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미끼를 물다
그렇게 칠 주야가 지났다.
대존자의 명령 아래 수많은 전령이 나찰궁을 나섰다. 전령 모두가 먼 거리로 향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같은 절강성 내의 장흥현이나 동려현 그리고 소흥현으로 향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알아보려 한 것은 전서구의 이상 유무.
사실 그 이유가 조금도 예상되지 않지만, 지부가 공격당한 것이 아닌 전서구가 항주로 오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런 부분을 걱정했기에 처음으로 출정한 전령들은 항주에서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장소에 도착하면 바로 전서구를 보내도록 했다.
그리고 지금.
전령들은 당연히 돌아오지 못했으며, 전서구 또한 한 마리도 도착하지 않았다.
현 중원 무림에서 전서구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넓디넓은 중원에서 정보가 다른 지역으로 전해지려면 전서구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물론, 각 성을 떠도는 낭인 무인들이 소식을 전파해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낭설이며 소문일 뿐. 정확한 정보가 아니다.
거대 세력에서 정확한 정보를 모으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향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전서구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과연 전서구에 의존했던 이들은 어떻게 될까? 눈을 떴음에도 눈을 감은 것처럼 답답할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마리의 전서구가 도착하던 나찰궁이었다. 이제는 한 마리의 전서구도 항주의 하늘을 가로지르지 않았다.
콰앙!
대존자가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부숴 버린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설마 항주 전체를 무림맹의 세력이 포위했나? 그렇기에 전령도 막히고 전서구도 막혔던가? 그렇다고 해도 전서구가 한 마리도 오지 않는 건 너무 이상하지 않나?
“대체 왜! 전서구가 한 마리도 안 오느냐 말이다!”
한 마리라도.
그 한 마리라도 도착하여 현 상황에 대해 알려 줬다면 이렇게 답답하진 않았을 것이다. 과거 무림맹 비선당주가 그러했듯. 대존자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전서구가 오지 않는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매를 하늘에 날려 전서구를 사냥하나?’
그러던 중, 대존자의 뇌리에 한 생각이 파고들었다.
이것은 비선당주도 떠올렸던 생각이다. 전서구의 천적은 하늘의 지배자라 불리는 매. 사실 전서구의 이 할 정도는 다른 천적들에게 당해 죽는다. 그렇기에 중요한 서신을 보낼 때는 시차를 두어 두 마리 이상의 전서구를 보내곤 한다.
‘만약 그렇다면…….’
나찰궁의 사 층. 대존자의 방엔 커다란 창문이 나 있었다.
대존자의 날카로운 눈빛이 하늘을 훑는다.
“백 마리. 전서구를 모두 날려 보내라.”
“어디로 날려 보내면 되겠습니까?”
“지부. 상황을 묻는 서신을 적어 보내도록 해라.”
“존명!”
대존자의 명에 궁도가 빠르게 움직인다.
일각 정도 기다리자 전서구가 하늘을 날아오른다.
만약 매를 이용하여 전서구가 통제되는 것이라면, 항주 내에서 전서구 사냥이 시작될 것이다. 대존자는 매의 존재를 알아내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사방을 둘러본다. 그는 이 추측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파라라락!
전서구들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
뭐지?
전서구를 사냥하는 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서구들은 평소보다 더 팔팔하게 날갯짓하여 하늘을 날아올랐다. 이제는 점이 되어 사라진 전서구들.
‘이것도 틀린 건가!’
대존자가 분노를 삭이며 더 높은 하늘을 바라본다.
그가 바라본 높이는 전서구가 날아오른 궤도 정도였다. 더 높은 곳은 볼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전서구였으니까. 그런데 전서구가 날아간 궤도보다 더 높은 하늘에 무언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매인가……?’
저것이 대체 뭐지?
만약 매라면 전서구를 사냥하려고 활강했을 터인데… 저 새는 빙글빙글 나찰궁의 창공을 누비고 있을 뿐이었다. 크기도 잘 가늠이 되질 않았다. 분명히 높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사람보다 큰 영물.
천응의 크기는 직접 보고서도 믿을 수 없다. 때문에 대존자는 천응의 크기를 무의식적으로 축소했다. 그에 반하여 천응이 날아오른 높이가 그리 높지 않다고 추측하고 말았다.
‘설마 저놈이 있어서 전서구들이 무서워서 나찰궁에 오질 못하고 있나?’
단순한 추측이다.
하지만 대존자가 고개를 휘휘 젓는다. 그게 말이 되나? 단지 하늘을 날고 있다는 이유로 귀소본능을 가진 전서구들이 항주에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만약 전서구들이 그러하다면 나찰궁까지 다가오진 못하더라도 항주 끄트머리에서 발견되어야 했다.
하지만 전서구들은 완전히 씨가 마른 듯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대존자.
‘어쩔 수 없군.’
그는 다시금 아래를 바라본다.
‘이 몸이 직접 나서야겠어.’
이미 진실에 가까워졌음에도.
대존자는 그 진실이 거짓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가 말이다. 그것을 직접 알아보러 떠나야 한다. 나찰궁의 대존자가 직접 몸을 움직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중원 무림에서 전서구에 대한 의존성을 잘 알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무림맹에서도 비선당주가 정파 무림의 정보가 마비되자 자리를 내놓으려 했던 것처럼, 대존자 또한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전서구의 부재로 말이다.
그렇게 대존자 또한 미끼를 물게 되었다.
* * *
“저건…….”
단목장룡이 눈을 가늘게 뜬다. 민머리의 사내가 엄청난 속도로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평범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딱 보인다. 그는 분명히 지금 막 나찰궁을 나선 전서구를 따라 달려가고 있었다.
‘정공법을 선택했군.’
전서구가 왜 도착하지 않는가?
사실 단목장룡도 천응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처음엔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천 년이 넘은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영물의 기운. 인간은 느낄 수도 없고 작은 짐승들만 알아채고 도망치기 바쁜 절대자의 기운을 어찌 예측하겠는가?
지금 저 사내는 전서구를 직접 추적하여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보려 하는 것이다.
전서구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안다면 정확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으니까.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저 나찰궁의 괴승도 그러한 생각으로 직접 움직이는 것이리라.
‘월척이로군.’
평소였다면 저러한 정공법은 옳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전서구들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문제와 단목장룡은 맞닿아 있었다. 문제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단목장룡과도 가까워진다.
“가자, 천응.”
“끼엑!”
또다시 사냥이 시작됐다.
경공을 보아하니 단순한 전령 따위가 아니다. 나찰궁의 간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 *
“후후후.”
만면에 미소를 띤 사내. 행복한 표정에서 그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었다. 폐관실에 갇혀 수련한다면 대부분 정신적인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나찰마궁의 폐관 수련은 다르다. 그들은 오히려 폐관을 즐긴다.
그것은 그들이 익힌 마정대흡인술과 관련이 있다.
나찰마궁은 과거 무림에 떠돌던 흡성대법(吸星大法)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무공을 창안했다. 다른 이들의 정기를 빼앗는 무공. 무림인들이 단전에 쌓아 나가는 것은 대자연이 품고 있는 기운이다. 그들은 운기토납이라는 방식으로 아주 오랜 세월 내력을 쌓아 나간다.
그리고 그 방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었다.
단지 호흡만으로 내력을 쌓아야 할까? 그렇다면 영초나 영약을 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인가?
더 나아가서, 다른 생명의 정기를 빼앗는 것도 결국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지 않은가?
굳이 인간이라고 그것을 멀리해야 하나?
당연히 이런 부류의 무공은 정파는 물론이거니와 사파에서도 딱히 대접을 받지 못한다. 정기를 빼앗기는 것이 오로지 정파인들뿐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기에.
평생을 모은 내력을 남한테 뺏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사파에서도 흡성대법을 익히는 것은 절대 금지였다.
하지만 나찰마궁은 몰래 그것을 연구했다.
이미 그러한 부류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지만, 더 파격적이고 효율이 좋은 무공을 창안하기 위해 온갖 실험을 자행했다.
과거 단목장룡이 암천제에 참가하기 위해 해남도로 가며 처단했던 산적들.
그들도 나찰마궁의 작품 중 하나였다.
오랜 세월에 걸친 나찰마궁의 걸작품.
오히려 힘을 숭배하는 마교조차도 눈살을 찌푸릴 마공(魔功).
그게 바로 마정대흡인술이었다.
나찰마궁주는 그 마공을 이용하여, 폐관 수련을 했다. 이제 곧 발발할 전쟁에 맞춰 내력을 늘려야 했다. 그는 극마에 이른 고수. 하지만 그것만으론 만족하지 못한다. 극마에서도 최고가 되어야 한다.
무인의 강함을 측정하는 척도가 무엇인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내공이었다. 내공은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한다. 일 갑자만 되어도 무림에서는 고수로 칭송을 받는다. 내공이라는 것은 맹수들에게 위협을 받던 인간들을 군림자로 만들어 준 자연이 내려 준 축복이었다.
나찰마궁주는 그 축복을 온전히 활용하려 했다.
인간적인 도리? 무인의 긍지?
그딴 것이 당최 무엇에 쓰는 것이란 말인가? 힘이 있다면 인간의 도리 또한 자기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다. 무인의 긍지 또한 새로이 정의하면 그만이다.
나찰마궁주는 새로운 시대의 부처가 되기 위해.
오늘도 쾌락을 탐하고, 다른 이들의 정기를 빼앗았다. 당연히 그의 몸에서는 활력이 가득하다 못해 넘치고 있었다. 거대한 그의 내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감히 누구도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으음?”
기분 좋게 폐관실을 나서던 뢰마유.
문득 걸음을 멈춰 선다.
“대존자는?”
존자(尊者)는 나찰궁 내에서도 그 권위가 높은 수행자를 일컫는다.
하지만 거룩한 폐관 수련이 갓 끝난 궁주를 수행하는 이는 일반 존자여서는 아니 된다.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흐뭇한 표정이었지만, 감정의 변화가 상당히 극심하다.
최근 나찰마궁주의 감정의 변화는 극에 달했다.
“대존자께선…….”
대답을 기다리지 못한 궁주가 몽화 존자의 목을 쥐고 들어 올린다.
“케, 케헤헥……!”
감히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버둥대는 몽화 존자.
그 또한 나찰궁의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바라보는 궁주의 시선은 너무도 차가웠다.
쿠웅-!
궁주가 몽화 존자를 던져 버렸다. 벽에 몸을 부딪힌 몽화 존자가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을 내뱉는다.
뚜벅뚜벅.
나찰마궁주는 그런 몽화 존자를 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가 향하는 곳은 대존자의 집무실이었다.
“대존자가 자리를 비웠나?”
“그것이…….”
대존자를 수행하는 궁도는 땀을 뻘뻘 흘렸다. 대존자는 반나절을 말하고 궁을 나섰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지금에도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말을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 판.
“본 좌는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걸 싫어한다.”
싸늘한 궁주의 말에 궁도가 재빨리 답한다.
“대존자께선 전서구가 오지 않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궁을 나선 상태이십니다! 반나절을 말씀하셨지만,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습…….”
주르륵.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궁도가 운명을 달리했다.
“전서구? 그딴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손에 묻은 더러운 피를 털어 낸다.
나찰궁의 다른 궁도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닥에 넙죽 엎드려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전서구가 뭐가 문제란 거지?”
폐관실에 틀어박혀 쾌락과 환락을 맛보았던 궁주.
당연히 그는 이 상황을 알지 못한다. 대존자 또한 보고하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폐관실에 허락 없이 들어갔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일단 나가서 사태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제일 군사 관허 법사가 달려온다.
다행히도 이미 피를 보아 어느 정도 화가 누그러진 궁주였기에 관허 법사의 보고를 찬찬히 들어 준다. 물론 그의 눈빛은 살벌하기 그지없었지만.
“아마 대존자께서도…….”
관허 법사의 설명을 듣던 궁주.
그가 걸음을 옮겨 창 쪽으로 향한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바로 고개를 들어 드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쥐새끼가 있었구나.”
“…….”
궁도들은 궁주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늘을 바라보고 쥐라니?
“잠시 다녀오겠다.”
그는 산보를 나가는 것처럼 가볍게 말하고 창문의 틀에 올라섰다.
마지막 미끼가 던져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