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다가오는 그림자
“앉아.”
“끼익.”
“잘했어.”
“끼이이익!”
난 보름 동안 영물 천응을 조교하는 것에 할애했다. 처음엔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과하게 사용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그 기운에 잠식당할까 두려워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힘을 사용해 보는 게 오히려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영혼과 연계하여 증폭된 천향옥로단의 향을 숨기는 것 또한 도움이 됐다.
난 천응을 조교하며 무영혼의 숙련도를 올리고 있었다.
무영혼이 완성된 무공은 아니라곤 하지만, 당장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숨기는 것은 가능했다. 여기서 더 발전하여 무영혼의 궁극적인 목표에 다가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긴 했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었다.
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다. 성급하게 무공을 익히다가 주화입마에 빠진 무인들을 신교에서 여럿 보았었다.
“짖어.”
“끼루우우욱!”
천응은 마치 닭처럼 고개를 쳐들고 울기 시작했다.
천응은 사람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복잡한 명령이나 단어는 알아듣지 못하긴 했지만, 훈련을 통해 충분히 교육할 수 있으리라.
“이제 방을 나갈 건데,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면 안 된다. 알아들어?”
“끼룩.”
“그럼 나가자.”
비동의 천장에 닿을 만한 덩치. 천응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이들이 비명을 지른다.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생김새만 보면 영락없는 포식자의 그것이었으니까.
난 아이들 앞에서 천응을 쓰다듬었고, 녀석은 기분이 좋다는 듯 흥흥 소리를 내며 손길을 만끽했다. 천응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몇몇 아이들도 손을 내밀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모든 아이가 복슬복슬한 천응의 털을 쓰다듬는다. 몇몇은 등에 올라타서 폭신한 털 사이에 파묻히기도 했다.
거기서 가장 열심히 노는 것은, 소영이었다.
“꺄하하핫!”
소영은 며칠 사이에 꽤 성숙한 분위기를 연출했었다.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무공을 수련했고, 내게 냄새를 맡게 해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하지만 천응의 등 위에서 통통 튀고 있었다.
처음에 약간 불쾌함을 드러냈던 천응이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사부가 있을 때도 놈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했었는데… 아이들이 만지는 것도 허용하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더 지켜봐야지.”
혹시 모르는 일이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 천응이 아이를 부리로 쪼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었다. 난 천응이 혹여나 돌발 행동을 하지 않을까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영물을 길들이는 것이 목표라고 해도, 인간을 해치는 짐승을 거둘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말도 듣는 겁니까?”
방구가 묻는다.
나 또한 그게 궁금하긴 했다.
“한번 천응에게 명령해 봐.”
방구가 신이 나서 천응에게 다가갔다.
“천응! 일어서!”
하지만 웬 개가 짖냐는 듯이 흘끔 바라본 천응이다. 그 외에도 우리 조원들까지 천응에게 명령을 내려보았지만, 전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다.
“천응아, 천응아, 일어서 주렴.”
귀찮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지만, 천응이 일어선다.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은 소영이었다.
“아잇! 착해!”
소영이 천응의 목에 안겨 볼을 비빈다.
신기한 상황에 조연연이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으음! 그냥 천응이의 냄새에 동화해서 감정을 이입했다고 할까요? 정확히 말하면 하늘과 이어진 혼의 실 사이에 제가 속삭인… 응? 이게 무슨 소리예요?”
자기가 해 놓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는 소영.
어쩌면 제갈교아일 때의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일 수도 있겠다. 좋은 징조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모르겠어요! 하핫!”
소영은 다시 천응의 품에 파고들어 놀기 시작했다.
난 그런 천응에게 말했다.
“천응.”
“끼루욱!”
천응이 허겁지겁 대답한다. 다른 이들의 대답은 차가운 표정으로 무시했던 것과는 정반대다.
“와아! 천응의 냄새가 오라버니와 연결되어 있어요!”
소영이 깜짝 놀라 소리친다.
“냄새?”
“네! 그러고 보니 천응에게 오라버니의 냄새가아아… 아잇, 킁킁.”
소영이 천응의 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냄새가 연결됐다라…….
‘혼을 말하는 건가.’
혼이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혼란스러운 개념인 것은 분명하다. 혼의 냄새를 맡는다는 신녀들은 대체 어떤 존재인 것인가? 무(武)의 재능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재능이다. 아무튼 그런 그녀가 냄새가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위험하긴 하지만 실험해 봐야 하는 것이 있겠군.’
천응은 내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와 천응이 가까이 있을 때만 작용하는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난 천응을 여러 방법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그중 첫 번째가 전서구의 역할. 전서구는 보통 두 장소를 오가는 용도로 사용한다.
가령 섬서성의 서안에서 무림맹이 있는 정주 사이만 오가는 전서구가 있다면, 그 전서구는 두 지역만 오갈 수 있다. 호북성 무한에서 전서구를 날려 보내면 무림맹이 있는 정주나 섬서성의 서안으로 가기는커녕 길을 잃는다고 한다. 전서구라는 것은 애초부터 그렇게 교육을 한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전서구를 키워 내는 것도 상당한 자본과 시간이 들어간다.
하지만 천응을 전서구로 사용한다면?
당연히 평범한 전서구보다 훨씬 빠르고, 여러 장소를 이동할 수도 있으리라.
“천응.”
“끼룩.”
“사슴이나 멧돼지 같은 것 좀 잡아 와라. 할 수 있겠어?”
“끼루우욱!”
천응이 당차게 대답한다.
난 마지막으로 녀석에게 천향옥로단의 향을 맡게 하고,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놈은 마치 쾌락을 느끼는 듯 몸을 파르르 떨어 댔다.
* * *
결과적으로 말하면 천응은 내 명령을 아주 잘 수행했다.
사냥 속도는 방구를 비롯한 조원들보다 훨씬 빨랐다. 과일을 따 오라고 하면, 알아서 척척 맛난 과일을 따 왔다. 아마 천응도 과일을 먹어 본 경험이 많은 듯했다.
천응의 사냥 실력을 확인한 뒤로는, 사냥은 오롯이 녀석의 몫이었다.
사냥 또한 귀중한 경험이긴 하지만,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배울 건 없었다. 무공에 대해 고찰하고 수련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우리는 무영신투의 비동에 머물며 무공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경신법과 잠행술만 제대로 배운 방구에게 권법이나 각법 등을 알려 주기도 하고, 조원들의 흑룡공을 봐주었다. 그 와중에 방구나 조원들이 서로 비무도 해 가며 실전 감각을 익혀 가고 있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머물다가 무림맹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천응이 더 컸으면 나와 조원들을 태우고 맹까지 날아갈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영물인 천응이라도 성인 여러 명을 태울 수는 없었다.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천응이 크다고 하지만,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천응의 등에는 두 명 이상이 타면 위험했다. 대장간에 가서 두 명이 탈 수 있는 안장 따위를 특수 제작 한다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소영은 어찌할까.’
고민이 된다.
무림맹에 가서 제갈강량에게 직접 물어볼까? 그러다가 천자산 강시의 주인에게 내 정보가 들어간다면?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소영이 또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까?
‘으음.’
소영이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무영신투의 비동에 온 뒤로, 무공 수련에 진심이었다.
‘아니면 당분간은 여기에 머물게 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중원 무림에서 이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었다. 무영신투의 비동은 긴 세월 동안 들키지 않은 은신처였다. 천응이 있으니 나 혼자서 이곳에 찾아올 땐, 정주에서 출발해도 금방 도착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끼에엑!”
사냥을 갔던 천응이 돌아온 모양.
기관을 발동하여 문을 열어 준다.
그런데 천응의 모습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 잔뜩 흥분한 것이 마치… 발정이 난 듯하달까.
“왜 그래, 천응?”
“끼루우욱! 끼룩! 끼룩!”
날개를 퍼덕이며 의견을 피력하는 천응.
당연히…….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군.’
조금 애석하기도 하다.
영물인 천응은 내 말을 알아듣는데, 난 천응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니.
“밖에 무슨 일이 있나?”
“끼룩!”
격하게 소리치는 천응.
난 조금씩 질문의 범위를 좁혀 가며 천응에게 질문했다.
“그러니까, 밖에서 위험해 보이는 인간들이 제운산을 뒤지고 있다는 말이지?”
“끼루루우우우!”
그 말이 맞다는 듯이 목 놓아 우는 천응. 녀석도 나와 대화하는 것이 참으로 답답했던 모양이다. 적당히 목덜미를 쓰다듬어 준다.
‘설마 하후세가인가……?’
아니다. 그놈들이 제정신이 아닌 이상 우리를 뒤쫓았을 리가 없다. 하후세가와 연이 있는 다른 문파나 가문일까? 아니면 혹시…….
‘천자산 진법의 주인?’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혹시 몰랐기에 방구와 조원들에게 도주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비동에선 샛길로 제운산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출구로만 활용할 수 있는 길이다.
천응을 조련하며 익혔던 무영혼을 활용하여 기척을 숨긴 채, 비동을 나섰다.
혹시 모를 위협에 단단히 긴장한 채로.
* * *
“이게 무슨 말인가?”
“…그, 그게, 저희와의 거래를 끊겠다는 말 같습니다.”
“그걸 누가 모르나!”
“죄, 죄송합니다.”
하후세가의 총관이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후세가는 참으로 많은 곳에 돈을 투자했다. 객잔, 기루, 상단, 표국 등. 그리고 하후세가가 얻는 이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 바로 ‘미약’이었다. 사실 미약을 사용하는 것은 강서성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파의 권역이다 보니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그리 죄악시되는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북쪽으로 값을 올려서 파는 것이다. 당연히 하후세가의 이름으로 대놓고 팔진 않았다. 몇 번이고 이름을 바꾸어 가며 고객에게 물건을 전달한다. 만약 꼬리를 잡는 자들이 있으면 중간에서 연결이 끊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점조직이었다.
아무튼, 하후세가는 이제는 중원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몽환’의 거래권을 가지고 있었다. 암천회에서 제조하는 몽환은 평범한 미약과는 다르다. 몇 배의 쾌락을 누릴 수 있으며, 거기다 적당히 사용하면 약재로도 활용할 수 있다. 병에 걸린 이들이 몽환으로 고통을 줄이고 있기도 했다.
아무튼 그 몽환의 제조처인 암천회와 거래를 트기는 대단히 힘든데, 오늘 충격적인 서신이 도착했다.
- 더 이상 당신과 몽환의 거래를 하지 않는다.
부들부들.
단지 이것만으로 하후광이 당황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가 따로 있었다.
장천을 공격한다면 후회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짧은 서신도 같이 도착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암천회가 장천을, 단목장룡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암천회는 하후세가에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중원의 암흑가는 대부분 암천회와 긴밀한 연을 맺고 있었다. 그들과 척을 지는 것은 생사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 빌어먹을 자식이 언제까지 우리 가문을 괴롭힐 것인지……!”
아드득.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가 손을 쓴 것이 분명하다. 마음 같아서는 단목장룡과 암천회가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널리 퍼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면 하후광의 목숨이 위태롭다. 그에게 잘린 귀가 욱신거린다.
“나찰마궁에게선 소식이 없나?”
“예…….”
암천회는 답신이라도 줬지만, 나찰마궁은 전혀 답이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사실 하후광의 생각으로는 무영신투의 정보를 주고 적당히 보물을 나눌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수라고 생각했던 선택이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무영신투의 보물도 빼앗기고, 몽환을 거래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군. 당분관 무관이나 학관의 일은 보류하도록 하세. 돈이 빠져나갈 데가 너무 많아. 공부를 원하는 백성들은 장원에 불러 적당히 알려 주도록 하는 것으로 하지.”
“예, 그러는 것이 좋겠습니다.”
속으로 겨우 넘겼다고 생각한 총관.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온다.
“참, 천수 상단의 표행 건은 어떻게 됐나?”
“그게…….”
하후세가는 강서성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표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후세가는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 이익을 내는 사업이 손해를 보는 사업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광양 표국은 하후세가의 가장 큰 수입원이라 할 수 있다.
“또 왜?”
총관이 두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요즘 비화 표국에서… 강서성에 진출하여 마구잡이로 표행을 받고 있습니다.”
“아니, 비화 표국은 호북성 내의 표행을 감당하기 벅찰 텐데?”
“항간에… 비화 표국이 녹림 대호법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강서성에서 녹림의 입지는 상상을 초월하지요. 그래서인지 천수 상단도 비화 표국에 표행을 맡기는 것으로 했습니다.”
쾅! 쾅! 쾅!
하후광이 책상을 내려친다. 초고수의 힘에 여러 갈래로 쪼개져서 방을 어지럽혔다. 파편이 튀어 총관의 볼에 상처가 생겼지만, 찍소리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분을 삭이던 하후광이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잔뜩 충혈된 눈으로 소리친다.
“잠시만! 비화 표국의 여식이 단목세가의 안주인이 아니던가?”
대답하기 싫었지만.
총관은 진실을 고해야 했다.
“예에… 그렇습…….”
“맙소사, 대체 어디까지!”
단목장룡!
얼마나 하후세가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으려는 것이냐!
‘진정으로 무섭다. 그놈의 손이 대체 어디까지 뻗어 있단 말인가!’
나찰마궁은 그렇다고 치고, 암천회와 녹림까지.
대체 명문 정파의 자제가 맞는가?
‘설마… 일찍 죽이는 것은 재미없다고 말한 게 이 모든 계략을 짜 놓고……?’
순간 하후광의 등골이 오싹해진다.
피부의 솜털이 모조리 일어섰다.
‘내가… 내가 실수했단 말인가……! 최후의 수라 생각했던 것까지 읽히고 있었단 말인가…….’
사실 단목장룡을 별달리 행동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하후광과 총관은 단목장룡의 치밀한 계략에 빠졌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그런 계략 말이다.
“허허허허… 허허허허허!”
다시 말하지만, 단목장룡은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