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나락
파천뇌음후.
이것은 확실히 진본이 틀림없었다. 양씨세가의 천지암혼곡이나 천지회생지곡과는 결을 달리하는 무공이다. 더 뛰어난 무공?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더 파괴적인 음공이라 말할 수 있었다. 파천뇌음후. 그 이름과 같이 소리로 상대를 찢는다.
파천.
하늘을 부순다는 그 이름처럼 이 무공을 익히면, 효율적으로 적을 격퇴할 수 있으리라.
양씨세가의 가주 양몽산은 무공서가 손에 들어온 날부터 그것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미 음공에 조예가 있었던 그는 비교적 빠르게 그것을 익혀 나갔다.
‘대단하다! 이런 무공이 양씨세가에 들어오다니……! 드디어 선조님들의 한을 풀 수 있다!’
양몽산은 희열에 가득 찼다.
익힐수록 파천뇌음후라는 무공에 매료되었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수련에 모든 시간을 쏟아 냈다. 당연히 성취가 빨랐다.
그는 이미 음공의 대가였다.
결이 다르다고 한 것은 ‘소리’를 활용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지, 결국 소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양몽산의 성취는 하루하루 깊어져 갔다.
그렇게 파천뇌음후를 익히고 칠 주야가 지났을 때.
악기의 현을 퉁겨 물체를 쓰러트릴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실제 전투에서는 그리 위력적이지 못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더욱 경지에 오른다면, 악기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적을 베어 버릴 것이다.
‘이게 고작 이 성의 경지란 말인가!’
만약 이것을 대성한다면?
무인에겐 꿈의 경지라 할 수 있는 화경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으리라!
당연히 양씨세가는 난리가 났다.
장로들과 양몽산의 형제자매 그리고 자식들까지.
그들 또한 음공에 욕망이 있었기에 파천뇌음후를 익히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양몽산은 그들에게 파천뇌음후를 허락하지 않았다. 무공이라는 것은 희소성이 있기에 가치가 생겨나는 것이다. 무당의 장문인만 익힐 수 있다는 무당파의 태극신공을 개나 소나 익힐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뭐 따지고 들면 장문인에 오를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자만이 태극신공을 익힐 수 있지만, 일단 익히는 이가 극소수였기에 비급이라 불리는 것이며 절세 무공이라 추앙받는다. 비급이라는 것은 그러한 존재였다.
파천뇌음후는 오롯이 가주만이 익힐 수 있게 정해 뒀다.
양씨세가의 장로들은 섭섭하긴 했지만 그 말이 맞았기에 가주에게 더 청하지 않았다. 단지, 깨달음을 얻은 가주가 파천뇌음후로 얻은 심득을 나눠 주길 바랄 뿐.
가주만 익힐 수 있다면, 양몽산을 제외하고 딱 한 사람만이 익힐 수 있다.
바로 양씨세가의 첫째인 양위군.
이 성에 접어든 가주는 아들인 양위군을 급히 불러들여, 그것을 같이 익혀 나갔다.
음공에 대한 재능은 양주아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니다. 양위산이 이것을 익힌다면 자식 중에서 최고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이리라.
두 부자는 열심히 파천뇌음후를 익혔다.
가주의 개인 연공실에 틀어박혀 무공 수련만 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무공 실력에 감격하며 심취했다.
그것이 양씨세가를 파멸로 이끄는 맹독이란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로…….
* * *
“아버지.”
양주아가 연공실 문 옆에 만들어진 종을 친다.
하지만 내부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수련에 심취한 것일까?
아버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던 양주아.
두 시진이 지나자 양몽산과 양위군이 연공실에서 나왔다. 왠지 모르게 수척해진 두 사람이다. 너무 무공 수련에 심취한 것이 아닌가?
“크으으음! 무슨 일이더냐!”
양몽산이 날카로운 말투로 외친다.
양주아는 조금 섭섭했다. 그녀는 파천뇌음후를 익히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경계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은요. 제가 일이 있어야만 아버지를 찾아오나요?”
“바쁘니 찾아오지 말아라! 여봐라, 식사를 내오너라!”
“예, 가주님.”
두 부자가 나란히 앉아 상 위의 음식을 싸우는 듯 입에 털어 넣는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솔직히 양주아는 조금 심란했다. 아무리 정략혼을 할 걸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다. 마음이 맞아 혼인하는 이들도 그러할진대 양주아는 오죽하랴?
아버지는 그녀에게 정신적인 버팀목이나 다름없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양주아가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었으며, 소홀히 대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파천뇌음후를 익히고 난 뒤부터는 뭔가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았다.
“아버지, 저기…….”
“콜록! 콜록! 식사를 더 내와라!”
“예, 가주님.”
그들은 걸신이라도 들린 듯이 고기 위주의 반찬을 입에 쑤셔 넣었다.
경박하기 짝이 없다. 양씨세가는 명문이다. 식사 예절 또한 어릴 때부터 교육받는다. 양주아는 직접 양몽산에게 그것을 배웠다. 체통을 지키는 것이 명문가의 미덕이라 여겼던 아버지가 달라졌다.
“아버지, 대체 왜 그리 급하게…….”
“콜록! 콜로오옥!”
양몽산이 미친 듯이 기침하기 시작한다.
옆에서 식사하던 양위군도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거칠게 기침했다.
“아버지……?”
무언가 이상하다.
“콜로오옥! 코로록-! 우에에엑!”
두 사람이 바닥에 땅을 짚는다.
발작하듯 몸이 떨리고 있었으며, 이제껏 먹은 음식들을 토해 냈다. 더러웠지만, 양주아는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더니 갑자기 왜 저러는 것인가?
“아버지! 괜찮으세요? 오라버니는 또 왜!”
양주아가 두 사람의 등을 두드려 준다.
상식적으로 급하게 식사하다 체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는 상황에 양주아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두 사람의 등을 두드린다. 그들은 가족이다. 처음 들어왔을 때 섭섭하게 말했던 것은 이미 그녀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큰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반대로.
두 사람은 이제 먹은 음식이 아닌, 피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검붉은 피.
이건 단순히 체한 것이 아니다.
설마 독에 당하신 건가? 양주아는 머리가 새하얗게 질린 채로, 벌떡 일어섰다. 당장 의원을 불러와야 한다. 양씨세가엔 당연히 상주하는 무림의가 있었다.
“의원을……! 의원을 불러와!”
그녀는 방문을 나서며 외쳤다.
하지만 가주전을 지키고 있어야 할 호위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긴 했다.
단지 바닥에 누워 있었기에 없는 것처럼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뭐야! 대체!”
양주아가 달려 나가려고 할 때.
“양 소저……! 왜 그러십니까!”
천우생이 나타났다.
평소엔 정이 가지 않는 사내였지만, 지금은 구세주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천 공자님……! 얼른 의원을 불러와야 해요! 아버지가… 아버지가……!”
“가주님이?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갑자기 피를 토하셨어요! 평소보다 훨씬 많이 드시더니… 전 체한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뭔가 이상해요! 얼른 의원을!”
양주아가 달려가려 할 때.
천우생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양주아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뿌리치려 했지만, 우악스러운 그의 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뭐 하시는 거죠? 놓으세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지금 무슨 소릴!”
“왜 가주의 호위 무사들이 쓰러져 있을까요?”
“……!”
양주아의 몸이 흠칫 떨린다.
한기가 느껴진다. 분명히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등골이 오싹해진다. 피부에 소름이 돋아났다. 지금 천우생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이성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본능은 진실을 깨닫는다.
“당신……?”
“들어가서 같이 보도록 합시다. 제가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이거 놔앗!”
여리여리하면서도 심약해 보였던 천우생.
그를 볼 때마다 느꼈던 불쾌함은 이것 때문이었을까? 완전히 달라진 그의 표정에 양주아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우웨에엑!”
“우우욱!”
이제는 토해 낼 피가 없다는 듯이 헛구역질을 하는 두 사람.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은 샛노랗게 변해 있었다. 가족의 처절한 모습을 보는 양주아의 두 눈망울에서 눈물이 터져 나온다.
“놔아아! 아버지가! 오라버니가!”
짜아악!
털썩!
어찌나 강하게 따귀를 후려쳤는지, 양주아의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 거기에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얘들아.”
“예, 대주님.”
활짝 열린 문. 그 밖으로 거무튀튀한 복면인들이 에워싼다. 양주아는 초점이 어긋난 시야를 정상으로 되돌리고자 눈을 비볐다. 가늘게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본다. 철저하게 군기가 잡힌 자세로, 스산한 눈동자만 내보인 채. 괴한들이 서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육합문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가문의 장로분들이 알게 되면 너희는……!”
“크흡……!”
양주아의 고개가 돌아간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것은,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웃음을 참고 있는 천우생이었다.
“킥킥, 양씨세가의 장로들? 그 허약한 노인네들이 뭘 할 수 있는데? 으응? 으으으응~?”
놀리듯이 말하는 천우생.
이제까지 그녀가 알던 사내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 이……!”
“아직 사리 분별 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말해 줄게. 잘 들어, 양 소저.”
천우생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양주아는 그의 손을 쳐 내려 했지만, 천우생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머리카락이 다 뽑힐 정도로 아프다. 인정사정이 없었다.
“우리가 정말 육합문도라고 생각해?”
“그게 무슨…….”
“잘 들어 봐. 파천뇌음후 같은 절세 무공을 네까짓 년이랑 혼인하는 데 홀랑 바친다고? 그런 문파가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전부 병신이라 말할 거야. 안 그래?”
“…….”
양주아는 입을 열지 못했다.
분명히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파천뇌음후의 사본을 본 아버지와 장로들이 환호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그 의심을 지워 버렸다.
“일단 우리는 병신이 아니야. 키키킥……. 그럼 누가 병신일까~?”
“대체 너희는 누구…….”
“잘 물어봤다. 우리가 누구지?”
천우생이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바깥의 복면인들이 동시에 광기에 찬 듯한 목소리로 외친다.
“만마앙복(萬魔仰伏)! 군마영세(群魔永世)!”
우우웅-!
방 안에 있던 집기들이 그 소리에 맞춰 진동했다. 내력이 담기지 않은 단순한 외침. 하지만 마치 소리에 기를 담은 음공과도 같은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혈관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
양주아의 떨림이 뚝 멎었다.
공포의 극에 달하면, 오히려 정상처럼 보인다고 하던가? 그녀는 지금 어떤 반응을 내보일 수도 없었다.
“마… 교……?”
짜아악!
다시금 따귀를 후려갈기는 천우생.
그가 말한다.
“마교가 아니라 천마신교다.”
“……!”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살리고 싶어?”
천우생이 무언가를 꺼낸다.
백색의 환단.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것을 복용하면 된다. 아, 물론… 달에 한 번은 복용해야 한다. 복용하지 않으면, 세맥이 터져 주화입마에 빠질 테지. 심한 경우엔 그냥 죽을 수도 있을 거야.”
“대체 무슨 목적으로……? 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커흑… 주아야…….”
“콜록! 콜록!”
검붉은 피를 토해 낸 두 사람.
양몽산과 양위군이 파들파들 몸을 떨고 있었다. 이제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네가 선택하는 거다. 이 환단을 내게 받아 두 사람을 살리든지… 아니면 모두 죽든지. 키키키킥…….”
평소 자신을 얕잡아 보던, 무시하던 양주아의 눈빛이 사라졌다.
공포와 번뇌에 물든, 선택을 강요받은 가녀린 여인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다. 그녀의 머리를 열어 생각을 읽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천우생은 그녀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녀를 절망에 빠트릴 일은 더 남아 있었으니까.
“그걸 먹으면…….”
“응?”
“그걸 먹으면 아버지는…….”
“아, 당연히 살 수 있지. 그리고 무공의 수위도 한층 더 높아질 거야. 이것도 어찌 보면 영약이거든. 양씨세가가 원하는 파천뇌음후도 익히고 목숨도 부지하고. 정말 좋은 기회 아닌가?”
양주아의 시선이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로 향한다.
두 사람은 아래턱을 달달 떨며 양주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통 때문인지 말을 내뱉지도 못한 채로.
“하지만 그냥 줄 순 없지.”
“……!”
마치 양주아가 그랬던 것처럼.
천우생이 그녀에게 밀고 당기기를 시도한다.
“소중한 가족을 살리고 싶으면 해 줘야 할 것이 있어.”
덜컥 겁이 났다.
그가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머저리 같은 네년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추잡하게 다리를 벌렸으면 하는군. 이번 단약의 제공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처음은 어렵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한다. 천천히 그녀를 개조해 나갈 것이다. 활용하기 좋은 패로, 써먹기 좋은 무기로.
“……!”
천우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단번에 깨달았다.
부끄러움? 그딴 감정은 들지 않는다.
단지…….
절망이 닥쳐올 뿐이었다.
아랫입술을 깨문 양주아의 얼굴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천우생.
짜릿함이 척수를 타고 흐른다.
“키킥…….”
“난… 나는…….”
양주아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바라본다.
무언가 결심한 듯.
양주아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참, 병신같이도 바꿔 놨군.”
찌지직-.
양몽산이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파천뇌음후. 둘도 없는 무공 비급이 찢어지고 있다.
“……?”
뭐지? 대체 언제?
가주전은 이미 백혈단이 포위하고 있었다. 저 사내는 어디서 튀어나온 것이란 말인가? 땅에서 솟기라도 했단 말인가? 천우생은 순간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그 크기도 작고 쓸모도 없는 건 집어넣지?”
사내의 언어 폭행에 천우생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도 바보는 아니다. 백혈단을 뚫고, 천우생의 감각을 속이고 가주전에 들어왔다. 그것도 모자라, 파천뇌음후를 읽어 보기까지 했다고? 이게 말이 되나?
그리고 더 말도 안 되는 것은…….
‘대체 왜…….’
분명 처음 보는 사내일 것이 분명한데도.
마치 ‘그분’의 존안을 뵙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말도 안 된다!
기어코 천우생이 말을 내뱉는다.
“네놈은… 대체… 누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