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
난 서적을 덮었다.
‘이치를 깬다. 이해를 넘어선다. 초월한다.’
무영혼이라는 무공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당연하게도 무영신투의 무영혼은 완벽한 무공이 아니다. 그는 방향을 제시했을 뿐,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서술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무영혼이 완성된 무공이었다면, 그걸 창안한 무영신투가 그것을 모두 익혔다면 그는 천하제일인 수준이 아니라 고금제일인으로 거듭났으리라.
무영혼이 완성된 무공은 아니긴 했지만, 그 존재 자체로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치를 바라보며, 그것을 추구했으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무공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무영신투의 서고 안에는 다른 무공서도 많았다. 대부분 마공으로 분류되는, 심마에 빠질 수도 있기에 웬만해선 익히지 말라고 하는 무공들. 천마신공도 당연히 그 축에 들어간다.
어쩌면 무영신투가 저러한 무공서들을 모은 이유는, 중원에 이런 마공들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니라…….
‘무영혼을 완성하기 위해서?’
천마신교의 교주였던 아버지마저도 내게 하늘이 내린 천재라 말했었다.
그런 나는 무영혼을 완성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고, 승부욕이 생겨났다.
‘재밌겠군.’
* * *
전투 준비가 한창이었다.
방구는 무영신투가 훔쳐 온 극독을 암기에 묻히고 있었으며, 이새붕을 비롯한 조원들은 암기를 던지는 수련을 하고 있었다. 천응이라는 영물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화골왕독(化骨王毒). 체내에 들어가면 독성으로 뼈를 녹여 버린다는 독입니다. 혹여나 피부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합니다.”
방구가 정성스레 독을 바른 암기를 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예.”
단목장룡이 나오면 이 일을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테지만, 그는 서고에 들어간 뒤로 이틀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무인이 가장 취약한 순간이 운기조식을 하는 때이다. 혹시 몰랐기에 함부로 서고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더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처음 사냥을 나서 구해 왔던 식량이 바닥을 보여 오늘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만발의 준비를 했다. 이렇게 준비해도 영물을 잡을 수 있을지 확신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꼭 잡아 봅시다.”
이새붕의 말에 방구가 답한다.
“예, 여러분이 있어서 안심입니다. 저 혼자였다면 꿈에도 그놈과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렇게 의기를 투합하여 사냥을 나서려 할 때였다.
크르으응……!
네 사람의 몸이 멈칫한다. 서고의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사형!”
“조장님!”
회까닥 돌아 버린 영물과의 결전을 각오하고 있던 네 사람이 화들짝 놀라 단목장룡에게 달려간다. 당연히 네 사람이 달려가자 아이들도 서고의 앞으로 달려왔다. 마치 먹이를 달라는 듯이 몰려드는 새끼 새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단목장룡이 헛웃음을 짓는다.
“내가 안에서 오래 있었나?”
“삼 일 동안 서고에 계셨어요.”
이새붕의 말에 단목장룡이 고개를 끄덕인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진동한다. 집중 상태가 깨어지자 몸이 소리치는 것이다. 얼른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무인이라고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모하는 것이 많았기에 더 많이 먹어 줘야 한다.
“으음, 그런데 사냥을 나가는 것치고는 철저하게 무장했군?”
촘촘한 쇠사슬을 엮어 놓은 듯한 갑주. 같은 모양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몸에 맞는 보호구를 장착한 네 사람이다. 이새붕은 투척용으로 활용될 법한 창을 두 자루나 메고 있었다. 산짐승을 잡는 데 저리 철저하게 준비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저들의 실력은 산의 제왕이라는 호랑이도 손쉽게 잡을 수준이었으니까.
방구가 단목장룡의 말에 답한다.
“그게… 제운산에 올라올 때 본 천응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 그 영물을 말하는 것이로군.”
“예, 그놈이 미쳐 버렸는지 처음 사냥을 나갔을 때 저희를 공격하더군요. 이번에도 공격해 오면 차라리 잡아 버리자는 심산으로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사형을 기다릴까도 생각해 봤는데, 워낙 입이 많다 보니까…….”
“그놈이 원래 사람을 공격했나?”
“아닙니다. 이제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호랑이를 사냥하는 걸 본 적이 있지만, 사람을 공격한 적은 없었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그놈은 내가 맡지. 너희는 식량을 구하는 데 집중해라.”
“예!”
네 사람이 동시에 대답한다.
단목장룡이 나서 준다면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다. 제아무리 하늘을 나는 영물일지라도, 단목장룡에게 걸리면 한낱 새에 불과하다.
“내가 먼저 나가지. 너희는 일각 정도 뒤에 밖으로 나와라.”
“예, 알겠습니다!”
단목장룡에겐 무영혼을 실험할 좋은 기회였다.
짐승의 감각은 무공을 익힌 무인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렇다면 영물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평범한 동물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리라.
‘일단 길들일 수 있는지 확인해야겠군.’
만약 길들이지 못한다면…….
아쉬운 대로 영약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으리라.
* * *
제운산의 지배자.
아니, 그것은 중원의 하늘을 지배하는 절대자였다. 맹금류의 최고라 불리는 매가 수십, 수백 마리가 달라붙어도 당해 내지 못한다.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았으니 당연히 날개가 없는 짐승이나, 심지어 인간까지 발아래로 본다.
본래 백응으로 불렸으나, 그놈의 위용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천응으로 불리게 된 영물.
그런 하늘의 지배자는 지금 심기가 불편했다.
“끼에엑……!”
그 이유는 최근 제운산에 모습을 드러낸 한 인간 때문이었다.
동물의 본능은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다. 직감이라고 할까? 위협이 될 적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나다. 천응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그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근 사냥을 나선 네 명의 인간에게 경고했다.
함부로 제운산에서 영역을 확장하려 들면, 따끔한 맛을 보여 주겠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속 구석에서 스멀스멀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 그것이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평소 천응은 제운산 봉우리에 고고하게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그 인간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몰라 하루 대부분을 하늘을 나는 데 보내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겨도 되겠지만, 자존심 강한 천응에게 그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끼에에에엑……!”
그래도 며칠 전의 경고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주제를 모르는 인간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조금은 만족한 마음으로 비행을 마치고, 제운산 봉우리에 내려왔다.
오래 날았더니 피곤하다.
어제 잡아 놓았던 사슴을 포식한 후 잠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한 천응.
순간 놈의 깃털이 바짝 일어선다.
“끼엑……!”
분명히 무언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인간의 시력을 아득히 초월한 천응. 고개를 홱홱 돌리며 시선을 찾아내려 한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끼에엑……?”
착각이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천응의 몸이 확 굳는다. 자신의 몸이 무거워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무언가가……!
“끼루우우우욱!”
분노가 담긴 외침.
겁도 없이 자신의 몸에 올라탄 놈을 찢어발겨야 했다.
그래야만…….
“내단이 꽤 크네?”
“끼엑……?”
하지만 날개를 펴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가 날개를 짓누르는 듯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어떻게 자신의 감각을 숨기고 여기까지 접근했던 건가?
천응의 감각은 작은 짐승들이 기척을 죽이고 숨어 있어도 찾아낼 수준이다. 몸에 올라탈 때까지 천응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멀리서 느껴졌던 시선 외에는 말이다.
투욱.
한 사내가 등에서 내려왔다. 당연히 천응보다 훨씬 크기가 작았다. 호랑이도 쉽게 사냥하는 천응이다. 저런 크기의 인간 따위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끼이익…….”
천응은 영물이 되기 전.
천지사방에 천적들이 득실거렸던, 그 당시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기세에 밀린다면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 천응은 억지로 펴지지 않는 날개를 쭉 폈다. 몸의 크기로 상대를 압박하는 것은 본능이었다. 거대한 부리를 내밀어 상대를 위협한다.
단목장룡은 그런 모습을 보고도 태평했다.
단지, 말을 걸 뿐이다.
“내게 충성할 생각이 없느냐?”
“끼엑……?”
영물은 인간이 꿈도 꾸지 못하는 세월을 살아왔다. 어느 정도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단목장룡은 그것에 걸어 보는 것이다. 영물의 내단을 취하는 것도 분명히 큰 이득이다. 다만, 저 영물을 부릴 수 있다면? 내단보다 훨씬 큰 값어치를 할 것이다.
“사람 말을 알아듣긴 하는 건가? 흠.”
쉬잇!
바람 소리가 들리고, 사내가 사라졌다. 다시금 등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끼루우우욱!”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 인간은 자신을 한낱 미물로 보고 있었다. 격의 차이를 보여 줘야 한다. 하늘에 올라 빙글빙글 돈다면 맥을 추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리라!
천응이 겨우 날갯짓을 하여 공중에 떠오르려 한 순간.
“끼이이익……?”
천응의 코에 묘한 향이 흘러 들어온다.
강렬한 냄새에 날개를 쫙 펼친 상태로 천응의 몸이 굳었다. 동시에 몸이 흐물흐물 녹기 시작한다.
철퍽!
땅에 쓰러진 천응.
경련하듯 벌벌 떨기 시작한다. 무영혼으로 숨겨 놓았던 천향옥로단의 향을 마구 뿌려 댔다. 그것을 흡입한 천응은 마치 미약에 취한 듯이 신음을 내뱉었다.
“끼루우욱… 끼리이이익… 끼익끼익…….”
“어떠냐?”
단목장룡의 손이 닿을 때마다 천응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그의 손이 주는 자극에 육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부리로 이 빌어먹을 인간의 머리통을 쪼아 버리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손길이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참으로 곡할 노릇이다. 천적의 손에 쓰다듬어지는 기분이란…….
‘천향옥로단의 향. 이것을 잘 활용하면 이런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지.’
단목장룡이 그 기운을 숨기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을 완벽히 없앨 수 없다면, 어떻게든 활용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천향옥로단이 인간에게 쾌락을 가져다 준다는 암천회의 미약 ‘몽환’의 향과 흡사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만들어 낸 기술 중 하나다.
무공으로 따지자면, 섭혼술의 일종이라 할까?
하지만 천향옥로단의 냄새를 개방하게 되면 도리어 그 자신에게도 영향이 있었으니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긴 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타인을 포섭하게 되면 미약에 중독되어 폐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영물을 길들일 수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했다.
“어때?”
“끼에에에……!”
천응은 의미를 담아 대답했지만, 당연히 단목장룡은 이해하지 못했다.
“으음, 아직 부족한가?”
천응의 후각을 자극하는 그 냄새가 더욱 강렬해진다.
동시에 천응의 몸이 더욱 민감해지고 있었다.
“끼루루루! 끼루우우우!”
“이 정도면 어때?”
“끼우우우욱!”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혹시 모르니…….”
“끼우우우우우우!”
이날 제운산의 봉우리에선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온 하늘의 지배자 천응이, 인간의 손길에 굴복하여 신음(?)하는 소리가 종일 울려 퍼졌다.
단목장룡의 손길은 천응이 결국 정신 줄을 놓을 때까지 이어졌다.
* * *
그날 밤.
“저기에 천응이 있는 겁니까?”
“그래.”
이새붕이 눈을 빛낸다. 역시 조장님은 대단하다. 어떻게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저런 영물을 잡아 왔을까? 또 하나의 궁금증이 뇌리에 맴돌았다.
“영물 고기의 맛은 어떤지 정말 궁금하네요.”
“안 먹을 수도 있어.”
단목장룡의 대답에 조금 당황하는 이새붕.
옆에서 듣고 있던 조연연이 말한다.
“설마 그 영물을 길들이려 하시는 건가요?”
“그래.”
“맹의 보급대에 있을 때 전서구를 키우는 것을 보았는데… 새끼 때부터 먹이를 주며 어미로 인식시키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다 자란, 거기다가 영물을… 길들이시다니 역시 조장님은 대단하세요!”
“역시 조장님이십니다.”
단목위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조장님이라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방구도 두 눈이 휘둥그렇게 변하여 소리쳤다.
“역시 사형이시군요! 사부도 몇 년 동안 저놈을 길들이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아직 길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의 설레발에 꼭 길들여야겠다고 생각하는 단목장룡이다. 영물을 길들이면 확실히 활용할 곳이 많을 테니까. 저놈의 덩치라면 등에 타고 다닐 수도 있으리라.
쿵쿵!
천응이 갇힌 동굴이 울린다. 벽면에 몸을 들이박고 있는 듯하다.
“안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도 문을 열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단목장룡은 천응이 갇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무영신투의 비동에선 천응의 신음이 새벽 내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