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목격
머리를 빡빡 민 무인들이 제운산을 오르고 있었다. 땅을 살피고, 풀들이 쓰러진 방향을 보고 상대를 추적한다. 제대로 된 추적술을 익힌 이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무영신투의 일행엔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초반의 행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마차를 빌려 제운산의 앞까지 이동했으며, 그 이후엔 다른 장소에서 목격됐다는 정보가 없었다.
일부러 목격자를 만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정황을 종합해 보면 제운산에 그들이 있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아마 이곳에 무영신투의 보물 또한 존재하고 있으리라.
나찰마궁.
사파의 거대 세력 중 하나인 그들도 무영신투의 보물을 탐냈다. 특히, 무림공적으로 분류됐던 이들이 익혔던 마공의 존재. 나찰마궁이 더욱 위대해지는 것에 보탬이 될 수 있으리라.
처음에 나찰마궁은 하후세가가 무영신투를 붙잡았다는 걸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하후세가의 가주인 하후광으로부터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보물을 나누자는 분수도 모르는 제안이 담긴 서신을 받고, 이번 일에 개입하게 되었다.
지금 제운산의 탐색을 맡은 인물은, 나찰마궁의 존자 중 하나이며 강서 지부를 총괄하는 굉월 존자였다.
‘장천이라고 했던가?’
만약 그를 만나게 되면 최대한 정면 대결을 자제하고 후발대의 지원을 기다리라는 지시가 있었다.
궁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기에 그것을 따를 생각이었지만, 나찰마궁 강서 지부의 정예들이 모조리 투입되었기에 딱히 겁이 나거나 하진 않았다.
“존자님,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궁도 한 명이 보고한다.
굉월 존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궁도가 발견한 장소에 가서 주변을 살핀다. 짐승이 움직인 흔적은 아니다. 분명히 사람의 발자국이었다.
“오래 지난 것 같진 않군. 산적 놈들이 이런 길로 다니지도 않을 것 같고.”
“예, 그렇게 추정됩니다.”
“포위망을 형성하여 좁힌다.”
“존명.”
오십 명에 달하는 궁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제운산엔 녹림의 제운산채가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분명히 보물을 나누자니 하는 헛소리를 해 댈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굉월 존자는 제운산채에 도움을 청하거나 하진 않았다.
뭐 이렇게 수색하다 보면 그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지만, 그건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다.
‘돈만 쥐여 주면 헤벌쭉 웃으며 넘어가겠지.’
산적 놈들일 뿐이다.
거기다 제운산채는 녹림 칠십이 채 중 규모가 작은 편에 속했다.
사람의 발자국을 추적하던 나찰마궁. 오래 지나지 않아 작은 마을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 마을 전체를 포위한다.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한다.
굉월 존자의 명에 궁도들이 겹겹이 포위망을 쌓아 작은 짐승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당연히 마을에 있던 사람들은… 포위망이 형성되는지도 모르고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었다.
“김 영감, 오늘은 좀 많이 캤는가?”
“똑같지 뭐. 황 영감, 자넨 어때?”
사실 딱 봐도 강호와는 연관이 없는, 산이 있는 곳에 터를 잡은 작은 마을일 뿐이다. 마을에 사는 이들도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뿐이다. 젊은 이들은 이런 곳에서 약초나 캐는 삶 따위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목표가 있는 나찰마궁의 입장에선, 저런 노인들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저런 식으로 마을처럼 위장하는 수법도 있었고, 저들이 무영신투 일행의 위치를 알고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오늘은 꽤 실한 놈을 캤지. 내일 장에 나가서 팔면… 으응? 끄어어억!”
굉월 존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멱살을 잡힌 채로 공중에서 버둥거리고 있다. 난데없이 나타난 빡빡머리의 근육질 사내. 딱 봐도 위험해 보인다. 아무리 산에 올라 약초를 캐며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라 해도, 무림인의 존재는 알고 있다.
“커허억!”
“나, 나으리,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김 영감이 재빨리 엎드려 굉월 존자에게 사죄한다.
험한 중원에서 살아남은 이들이다. 그들은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다. 다만, 상대가 나빴다. 굉월 존자는 평범한 집단의 무인이 아니었다.
“뭘 잘못했길래 바로 절을 하며 사과하는 거지? 무언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로군?”
“아이구! 아닙니다. 저희는 그냥 산에서 약초나 캐고 다닐 뿐입니다요.”
“마을을 수색해라.”
“존명.”
굉월 존자가 공중에서 버둥거리는 노인을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삶의 가치가 없는 놈들. 이렇게 살아갈 바에야 죽어서 새로운 삶을 바라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찰마궁은 윤회를 믿고 있다.
‘이딴 놈들이 새로이 태어난다고 하여 더 나은 삶을 살아갈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굉월 존자가 묻는다.
“열 살 정도의 아이 열 명이다. 본 적이 있나?”
“어, 없습니다요!”
노인이 대답하는 순간 궁도 한 명이 신속하게 다가와 보고했다.
“존자님, 아이가 한 명 있습니다.”
“거짓을 고한 것이로군?”
쿠웅!
“컥!”
바로 한 손으로 들고 있던 노인을 내던지는 굉월 존자.
그의 얼굴이 살의로 번뜩이고 있었다. 노인은 감히 그와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땅만을 내려다보고 사정한다.
“아, 아닙니다요. 저 아이는… 그게…….”
“하라부지이이!”
궁도의 손에 잡혀 엉엉 울음을 터트리는 소년. 그 아이는 김 영감의 손자로 약초 캐는 법을 배우기 위해 며칠 전 산에 올랐다. 열 살 정도의 아이를 찾고 있다고 들었을 때 심장이 덜컹했지만, 바로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바로 들킬 거짓말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혹시 손자를 노리는지도 모르는데 어찌 안다고 대답하겠는가?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려 가는 김 영감.
스님처럼 보이는 복장이었지만, 구릿빛 피부에 모두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런 외향의 사람들에 대한 소문을 들어 본 적이 있다.
‘나, 나찰……!’
사람의 생기를 빨아 먹는다는 악귀들.
그런 노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던 굉월 존자가 입을 연다.
“대답하지 않는군. 아이의 눈알을 뽑도록.”
“아, 안 됩니다요! 제발… 아는 걸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요! 제바아알!”
김 영감이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굉월 존자가 손을 들자, 바로 행동을 취하려던 궁도가 멈칫한다. 그 와중에도 마을에 있던 노인들이 죄다 끌려온다. 험상궂은 괴인들의 모습에 몸을 벌벌 떨고 있을 뿐이다.
“저, 저, 저 아이는… 제 손자입니다요……. 야, 약초 캐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제운산에 오른 것입죠……. 아이의 나이는 이제 열셋이고… 덩치가 작은 건 워낙 먹은 것이 없어서… 여, 열 살보다는 많아서 말하지 않았던… 겁니다요.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무표정하게 노인의 대답을 듣던 굉월 존자가 이마 정중앙의 커다란 점이 인상적인 궁도에게 묻는다.
“이게 끝인가?”
“예.”
“쯧…….”
이미 굉월 존자는 허탕을 쳤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산 근처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작은 마을일 뿐이다. 노인이 미치지 않고서야 거짓을 고하진 않으리라.
하지만 그것이 굉월 존자의 신경을 건드렸다.
겨우 찾아낸 사람의 흔적이 이딴 약초꾼들의 발자국이었다니. 괜한 것으로 헛고생을 시키지 않았는가?
‘그래도 산에 오래 머문 놈들이니, 무영신투 일행을 봤을 수도 있지.’
굉음 존자가 말한다.
“하나씩 철저하게 심문해라.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면 모두 죽여라.”
“……!”
어찌 저리도 쉽게 죽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까?
애초에 저들은 무영신투 일행을 보지도 못했다. 모르는 걸 어찌 말하겠는가? 사실상 모두 죽은 목숨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공포에 물든 얼굴로 벌벌 떨었다. 그런 사람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굉월 존자가 걸음을 옮긴다. 심문은 궁도들에게 맡기면 된다. 존자가 되어서 급이 맞지 않는 인간들을 심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바아알!”
나찰마궁 궁도들의 험악한 표정을 본 이들의 절규가 더욱 커져 갈 때였다.
스거억.
“케륵?”
나찰마궁의 궁도 중 하나가 두 손으로 목을 잡고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
굉월 존자의 시선이 사방을 훑었다. 하지만 그의 감각에 걸리는 것이 전혀 없었다. 무슨 일인가? 목을 베었다면, 기척이라도 느껴졌어야 한다. 발소리라도 들렸어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런 기척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궁도의 목을 베었다.
“모두 경계 태세를……!”
굉월 존자가 소리치는 순간.
“커륵!”
또 한 명의 궁도가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누구냐!”
굉월 존자가 외친다.
“커르윽!”
세 번째. 궁도가 바닥에 쓰러지자 굉월 존자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귀신에 홀린 걸까? 아니면 진이라도 설치되어 있는 건가? 대체 어떻게?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가?
“모두 내 쪽으로 집결하라!”
궁도들이 허겁지겁 굉월 존자의 곁으로 모인다. 싸늘한 표정으로 마을 노인들을 내려다보던 표정은 온데간데없다. 타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던 이들이었지만, 죽음의 손길이 자신들에게 닥쳐 오자 공포가 엄습한다.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궁도들이 집결하는 과정에서 둘이나 더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도 모습은커녕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게 무슨 무공인가? 아니면 정말 귀신이라도 되는 건가?
굉월 존자가 주먹을 꽉 쥔다.
손바닥엔 땀이 흥건하다.
“겁에 질린 개새끼처럼 몰려 있군.”
“……!”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뒤를 돌아본다. 한 사내가 칼을 늘어뜨린 채로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응시한다. 칼끝엔 피가 묻어 땅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네놈, 대체 누구냐……!”
굉월 존자의 몸에서 연한 자줏빛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다.
나찰마궁의 자랑인 자미소는 아니었지만, 존자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 나찰마궁 무공의 특징이었다. 보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자아내게 하는 무공으로 유명했지만, 되레 자줏빛의 강기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 굉월 존자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아, 어디에서 온 것인진 알고 있다. 나찰마궁, 자줏빛을 보니 알 것 같군.”
궁도들의 목을 베어 버린 사내는, 단목장룡이었다.
그는 원래 나찰마궁에 감정이 좋지 않았다. 인간의 정기를 취하는 식의 무공을 익히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해남도에서도 그들과 부딪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찰마궁의 행태에 혐오가 극에 달했다.
“설마 네가 장천이더냐!”
굉월 존자가 소리친다.
장천? 그 이름에 단목장룡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들은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찾아온 것이다.
“네놈에겐 물어볼 것이 많을 것 같군.”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모두 죽이라고 말했던가?
단목장룡은 그들에게 똑같이 되돌려 줄 생각이다.
“천련반야진(天蓮般若陣)을 펼쳐라!”
합격진.
여러 사람이 효율적으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공의 일종이다. 궁도들은 서로의 기운을 조화하여 단목장룡을 포위했다. 웬만큼 실력이 차이가 나지 않는 한, 합격진을 펼치는 이들과 싸우는 것은 힘들다. 포위망을 형성하기 전에 탈출하는 것이 상식이다.
거기다가 이곳에 모인 이들은 존자가 이끄는 나찰마궁의 정예였다.
“모습을 드러낸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처음엔 보이지 않는 단목장룡을 경계했던 굉월 존자였다.
하지만 이대로 합격진에 갇히는 형세가 된다면…….
궁도들의 기운이 조화되어, 중앙에 선 단목장룡을 압박한다. 그는 기세에 눌렸는지 어떠한 움직임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네놈은 장기인 암습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굉월 존자.
그 또한 천련반야진에 합세한다. 공간을 감싸는 자줏빛 기운의 압력이 더욱 거세진다. 보통의 무림이라면 기세만으로 패배를 선언하리라.
“내 장기가 암습이라고 누가 그러던가?”
“그야 네놈이…….”
말을 하던 굉월 존자가 멈칫한다.
설마? 합격진을 펼치는 것을 가만히 두고만 본 이유가…….
“설마 네놈… 천련반야진을 홀로 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천련반야진.
단목장룡은 처음 들어 보는 진법이다. 많은 무공을 알고 있었지만, 모든 무공을 알진 못한다. 당연히 사방을 압박해 오는 기운이 거세다는 것쯤은 느끼고 있다. 합격진을 제대로 익히면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날 막아 세우려면 소림의 백팔나한진 정도는 펼쳐라.”
중원에서 가장 유명한 합격진을 꼽자면,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사의 자랑 백팔나한진이다. 나찰마궁과 소림사는 은근히 연관성이 많은데, 그들은 서로가 불가의 뿌리라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나찰마궁을 불가로 인정하는 자들은 극히 소수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찰마궁에게 소림을 언급하여 비교하는 것은 모욕이었다.
거기다가 잠시라도 막아 세우려면?
굉월 존자의 표정이 구겨졌다.
“갈! 그 자신감을 철저히 부숴 주마!”
굉월 존자의 외침에, 궁도들이 일제히 전진하여 단목장룡을 압박했으며.
단목장룡 또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