고 있을 뿐이다.
본래 자미소의 목적처럼.
그가 만약 자신의 연옥을 버텨 낸다면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 더한 괴물로 태어날 수 있으리라.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단목장룡이 입을 열었다.
“넌 아닌 것 같군.”
서걱!
발작하듯 몸을 떨며, 연옥에 저항하던, 고통에 익숙해지던 뢰마유.
허무하게도 그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단목장룡의 몸이 크게 휘청인다.
“쿨럭!”
그가 바닥에 검붉은 피를 토해 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제까지 그 또한 참아 내고 참아 낸 것에 불과했다. 상대의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여 주는 건 승리의 방법이 아니다.
자미소의 연옥은 놀라운 무공이었다.
인간의 몸을 극한으로 단련시켜 준다. 몸의 단련은 곧 정신의 단련이라는 소림사의 무공과 일맥상통한다. 만약 뢰마유의 경지가 더 깊었다면, 쓰러진 것은 단목장룡이었으리라.
‘역시 아직 천마의 육신에 도달하려면 멀었구나.’
불끈.
그의 몸에서 핏줄이 솟아난다. 뢰마유가 내뿜은 연옥을 몸에 담은 과정에서 생긴 상처들이었다. 남아 있는 것은 일부에 불과한데도 단목장룡의 몸을 파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단목장룡의 입가엔 미소가 맺혀 있었다.
‘뢰마유를 선택하길 잘했군…….’
급에 맞는 사람과의 대결은 도움이 된다.
또한 그에게서 많은 것을 얻었다. 자미소의 진정한 활용법을 알아냈으며, 그것을 활용하여 완벽한 천마의 육신에 또 한 걸음 다가갔다.
연옥이 휩쓸고 간 상처가 아물고 나면, 단목장룡의 육신은 한층 더 강해져 있으리라.
소림사가 말하는 금강불괴지신에 다가서는 느낌이랄까.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에 가까워지는 그 과정이 너무도 즐거웠다.
쿠웅!
단목장룡은 정신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하늘을 빙빙 돌며 날고 있던 천응.
단목장룡이 쓰러지자 기겁하며 지면으로 활강하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에에-!”
* * *
“…….”
“놀랐느냐?”
- 전혀.
사마백혼이 가면을 쓴 자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띤다. 하지만 가면 사이로 드러난 그의 눈동자는 불쾌하다는 듯이 가늘어졌다. 그가 톡 쏘듯 전음을 보낸다.
- 나찰마궁주가 당했다면 그가 나설 가능성이…….
“단목장룡이라는 아이를 알고 있나? 네가 무림맹에 다녀왔다는 것을…….”
- 쓸데없는 질문입니다.
싸늘한 여우 가면의 말에 사마백혼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를 자극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괜한 미움을 살 수도 있었기에.
“네가 우려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자는 그 괴이한 것을 연구하는 것에 푹 빠져 있지 않더냐?”
- 아무튼, 나찰마궁주가 당해 버려서 계획이 틀어졌군요. 수정할 계획의 시안을 작성해서 올리도록 하죠.
“기다리도록 하마.”
여우 가면이 홱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갔다.
“그건 그렇고, 뢰마유를 이겼다라……. 단목장룡, 대단히 위험한 놈이로군.”
여우 가면을 바라보던 푸근한 표정과는 전혀 다른, 평소의 냉철한 사마백혼으로 돌아온 사마련주. 그가 손가락 두 개로 탁상을 톡톡 치며 여우 가면이 떠나간 문을 바라본다.
“뭐, 일단은 그냥 두도록 할까.”
사마백혼은 자신의 결정에 만족한 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