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인과응보
“초진을 펼쳐라!”
천련반야진은 다수가 소수를 압박할 때 효율이 좋은 진법이다. 같은 내공심법을 익힌 나찰마궁의 궁도들의 기운이 조화되어 호응한다. 진에 갇힌 이들은 기세에 눌려 쉽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진에 갇힌 이들은 물속에 빠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땅 위에서는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깊은 물에 빠지면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잔잔한 연못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진 진에 갇히면 거센 물결이 치는 강 한복판에 빠진 듯이 휩쓸려 버리고 만다.
먼저 단목장룡이 궁도 몇을 베어 버렸다고 한들, 오십에 가까운 무인이 남아 있었다. 거기다 천련반야진을 이끄는 것은 굉월 존자였다.
“합!”
천련반야진을 펼치는 궁도 중 절반이 합장하며 외부로 내력을 방출한다. 그 기운은 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중앙으로 향했다. 단목장룡을 압박하는 것이다.
나머지 반은…….
“현무개천(玄武開天)!”
두 주먹을 들어 올리고 천천히 단목장룡에게 다가간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주먹을 맞는다면, 아무리 수준의 차이가 큰 고수라도 당하기 마련이다. 반탄지기라는 것도, 결국 내공에 기반한다. 오십 명에 달하는 무인의 내력보다 절대적으로 많을 수가 없다.
진을 지휘하는 굉월 존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단목장룡은 처음 한 걸음을 뗀 뒤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천련반야진의 압박감 속에서 당황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감히 소림을 들먹여?’
망발을 내뱉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궁도들의 주먹에 근육이 터지고 뼈가 부서질 것이다.
“공!”
굉월 존자의 외침에 궁도 여섯이 단목장룡의 지척에 도달했다.
“하아아압!”
그리고 자줏빛 기운이 넘실대는 주먹을 내지른다. 몇몇 주먹은 피하거나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후방의 공격까진 막아 내지 못하리라. 더군다나 천련반야진의 힘으로 중심부에 진입한 궁도들에게 끊임없이 내력이 전달되고 있었다.
평소의 실력보다 훨씬 많은 내력이 담긴 권격이다.
“죽여라!”
놈은 천련반야진의 물살에 휩쓸려 침몰하고 말 것이다.
굉월 존자는 그렇게 되리라 확신했다.
우웅-!
파라아아아앗!
중심부에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기파. 그의 몸에 닿으려 했던 궁도들의 권격은 물론이거니와 합장을 하며 내부로 기를 쏟아 내던 궁도들까지.
모두가 몸을 휘청였다.
“커헉!”
몇몇 수련이 부족한 이들은 입과 코에서 피까지 토해 냈다.
“무슨!”
굉월 존자는 그나마 상태가 나았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천련반야진의 기운을 몰아냈다고……?’
말도 안 된다.
한 사람의 내력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설령 오 갑자에 달하는 나찰마궁의 소궁주라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천련반야진은 차근차근 풀어야 할 매듭이다. 진이라는 것은 절대 이런 식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역시 너희의 내공은 잡스럽군.”
“뭐……?”
“말 그대로다. 열심히 소리를 치는 모습이 가상해서 조금 놀아 주려 했지만, 흥이 깨졌다.”
“헛소리! 기의 운용을 멈추지 마라! 더 압박해라!”
“합!”
천련반야진의 기세가 강해진다. 보통의 무인이었다면 이 돌풍과도 같은 기세에 무릎을 꿇고 말았겠지만, 단목장룡은 아니었다.
‘제법 쓸 만한 진법이긴 하다. 하지만…….’
단목장룡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커헉!”
오십 명에 달하는 궁도들이 고통 어린 신음을 터트리며 뒤로 물러섰다. 기의 싸움에서 밀린 것이다. 분명히 오십 명이 한곳에 집약한 기운은 거대한 산과 같았다. 지금 형국은 작은 바위가 거대한 산에 대항하는 상황이었지만, 어이없게도 산이 뒤로 물러서고 만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핵심만 말하자면.
해우심법의 정순한 기운.
단목장룡의 몸에 깃든 천향옥로단.
그의 몸에서 잘게 떨리는 옥팔찌.
그리고 단목장룡은 그 기운을 모두 활용하여, 거대한 산을 밀어내고 있었다.
“불영성수(佛影聖守)! 태세를 전환하라-!”
단목장룡을 직접 타격하려던 이들까지 모두 뒤로 물러서 합장하여 내공을 발출한다.
거기에 굉월 존자까지 단전에서 내력을 모두 끌어낸다. 작은 속삭임이 모이면 하나의 소음이 된다. 천련반야진의 거대한 소음은 서로 어울리며 중앙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아아압!”
코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려 대는 이들이 모두 눈을 감는다.
기의 운용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우우우우우-!
공간이 뒤틀리는 듯이 울린다. 거대한 기의 충돌 때문이다. 과도한 기의 집약으로, 밀리는 쪽은 그대로 격류에 휩쓸리고 말 것이다.
단목장룡이 뇌왕검을 뽑는다.
그의 검에는 은은한 잿빛이 맺혀 흔들리고 있다. 딱 봐도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궁도들은 기를 제어하는 것에 신경 쓰고 있어서 몸을 움직일 상황이 아니었다.
두 손으로 검을 쥔, 단목장룡.
느릿하게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베어 나가는 뇌왕검.
눈에는 보이지 않는 천련반야진의 자줏빛 기운이.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커헉!”
천련반야진에 기를 집약하던 나찰마궁의 궁도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에서 피가 분출된다. 칠공분혈(七孔噴血). 오십에 달하는 무인들은, 단 한 명에게 내력이 밀린 것이다. 당연히 굉월 존자 또한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내력 싸움에서 패배한 대가. 내부 기혈이 뒤틀리고, 단전이 폭주한다. 무인들이 흔히 말하는 내상이었지만, 그 정도가 심했다. 내부에서 치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더 이상 내력을 끌어 올릴 수 없었던 궁도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굉월은 존자라는 이름이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버텼지만, 결국 그의 무릎도 땅에 닿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한 사람이… 천련반야진을… 이렇게 무식하게 깰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만약 이런 일을 직접 겪지 못하고 말로 전해 들었다면 절대 믿지 못하리라.
하지만 그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단목장룡은 무식하게 내력을 쏟아부어 천련반야진을 깬 것이 아니다. 진이 펼쳐진 순간부터 기의 흐름과 속성을 분석했으며, 어떻게 파훼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무식한 내력 대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참 잘못되었다.
단목장룡은 철저하게 분석한 천련반야진을.
‘베어 냈을’ 뿐이었다.
“쿨럭-!”
굉월 존자가 검붉은 피를 토했으며.
나찰마궁의 궁도들은 바닥에 쓰러져 경련하고 있을 뿐이었다.
* * *
“사, 살려…….”
목숨을 구걸하는 굉월 존자.
그의 앞에는 무심한 얼굴로 서 있는 단목장룡이 있다. 표면적으로 전혀 힘든 기색이 없다. 천련반야진을 내력 대결로 깬 인물이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는 얼굴이다. 괴물. 그 말고 그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나찰마궁의 대존자라면 그를 이길 수 있을까?
궁주라면?
존자로서 품지 말아야 할 생각을 떠올릴 만큼 굉월 존자의 충격은 컸다. 기혈이 뒤틀려 큰 내상을 입은 탓도 있으리라.
피범벅이 된 굉월 존자였지만, 단목장룡은 일말의 측은함도 느끼지 않았다.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면 살려 줄 용의가 있다.”
예리한 뇌왕검. 스쳐도 연약한 인간의 피부는 쉽게 잘려 나가리라. 그것을 보고 거친 숨을 내쉬던 굉월 존자가 냉큼 대답한다.
“사, 살려다오! 모두 말하겠다!”
“기회는 한 번이다. 너 말고도 물어볼 사람은 여기 넘쳐 나니까.”
“아, 알겠다!”
“이곳에 온 목적.”
“무, 무영신투가 이곳에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있다기에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용이했다. 마부를 고문하여 제운산에 있다는 것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나찰마궁이 원래 무영신투의 보물을 노렸나? 왜 하필 지금이지?”
“서신이 도착했다! 하후세가에서 온 서신이었다! 하후세가의 보물을 찾는 것을 도와주면, 보물의 반을 나누어 주겠다고……!”
단목장룡의 눈이 가늘어진다.
‘하후세가. 그들이라면 그러고도 남긴 하지만, 거슬리는군.’
단목장룡의 표정이 굳는 것을 본 굉음 존자가 몸을 벌벌 떨어 댔다.
“거, 거짓이 아니다!”
“나찰마궁은 계속 무영신투를 노리겠지?”
“아마… 무조건 그럴 것이다! 날 여기서 죽인다면 너도 위험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죽이지 않을 테니까.”
그의 눈빛을 마주한 굉월 존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몸을 휘감았지만, 그래도 살려 준다는 약조를 했다. 저런 수준의 무인이 내뱉은 말을 어기진 않으리라. 무력이 강한 무인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단목장룡은 몇 가지 질문은 더 던졌고, 굉월 존자는 허겁지겁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의 눈빛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인진 몰라도 거짓을 고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어떤 상황인지 확실히 파악한 단목장룡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된 것이군. 알겠다.”
“그, 그럼 날 살려 주는 것이냐?”
“그래.”
하지만 단목장룡은 검을 들었다.
그러자 굉월 존자가 발악하며 소리친다.
“왜 검을!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래, 살려는 주마.”
스걱.
뇌왕검이 그의 살점을 베어 냈다. 굉월 존자의 발목을 베어 냈다. 이놈은 두 번 다시 일어서서 무공을 펼치지 못할 것이다.
“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굉월 존자.
그에게 다가간 단목장룡이 손을 뻗었다. 손이 닿은 곳은 하복부.
단전이 있는 곳이다.
막대한 고통에 몸부림치던 굉월 존자의 몸이 굳는다. 단전은 무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다. 평생 모은 내력이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큰 내상을 입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치료할 가능성이라도 있다.
하지만 단전을 폐한다면?
깨진 단전은 절대 치료하지 못한다.
따끔한 통증. 굉월 존자의 두 눈이 부릅 뜨인다.
“나찰마궁에 전해라. 무영신투와 나를 쫓는다면 후회할 거라고.”
“아아…….”
굉월 존자는 전신에 깃들어 있던 내력이 빠져나가는 허탈감에, 무기력한 신음만 쏟아 냈을 뿐이었다.
* * *
“이게 무슨 일이여?”
반은 죽어 있고, 반은 폐인이 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제운산채의 부채주 장흥은 난생처음 보는 잔인한 광경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산적이라고 이런 광경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무공의 재능을 인정받아 부채주가 되었지만, 아직 사람을 직접 죽여 본 경험은 전혀 없는 장흥이었다.
“부채주님, 이놈들 스님인 것 같은데요?”
“스님이라고?”
이런 근육질 사내들이?
보통 스님이라면 호리호리한 체형이지 않나? 그런 의문도 잠시. 사파에서 유명한 불가 계열의 문파가 떠올랐다.
‘나찰마궁……?’
“이놈은 혼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장흥이 달려간다.
“어이, 정신 차려! 너희 나찰마궁의 궁도들이냐? 으응?”
몸을 잡고 흔들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정신줄을 놓아 버린 듯하다.
“허, 이게 대체?”
“부채주님, 범여 마을 노인네들의 집 안에 집기가 없는 걸 보니 전부 떠난 듯한뎁쇼?”
마을을 둘러본 녹림도 하나가 보고한다.
제운산의 주인은 제운산채라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약초를 캐며 살아가는 노인네들은 녹림의 허락을 받고 살아가고 있었다. 몸에 좋은 약초 따위를 상납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런 노인네들이 모두 사라졌단다.
“부채주님, 설마!”
작은 키의 녹림도가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외쳤다.
“왜?”
“노인네들, 은둔 고수였던 것 아닙니까? 절대 고수였던 노인들이 실력을 숨기고 유유자적 약초나 캐고…….”
따악!
“아악! 왜 때리십니까!”
“병신아, 그럴 리가 있겠냐!”
부리부리한 부채주의 눈빛을 본 녹림도가 눈을 내리깐다.
그래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부채주가 화가 나면 꽤 무섭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한다.
‘후우, 씨벌. 이걸 어떻게 해결한다…….’
분명히 이들은 나찰마궁의 궁도들이 분명했다.
나찰마궁에서 이 일을 안다면…….
‘으윽, 본산에서도 어르신들이 찾아올 수 있겠구나…….’
제운산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부채주에겐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귀찮게 굴까?
“후우우… 숨이 붙어 있는 이들을 황산현의 의방으로 옮긴다.”
“이 덩치들을요?”
“닥치고, 옮겨!”
“옙! 부채주님의 명령이시다! 모두 하나씩 등에 업어라!”
녹림도들이 간만의 노동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장흥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건……?’
거대한 매.
하늘을 나는 것을 몇 번 보았지만, 볼 때마다 그 크기에 감탄했었다. 놈은 사냥을 떠나는지 제운산을 벗어나고 있었다.
‘하아……. 나도 한 마리의 매로 태어나서 하늘을 누비고 다녔다면 좋았을 텐데…….’
앞으로 벌어질 귀찮을 일들에 한숨을 폭 내쉬는 장흥이었다.
* * *
소문은 달리는 말보다 빠르다.
특히나 자극적인 소문은 입과 입을 통해 더 빨리 전달되었다.
“초, 초, 총관? 그게 무슨 말인가……?”
평소 모습답지 않게 몹시 당황한 하후세가의 가주.
“안휘성 황산현의 의방에서… 폐인이 된 나찰마궁의 정예 무인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엔 ‘존자’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
말을 잇지 못하는 하후광.
그 또한 무영신투와 아이들이 마차를 타고 안휘성 쪽으로 향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최후의 수단. 최적의 수라 생각하며 서신을 보냈다. 그런데 자꾸만 일이 꼬여 간다. 대체 왜 그를 건드렸을까? 무영신투를 그냥 내줬어야 하나?
애초에…….
‘아이를 인질로 삼아 무영신투를 사로잡는 것 자체가 문제였나…….’
대(大)를 위해 소(小)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하후광이다.
그는 합리화를 통해, 자신이 벌이는 악행이 정의를 추구한다고 여겼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또 꼬인다. 이대로 가다간 하후세가가 정말 몰락할 것 같을 정도로.
아니, 가문이 몰락하기 이전에.
‘단목장룡… 그 사내가 찾아올 것이야… 복수를 위해서……. 그렇게 되면 난 분명히…….’
무섭도록 치밀한 사내.
아마 나찰마궁의 정예들도 그가 벌인 일이리라.
‘이게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것인가…….’
하후광은 처음으로 하늘에 두려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