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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49화 (149/236)

149화 받들겠습니다

파르르릇!

양주아의 몸이 떨린다. 하지만 눈을 뜨고 그를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단목장룡이 자신을 구원해 준 것이었기에 감사함과 안도를 느끼는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 마교라는 이름은 중원에서 가장 큰 악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단목장룡은 천우생에게 ‘교주님’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양주아는 지금 그의 목소리에서 죽음을 느끼고 있었다.

소리에 민감한 그녀였기에, 그 감각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단지, 폭풍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눈을 질끈 감고 있을 뿐이다.

“으음.”

단목장룡이 말하자 또 몸을 떠는 양주아.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던 단목장룡이 양몽산과 양위군을 바라본다. 그들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심마진결에 진결이 상한 상태였으니 일부러 깨우려고 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리라.

단목장룡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양주아.”

찔끔!

그녀는 몸을 떨 뿐 대답하지 않았다. 기절한 척을 하고 있을 셈인가? 단목장룡의 목소리가 더 깊어졌다.

“일어나라.”

“……!”

양주아의 머릿속에 번뇌가 가득 찼다.

일어나야 하는가? 아니면 이대로 누워 있어야 하는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그녀는 떨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다만, 그와 눈을 마주치진 못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겁을 먹은 거지? 그놈이 내게 교주라고 불렀던 것 때문에?”

“그건…….”

양주아는 그와 천우생의 대화에서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신교의 교주라는 사실은 허무맹랑하다. 그것을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마교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마치 그곳 출신인 것처럼. 단목세가가 마교의 출신인 것일까? 아니면 그는 또 자신을 이용하려 하는 마교도인 것일까? 육합문 또한 중원의 문파인 줄 알았지만, 마교의 끄나풀이었다.

천우생에게 몹쓸 짓을 당할 뻔했던 그녀였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연히 목숨을 구해 준 것은 감사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양주아가 입술을 깨문다.

그런 태도라면 그에게 악감정만 사리라. 지금 판단을 빠르게 해야 한다. 감정이 앞서 일을 망쳐 버린 경우가 한두 번인가? 단목장룡과의 첫 만남에서도 삼현마금을 훔쳐 갔다고 누명을 씌우려 하여 미움을 샀었다.

그런 실수는…….

“구,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단목장룡은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뿐이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그가 피가 잔뜩 묻은 검을 자신에게 휘두를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진 양주아가 허겁지겁 입을 연다.

“저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

“정말로?”

“그게…….”

양주아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외친다.

그에겐 절대 거짓을 고하면 안 된다. 본능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다.

“다 들어 버렸어요! 정말 죄송해요! 제가 소리에 민감하여 그만 기절에서 깨어나고……!”

“그럼 다행이군.”

“네?”

양주아가 고개를 들었다가 그의 눈을 마주친다.

예상 밖에도 그의 눈은 목소리처럼 죽음이 서려 있지 않았다. 만약 단목장룡이 천우생을 죽였던 것처럼 ‘귀기’를 품었다면, 양주아는 졸도했으리라.

“히끅!”

양주아가 깜짝 놀라 다시 고개를 숙여 그의 시선을 피한다.

“너에겐, 아니 양씨세가에겐 받을 빚이 있었지.”

양씨세가의 보물.

삼현마금을 되찾아 준 대가로, 양주아는 그에게 보답하기로 했다. 양씨세가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빚이 더 커졌군?”

“……!”

그는 뭘 원하는 것일까?

설마……?

양주아는 당연하게도 천우생을 떠올렸다. 그는 파렴치하게도 자신의 육체를 요구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겠지만 말이다. 양주아는 긴장했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를 알고 있었다. 사내들이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멀리서 들리지 않을 줄 알고 속삭이는 이야기를 모두 들었었다.

‘단목 공자님이 원하는 것은…….’

하지만.

단목장룡은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같은 맥락일 수도 있겠지만…….

“충성을 맹세해라.”

“네……?”

“수하가 되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양씨세가를 이용하고 버릴 생각은 없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되자는 거지. 다만, 내가 받을 빚이 있기에 그것을 다 갚을 때까지는 내 명령에 따라 주었으면 하는군. 아마 내 제안이 양씨세가에 독이 되는 건 아닐 거야.”

양씨세가가 육합문에게서 얻으려 했던 파천뇌음후.

단목장룡은 그 무공의 진본을 기억하고 있다. 독문의 심마진결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진짜를 말이다.

단목장룡은 그들에게 그것을 내어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마교에서 그것을 이미 양씨세가에 보여 주지 않았는가?

“제안을 받아들일 건가?”

단목장룡의 질문.

양주아는 당연히 그의 말에 반발하지 못했다.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고.

“공자님의 뜻을… 따르겠어요.”

“좋아.”

긍정적인 어투의 단목장룡의 대답.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양주아였다.

* * *

양씨세가.

육합문과의 혼사가 깨졌다는 건 이틀 만에 쫙 퍼진 상태였다. 당연히 양씨세가에겐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가주와 소가주가 목숨을 잃을 뻔했던 것과 양주아가 천우생의 노예가 되어 버릴 뻔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까짓 수치는 별것 아니었다.

단목장룡은 가주 양몽산과 소가주 양위군의 심마진결의 독을 빼내 주었다.

과거의 무위는 당연히 회복하지 못한다. 기연을 만나 환골탈태를 겪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사실 심마진결을 익히고도 살아남은 것이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목장룡은 양주아에게 파천뇌음후의 진본을 주었다.

당연한 선택이다. 그는 양씨세가를 하나의 패로 사용하려 했다. 물론, 이전에 말했던 대로 그들을 이용만 하고 버릴 생각은 아니다.

‘양주아가 양씨세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편하겠지.’

산동성에서 황보세가와 함께 이강(二强)으로 분류되는 명가.

그들을 언제든 부려 먹을 수 있다는 건 단목장룡에게 좋은 상황이었다.

단목장룡은 어차피 마교와의 전면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오늘 일이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면 양씨세가를 비롯한 양주아는 믿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양주아는 당연히 그런 생각을 품을 수조차 없었지만.

‘대체 단목 공자는…….’

꿀꺽.

대체 그의 진짜 정체가 무엇일까? 파고들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그를 마주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본능적인 의문이었다. 그것을 말로 내뱉진 못했다.

양주아가 파천뇌음후를 익히는 것을 보던 단목장룡이 툭 내뱉는다.

“음공은 까다로운 무공인데 재능이 있군.”

“……!”

단목장룡의 작은 칭찬에 양주아의 두 눈동자가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왜 그렇게 놀라지?”

“그게…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그렇다고 너무 기뻐하진 마라. 재능은 재능일 뿐. 갈고닦지 않으면 정체될 뿐이다. 힘을 갖지 못하면 강호에선 당하기만 할 뿐이지. 이틀 전처럼 말이야.”

가슴에 비수가 꽂힌다.

단목장룡의 말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단목장룡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더 쓸 만하게 만들기 위해서. 삼현마금을 가져다주며 언젠간 양씨세가를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써먹어야 한다면, 더 강해지면 좋지 않겠는가? 발전 여부는 그녀의 노력 여하에 달렸지만 말이다.

양주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삶을 적당히 살아가려 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길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모험인지 깨달았다. 작은 폭풍에도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는 그런 생이었다.

다시는 그런 폭풍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이제 과거의 무위를 되찾을 수 없어. 그러니까…….’

자신이 가문을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때.

바깥에서 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주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이제 가지.”

“네엣……!”

양주아는 현을 바닥에 내려놓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목장룡은 그녀의 빠릿빠릿함에 만족했다. 목숨을 구해 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사람도 있다. 양주아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단목장룡의 명을 잘 따르고 있었다.

‘그래도 가문의 실권은 가주가 쥐고 있으니까.’

양몽산에게도 확실히 약조를 받아 내야 한다.

* * *

“단목 공자님,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먼저 아버지와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알겠다.”

양주아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먼저 들어가서 가주와 이야기하겠다는 것일 테다.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었다. 다짜고짜 젊은 무인이 나타나서 충성을 맹세하라고 하면 반발할 테니까. 그들은 심마진결의 고통에 단목장룡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으리라.

“이해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양씨세가가 단목 공자님께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확실히 전달할게요. 당연히 그 마… 에 대한 부분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요!”

“그래, 믿고 기다리지.”

양주아의 눈망울에 결의가 가득 찼다.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하고, 단목장룡의 심기를 건드리면 그야말로 파국이다. 양씨세가는 멸문의 길로 떨어지리라.

그녀가 삼현마금을 꽉 쥐고, 가주전으로 들어갔다.

* * *

“꽤 빠르군?”

퉁퉁 부은 눈으로 옅은 미소를 짓는 양주아.

이틀 만에 볼살이 쑥 빠지고 피부의 생기를 잃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그것은 양씨세가의 가주인 양몽산도 마찬가지였다.

양몽산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무공의 욕심에 파멸하려 했던 자신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려 한 딸의 모습이었으니까. 무사히 살아 있는 딸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이 흘러나왔다.

죽음의 문턱을 밟으면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고 했던가?

그것은 양몽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양주아의 말에 전혀 토를 달지 않았다.

단지 딸이 무사하다는 것에 감사했을 뿐. 양씨세가를 구원한 사람이 단목장룡이라는 것을 들었을 땐, 조금 놀랐을 뿐이다.

양주아는 혹여나 아버지가 단목장룡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할까 봐 걱정했지만, 양몽산은 욕심에 눈이 멀었을 뿐 그토록 어리석진 않았다. 삼현마금을 되찾아 주고, 딸의 목숨을 살려 준 은인이라면 그의 요구는 정당했다. 거기다 마교의 그 빌어먹을 독까지 치료해 줬다지 않은가?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방으로 들어가니 양몽산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 지금 움직이시면……!”

“쿨럭! 괜찮다. 은인께 인사를 드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기어코 홀로 자리에서 일어난 양몽산.

그가 단목장룡에게 고개를 숙인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딸을 구해 주시고, 양씨세가를 구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단목장룡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 상태도 좋지 않으신데, 누워 계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은인의 앞에서 어찌 누울 수… 쿨럭! 앉아만 있겠습니다.”

단목장룡은 더는 권하지 않았다.

양몽산과 단목장룡이 마주 앉았다.

“주아에게 모두 들었습니다……. 본가는 단목세가의 휘하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가주의 선언.

그것은 거대한 무게를 지닌 약조였다.

하지만 단목장룡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단목세가가 아닙니다.”

“예……?”

당연히 세가와 세가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으로 생각한 양몽산이었다.

“단목세가가 아닌, 제 명령을 따라 주시면 됩니다.”

“…받들겠습니다.”

가주 양몽산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일가의 가주가 주군을 모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다. 양몽산은 이미 그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마교의 계략에 휘말려 가문을 날려 먹을 뻔했던 가주였기에 반발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까지 모자란 사람은 아닌 듯하다. 단목장룡이 만족했다. 이 정도면 파천뇌음후를 알려 준 보람이 있었다.

“쿨럭! 이제부터 말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거부할 이유는 없다.

“그러지.”

기묘한 침묵에 휩싸인다.

사실 양몽산이 각오를 다졌다고 하더라도, 이렇듯 주군을 모신다고 선언한 것은 처음이다. 그가 어떤 것을 명할까?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명을 따르겠지만,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육합문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었으니까.

단목장룡은 자신의 진정한 목적을 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진 단지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았을 뿐이다. 이젠 주군이 무엇을 바라보는지 명확히 제시해야 했다.

“내 목적은 천마신교… 아니, 마교를 세상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다. 양씨세가가 나를 도왔으면 한다.”

“마, 마교를……!”

“……!”

두 사람의 눈동자가 커진다.

양몽산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띤 채로 말한다.

“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주공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의 목적은 양씨세가와 닿아 있었다.

양씨세가 혼자였다면 감히 복수 따위는 꿈꾸지 못했으리라.

눈앞의 사내.

단목장룡을 따른다면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단목장룡을 바라보는 양주아는 생각했다.

‘대체 단목 공자님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의 출생에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어쩌면 환골탈태한 고수가 아닐까? 마교 교주의 숨겨진 아들이 아닐까? 온갖 추측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지만, 그것을 주공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다.

그녀의 상상은 점점 커져만 갔다.

* * *

“죄송합니다. 육합문과 지룡문이 당했습니다.”

흑의인의 보고에 백발의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표정에 흑의인이 긴장했다. 짜증이 섞인 표정 속에서도 우아한 기품과 위엄이 흘러넘친다.

“배후는 알아냈고?”

“죄송합니다! 아직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흑의인이 깊게 허리를 숙인다.

백발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흑의인의 등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러 나와 무복을 적시고 있다. 언제든 날아갈 수 있는 목숨. 살아남으려면 증명해야 한다, 존재의 가치를.

“백혈단 천급 대대를 출진해 알아내도록…….”

“됐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어차피 대계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굳이 지금 정파 노인네들의 신경을 건드릴 필욘 없지.”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가 봐.”

“충!”

흑의인은 백발 사내에게 극진한 예를 표하고, 방을 떠나갔다.

그의 머릿속엔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만이 가득 찼다.

“후우, 그냥 다 쓸어버리고 싶지만… 조금만 참자. 곧 지옥도가 열릴 것이니.”

푸르스름한 달빛이 창을 통해 백발 사내를 비추고 있다.

그래서일까?

달을 마주한 사내의 눈에서 미약한 귀기가 일렁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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