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52화 (152/236)

152화 특사

황룡단주는 단목장룡이 말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단목 조장의 의견이 뭔가? 마교와 사파가 손을 잡았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해결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설마 해결책도 없이…….”

“있습니다.”

단목장룡은 느긋했다.

어차피 무림맹은 마교를 상대할 수단 중 하나일 뿐.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하다. 결국 진정한 복수의 칼날은 자신이 직접 꽂아 넣으리라. 그러기 위해서 하늘이 내려 줬다는 재능을 줄곧 갈고닦아 왔다.

“사마련에 속해 있다고 하여 모두 다 같은 뜻을 품고 있지 않을 겁니다. 전 이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교의 패악질은 정파에게만 통용되는 일은 아니지요. 사파에게도 마교에게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니, 마교와 싸우기 위해 사파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인가!”

황룡단주의 반발.

당연히 정파는 마교도 싫어하지만, 사파 또한 혐오한다.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이었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 쌓인 감정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마교와 사파에게 합공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만!”

무림맹주가 황룡단주를 노려본다.

건전한 담론은 환영이지만, 저렇듯 감정이 섞인 반대는 딱히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다. 무림맹주의 따끔한 시선에 황룡단주가 입을 꾹 다물었다.

“다른 의견은 없소?”

무림맹주가 수뇌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그러자 처음으로 호법당주가 입을 열었다.

“단목 조장의 의견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다만 그것 자체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파의 종자들은 정파를 증오합니다. 그것은 정파 무림도 마찬가지지요. 그 감정이 존재하는 한, 사파와 정파는 뭉칠 수 없을 겁니다.”

“호법당주의 말에 동감하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요.”

외당주 또한 호법당주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단목장룡의 말에 동감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차피 사파와 마교가 싸워야 할 적이라는 걸 모르는 무인은 없소! 하지만 우선순위에 달린 것이지! 일단은 마교 먼저! 그러기 위해서 사파와 손을 잡는 것이 무엇이 문제요?”

청룡단주의 발언이었다.

적룡단주는 의외로 그것에 동의했다.

“청룡단주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미 사파와 정파는 평화 조약을 맺은 상태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정말 단목 조장의 말대로 사파와 마교가 연합하는 순간, 정파 무림은 힘든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은 흑룡단주였다.

“손을 잡는다는 표현이 그렇다면, 사파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떻소? 적으로 적을 때려잡는 건 전략일 뿐이오.”

이용이라는 말에 사파와 손을 잡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의 표정도 누그러졌다.

물론 완전한 합의점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실적인 방향으로 토론이 이어진다.

단목장룡은 슬그머니 뒤로 빠져 수뇌들의 회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그들을 모두 설득할 자신은 없었다. 애초에 여기서 수뇌들을 설득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는다. 무림맹의 장로들. 각 문파의 장문인들.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 아마 걸림돌이 많으리라.

‘어차피 과거부터 무림맹은 이러했지. 처음엔 각 문파와 가문이 나뉘어 의견을 대립한다. 하지만 정파 무림이 진짜 위험에 닥친다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다.’

단목장룡이 생각하는 마교가 번번이 중원 정벌에 실패했던 이유였다.

그것은 정파의 숨겨진 힘이다. 그들은 대의명분이 갖춰지고 뜻이 하나로 모이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그 마교마저도 정벌을 포기하고 퇴각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단목장룡은 원래 정파의 적인 마교 출신이었기에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사파와 마교가 연합할 가능성을 일러 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어차피 회의는 이번이 끝이 아니니까.

그런 단목장룡을 지켜보는 은영전주.

‘단목장룡이라… 잠룡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군.’

이십 대 초반의 나이.

자신이 저 나이대엔 어땠는가? 그것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단목장룡이라는 존재는 남달랐다.

‘하나… 중원 무림에는 찬란한 빛을 내뿜기도 전에 저물어 간 영웅이 많지.’

단목장룡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은영전주는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튀어나온 돌은 깎여 나가기 마련이다. 그가 다른 무인들의 견제를 꺾고 높이 비상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좋은 패를 발견했군.’

은영전주는 그를 잘 활용해 볼 생각이었다.

단목장룡이 무림맹을 이용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 * *

콰앙!

황룡단주가 책상을 내려친다.

오늘 회의에서 단목장룡에게 제대로 당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제 발에 걸려 넘어진 것에 불과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인물은 흔치 않았다. 보통 나쁜 상황에 내몰리면 남을 탓하곤 한다. 황룡단주에겐 그것이 단목장룡이다. 그가 아니었으면, 회의에서 수모를 겪을 일도 없었다.

‘네놈이 언제까지 그렇게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닐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까드득.

중소 문파와 가문을 대변하는 황룡단주의 자리.

무림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 * *

무림맹의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고, 단목장룡의 발언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사마련에서 개최했던 비무 대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가 등장했다는 사실. 그가 화경이라는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은 무림맹을 긴장하게 했다.

화경이 어떤 경지인가?

인간을 초월했다는 경지. 환골탈태로 무공을 펼치기에 최적화된 몸을 갖게 된다. 똑같이 초식을 펼쳐도 초절정과 화경의 차이는 몹시 크다. 그것이 사마련에 새로이 등장한 화경의 고수라도 문제였고, 마교도이면 더더욱 문제가 커진다.

당연히 황룡단주가 주장했던, 소집령으로 전 무림에 힘을 모아 마교도를 공격하자는 의견은 쏙 들어간 상태였다.

무림맹 내에서 연일 회의하고 떠들어 댄다고 해도 딱히 바뀌는 것은 없다. 실천하지 않으면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은영전은 회의를 열어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다.

가장 첫 번째로 마교와 악연이 있는 사파 문파를 분류했다.

대표적으로는 혈세귀막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혈교의 후예라 부른다. 혈교는 아주 오래전 중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의 멸망이 마교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며, 혈세귀막은 과거 한 차례 그들에게 당해 멸문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혈세귀막은 암천회의 세 기둥 중 하나. 그들을 이용해서 사마련을 흔든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사마련주에게 서신을 보내 그들의 의중을 떠보는 중이다. 단목장룡의 말대로 마교와 사파의 합공을 당하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단목 조장의 말대로 무림맹이 움직이고 있군.’

처음부터 그는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흑룡단에 들어갔다.

다른 후기지수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그에게 기대를 걸어 볼 만하지 않을까? 수뇌 회의에서 보여 줬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는 단순히 무공만 강한 게 아니었다.

‘무림맹에 가만히 두고 있을 존재는 아니로군.’

은영전주는 혈세귀막의 일을 단목장룡에게 맡겨 보기로 했다.

* * *

“이거…….”

당옥정이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건넨다.

단목장룡은 어제 혈세귀막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무림맹의 특사로서 혈세귀막에 찾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 당옥정은 단목장룡의 말을 듣고 머리가 멍해졌다.

그녀는 단목장룡을 믿는다. 하지만 그도 인간이었다. 다수의 합공을 받으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거기다가 혈세귀막이라니? 그들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도 만만히 볼 수 없는 문파였다.

당연히 걱정된다.

단목장룡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어쩌지?

다시 보지 못하게 된다면?

당옥정은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를 막을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녀는 무림맹으로 오면서 단목장룡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녀는 애써 미소 지으며 단목장룡에게 말한다.

“내가 만들었어! 폭혈환(爆血丸)이야! 이걸 바닥에 던지면 삼 장 범위에 있는 적들을 중독시킬 수 있어. 사천당문의 최고 절독 중 하나야!”

하나를 만드는 데 재료비만 금자 다섯 냥이 들어간다.

그만큼 귀한 재료로 만들며,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을 당옥정은 설명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녀가 내민 행낭에는 주먹만 한 검붉은 환단이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직접 만든 거야?”

“으응! 이걸 사용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내가 너무 앞서 나가는 건 아니지……?”

“전혀 앞서 나간 게 아니야. 정말 고마워.”

고맙다는 말에 당옥정의 표정이 조금 풀어진다.

그래도 걱정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지만.

그런 당옥정의 손을 확 잡아채는 단목장룡.

당옥정의 눈동자가 크게 뜨인다. 언제 그를 걱정하고 있었냐는 듯이 두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어… 어…….”

“너무 걱정하지 마.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과거에 비밀 임무를 맡은 적이 있잖아?”

“으으응……! 그, 그렇지. 근데 나한테만……?”

“응, 너한테만. 사실은 그때 해남도로 가서 암천제에 참가했었어. 그리고 지금 이렇게 네 앞에 있지.”

그녀의 귀가 쫑긋 움직인다.

“헉! 해남도? 거긴…….”

“거기서 네 비녀를 산 거야.”

“…….”

지금도 당옥정은 곱게 머리를 묶고 단목장룡이 선물한 비녀를 차고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도 예뻤지만, 앙증맞게 머리를 묶은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귀여웠다.

“거기서 또 선물을 사 올게.”

두 눈을 빠르게 깜빡이는 당옥정.

‘어떡하지?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걱정이 되는데… 근데 손이 너무 신경 쓰여…….’

당옥정의 손에 점차 땀이 맺히고 있었다.

단목장룡의 얼굴이 바로 앞에 보인다. 그러다 보니 용봉지회가 끝난 후에 벌어졌던 그 일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당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콩닥콩닥!

그런 당옥정을 보며 단목장룡이 싱긋 미소 짓는다.

그리고 천천히…….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옥정의 머릿속엔 폭풍이 몰아쳤다.

어떤 생각도,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쪽.

그 순간 단목장룡의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닿는다. 그때처럼 입과 입이 마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때보다 더…….

“…….”

“기다려 줄 수 있지?”

끄덕끄덕.

당옥정이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던 중.

당옥정이 단목장룡의 손을 떼어 낸다.

땀이 너무 나서 그의 손을 잡고 있다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더 잡고 싶은 욕망을 겨우겨우 떨쳐 냈다.

“나, 나는 오늘 수련할 게 있어서…….”

“알겠어. 그럼 내일 출발하기 전에 또 들를게.”

“으응……!”

당옥정이 홱 몸을 돌린다.

그리고 경공을 펼쳐 청룡전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 나간다.

당옥정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던 단목장룡.

그녀가 준 행낭에 든 폭혈단을 바라보았다.

‘이거… 아까워서 쓸 수 있으려나?’

독(毒)에 큰 관심이 없었던 단목장룡도 이 물건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부분은 당옥정이 직접 만들어서 선물했다는 점이다.

* * *

‘아앗! 잠이 안 와!’

당옥정이 이불을 팟 걷어차고, 벌떡 상체를 일으킨다.

어제는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오늘은 그 이유가 달랐다.

쓰윽쓰윽.

그녀는 자신의 이마를 문지른다. 아직도 그 짜릿한 감각이 남아 있는 듯하다.

‘…바로 도망가지 말걸.’

이렇듯 놀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단목장룡도 부담스러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의 앞에 서면 아직도 콩닥콩닥 가슴이 뛰는 것을.

‘다음엔 내가 먼저……?’

꺄앗! 당옥정이 이불을 뒤집어쓴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부끄러웠다.

어제는 걱정으로.

오늘은 설렘으로.

그녀는 오늘도 잠에 들지 못했다.

그래도 걱정으로 잠들지 못하는 것보단 훨씬 나으리라.

* * *

혈세귀막.

자신들을 혈교의 후예라 자칭한다.

그들의 무공은 살육에 특화되어 있다. 또한, 그들은 살수의 무공을 전문적으로 익히고 있었다. 그들을 적으로 삼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황천길을 건널 수도 있었다. 사파인들이 가장 적으로 삼기 두려워하는 문파가 바로 혈세귀막이다.

아무튼, 그런 혈세귀막에 한 통의 서신이 도착했다.

이제까지 받아 본 적이 없던 서신이었기에, 혈세귀막주도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막주님, 특사가 누군지 정해졌습니다.”

“그래, 육왕의 누구지?”

혈세귀막주는 특사의 방문을 허락했다.

정파 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인지 궁금하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왕 정도가 온다면, 대화할 수준은 된다.

“그게…….”

머뭇거리는 대주의 표정에 혈세귀막주의 눈이 가늘어진다.

대주는 황급히 대답했다.

“유성검룡 단목장룡입니다. 최근 정파 무림에서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사내입니다.”

“유성검룡?”

“예, 그렇습니다.”

혈세귀막주가 눈을 감았다.

그는 화가 나도 직접 표출하지 않는다. 저렇게 눈을 감을 뿐.

“정파의 치들이 본 좌를 우습게 아는 모양이군.”

“지금 당장 무림맹에 항의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아니.”

혈세귀막주가 눈을 떴다.

“박쥐의 후예들을 풀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박쥐의 후예.

그림자에 숨어 죽음을 선사하는 살수들.

그들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무림맹의 특사라는 놈은, 운남성에서 죽음을 맞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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