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236)

* * *

어느 화창한 날.

한 사내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경쾌한 발걸음과는 정반대로 얼굴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일정하게 천자산을 오른다.

그가 잠시 멈춰선 곳은 산의 중턱이었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것이 태가 난다. 사내는 가끔 이곳에 들러 술과 고기를 나누곤 했었다.

잠시 그곳을 노려보던 사내가 고개를 젓는다.

“무지렁이들이 그럴 재주가 있을 리 있나.”

다시금 사내가 산을 올랐다.

이제는 그 속도가 대단히 빨라졌다. 산에 터를 잡고 사는 짐승들조차도 그 속도에 화들짝 놀랄 정도였으니…….

그가 도착한 곳은 언뜻 울창해 보이지만 이제는 그 생명을 잃어 가는 식물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천자산의 정기로는 봉우리의 찬란한 자연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 낙원을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무언가의 ‘생명’이었으니까.

“하하하…….”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 사내.

산의 중턱까지만 해도 분노가 가득 찼던 얼굴이지만, 이제는 허탈함마저 엿보인다. 그는 봉우리 중앙에 지어진 나무집에 멈춰 섰다. 끼이익. 천천히 문이 열리고, 지독한 악취가 코를 간질였지만 사내는 그것을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그가 손뼉을 한 번 치자.

사방에 박혀 있던 작은 등불에 불이 붙었다. 실로 놀라운 기예라 할 수 있었다.

밝게 비치는 방 내부를 휙휙 둘러보던 사내가.

사지가 잘린 채로 썩어 가고 있는 한 시체를 발견한다. 온갖 벌레들이 살점을 파먹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역겨웠지만, 사내는 역겨움보다는 분노를 표출했다.

“한낱 미물들이 감히.”

촤라라라랏!

벌레들이 삽시간에 모두 증발하듯 사라졌다.

“미안하구나. 늦어 버렸어.”

사내는 안쓰럽다는 듯이 시체의 머리통을 쓰다듬는다.

그렇게 오랜 기간 시체의 머리통을 쓰다듬던 사내는 무언가가 누워 있던 자리를 훑는다.

“벌을 받아야겠구나.”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눈동자에 푸른 불꽃이 이는 듯했다.

* * *

“조장님, 그분은…….”

우리는 바로 천자산을 내려간 후.

바로 호북성 석수현으로 달려왔다. 그곳에서 가장 좋은 객잔을 잡은 후, 제갈교아를 치료하는 데 전념했다. 하지만 무림의를 부르거나 하진 않았다. 제갈교아를 납치한 사람이, 세력이 어딘지 모르기에 위험부담을 최소화해야 했기 때문.

지금 돌이켜보니 당시에 난 너무 위험천만하게 일을 진행한 듯했다.

‘무영심결로는 안 되겠는걸.’

무영심결이 세간에서 말하는 절세 무공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은 완성본이 아니다.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아마 무영신투의 다른 무공들과 결합되어 사용되어야 완전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다른 무공과 결합하여 어느 정도는 그 틈을 메꾸긴 했지만…….

‘강호는 넓다.’

사실 난 이제껏 무림에서 타인에게 그 격언을 일깨워 준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천자산의 봉우리를 겪고 나니 나조차도 그것을 느꼈다. 내 재능은 아버지의 말대로 하늘이 내려 줬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 맞다. 그것이 없었다면 난 이렇게 발전할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재능이 하나뿐일까?

그런 재능을 가진 자가, 노력하고 ‘시간’을 얻었다면?

지금의 나로선…….

힘들다.

난 처절한 복수보다는 통쾌한 복수를 원했다.

그렇기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아가는 중이었다.

“조장님! 그분이 깨어나셨어요!”

조연연이 달려왔다.

생각을 잠시 멈춰 두고 제갈교아에게로 향한다.

“…….”

“으… 응… 킁킁… 조아…….”

마치 퇴행이라도 한 듯한 말투. 제갈교아는 배실배실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코를 킁킁대며 내 냄새를 맡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혼’의 냄새겠지.

“네 이름은 기억하나?”

“이름……? 우우우움… 몰라. 몰라. 냄새. 조아.”

“…….”

사실 회복하더라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닐 것이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것도 방법이겠지만…….

“만월.”

“우웅?”

제갈교아가 눈을 빛낸다. 그것에는 관심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스스로 무언가를 떠올리지 못하지만, 단어와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란 말이다.

“무림맹.”

“웅?”

이젠 관심이 없다는 듯한 표정.

“천마신교.”

처음으로 제갈교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듣기 싫다는 소리다.

그리고 난 마지막으로 말했다.

“제갈세가.”

제갈교아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흘린 본인조차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닦아 냈다. 찰나의 순간 슬픔이 깃들었던 그녀는 다시금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또한, 양팔을 벌려 자신을 안아 달라 재촉하고 있다.

“냄새. 냄새. 조아.”

오늘은 여기까지.

난 씁쓸함을 감춘 채로 제갈교아를 안아 주었다.

냄새 좋아

“예……?”

조원들을 불러 놓은 후, 내 생각을 말했다.

취지는 간단했다.

“우리는 계속 제갈교아를 찾는다.”

세 사람 다 의문이 많은 표정이었다. 왜 저런 얼굴을 하는지 이해된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으리라. 우리는 전대 맹주인 제갈강량이 맡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제갈교아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더라도, 그녀를 찾았다. 이 넓은 중원에서 제갈교아를 찾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업적이라 할 수 있었다.

처음 무림맹에서 나올 땐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녀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내 말이라고 무조건 납득하여 수긍하지 말고 한 번은 그 의도를 생각해 보라 명했기에 세 사람은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이 보았던 것과 내가 보았던 것은 다르다.

그렇기에 이번은 하나부터 끝까지 설명해 주기로 했다. 내가 천자산의 정상에서 본 것들을.

난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해 주었다.

천자산 중턱의 산적들이 잠들어 있었던 일. 보이지 않는 벽에 까마귀가 목숨을 던지고 있었던 것. 벽 내부, 하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울창했던 봉우리. 그 중앙에 있던 악취 가득한 집. 그리고 거기서 나타난 강시.

“천자산에서 제갈교아를 납치한 것은 진법에 대하여 상당한 조예가 있다. 그리고 약물이나 강시를 만드는 능력도 그에 못지않지. 제갈교아를 납치한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제갈교아를 찾았다고 밝힌다면 그 납치범이 우릴 노릴 가능성이 크다. 아마 이제껏 상대했던 적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

지금은 무리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수하들이 이해됐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세 사람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니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저어, 조장님.”

“그래, 조연연.”

조연연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는다.

“그런데 오늘 그분이 특정 단어에 반응하셨잖아요? 마교라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셨고, 제갈세가라는 말에는 눈물을 흘리셨어요. 혹, 범인은…….”

“넌 누구일 것이라 생각하느냐?”

조연연이 긴장을 유지한 채 답한다.

“사실 마교라고 믿고 싶지만… 제갈세가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지?”

“전 무림맹의 외성에서 보급대 일을 할 때 무림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어요. 진법에 관해선 제갈세가가 최고라고… 그리고 약을 제조하는 기술이나, 그 외에도 온갖 지식을 가지고 있는 가문이 제갈세가라고요. 천자산에서 있었던 일은 제갈세가 수준이 아니면 벌일 수 없는 일 아닐까요? 거기다가 ‘그분’께서는 제갈세가의 이름을 듣고 눈물까지 흘리셨으니까요……. 그래서… 만약 그렇다면…….”

결론은 내지 못한 채로 쭈뼛거리는 조연연.

놀랍게도 그녀의 추론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거의 비슷했다. 조연연은 사람을 관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겉으로 보면 천방지축으로 보이곤 하지만, 은근히 섬세한 여인이었다.

“정확하다. 난 제갈교아를 납치한 세력 중에 제갈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녀를 제갈세가로 데려다주면, 호랑이 굴에 던져 주는 것이나 다름없지. 우리는 제갈 소저를 구출한 것을 숨긴다. 제갈 소저를 위해서도, 당장 우리를 위해서도 말이지.”

“오…….”

이새붕이 입을 벌리고 조연연을 바라본다.

내 칭찬과 이새붕의 반응에 조연연의 귀가 빨갛게 익는다.

단목위는 평소 성격 그대로 결의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아마 ‘명령은 무조건 따른다’ 뭐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제갈교아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부르면 되겠습니까?”

“소영.”

영령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난 사실 이름이라는 것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다. 이름이라는 것은 결국 쓰는 사람이 어떠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괴상한 이름을 쓰더라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이름 자체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아무튼, 제갈교아는 이제부터 소영이라 부르기로 했다.

“예, 알겠습니다, 조장님!”

“제갈세가의 대공녀이긴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그것을 모두 잊는다. 소영은 그냥 소영일 뿐이다. 우리는 친동생처럼 소영을 보살펴 준다. 그래도 같은 여자이니 네가 조금 더 고생해 줘야겠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우리 귀여운 소영이를 잘 보살필게요.”

바로 적응하는 조연연.

생활력이라고 할까? 이런 모습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아직 전대 맹주님과 약조한 반년에서 꽤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예정 그대로 호북성을 여정하며 제갈교아를 찾는 척한다.”

“예! 조장님!”

모두가 물러난 후.

의자에 앉는다.

왼손의 옥팔찌를 바라본다. 거대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함부로 사용할 순 없었다. 단지 뭉치고 뭉쳐 팔찌 내부에 모여들었을 뿐, 정제된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앞으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신병이기라 해도, 이토록 많은 내력을 지닌 기물이 또 있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또 하나의 단전이 생겼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마 이것을 착용한 채로 운기조식을 하면 내력이 모이는 속도가 더 빠르겠지.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이 거대한 내력을 제대로 활용했다고 할 순 없었다.

‘이건 천천히 두고 봐야겠군.’

내가 고민해야 하는 건 팔찌뿐만이 아니다.

‘제갈세가가 정말 제갈교아를 납치했을까? 그녀가 평범한 사람과 다른 점은 혼의 냄새를 맡는다는 점. 그것이 납치된 이유일까? 그런 힘을 가진 여인만이 강시가 될 수 있다거나?’

추론해 본다.

그러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제갈강량이 왜 이러한 부탁을 했을까?’

혹시 제갈세가의 파벌이 나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세력의 개입이 있는 걸까? 정말 마교와 연관이 있는 일일까?

‘제갈세가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겠어.’

오대세가 중 하나.

제갈세가.

그곳엔 분명히 감춰 둔 비밀이 있으리라.

끼이익.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킁킁…….”

제갈교아, 아니 소영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녀는 홀린 듯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냄새 조아.”

“…….”

제갈교아가 무림오화에 들어갔던 만큼 본래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긴 했지만… 솔직히 여인이 이렇게 몸을 밀착하는 것은, 내겐 상당히 곤욕이었다. 아직 천향옥로단의 힘을 완전히 이겨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 참을 수 있게 된 것일 뿐.

내 목에서부터 냄새를 맡으려던 소영을 살짝 밀어낸다.

“왜애……?”

“으음, 그러니까.”

“그러니까아……?”

“말 잘 들으면 냄새를 맡게 해 주마. 말을 듣지 않으면 냄새를 맡을 수 없을 거다.”

소영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우웅!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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