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236)

* * *

우리는 혹시나 있을 위협에 대비하여 철저히 경계를 서며 호북성을 돌았다.

석수에서 감리, 감리에서 홍호. 그리고 무한. 우리는 강을 따라 뱃길을 이용하여 호북성의 성도인 무한(武漢)으로 향했다.

호북의 성도이니만큼 확실히 볼거리가 상당했으며, 그런 만큼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는 평범한 복장에 죽립을 푹 눌러쓰고 다녔기에 주목을 받진 않았다.

“우움…….”

소영은 은근히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며칠 전에 내 냄새를 맡기 위해 밤중에 쳐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크게 혼낸 이후로 소영은 함부로 내 근처에 오지 못했다. 아마 다시는 냄새를 맡지 않게 하겠다는 협박(?)이 단단히 먹힌 듯하다.

대체 내 냄새가 어떻길래 저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소영을 다루는 데에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연연, 저건 뭐야?”

무한의 중심 거리에선 차력 공연을 하고 있었다. 외공을 익힌 것으로 추정되는 사내들이 묵직한 각목을 격파하고, 심지어 돌까지 부숴 버린다. 당연히 군중이 가득 몰려 있었다.

“저렇게 힘을 보여 주고 돈을 받는 거야.”

“도오오온?!”

돈이라는 말에 소영이 펄쩍 뛰었다.

대부분 차력 공연을 구경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으니 소영이 아무리 놀라도 주목받진 않았다.

“그, 그래. 돈을 받는 거란다.”

조연연의 말에 잔뜩 흥분한 소영이 차력을 감상하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 내 눈치를 보던 여인이 맞나 싶을 정도의 집중력이다.

‘그러고 보니 만월에선 용봉지회의 도박판을 주도했었지.’

나도 그 덕분에 꽤 많은 돈을 만졌다.

소영이 제갈교아였을 때, 돈에 상당히 집착했다는 걸 예측할 수 있다.

“우리 소영이 돈 벌고 싶어?”

“우웅, 나도 돈 벌래. 저거 나도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내가 물으니 소영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 단단해!”

지금 차력 공연을 하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들이 부수는 바위나 각목의 속은 아마 비어 있으리라. 내공의 고수도 바위를 격파하는 것은 힘든데, 외공만으로 그것을 행하려면 그 경지가 무림에서도 최상위급에 속해야 한다.

그런데 제갈교아는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외친다.

“단단?”

“으응!”

두 주먹을 앙, 쥔 소영.

무언가 격파할 것을 찾는 모양이다.

난 얼마나 아프겠냐는 심정으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한번 쳐 봐.”

도리도리.

소영이 격하게 고개를 젓는다.

“시러… 날 싫어할 거야…….”

“괜찮아. 힘껏 쳐 보렴. 힘이 세면 냄새를 맡게 해 주마.”

“정마알?”

죽립을 살짝 올려 나와 눈을 마주치는 소영.

기대가 가득한 눈빛이다.

그러고 보니 소영의 힘을 제대로 확인한 적이 없었다. 단전의 내력이 그대로 있는가? 무공을 기억하고 있나? 그 정도만 확인했다. 단전은 다행히 이상이 없었지만, 무공은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알려 주면 빠르게 이해하였기에 금방 예전의 수준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

‘분명히 소영은 강시가 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도 내력을 담지 않은 힘이 얼마나 강하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적당히 소영의 힘을 확인할 겸, 손바닥을 내민다.

그리고…….

푹!

쏜살같이 꽂히는 소영의 주먹. 그 속도에 이새붕을 비롯한 조원들이 화들짝 놀란다. 흑룡공으로 일류의 경지에 접어든 세 사람이었지만, 저렇게 빨리 주먹을 휘두르진 못하리라. 거기다…….

‘아프군.’

손바닥에 아릿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제대로 된 권격은 아니긴 했다. 허리에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았으며, 체중을 활용하지 못했다. 다리의 자세가 엉성했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는 것이다. 아마 다른 이들이 보기엔 완벽한 자세였을지도.

두근두근!

상당히 기대하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소영.

“밤에 냄새를 맡게 해 주마.”

“조아아아!”

소영이 번쩍 두 손을 들고 소리친다.

‘강시가 될 뻔한 육체라…….’

사실 소영을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죽을 위기를 넘기고, 제갈교아라는 이름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소영을 보고 있자니…….

‘그 무공을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지금도 그녀는 완전히 몸을 회복하지 못했다.

강시가 되는 과정에서 어떤 약물을 복용했는지 모른다. 어떤 시술을 받았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강시가 아닌 인간이었다. 하지만 강시와 같은 육신을 가지고 있었다.

금강신공(金剛神功).

소림사의 최고 절기 중 하나.

이것을 익히려면, 어릴 때부터 외공의 길을 걸어야 한다. 뜨거운 모래에 손바닥을 쑤셔 넣고, 단단한 근육과 피부를 가지기 위해 온갖 험난한 수련을 한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애초에 그렇게 단련하면 도리어 약해지곤 한다.

타고난 일부만이 그 무공을 익힐 수 있었다.

‘소영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친다면 이제 그녀와 남이 될 순 없다. 소림사의 무공이긴 하지만, 소영에게 맞춰서 개조해야 하리라.

즉, 소영이 날 배신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다.

기억을 되찾더라도 말이다.

‘뭐, 지금 상태를 보면 전혀 배신할 것 같진 않긴 하군.’

냄새 하나만으로 소영은 미친 듯이 기뻐한다.

용봉지회에서 보았던 제갈교아는, 백회혈의 냄새를 맡게 해 준다면 무엇이든 해 주겠다고 했었다. 아마 그녀의 기억이 온전히 돌아오더라도 오히려 날 따르면 따랐지 배신하진 않으리라.

‘오늘 밤에 한번 말해 봐야겠군.’

그래도 소영의 의사를 물어봐야 했다.

“이제 그만 보자! 자러 가자! 얼른 가자아아!”

어차피 여기서 얻을 건 없었기에 잡아 놓은 객잔 방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참, 자네 그것 들었나?”

“뭐?”

“그 소문의 무영신투가 잡혔다는군? 그런데 웬걸, 잡아 보니 젊은 놈이었다지 뭔가?”

“에이, 설마.”

“정말일세! 내기하겠는가!”

“자네는 정말 뭘 모르는군. 무영신투는 몇십 년 전부터 강호에서…….”

난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영신투가 누구한테 잡혔다는 겁니까?”

도둑놈

강호에선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또한, 그런 중원 무림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 또한 그 수가 적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더라도, 문파나 가문들이 벌이는 일에 관심이 아주 많다. 내가 정보가 필요할 때, 하오문과 개방 등과 같은 정보 문파를 활용하면서도 객잔의 일 층에서 정보를 얻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처럼 내 관심을 돌릴 만한 주제를 청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영신투에 대해서 말하던 사내가 어깨를 으쓱인다. 표정을 보니 말하고 싶어 안달 난 표정이었다. 하지만 바로 내게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는다. 무언가를 원하는 듯이 우물쭈물한 표정.

난 동전 두 푼을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백주 한 병이라도 사 먹을 순 있겠지.

“큼큼. 이런 것을 굳이 주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오.”

그렇게 말한 사내가 금방 말을 덧붙인다.

“뭐, 준다고 하면 거절하진 않겠소. 예의가 아니니!”

후딱 그것을 챙겨 소매 속에 감추는 사내. 왜 돈도 많으면서 고작 동전을 주느냐? 은자를 주면 더 정보를 캐낼 수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장소에서 만난 이들에게 거금을 줬다간 오히려 다른 귀찮은 일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었다.

“무영신투가 누구에게 잡혀갔습니까?”

“강서성 하후세가에 잡혀갔다오!”

하후세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하후세가는 오래전 유명한 장수를 많이 배출한 무가(武家)였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무림에서 그 하후 씨를 가진 사람들이 활약하는 것을 잘 보지 못했다. 무림맹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며, 용봉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하후세가의 기본 무공서를 본 적도 있는데, 웬만한 명가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하후세가가 무영신투를 잡았다? 무영신투의 무공 실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기척을 숨기는 것과 도망치는 것 하난 일품이었던 놈이다. 용봉지회에서 시간이 꽤 흘렀으니 모르긴 몰라도 더 성장했을 텐데?

‘하후세가의 저력이 있다고 봐야겠군.’

사내는 말을 멈추치 않았다.

조금 전에는 어찌 참았는지 쉴 새 없이 자신이 아는 것을 털어놓는다.

“하후세가에선 무영신투를 처형한다고 하더이다! 누구도 잡지 못한 도둑을 잡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무영신투가 이제껏 훔친 보물만 해도 금자로 환산하면 수천 냥은 가뿐히 넘어선다고 하오. 그가 훔친 모든 재물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웬만하면 돌려준다고 하더이다.”

“돌려준다고요?”

“후후! 그렇소. 하후세가 같은 유서 깊은 가문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지. 그리고 무영신투가 훔친 돈으로 무관과 학관을 지어 강서성 지역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하더군. 남창으로 가면 돈을 내지 않고도 글과 무공을 배울 수 있으니 좋은 기회 아니겠소? 세상 누가 그렇게 가르쳐 준다는 말이오?”

그의 친우로 보이는 사내가 반박한다.

“소림사가 있지 않나?”

“예끼, 자네는 한평생 여인을 품지 않고도 살 수 있겠는가? 내가 소림을 존경하긴 하지만 말이야. 자신이 스님이 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지 않겠나? 자고로 사내라면, 큰 포부를 품어 중원에 이름을 알리고 미녀들과 사랑도 나누고, 동침도 하고… 흐흐!”

“동침? 사랑?”

듣고 있던 소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죽립을 눌러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말투가 조금 어눌하여 어린아이로 생각한 사내.

“크흠! 어린 소녀는 조금 뒤로 물러나거라. 아직 들을 때가 아니다!”

“시러!”

“소영아, 뒤에 가 있어라.”

“네에.”

내 말에 후딱 뒤로 물러서는 소영. 조연연의 뒤에 찰싹 달라붙는다. 그래도 내 말은 확실하게 들으니 편하다. 냄새라는 확실한 수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솔직히 지금도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형씨도 무림인인 것 같은데, 남창에 가 보는 게 어떻소? 무공의 재능이 있다면 하후세가의 방계 제자로 받아 준다고 하고? 그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시오? 또 글에 재능이 있다면 학관의 글 선생으로도 초빙한다고 하오. 그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식객으로 머물기만 해도 매일 맛난 잔치 음식을 대접한다고 하더군.”

하후세가에 대한 칭찬이 마르질 않는다.

이렇게까지 찬양하는 것을 보니 대대적으로 돈을 뿌려 가며 그 사실을 알린 모양이다. 아마 이 사람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무영신투에 대한 정보를 조만간 접할 수 있었으리라.

‘정말 무영신투를 잡은 건가? 하후세가가 과거 명문가였던 것은 맞지만, 저리 대규모로 돈을 뿌리려면 거대한 자본이 필요할 것이 분명한데 말이지.’

무영신투가 잡힌다?

그는 조심성 많은 도둑이었다. 양씨세가의 삼현마금을 훔치는 데에도 몇 달 동안 양주아를 미행했다고 했었다. 하후세가의 보물을 훔치려 했다면, 아마 그 나름대로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으리라.

운이 좋지 않았거나.

혹은 하후세가의 힘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처형은 언제 한답니까?”

“아마 곧 할 것이오. 어차피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 도둑놈이 죽든 말든 상관없는 일 아니오?”

“친구, 무영신투는 부정부패한 이들의 보물을 훔쳐 백성들에게 나눠 준 사람이라네. 너무한 것이 아닌가?”

“이 답답한 친구야, 그걸 자네가 받았나? 아무리 좋은 일에 썼다고 해도 도둑은 도둑이야. 그리고 내가 볼 땐, 그건 헛소문이 분명해.”

굳이 사내에게 내가 아는 무영신투는 다르다고 우길 생각은 없었다.

의미없는 자존심 싸움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더 물어볼 것은 없소? 내가 아는 건 모두 말해 줄 수 있는데…….”

그는 입이 근질거려 참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그에게 정보를 얻을 필요는 없었다.

“괜찮습니다. 가자.”

“예!”

그와 만난다면 완벽하지 않은 무영심결의 빈 부분을 채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제갈교아를 찾는 임무도 끝나서 하북성을 떠돌기만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할 일이 생겼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확인해 볼 가치는 충분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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