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236)

* * *

“이렇게 된 것입니다, 형님.”

단목청야는 천룡각에 있던 시절, 남궁일몽의 수하를 자처했다. 남궁일몽 또한 그를 신뢰했었다. 이제껏 그의 수하를 자처했던 이들 중 가장 일머리가 좋았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명령을 내린 것처럼 미리 행동하던 단목청야는 좋은 동생이었다.

남궁일몽은 진지하게 그의 고민을 들어 주었다.

그의 표정은 당연히 굳어 있었다.

“천룡각에서 늘 보던 병신들이랑 하는 짓이 똑같군.”

천룡각에도 저런 놈들은 많았다.

“그래서 넌 어찌할 생각이냐?”

“숙이는 척하고 그의 밑으로 갈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제가 당할 것 같더군요. 위지 장로는 언제 뒤를 노릴지 모르는 인물인 듯합니다.”

남궁일몽이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 네게 한 짓을 보면, 이미 계획은 다 짜 놨던 듯하군. 단목 조장님께 그런 제안을 하라고 했을 때부터 말이야.”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그럼 답은 정해져 있잖아?”

단목청야가 눈을 빛냈다.

그가 말하는 답은 과연 무엇일까? 별탈 없이 넘어갈 수 있을까?

“가문의 도움을 받아야지.”

역시 그 방법뿐인가.

단목청야의 표정을 본 남궁일몽이 고개를 젓는다.

“의창 본가에 말하라는 게 아니야.”

“그럼……?”

“단목 조장님이 있잖아?”

사실 단목청야는 남궁일몽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남궁세가라면 아무리 위지무외가 무림맹의 장로라고 해도 별탈 없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 물론, 그것이 과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역시 장룡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수밖에 없는가…….’

피식.

단목청야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본 남궁일몽이 미소 짓는다.

“천룡각에서 말했다시피 난 널 좋은 동생으로 생각한다. 네가 도와 달라면 숙부님께 말해서 도움을 청할 거야. 하지만 이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일 같군.”

“형님께선 장룡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넌 단목 조장님을 잘 모르는구나.”

형님이라 부르는 이는 단목 조장님이라며 꼬박꼬박 존대한다. 그것이 불만인 것은 아니었지만, 단목청야의 입장에선 조금 어색하긴 하다. 단목장룡의 재능은 그로서도 잘 알고 있지만, 재능으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점창파의 거 장로가 단목 조장님께 힘도 쓰지 못하고 당한 건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꽤 유명한 사건이다.

그것 때문에 위지무외와 황룡단이 단목장룡을 영입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사건이 있음에도 점창이나 적룡단이 침묵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건……?”

단목청야의 입이 벌어진다.

“뭐, 뒤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이제까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단목 조장님을 건드리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겠어?”

“혹, 형님의 말대로라면… 장룡이 이 일에 나서는 순간 적룡단이 트집을 잡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장룡에게 도움이 되진 못할망정 부담을 주고 싶진 않습니다.”

“그런 놈이 장룡에게 황룡단에 들어가라고 했어?”

장난스러운 남궁일몽의 말투.

단목청야를 탓하는 건 아니었다.

“그건… 후회하고 있습니다.”

“일단 단목 조장님께 말해 보는 게 어때? 네가 정말 원한다면 내가 숙부님께 말씀드려 일을 해결해 줄 수도 있어.”

단목청야가 고민한다.

그러다 문득 그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그땐 서로 진심을 이야기했다. 각자의 목적은 달랐지만, 일이 생기면 서로 돕기로 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야기를 할까? 만약 단목장룡이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이야기는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잠시 뒤.

단목청야가 결단을 내렸다.

“장룡에게 말해 보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남궁일몽의 표정은 은근히 즐거워 보였다.

* * *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단목장룡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 단목청야는 조금 불안하긴 했다. 결국, 자신의 판단 실수로 일어난 일이다. 위지무외와 거래하기 전 단목장룡과 대화를 나눴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무림맹의 장로를 너무 쉽게 본 탓도 있었다.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노괴들이 다 그렇지요.”

단목청야가 갑자기 찾아와 황룡단을 언급하는 게 이상하긴 했었다. 그가 갑자기 찾아왔던 이유가 위지무외 때문인 듯하다. 그건 그렇고…….

‘또 내 사람을 건드리는군.’

단목청야는 사실 단목장룡에게 그리 소중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노리다가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위지무회가 정확히 무엇을 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람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한다.

여기서 가만히 침묵한다면 그들은 돌을 던져 볼 것이다.

언제 반응하는지 확인하며 저들만의 선을 그을 것이다. 단목장룡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림맹의 장로?

맞다. 단목장룡보다 훨씬 배분이 높았으며, 무림의 대선배였다.

하지만 그것을 걱정했다면, 점창파의 장로와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좋게 좋게 넘어가려 했겠지. 거기다 무림맹 장로와 척을 지는 것이 무서워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면, 그가 생각했던 목표는 절대 이룰 수 없으리라. 그건 확실했다.

단목장룡은 현재에 안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 확실히 보여 줘야 한다, 함부로 건드리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걸.

사천당문이 무림에서 악독하다고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독을 사용하는 것 때문도 있지만, 받은 것을 몇 배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방법이 있더냐?”

단목청야가 생각하는 건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무림맹 장로라는 직위는 사실 갓 무림맹에 들어온 당원이 감히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할 자리였으니까. 하지만 단목장룡은 누군가의 힘을 빌릴 생각은 없었다.

“제가 위지 장로와 만나 보겠습니다.”

“네가 직접? 어떻게 하려고?”

“무인은 말로 싸우지 않지요.”

“뭐……?”

단목청야가 당황했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무인들은 입으로 싸우지 않는다. 자존심이 상하면 객잔에서도 검을 뽑는 것이 무인이다. 하지만 그는 호법당원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땐, 조율자가 필요했다.

“하하하하! 역시 단목 조장님이십니다! 화끈하시군요. 저였더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단목청야의 눈빛이 흔들린다.

무공 천재들의 방식을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일이 커지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남궁일몽이 있으니까요.”

특유의 자신감.

용봉지회에서도 남궁일몽은 저런 표정으로 단목장룡에게 접근해서 은근히 속을 긁어 놓았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가시죠.”

“지, 지금 바로?”

“예, 굳이 끌 필요는 없지요.”

단목청야가 당황한다.

남궁일몽은 신난 얼굴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좋습니다. 혹시 모르니 숙부님께 서신을 남겨 놓겠습니다.”

* * *

“장로님, 단목청야는 천룡각에서 남궁가의 둘째와 연이 깊었습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자량의 질문에 위지무외가 아직 멀었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그럼 더 심하게 배척받겠지. 단목가의 장남은 맹의 텃세를 버티지 못하고 의창현으로 돌아가고 말이야.”

“결국 장로님의 밑으로 들어오겠군요.”

“그래야지. 그리 멍청한 아이는 아니니 내 밑으로 오면 얻을 게 많다는 걸 알고 있을 거야.”

실제로 위지무외는 무림맹 이곳저곳에 씨를 뿌려 두었다. 그것은 그가 무리맹에 입맹하기도 전에 맺은 인연도 존재했다. 결국, 무림은 인맥이 중요하다. 그의 호적수였던 거연창이 점창산에서 검만 수련하다가 겨우 무림맹의 장로로 와서 적응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럼 단목장룡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지켜봐야겠지. 단목청야가 밑으로 들어오면 다시금 차근차근 설득하면 될 것이야. 네가 적당히 단목장룡을 감시하고 있거라. 청룡단이나 적룡단에서 접근하는지 잘 알아보고. 뭐, 적룡단은 거연창의 일이 있으니 쉬이 다가가진 않겠지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되긴 했군,”

이제 곧 해가 진다.

하루라고 했지만, 아마 늦은 밤에 찾아오진 않으리라.

“그럼 전 나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위지무외는 가부좌를 틀고 명상한다. 그는 정치에도 힘을 많이 쏟았지만, 무공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무림맹의 장로가 정치만 잘하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 그는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무공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명상에 빠져 있을 무렵.

자령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 장로님!”

“들어와라.”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한쪽 눈을 뜨고 창을 바라본다. 그런데 바깥의 인기척은 둘이 아니었다. 노을에 비친 그림자만 봐도 여러 명이다.

‘단목청야, 그렇게 멍청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최악의 일은 단목세가에 이 일을 그대로 보고하는 것이다.

위지무외가 발뺌한다고 해도 단목세가는 단목청야의 말을 믿으리라. 뭐 그렇게 되면 가문끼리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겠지만, 호법당은 위지세가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아주 컸다. 무림이란 그런 곳이었으니까. 모든 계산을 끝내고 행동한 것이다.

위지무외가 다시 한번 말한다.

“들어와라.”

“장로님, 잠시 나와 보셔야 할 듯합니다.”

“쯧.”

위지무외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체 누굴 데려왔기에 자령이 저리 당황하는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안 되는데, 오늘은 자령에게도 실망이 컸다. 일이 끝나면 오랜만에 정신 교육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간 위지무외.

그의 눈에 젊은 세 사내가 들어온다.

당연히 단목청야도 있었고, 그 뒤에는…….

“위지 장로님, 흑룡단 오 조 조장인 단목장룡입니다.”

“육 조 조장 남궁일몽입니다.”

“…….”

위지무외의 시선이 단목청야에게 향한다. 그의 사나운 눈빛에 단목청야의 눈이 흔들린다. 천룡각에서 꽤 높은 성적으로 교육을 마쳤다곤 하나, 위지무외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허어, 중원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두 후배가 왔군. 어서 오게.”

밝은 표정의 위지무외.

그런 그에게 단목장룡이 다가간다. 위지무외는 그의 몸에서 묘한 향이 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언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무슨 분이라도 뿌린 건가?’

불쾌한 것 같기도 하고, 은근히 냄새가 좋아 계속 맡고 싶기도 하다.

“그래, 자네들은 왜 날 찾아왔는가?”

그의 눈빛은 단목청야를 향한다.

“받으십시오.”

단목장룡이 무언가를 건넨다.

비무첩(比武牒)이라는 글자가 정갈한 글씨로 쓰여 있었다.

“이게 무슨……?”

“비무첩입니다. 위지 장로님께서 본가의 대공자에게 협박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뭐라? 협박?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건가?”

“예, 시시비비는 비무로 가리시지요.”

위지무외의 표정이 굳는다.

그가 예상했던 상황이 아니었다. 대체 어느 누가 무림맹의 장로에게 이리 당당히 비무첩을 건넬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같은 배분도 아니고 이제 막 무림맹에 들어온 까마득한 후배가 말이다.

“간덩이가 부었군. 지금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겠나?”

찌이이익……!

위지무외가 비무첩을 찢어 버린다. 그는 당연히 비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협박했다는 것도 결국 단목청야의 주장일 뿐. 그는 이 일을 빌미 삼아 단목세가와 더불어 흑룡단에도 따질 생각이었다.

‘멍청한 놈. 결국, 일을 크게 만드는구나.’

서늘한 눈으로 단목청야를 바라보고 있을 때.

웅성웅성.

저 멀리서 여러 사람의 대화와 발소리가 들린다.

“그 유명한 단목 조장과 위지 장로께서 비무를 한다니…….”

“그러고 보니 거 장로께서도 단목 조장과 맞붙은 경험이……? 큼큼, 내가 괜한 것을 물었군.”

“……!”

무림맹의 높은 자리에 앉은 거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가장 선두엔…….

점창파의 거연창이 있었다.

그는 싸늘한 미소로 위지무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너도 한번 당해 보라는 듯이. 위지무외의 표정이 꿈틀한다. 이 미친놈들이 작정하고 일을 키운 것이다.

“근데 단목 조장은 왜 위지 장로에게 비무를 신청한 것이오?”

“그건 어느 정도 인원이 모이면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남궁휘. 청룡단의 부단주였다. 단목장룡 옆에 있는 남궁일몽의 뺀질뺀질한 표정이 보인다.

‘이놈들이 정말…….’

위지무외는 머릿속으로 저 까마득한 후배 놈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고민한다.

특히 감히 분수도 모르고 제안을 거절한 단목청야는 더 혹독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검을 뽑으시지요.”

“갈! 감히! 맹의 장로를 우롱하려 들어!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단목장룡의 말에 위지무외가 일갈을 터트린다.

그는 분노를 보여 줘서 이 상황을 모면할 생각이었다.

“끌끌, 위지 장로의 성격은 여전하도다…….”

하지만 그의 분노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위지무외에겐 아주 익숙한 한 사람. 그가 무림맹에서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한 사람이 위지무외의 시선에 들어왔다.

‘어, 어찌……?’

단 한 사람의 등장에 단목장룡과 위지무외의 비무를 구경하러 온 다른 맹의 인사들도 바짝 긴장하여 몸을 굳힐 정도였다.

베기

“맹주님……!”

맹주? 저 사람이 공동파의 복마진인이란 말인가? 허연 머리카락과 곧게 기른 수염. 무인이라기보단 학자라는 느낌이 강하다. 뭐, 무림인을 외관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은 없었으니까. 좋게 말하면 신선 느낌이 난다고 할까? 거기다 무림맹주라고 하니 뭔가 있어 보인다.

“…….”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맹주.

그는 미약한 눈웃음을 지어 호감을 표했다.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내 이미 맹주직을 내려놓았거늘.”

“죄송합니다, 제갈 가주님. 워낙 입에 붙어서 그만…….”

“아닐세, 죄송하긴. 그래도 다음부턴 조심하게. 현 맹주께서 들으면 어찌 생각하시겠는가?”

“예, 제갈 가주님.”

그렇다면 저 사람은 공동의 복마진인이 아니다.

제갈세가. 오대세가 중 하나이며 그곳의 가주로 이제껏 무림맹을 이끌어 온 사내. 병환이 생겨 예상보다 빨리 직위에서 내려온 정파 무림의 절대자였던 사내. 현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강량이라는 말이었다.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고 병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다.

화경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 환골탈태로 새로운 육신을 가지게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육체라도 인간은 초월할 수 없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그 끝이 있는 법이며, 자연의 순리는 무공으로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병이 있다고 하기엔 참으로 정정해 보였다.

‘거물이 오셨군.’

내겐 오히려 잘된 상황이다.

이번 일을 원만히 해결하려면 눈이 많을수록 좋다. 거기에 그 눈들의 수준이 높다면 더 확실하리라. 이번 기회에 난 보여 주려 했다. 함부로 날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위지세가나 더 나아가서는 황룡단과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와 친구가 될 순 없는 법이다.

몇몇 이들은 환상을 품고 모두와 평화로이 지낼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이라면 그럴 수 없다. 더군다나 강호는 더욱 그러하다. 제각기 출신이 다르며,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만약 황룡단과 척을 진다면, 청룡단과 함께하면 된다.

단목청야의 말마따나 단목세가가 오대세가의 반열에 오른다면 결국 청룡단과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뭐, 내겐 오대세가의 반열에 들어가는 것은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말이다.

‘단목세가가 오대세가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십 년은 지나야겠지.’

설령 내가 화경의 경지에 접어들더라도 오대세가로 불리진 않으리라.

그만큼 가문 자체가 성장해야 하는데, 아직은 무리였다.

“검을 드십시오, 위지 장로님.”

내 말에 제갈강량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이 모두 나와 위지무외를 향했다.

대부분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몇몇 이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저런 반응도 당연하다. 내가 하는 일은 하극상으로 보일 수 있었기에. 물론, 비무첩이라는 역사가 깊은 방식을 택하였기에 불편한 시선이 전부였다.

위지무외는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감히……!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더냐? 난 맹의 장로다. 고작해야 조장 따위가 비무첩을 내밀어? 단목세가에선 그따위로 널 가르치느냐?”

“본가는 관련이 없습니다. 아마 본가의 어른들이 보셨다면 절 말렸겠지요.”

“그런데도……!”

“그런데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전 이런 놈이니까요.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시겠지만, 전 의창현에서 망나니로 불렸습니다.”

망나니라는 말에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과거는 쉽게 지울 수 없다. 내가 의창현을 벗어나 성도로 와서 사천당문과 연을 맺고, 용봉지회에서 우승하고, 흑룡단에 들어왔다고 할지라도.

과거 가문에서 망나니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지만 딱히 불만은 없다. 애초에 망나니라는 인식은 활용하기 나름이었으니까. 오히려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준다.

조장 주제에 비무를 신청해?

어? 망나니였다고?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이런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위지무외 장로를 비무에서 꺾는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의 평가는 어떻게 갈릴까? 분명 뒤에서 날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 망나니 놈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겠군.’

그것이 시작이다.

이미 점창파의 장로를 흠씬 두들겨 패 준 전적이 있다. 여기까지 와서 순한 양의 탈을 쓰고, 가만히 참고만 있으면 그들은 돌을 던져 볼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그래서 난 단목청야의 말을 듣고 칼을 뽑기로 했다.

“혹, 저와의 비무가 두려우시다면 굳이 검을 뽑지 않으셔도 됩니다.”

위지무외가 검을 뽑을 생각이 없자 도발의 말을 내뱉어 본다.

그가 얼굴을 사납게 일그러트리며 무언가 말을 내뱉으려 할 때.

“설마 위지세가의 그 위지무외가 두려워하려고? 위지 장로는 비무를 피한 적이 없지.”

내공까지 담았는지 똑똑히 들려오는 목소리.

다름 아닌 점창파 거연창이 말한 것이다. 거연창이 왜 날 도와주는진 모르겠지만, 뭐 그 덕분에 상황이 좋게 흘러갔다.

“암, 위지 장로가 새파란 후배에게 물러날 리가 없지.”

“오랜만에 좋은 구경을 하겠군. 흑룡단주께서 자랑하는 오 조장의 실력을 볼 수 있겠어.”

“그래도 설마, 위지 장로가 이기지 않겠소?”

부들부들.

위지무외의 어깨가 떨린다.

구경꾼이 아무도 없었다면 위지무외는 매몰차게 거절했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을 땐 차마 그럴 수가 없다. 더군다나 그중엔 전대 맹주인 제갈강량 또한 있었다.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다 보였다.

나와 단목청야를 바라보며 입을 달싹거리는 것을 보니 구경꾼들이 없었다면 욕을 한가득 뱉어 냈으리라.

“그래서 비무를 한다고 치자. 대체 뭘 위한 비무란 말이냐?”

어물쩍 넘어가려 하는 위지무외.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위지 장로님께선 본가의 대공자를 협박했습니다. 약점을 잡아 쥐고 흔들려고 하셨지요.”

“난 그런 일이 없다!”

“예, 그렇게 발뺌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비무를 통해 정정당당히 승부를 보려 한 것입니다. 만약 제가 이기면 제 형님께 사과하시고, 다시는 저희 형제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면 됩니다.”

“이놈! 세상이 어떤 시대인데 비무를 하여……!”

“비무첩을 무시하는 겁니까? 아니면 혹시…….”

뒷말을 생략한다.

걱정하는 듯한 내 말투에 위지무외의 분노가 더욱 거세진다. 때로는 이리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상대를 더 자극할 수 있었다.

“오냐……! 네놈의 뜻대로 해 주마. 하지만, 알아 둬야 할 것이다. 내가 비무를 하는 것은 네놈의 그 허무맹랑한 추측을 인정해서가 아님을 말이다! 무림맹의 장로로서 후배의 비무첩을 방관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위지무외는 정치적으로 수완이 뛰어난 인물이라 들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패배했을 때를 상정하여 대비한다. 자존심 강하고 성질이 급한 무인들은 저런 소리를 내뱉기 전에 검을 뽑았으리라. 그러는 편이 내겐 더 좋았겠지만, 저리 말을 내뱉는 것도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다.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 준다.’

내 주장이 사실인가?

당연히 중요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무림의 대선배님이시니 선수를 양보하거나 하진 않겠습니다.”

위지무외의 검이 뽑힌다.

나 또한 뇌왕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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