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살짝 드러난 꼬리
설비연과 남궁일몽 두 사람이 단목장룡의 곁으로 다가온다.
남궁일몽이 열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다.
“단목 조장님, 정말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궁일몽이 뭘 원하는지 표정에서 드러난다.
“비무 말입니까?”
“예, 이번엔 단단히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그의 말대로 남궁일몽은 단목장룡을 기다려 왔다. 그를 호적수로 생각하는 남궁일몽은, 언젠가 그를 뛰어넘기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무공 수련에 쏟아 왔다. 동시에 자신의 조를 키우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재능이 있는 조원들을 들여 그들에게 무공을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남궁일몽은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고수가 하수를 가르칠 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개념을 풀어서 늘어놓아야 한다. 더 이해하기 쉽도록. 걷는 법을 설명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걷는다는 행위는 다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행할 수 있다. 하지만 다리는 있지만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한 이들에게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남궁일몽은 그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천룡각에서부터 다른 이들에게 훈수 두는 걸 좋아했지만, 적당히 핵심만 설명하면 알아서 잘 터득한다. 하지만 전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본래 천재라 불렸던 남궁일몽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짧은 기간 동안 나는 계속 발전했다. 임무에 나갔던 단목 조장님보다는 무공을 발전시키기에 최적의 기회를 가졌지. 이젠 내 검이 닿을 것이다.’
물론, 자만하지 않았다.
단목장룡은 남궁일몽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호적수. 절대 쉽게 당하진 않으리라.
“저와도 당장 비무를 하시지요. 당 소저와 비무하며 몸을 푸셨을…….”
그러자 설비연의 눈썹이 꿈틀한다.
주공인 단목장룡을 호적수로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궁일몽의 재능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주공과는 비교할 수 없다. 거기다가.
“이제 막 돌아오신 단목 조장님께 비무요?”
“그게 설 조장님과 무슨 상관입니까?”
“당연히 상관이 있습니다.”
“어떤…….”
설비연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단목 조장님, 임무를 위해 떠나 계시는 동안 마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반가워 미소를 짓던 단목장룡.
그의 표정이 진중하게 변한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남궁 조장님, 비무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요.”
남궁일몽이 잔뜩 실망하며 설비연을 흘겨본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되지 않은가? 시원하게 비무를 끝내고, 정갈한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단목장룡이 저렇게 말하는데 비무부터 하자고 졸라 댈 수도 없는 노릇.
“예… 어쩔 수 없지요.”
세 사람은 단목장룡의 방으로 들어갔다.
설비연이 기다렸다는 듯이 종이 뭉치를 탁상에 올려놓는다.
“사실 마교의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중원이 워낙 넓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비선당의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여 의심되는 정황을 몇몇 발견했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짧은 칭찬에 불과했지만, 설비연은 뿌듯한 마음에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모시는 주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본가의 정보가 없었다면 그것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 아닙니까?”
찌릿.
설비연의 눈빛에도 전혀 움찔하지 않는 남궁일몽.
“남궁 조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남궁일몽이 미소로 화답한다.
“뭐, 이 정도야 기본이지요.”
남궁일몽이 으스대고 있을 때, 설비연이 잽싸게 말한다.
“첫 장을 살펴보시면, 제가 요약하여 정리한 부분이 있습니다. 읽어 보십시오.”
단목장룡이 종이를 읽어 나간다.
설비연은 최근에 갑자기 세를 넓히는 문파를 주목했다. 이제까지 전혀 주목받지 못하다가, 갑자기 성장한 문파나 가문. 어쩌면 그 뒤에 마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과거의 마교라면 그런 번잡한 짓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암천회에 손을 뻗은 것을 볼 때 마교도 달라진 것이 분명하다.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문파나 가문 뒤에 꼭 마교가 있으란 법은 없지만,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으니까. 순찰당과 비선당과 협조하여, 혹은 설비연이 직접 움직여 알아낸 정보들이 요약되어 정리되어 있었다.
‘육합문, 지룡문. 그리고… 양씨세가인가.’
육합문과 지룡문은 마교와 손을 잡은 것이 확실하다는 게 설비연과 남궁일몽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양씨세가는 확신하진 않지만, 의심된다고 적혀 있다.
“육합문은 감숙성에 있고, 지룡문은 사천성인가?”
단목장룡의 물음에 설비연이 대답한다.
“예, 맞습니다. 두 문파 모두가 근 삼십 년간 중원 무림에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대규모로 제자를 모집하고 있으며 상당한 수준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습니다. 분석해 본 결과 과거 멸문한 문파들의 무공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교에 의해서 말입니다.”
“멸문한 문파의 무공이라는 건 어찌 안 겁니까?”
“그건…….”
설비연이 설명하려 할 때, 그것을 남궁일몽이 가로챈다.
“남궁세가의 정보력은 어떤 부분에선 맹보다 더 뛰어난 부분이 있습니다. 무림맹은 정파의 권역을 모두 살피고 있으니 말입니다.”
“역시 남궁세가의 정보력이 대단하군요.”
“하하, 아닙니다.”
남궁세가.
그러고 보니 그에게 방구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건 비무하기 전에 말하면 되겠군.’
단목장룡은 설비연의 설명을 들으며 정보를 읽어 나간다.
‘육합문과 지룡문의 성장 속도는 정말 놀랍긴 하군. 확실히 뒤에서 지원하는 다른 세력이 없다면 본래 그들이 가졌던 저력으로는 불가능해. 그리고 양씨세가라…….’
앞서 언급한 두 문파와는 달리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가문이다.
사실 단목세가와 비교해서도 그리 부족하지 않은 가문이다. 그런데 마교와 손을 잡았다? 설비연이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확실하진 않다고 했다.
‘양씨세가에 받을 빚이 있었지.’
무영신투 방구가 훔쳐 갔던 삼현마금을 되찾아 주었던 적이 있다. 사실 그들에게 큰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언젠간 써먹을 때가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만약 마교와 손을 잡았다면…….’
단목장룡의 생각이 깊어진다.
그가 몇 번째 장을 읽는지 살펴본 설비연이 말한다.
“양씨세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감숙성의 육합문과 교류가 많기에 의심한 것이고, 지금 한참 알아보는 중입니다만…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문파라 지룡문과 육합문처럼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알겠습니다. 양씨세가에 대한 것은 추후에 논의하도록 하지요.”
“예, 그리고 이것도 있습니다.”
설비연이 또 다른 종이 뭉치를 꺼내 놓는다.
“이건?”
“개방에서 얻은 정보입니다. 광동성 광주에서 큰 비무 대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인들이 참가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제대로 실력을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보여 준 신위가 상당했다고 하더군요.”
“광동성 광주라면…….”
“예, 사마련이 있는 곳입니다.”
사마련.
정파에 무림맹이 있다면, 사파엔 사마련이 있다. 해남도로 가면서 광동성을 거치긴 했지만, 광주엔 발을 들이지 않았다. 무림에 정체불명의 고수가 등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것이 사마련이 있는 광주라는 게 주목할 만한 점이다.
“특히 가면을 쓴 자의 실력은… 거의 사파의 오성(五星)과 비견될 만했다더군요. 소문이라 완전히 믿을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오성.
그러니까 현재 무림에서 인간의 한계라 불리는 경지에 오른 이들을 말한다. 정파에선 그들을 육왕이라 칭하고 있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자들. 설비연의 말처럼 소문이기에 무조건 믿을 순 없겠지만…….
‘혈우검마.’
혈우검마가 떠오른다.
십 년 전, 그는 단목장룡을 죽일 때 화경의 경지에 접어들었다. 마교에는 화경에 이른 자가 최소 세 명이다. 화경이라는 경지가 흔한 경지는 절대 아니다. 그 넓고 넓은 중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림인 중 열 명 정도였다. 그런데 단일 세력에 세 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기다.
거기다 화경에서도 분명히 그 급(級)은 나뉜다.
천마신교의 교주.
그의 실력은…….
“가면을 쓴 자의 체형에 대한 정보는 있습니까?”
단목장룡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자신의 목을 베어 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다.
하지만 설비연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예상을 깼다.
“키가 그리 크진 않았으며, 호리호리한 체형이라 하더군요.”
혈우검마는 타고난 장사였다.
당연히 근육이 몸을 뒤덮었으며, 덩치가 대단했다. 그런데도 날렵하게 움직이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으니.
‘혈우검마는 아니군.’
아무튼, 사마련과 마교와 연이 있다면…….
‘확실히 문제가 된다. 지금의 신교는 내가 알던 신교가 아니다. 확실히 많이 바뀌었어.’
마교라면 응당 무림일통을 꿈꾼다.
하지만 뒤에서 계책을 펼치고 누군가를 회유하여 동료로 삼는 방식은 절대 아니다. 힘에 의한 굴복. 강자존을 숭배하는 마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사마련에 대한 정보는 특급 수준의 비밀이라 더 캐낼 순 없었습니다. 거기다 정파와 사파는 평화 조약을 맺은 상태라, 대놓고 그들의 정보를 캘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설비연이 분한 기색으로 말한다.
그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혀 죄송할 게 아닙니다. 제한적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마련에 대한 정보는 개인적으로 제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단목장룡과 설비연이 눈을 마주친다.
두 사람은 남들에게 알리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설비연은 암천회주의 배려로 새로운 눈을 얻게 되었고, 단목장룡은 천향옥로단이라는 희대의 기물을 꿀꺽했다.
두 사람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눈빛으로 대화하자 남궁일몽이 말한다.
“두 분 사이에 뭔가 비밀이 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단목장룡과 설비연이 동시에 답하자 남궁일몽이 뚱한 표정을 짓는다. 같이 해남도로 임무를 떠나서 그런지 확실히 두 사람의 관계가 끈끈해 보였다. 뭐, 남궁일몽은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좋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까지 성과가 있을 줄은 몰랐군요.”
단목장룡의 칭찬.
그것만을 기다려 온 설비연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또, 이것은 그녀의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서이기도 했으니 일석이조라 할까?
남궁일몽도 기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칭찬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제 비무를……?”
드디어 비무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단목장룡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일단 해당 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지요.”
“예,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생각했던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설비연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고, 남궁일몽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 나갔다.
* * *
청룡전.
무림맹 내성 서쪽에 위치한 청룡전은 무림맹의 네 전투단 중 하나인 청룡단이 기거하는 곳이다. 새로이 청룡단의 단원이 된 당옥정은 모든 일에 열심히 임했다. 이곳에선 사천당문 출신이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닌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오대세가 출신이었으니까.
당옥정은 가주의 직계이기에 다른 이들보다 조금 나을 수는 있겠지만, 그녀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사천당문에서 오냐오냐 자란 것을 자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했다.
누군가의 옆에 서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한다.
당옥정은 부끄럽지 않고 싶었다.
오늘도 그녀는 청룡단의 일을 끝마치고, 천룡단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여러 선배들이 있었다.
당옥정은 특유의 명랑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후다닥 달려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오, 옥정이구나. 오늘도 수련이냐?”
“네!”
“요즘 너 같은 후기지수는 보기 드문데 말이야. 정말 열심히로군. 보기 좋다.”
“아니에요. 부족하니 더 열심히 해야죠!”
흐뭇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선배들.
그리고 그중 특히 눈을 빛내는 사내가 있었다.
‘저렇게 예쁠 수가……? 저게 말이 돼?’
모용상.
삼십오 세의 나이였지만,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모용세가의 일원이다. 무림맹, 거기에 청룡단의 일원이었으니 실력은 확실했다. 다만, 아직 혼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눈이 높아서였기에 안 한 것이라 봐야 할까?
그런 모용상에게 당옥정은 하늘이 내려 준 배필이나 다름없었다.
요즘 당옥정이라는 이름 석 자가 많이 들려왔기에 얼마나 예쁜지 확인할 겸 연무장에 왔는데,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뛴다.
‘무림오화가 괜히 무림오화가 아니구나.’
모용세가에도 무림오화가 있지만, 여우 같은 성정을 극도로 혐오하는 모용상은 모용란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자고로 여자란 청순하고 순수한 풀잎 같은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평소 주장하던 모용상이다.
당옥정이 바로 그의 이상형이나 다름없다.
“크흠, 네가 당옥정이더냐?”
“예, 선배님!”
“난 모용상이라고 한다. 일검대의 대주지.”
“아, 모용 선배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래, 그래. 사천당문 출신인데 검을 잡았더냐?”
“네, 검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서요.”
“오호라, 신기하군. 어때? 나랑 비무하지 않겠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조언을 해 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무공을 알려 주며 그녀와 가까워질 생각을 한 모용상.
당옥정은 당연히 승낙이다. 청룡단에 있으며 많은 이들과 비무해 경험을 쌓았다. 더군다나 모용세가의 검법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모용란. 용봉지회에서 그녀를 이겼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네, 선배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비무장으로 떠나는 두 사람.
그리고 몇몇 청룡단원들이 시선을 마주치며 싱긋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막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모용상은…….
순진한 얼굴 뒤에 숨겨진 당옥정의 실력을 잘 모르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