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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武)를 갈고닦는 자들에게.
아니, 도(道)를 수행하는 도사들에게 정치라는 것은 멀리해야 할 것 중 하나였다. 속세에 물드는 것은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오래전 도사들은 최소한의 의사소통만을 하며 무위자연 속에서 살아갔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음과 양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남녀가 정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도가에선 그러한 자연의 법칙을 깨려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도사라고 하더라도 무리를 지었으며, 사람의 생각은 하나가 아니었기에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수였다.
문파에서 사소한 규칙을 정하는 것.
최고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장문인에게 예를 표하여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 중 하나다. 뭐 산에서 도를 갈고닦는 도사들은 정치를 천박하다 칭할 수 있겠지만…….
위지무외는 정치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 생각했다.
도사들이 말하는 무위자연. 인간이 쾌적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의 이치와 맞닿아 있지 않은가? 강자가 먹고, 약자는 먹힌다. 그는 정파보다는 사파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활용할 것은 활용한다.
고귀한 양심 따위는 인생에 전혀 쓸모가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위지무외는 무림맹의 장로 중에서도 정치적인 위치가 높았다. 사람이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남들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위지무외는 그러한 부분을 가장 잘 이용했다.
‘쯧쯧. 내 그리 말했거늘.’
그의 목표는 단목청야.
단목세가의 장남으로 이제 막 무림맹에 들어온 후기지수였다. 호법당의 시험을 통과하여 당원이 되었다지만 그의 눈에는 아직 어린 꼬마일 뿐이었다.
‘지금부터 잘 길들이면 쓸모가 있겠지.’
단목장룡을 목표로 했던 것은 맞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단목세가의 장남은 단목청야. 의창현의 정보를 수집한 결과 그가 소가주가 될 확률은 십 할. 무공 실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진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육왕 중 하나였던 뇌왕이 무림맹에서 배척받지도 않았으리라.
단목장룡의 거침없는 행보에 무지렁이 같은 이들은 환호하겠지만, 그것도 끝은 존재한다. 무림은 한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량.”
“예, 장로님.”
칙칙한 느낌의 무복을 입은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한쪽 눈에는 길게 흉터가 있었는데, 그것이 참으로 매서워 보였다.
“곡무영에게 적당히 시작해 보라 전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위지무외는 인간의 마음이 언제 약해지는지 알고 있었다.
처음 단목장룡의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단목청야에게 접근했을 때부터 그는 이 일을 계획했다.
* * *
직속상관인 곡무영. 그는 호법당의 이 급 당원으로 삼 급인 단목청야보다 한 단계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었다. 고작 하나의 계급이라곤 하나 그 차이는 컸다. 단목청야는 이제 막 호법당에 들어와 일을 배우고 있었으며, 곡무영은 호법당에 들어온 지 십 년 차가 되었다.
천룡각이 소무림이라 불린다곤 하나 진짜 무림맹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단목청야는 지금 그것을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그 나름대로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는다고 자부해 왔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느냐?”
“…죄송합니다.”
사실 단목청야는 이제 막 호법당에 들어온 것치고는 잘해 내고 있었다. 문파와 문파 사이에서 갈등이 생겨나면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여 상부에 보고한다. 하지만 직속상관인 곡무영이 요구하는 건 이 년 차 이상의 처리 능력이었다. 단목청야가 일머리가 좋다고 해도 십 년 차인 곡무영이 보기엔 허술한 점이 많았다.
곡무영은 높은 잣대를 들이밀곤 단목청야를 속된 말로 갈궜다.
“후우, 하필 이런 놈이 내 밑으로 들어와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곡무영이 혀를 찬다.
“열심히 하지 말고 좀 잘해 보라고.”
“예, 선배님!”
단목청야는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참는다. 그는 소무림이라 불리는 천룡각에서부터 강호를 경험했다. 이 정도도 각오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 의아하긴 하군. 평이 좋은 선배라 잘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곡무영은 호법당에서 평가가 아주 좋았다.
일 급의 선배에게도 이쁨을 받고, 후배들에게도 존중받는 선배였다. 그런데 유독 단목청야에겐 까탈스럽게 굴었다. 후배인 자신을 위해 엄격하게 대하는 것일까? 천룡각에서도 그런 성정을 지닌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다.
열심히 하는 것만이 답이다.
이럴 때 가문의 위세를 빌려 온다거나 한다면 단목청야의 평은 바닥으로 추락하리라. 어차피 단목세가가 무림맹에서의 입지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으니.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갔다.
칠 주야가 지났을 땐,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름이 되었을 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이 되었을 땐.
‘대체 뭐가 문제지……?’
단목청야의 입장에선 그리 생각할 법도 하다.
직속상관인 곡무영은 유독 단목청야에게만 차갑게 대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칭찬은커녕 욕을 안 먹으면 다행이었다.
거기다…….
‘왠지 모르게 호법당원들이 날 피하는 것 같군.’
사무적으로 대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여럿이 모여 있더라도 단목청야가 나타나면 뿔뿔이 흩어진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따돌림이다. 사실 사람이 단체를 이루면 그중에 소외되는 이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단목청야는 이제껏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던 단목청야.
그는 단목세가를 오대세가 중 하나로 만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고작해야 호법당 삼 급 당원으로서 임무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이라면 그러하다. 특히 당차게 새로운 길에 들어선 직후라면 더더욱.
‘후우……. 역시 무림맹은 쉽지 않구나.’
그는 오늘도 곡무영에게 시달린 후.
숙소에 앉아 하루를 복기한다. 대체 무엇을 잘못했을까? 은근히 피하는 당원들도 이유가 있으리라. 호법당에서도 소속이 있기에 옮겨 달라고 상부에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도망일 뿐이었다. 고작 한 달 만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겨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단목청야가 고민하고 있을 때.
“들어가도 되겠나?”
이 목소리는…….
“예! 위지 장로님.”
밖엔 위지무외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달빛을 받아서인지 몰라도 신비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역시 무림맹 장로의 기세는 자연스레 뻗어 나오는 것일까. 그렇게 감탄하면서도 위지무외가 이런 야심한 밤에 찾아온 이유가 뭔지 생각했다. 그렇지만 전혀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단목청야는 위지무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그러자꾸나. 끌끌.”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은 위지무외. 그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다. 이런 밤에 찾아온다는 것은 중요한 이야기라는 뜻인데…….
“그래, 호법당에서의 생황은 어떻더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무림맹의 장로에게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우스웠다. 그렇기에 적절한 대답을 했는데, 위지무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 묘한 웃음에 단목청야의 가슴이 덜컹했다. 그는 감이 좋은 편이다.
‘설마……?’
위지무외는 웃음을 잃지 않은 채로 말을 이어 나간다.
“열심히 하는 것으로 되겠느냐? 잘해야지. 무림맹 생활이 만만치 않지? 그래도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구나. 보통 보름도 안 돼서 자포자기하기 마련인데 말이야.”
“장로님……?”
“뭘 그리 놀라느냐? 날 속인 것은 네가 먼저였으니.”
“…….”
설마 곡무영이 위지무외의 지시를 받고 그리 행동했던 건가?
단목청야의 얼굴이 굳는다.
“청룡단의 부단주가 단목장룡에게 접근했더구나.”
“아닙니다. 장룡은 청룡단에 들어가지 않을…….”
“그걸 내가 어찌 믿느냐?”
“…….”
위지무외는 작정하고 이 일을 벌인 것이다. 대체 뭘 얻기 위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을 압박한다고 단목장룡이 마음을 바꾸리라 생각하는 건가? 그리고 이런 방법으론…….
“이 방을 나서면 곡무영과 나의 관계는 없던 것이 된다.”
그러니까…….
이 일을 공론화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위지무외 장로가 곡무영을 사주했다고 상부에 보고한들 위지무외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그걸 증명할 증거가 없다. 이런 일을 태연하게 벌인 위지무외의 성정으로 볼 때, 그에 대한 대비도 해 놓았으리라. 아마 자신이 호법당에 적응하지 못한 미숙한 이로 각인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랬던 건가…….’
이제야 상황이 이해된다.
단목청야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제게 대체 뭘 원하시는 겁니까? 장룡은 제가 설득할 수…….”
“네가 진 빚을 내 밑에서 갚도록 해라. 네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것이다. 내가 널 끌어 준다면 언젠간 요직에 오를 수 있을 터. 상부상조할 수 있는 게지.”
쉽게 말하면 수하가 되라는 말이다.
호법당 소속이지만 위지무외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곡무영처럼 말이다.
“잘 생각해 보아라. 네겐 나쁜 제안이 아니야. 단목세가는 명문가라 불리긴 하지만 맹에서는 이렇다 할 자리에 앉은 사람이 없지. 네가 최초가 되는 게야. 내 확실히 널 끌어 주마.”
일단 단목청야를 확실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면, 단목장룡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위지무외의 판단이었다.
단목청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의 단목청야였다면 재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한 달 내내 곡무영에게 시달리고 은근한 따돌림을 경험한 단목청야는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하루. 딱 하루의 기한을 주마. 부디 옳은 선택을 하기 바란다.”
위지무외의 진한 미소.
그의 표정을 본 단목청야의 머릿속에 순간 단목장룡의 얼굴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도 쉬이 털어놓을 수 없는 일이지만 친혈육인 그에게라면…….
과거의 단목청야였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장룡의 방식
단목청야는 잠도 자지 못하고 고민했다.
대체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 본가에 보고해야 하나? 무림맹의 장로는 이제 막 호법당의 당원이 된 단목청야가 감당할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단목세가의 가주는 되어야 한다. 적어도 단목세가에 무림맹의 장로급 인사라도 있었다면 이런 고민은 줄어들었으리라. 그가 천룡각에서 쌓은 인맥도 이 상황에선 효과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하아아…….’
장룡에게 말하는 것이 그나마 괜찮은 방법이다.
그는 흑룡단의 조장이었다. 직위로 따지면 고작해야 호법당의 삼 급 당원인 그보다 훨씬 권한이 컸다.
하지만…….
동생에게 이런 계략에 빠졌다는 걸 말하는 게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일은 단목장룡을 황룡단에 입단시키려던 것이 시작이었다. 분명히 위지무외가 잘못한 것이지만, 단목청야도 완전히 떳떳하지 못하다. 특히 단목장룡에 대해선.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었는데… 하하.’
설마하니 무림맹의 장로가 이런 치졸한 짓을 벌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위지무외는 대외적으론 너그럽고 협의로 가득 찬 인물이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참으로 치사하고 더러운 인물이다.
‘위지 장로의 밑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그를 믿을 수 있을까?’
일단 가정을 해 보았다.
반 시진 동안 고민한 단목청야가 내린 결론은…….
‘아니. 언젠간 다시 뒤통수를 맞을 거다. 믿을 종자가 못 돼.’
단목청야의 직감이다.
틀릴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런 일을 계획한 위지무외에겐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어떻게 한다…….’
그렇게 고민하던 단목청야.
해가 떠오르던 시점에 그의 머릿속에 이 고민을 들어 줄 또 한 명의 사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