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236)

* * *

단목무광, 백예령, 백자강 그리고 단목산산이 식사를 함께하고 있다.

비화 표국주 백자강은 딱히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백예령은 그것을 단목청야를 띄워 주기 위한 연기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던 중.

백예령이 지나가는 듯이 말한다.

“참, 청야가 호법당의 당원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으셨죠, 아버지?”

백자강은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소식을 듣고 어찌나 좋아했던지.

“그래, 들었다.”

“호법당원이면 표국에 분명히 도움이 되겠죠?”

“큰 도움이 되겠지. 분쟁이 생기면 호법당이 중재해 주니까.”

“어머머, 청야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얼른 그 아이가 이 급 당원으로 올라서야 할 텐데… 그러려면 가문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겠죠.”

백예령이 슬쩍 단목무광을 바라본다.

“부군께서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셨나요?”

그녀는 침실에서 단목무광의 귓가에 몇 번이나 속삭였다.

단목청야를 확실히 밀어줘야 한다고 말이다. 예전부터 단목무광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이 사천당문의 대공녀나 내당주와 연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긴가민가한 마음이다.

단목청야는 그가 가장 믿는 장남이긴 하지만.

그가 후계자가 되는 게 단목세가 전체로 보면 옳은 길일까? 가주로서 고민이 많았다.

또, 정치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도 있다.

가주는 가문에서 막강한 권한을 지니지만, 장로들의 입김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어느 가문이나 비슷하겠지만, 단목세가의 진정한 힘은 장로들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화 표국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는 단목청야는 무공을 빼놓고는 전부 단목장룡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번에 백자강이 찾아온 이유도 그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백자강이 어떤 말을 할까. 분명히 자신을 설득하려 할 것이다. 단목무광과 백자강이 눈을 마주친다.

‘어떤 제안을 하실 겁니까, 장인어른.’

단묵무광이 마음의 준비를 한 채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백자강의 입이 열리지 않는다.

“아버지?”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해야 할 것 같구나.”

백예령에게 따로 말하려 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는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가주와의 식사 자리에 도착했다. 어차피 지나가야 할 산이라면, 한 번에 넘는 것이 좋으리라.

“가주, 난 청야보다는 둘째인 장룡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 옳다고 보네.”

“……?”

“아버지?”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단목청야의 외할아버지인 그가 단목장룡을 지지한다? 애초에 두 사람은 접점이 없었다.

단지, 조용히 식사하고 있던 단목산산만이 작게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다.

‘으음, 근데 오라버니는 후계자가 되기 싫다고 했는데? 내가 말해야 하나?’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단목장룡이 나서지 말라고 했었다. 거기다 지금 입을 열었다간 어머니의 따끔한 훈계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어머니란 존재는 시간이 지나도 참으로 무서웠다.

“잠시만요! 아버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예령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대체!”

“장인어른,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제게 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청야와 장룡이 대립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네.”

“최근에 둘째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네.”

“언제요? 설마 장룡이가 비화 표국에 찾아간 적이 있나요?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제게 일언반구도 없이……!”

사내들의 대화에 끼어들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백예령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버지가 이상하다. 술이라도 드신 건가? 대체 왜 저러는 거지?

그때.

호위 무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주님, 둘째 공자님께서 오셨습니다.”

“장룡이가?”

움찔!

백자강이 식은땀을 흘린다. 단목무광은 백자강과 단목장룡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들어오라 하라.”

문이 열리고 단목장룡이 들어온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임무가 생겨 지금 떠나야 할 것 같아서 이리 찾아왔습니다.”

“벌써 간다는 말이냐? 며칠은 더 있을 줄 알았더니.”

“죄송합니다.”

“아버지, 말씀해 주세요. 왜 장룡이 본가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지를요.”

백예령은 단목장룡을 바라보지 않고, 백자강에게 말했다.

단목장룡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더라니, 후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단목산산과 눈을 마주친다. 산산은 이런 분위기에도 싱긋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건 내가 직접 보았기 때문이란다.”

“뭐를요? 대체 뭘 보셨길래……!”

“장룡과 녹림의 대호법이 비무하는 것을 말이다.”

“대호법?”

단목무광이 반응한다. 녹림의 대호법은 정파에서도 상당히 유명했다.

“장룡은 그 대호법과 비등하게 비무를 펼쳤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

“무공이 강하다고…….”

백예령이 반박하려 했지만, 백자강이 고개를 젓는다.

“무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이다. 단목세가를 위해서도, 비화 표국을 위해서도 후계는 둘째가 되는 것이 맞다. 난 둘째를 지지할 생각이다.”

백자강이 결의를 다진 눈으로 단목장룡을 바라본다.

‘내가 자네를 밀어줄 터이니, 부디 청야와는 대립하지 말아 주게.’

끝까지 가면 무조건 단목청야가 다친다.

부귀영화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생존. 상대를 봐 가면서 싸움을 걸어야 한다. 단목장룡은 단목청야가 마주할 수준이 아니다.

“…….”

단목장룡은 황당했다.

세가의 후계자리를 물려받을 생각이 없는데, 자신을 지지한다니 뭐니 떠들고 있었다. 거기다 첫째 부인은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이다. 믿었던 아버지에게 배신당하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단목무광은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단목청야가 없지만, 그의 든든한 버팀목인 비화 표국주도 단목장룡을 후계로 추천한다. 여인을 밝히는 것은 조금 걸리긴 했지만, 단목장룡이 후계가 된다면 그것 또한 바뀌리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니까.

“장인어른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잘 알겠습니다.”

“부군……? 설마……?”

단목무광은 애써 백예령의 시선을 회피한다.

그녀가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사랑을 나누고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온 부인이었다.

하나, 가주는 그런 것에 얽매이면 안 된다. 단목세가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안 돼요!”

“장룡, 각오는 되었느냐.”

이 자리는 정에 휘둘려서는 아니 된다.

근엄하고 위엄이 섞인 시선으로 단목장룡을 바라본다. 망나니라 치부했던 둘째였지만, 어느샌가 이렇게 성장했다. 이런 단목장룡이라면…….

“가주의 권한으로 널 단목세가의 후계로…….”

“죄송합니다. 전 후계자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안 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벌떡 일어나 외친 백예령.

눈을 감고, 딸의 시선을 외면하던 백자강.

가주의 위엄을 보여 주려 했던 단목무광.

모두의 움직임이 뚝 멈춘다.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전 단목세가의 가주가 되지 않을 겁니다.”

단목장룡이 단호하게 말한다.

자질이 부족하기에 후계자가 될 수 없다 하는 이런 소리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의 말을 겸손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명확히 의지를 밝힌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단목무광의 물음에 단목장룡이 다시 답한다.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가주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

백예령조차도 지금 이 순간에 좋아해야 할지 고민됐다. 그만큼 뜬금없는 말이다.

지금 상황을 정확히 이해한 것은, 이 자리에서 단목산산뿐이다.

‘머, 멋있어……!’

단목산산은 매번 어른들의 명령에 따라왔다.

자라면 자고, 수련하라면 수련하고… 혼약을 하라면 눈물을 머금고 따르려 했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다르다. 그녀였다면 기에 눌려 우물쭈물했을 상황에, 저리 당당하게 소신을 밝힌다.

‘나도 꼭 오라버니처럼 될 거야.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거야!’

단목산산은 응응, 고개를 주억거리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단목장룡을 올려다보았다.

“왜……?”

단목무광이 얼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미 청야 형님과 이 부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가문을 이끄는 역할은 형님의 몫입니다. 전 형님을 뒤에서 돕겠습니다.”

“…….”

단목무광의 결단과 백자강의 결의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진다.

백예령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더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흑룡단의 임무라서 말입니다. 그럼 이만…….”

허무하게 떠나 버린 단목장룡.

모두 머릿속이 어지러워 그를 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흑룡단의 임무라는데 어찌 잡겠는가?

아, 딱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아앗! 오라버니!”

그녀는 벌떡 일어서 단목장룡을 뒤쫓았다.

* * *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이제 후계자 이야기는 꺼내지 않겠지.’

뭐, 설득하려 하더라도 거절하면 그만이다.

내가 후계자가 될 생각이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뭣하면 맹에서 단목청야에게 해결을 부탁하면 되리라. 그의 정치력은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니 본가의 어른들을 잘 설득할 수 있으리라.

“오라버니이잇!”

뒤를 보니 단목산산이 쫓아오고 있다.

잠깐은 그녀와 대화할 수 있었다.

“벌써 떠나시는 거예요?”

“그래, 새로운 정보가 나와서 말이야. 촉박한 일이다 보니 이리 떠날 수밖에 없단다.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오라버니가 뭐가 미안해요? 조급 아쉽긴 하지만… 아마 지금 떠나시면 오랫동안 또 보지 못하겠죠?”

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맹에 돌아가기 전에 꼭 다시 들르마.”

“정말요……?”

“그래. 내가 알려 준 것을 잘 익히고 있는지 확인할 거다. 게으름을 피웠으면 혼이 날 줄 알거라.”

두 주먹을 쥐고, 고개를 끄덕이는 단목산산.

“열심히 하고 있을게요! 오라버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동생이 되도록 열심히 할 거예요.”

“그래.”

그렇게 단목산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니 뒤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조원들이다. 그들은 봇짐을 모두 챙긴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의 휴식이니 피로가 꽤 날아간 듯 보였다.

“그럼 나중에 보자.”

그렇게 떠나가고 있을 때.

저 뒤에서 단목산산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라버니! 몸조심하세요! 임무하시다가 다치시면 안 돼요!”

“산산아! 장룡이와 무슨 이야기를 했니!”

그리고 들려오는 백예령의 급박한 음성.

처음부터 성성루 이야기를 꺼내며 날 압박하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신교에서도 그러했다. 일 공자 사도명. 그녀의 어미는 매번 나를 못살게 굴었다. 뭐 약관을 넘은 후로 거의 얼굴을 보지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생각나는 한 사람.

‘어머니는 잘 계시려나.’

나 또한 어머니가 있었다.

단목장룡의 이름이 아니라 사공천으로 살아갈 때의 어머니. 극성도 그런 극성이 없었다. 매번 신교의 소교주는 내가 되어야 한다며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당시엔 솔직히 어머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뭐, 당시의 나는 망나니였으니까.

하지만 단목청야를 밀어주려는 백예령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문득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잘 계실까?

‘…고민해 봤자 알 수 없는 일이지.’

그건 직접 확인하면 된다.

조금씩 신교와의 거리는 줄곧 가까워지고 있었다.

기묘한 장소

이번 목적지는 호남성 천자산.

호남에서부턴 사파의 권역이라 해도 무방했다. 다만, 천자산은 호북성과 가까웠기에 완전히 사파의 권역이라고 하기엔 뭣한, 정파와 사파의 경계쯤이라 말해도 무방하다. 그래도 그곳은 천자산채가 있는 곳이니 엄밀히 따지면 사파의 권역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조급하게 천자산으로 향하지 않았다.

천자산은 동방강수가 경계했던 장소다. 혹시 모를 위협이 있었기에 최대한 기력을 아껴야 했다.

그렇게 의창현에서 떠난 지 보름 만에 천자산에 도달할 수 있었다.

천자산 하부엔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스산했다.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을 경계하는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집 안으로 숨어 버렸다. 작은 창에서 수십 쌍의 눈동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렇게 바라보면 시선을 느낄 수 있으리라.

모두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은 참으로 묘했다.

“조장님, 탐문을 하면 되나요?”

이새붕이 내게 묻는다.

탐문은 추적의 기본 중 하나였다. 우리는 어떤 마을을 들르든 간에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여러 정보를 취합하여 하나로 합친다. 쓸데없는 정보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합쳐 보면 간혹 그럴듯한 이야기가 완성되곤 한다.

천자산 하부의 마을은 보통의 중원 마을과 조금 달랐다.

일단 이들에게 정보를 캐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저기,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혹시…….”

“저리 가! 가까이 오지 마!”

마치 귀신에 홀린 듯이 우리를 배척하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 똑같은 반응이었다. 민가 앞에 도착하면 악을 쓰며 축객령을 내린다. 혹시 남자라서 경계하는가 하여 조연연이 나서 보았지만,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냥 외지인 자체를 경계한다. 사실 외부와 고립되어 사는 작은 마을은 이런 경향을 보이곤 했지만, 그 정도가 심하긴 하다.

“어찌할까요?”

“어쩔 수 없지. 강제로 저들을 심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천자산으로 가자. 그곳에 가면 명확한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 조장님.”

우리는 곧장 방향을 튼다. 비협조적인 이들에게 정보를 얻어 내려고 하면 시간의 낭비였다.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천자산 봉우리에 설치된 진법. 그곳에 뭐가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렇게 우리가 마을에서 떠나려고 할 때.

마을이 소란스러워진다. 마을 사람들끼리 수신호를 주고받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속도를 늦추니 비쩍 마른 노인 하나가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당연히 무공 따위는 익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이봐요들…….”

“예, 노인장.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단목위가 예를 차려 노인에게 인사한다.

노인은 단목위가 깍듯하게 하자 조금 놀란 듯했다.

“지금… 천자산으로 가는 것 같은데… 가지 마시우…….”

“그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노인.

천천히 입을 연다.

“천자산엔 천지신명에 살고 계시우……. 그분이 최근에 노하셨어… 정말 대노하셨지……. 그러니 가지 마시우…….”

천지신명?

과거에 그것을 언급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용봉지회에서 만났던 제갈교아였다. 그녀는 제갈세가의 여인이기도 하지만, 신녀문의 계승자라고도 했었다. 사실 그때는 생각할 것이 많아서 그냥 넘겼던 것인데, 신녀문이라는 것은 이름은 있지만 그들이 어디에 터를 잡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소문만 무성한 문파일 뿐이었다.

지금 노인의 말을 듣고 있으니 대번에 신녀문과 제갈교아가 떠오른다.

천지신명이 분노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사람들은 그 천지신명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는가? 분노했다는 걸 어찌 알고 있지?

단목위를 물리고 내가 나선다.

그러자 노인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천지신명께서 노하셨다는 것을 어찌 알고 있습니까?”

“…까마귀.”

“까마귀 말입니까?”

그게 어쨌단 말이지?

그 노인에게 더 물어보려는 찰나.

까아아악!

까아아아아악!

수백의 까마귀 떼의 불길한 울음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진다.

“아, 안 돼! 제, 제를 올려야 해! 천지신명께서 노하셨다아아아아!”

“노인장!”

“아아아아아아악!”

노인은 마치 귀신이 들린 듯한 표정으로 눈이 뒤집혀 우리에게서 도망쳤다. 그는 자신이 있었던 허름한 민가 안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서서 마을의 소음을 듣는다. 그들은 모두 천지신명이라는 존재에게 제를 올리고 있다.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천마신교도 천마를 숭배하여 광신도가 된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난 천마신교 출신이었지만, 천마를 믿지 않는다.

결국, 천마 또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믿는 종교를 버리라 할 권리는 내게 없었다.

단지, 의아할 뿐.

‘까마귀가 천자산으로 저리 큰 무리를 형성하여 날아갔다? 저 높은 봉우리에 까마귀의 사냥감이 있을까?’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긴 했다.

조원들을 바라보니 단목위와 이새붕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조연연이 하얗게 질린 얼굴이다. 평소에 겁도 없고 명량한 녀석이라 이런 것에도 겁을 먹지 않을까 했는데…….

“조연연, 왜 그러느냐?”

“그게… 제가 있던 남만의 마을에선 까마귀는 불운의 상징이었어요. 까마귀의 울음이 들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씩 죽었어서… 저리 많은 까마귀가 날아간다면 분명…….”

“연연아, 괜찮다.”

이새붕이 말한다.

“우리는 흑룡단 아니냐? 이제까지 열심히 수련했다. 누구도 죽지 않아. 그리고…….”

날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조장님이 계시잖아.”

조연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조금 안정된 듯하다. 뭐, 사람마다 무서워하는 것은 다를 수 있었다.

“다들 주목.”

“주목!”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까마귀가 저리 날아간 것엔 분명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원인을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천자산에 올라야 합니다.”

단목위의 답변.

정답이었다.

“우리는 이미 천자산의 봉우리에 진이 설치되어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다. 까마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곳에 가야 확인할 수 있겠지.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수색조, 본대, 후방 지원조를 나누어서 진입해야겠지만, 우리는 소수 인원이다. 그렇기에 뭉쳐서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한다. 내가 최전방을 담당한다.”

“예, 조장님.”

“그럼 따라와라. 지금부터 천자산 수색을 시작한다.”

그렇게 마을을 떠나 천자산으로 향한다.

이번엔 창문으로 우릴 바라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집 안에 들어가 제를 지내는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천지신명이라는 존재가 정말 천자산 정상에 있을지.

지금부터 알아볼 요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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