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236)

* * *

남궁일몽.

천룡각에서 있을 때부터 후기지수들에게 훈수를 두며,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을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틀린 생각이었다는 걸 금방 알게 되었다.

“아니지. 그렇게 움직이는 게 아니야.”

“죄, 죄송합니다!”

남궁일몽의 가르침을 받는 세 명의 무인.

단목장룡의 오 조와 같이 사내 둘에 여인 하나다. 남궁일몽은 어릴 때부터 중원 무림에서 유명했다. 그렇기에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육 조원들은 배움에 열성적이었지만, 당연히 남궁일몽의 눈에 들어차지 않았다.

걸음걸이부터 시작하여 관절의 움직임까지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답답함에 머리가 뜨거워진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그냥 단목장룡에게 비무를 청하고 싶다. 그것이 더 확실하고 깔끔한 방법처럼 보였으니까.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단목장룡이 하면… 나도 한다.’

단목장룡도 이런 답답함을 참아 냈으리라.

어쩌면 이렇게 조원들에게 가르침을 내리며 참을성을 기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무공이란 심기체가 조화되어야 하는 것. 지금은 심(心)을 수련하는 것이다. 남궁일몽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남궁일몽에게도 의문이 떠오른다.

들어 보니 오 조는 다른 조원들과는 다른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무공은 어디의 무공일까? 단목세가의 무공일까? 아니면…….

‘설마 단목장룡이 창안한 무공인가? 그런데 무공을 창안해서 알려 준다고……?’

다른 것은 직접 겪으며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단목장룡이 조원들에게 알려 준 무공이 본래 있던 무공이 아니라면… 그가 창안하거나 개선한 무공이라면.

거기에 단목장룡 수련의 비밀이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그것을 확실히 파악하지 않고, 조원들의 수련에만 집중한다면 훗날 후회할 수도 있었다.

‘이 부분은 확실히 정리해 둬야겠어.’

남궁일몽이 잠시 휴식을 선언하고 자리를 떴다.

그가 향하는 곳은 단목장룡이 있는 오 조의 전각. 단목장룡에게 직접 물어보려 했다. 이런 부분에 머뭇대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남궁일몽은 목표가 있다면 돌진하는 성향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오 조의 전각.

그의 눈에 단목장룡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혼자 있지 않았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음? 왠지 익숙한 얼굴인데…….’

옆으로 얼핏 보이는 얼굴.

그 옆모습이 뭔가 눈에 익었다. 남궁일몽이 그곳으로 다가간다.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남궁일몽에게도 들려온다.

“이것은 좋은 기회다. 황룡단에선 몇 년 안에 너를 부단주직까지 승급시켜 줄 수 있다고 하더구나. 황룡단은 흑룡단과 달리 중원에 미치는 힘이 막강하다. 무림맹에선 적룡단과 청룡단이 전부가 아니다. 장룡아, 네가 고려해야 할 것은…….”

단목장룡은 대충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이러쿵저러쿵해도 흑룡단을 버리고 황룡단으로 들어오라는 소리였다.

“죄송하지만 예전에 말씀드린 대로 전 흑룡단에 머물 생각입니다.”

“후우우,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내가 진실을 알려 주마. 흑룡단은 아마 몇 년 안에 해체될… 응?”

한숨을 내쉬던 사내.

그의 시선이 단목장룡의 어깨너머로 넘어간다. 아주 친숙한 얼굴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에 반가움과 동시에 놀람이 번져 간다.

“……!”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가끔 남궁일몽이 화를 낼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 차가운 눈빛을 할 때. 그가 화났다는 표정이었다. 매사에 여유로운 남궁일몽에게선 흔히 볼 수 없는 표정이었기에 사내는 단번에 남궁일몽이 화가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형님……?”

약간의 진전

단목청야.

그는 단목세가의 장남으로 자신만의 길을 닦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내였다. 그 과정에서 이용할 것은 확실히 활용하고 버릴 것은 칼같이 버렸기에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천룡각에서 남궁일몽의 뒤를 따르며 무림에서 입지를 키워 갈 예정이었지만, 단목장룡에게 패배한 그가 휙 떠나 버리자 차선책으로 무림맹을 택했다. 그렇다고 단급 무력단에 지원한 것은 아니다. 단목청야는 자신의 무재가 중원의 천재들과 비교하면 현저히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호법당(護法堂).

무림의 법을 집행하고 수호하는 집단으로 무공보다 무림맹의 법전을 공부하는 게 우선시된다. 물론, 법만 공부한다고 호법당에서 대성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호법당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면 무공 실력이 강호의 평균은 넘어야 한다.

단목청야가 천룡각에서 천재라 불리는 이들보다 부족했다는 것이지, 높은 성적으로 천룡각의 시험을 통과할 정도는 되었다. 또한, 법전을 공부하면서도 그가 무공 수련을 게을리한 것도 아니었다. 호법당의 시험을 공부하면서도 매일 검을 휘두르고 내력을 모아 왔다.

그렇게 노력하고 또 노력한 단목청야는 결국 호법당의 시험에 통과했으며, 그곳의 말단 당원이 되었다. 말단이라 하더라도 호법당은 무림맹에서 특수한 위치에 있었기에 그 힘이 상당하다. 강호 무림에서 문파나 가문끼리 문제가 생기면 호법당이 나서 시시비비를 가려 주기에 당연히 각 지역의 문파들은 호법당의 당원들에게 잘 보이려 한다.

지금은 삼 급의 당원일지 몰라도 언젠간 이 급이 될 수 있고, 일 급까지 오를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단목청야가 무림맹에서 목을 빳빳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건 또 아니었다.

분명히 중원 전체로 따지자면 호법당원의 위치가 상당하다 볼 수 있겠지만, 무림맹 내부엔 호법당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들이 존재했다.

예를 들자면, 무림맹의 수장인 맹주와 얼굴을 마주하여 회의하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력자.

무림맹의 장로들에겐 감히 그 출신을 내세울 수 없었다.

위지세가의 위지무외.

그는 호법당의 기초 교육을 마치고 나온 단목청야에게 접근했다. 처음 단목장룡이 들어왔을 때 청룡단을 비롯한 전투단은 그를 포섭하려 했지만 실패했었다. 거기다 그는 점창파의 장로인 고검야 거연창을 꺾어 버렸다.

중원의 온갖 인간 군상이 모이는 무림맹.

각 문파와 가문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처음엔 시원한 행보라며 떠받들어 주는 이들이 있을진 모르겠으나 언젠간 중심에서 멀어져 소외받게 된다.

만약 단목장룡이 중원 무림의 생리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면, 그러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그리 판단한 위지무외는 먼저 단목청야에게 접근했다. 여러 정보에 따르면 단목세가의 장남과는 이야기가 통할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단목청야는 위지무외와 말이 잘 통했다.

호법당원이 된 것만으로 그의 길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남궁일몽을 꺾은 재능을 가진 단목장룡.

과거 하릴없이 망나니짓만 해 대던 동생을 무시했던 단목청야였지만, 용봉지회에서 남궁일몽을 꺾은 것을 본 뒤로 커다란 미래를 그렸다.

그는 언젠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출신이 아님에도 무림맹의 수장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단목장룡이 벽에 가로막히지 않는다면, 분명히 가능하다.

당연히 무림맹주라는 자리는 그리 쉽지 않았다.

온갖 귀계와 암투가 판치는 곳이 무림맹이다. 의와 협보다 우선해서 챙겨야 하는 것이 이권이다. 힘이 있어야 의와 협을 펼칠 수 있다. 그게 단목청야의 생각이었다.

위지무외의 제안은 간단했다.

단목장룡을 흑룡단에서 탈퇴하게 하고 황룡단에 입단시킬 것. 어차피 흑룡단은 천천히 쓰러져 갈 집단이다. 사십 년이라는 세월로 전쟁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졌다. 사파가 미치지 않고서야 전쟁을 일으키겠나? 그리고 흑룡단이 아니면 전쟁을 막을 수 없나?

구파일방이 중심이 된 청룡단.

오대세가의 적룡단.

그리고 중소문파를 대표하는 황룡단.

이 세 집단의 존재로도 정파 무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그것이 무림맹 수뇌들의 공통적인 견해였다. 위지무외의 말에 동감한 단목청야는 동생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그 과정이 쉽진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흑룡단의 미래를 알려 주면 동생도 마음이 변하리라 판단하고 여유를 가지고 그를 설득하려 했다.

오늘은 적당히 단목장룡에게 흑룡단을 떠나야 할 이유와 황룡단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이점을 설명하려 했다. 그가 거절하리라는 것은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의 등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남궁일몽.

천룡각의 괴물. 화산파와 소림의 제자도 그에겐 비할 수 없었다. 그는 재능뿐 아니라 처음부터 무림 제일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정파 무림에서 가장 강한 무인 여섯을 칭하는 육왕. 일좌를 차지는 패왕이 그의 아버지다. 거기다 남궁세가는 오대세가 중 가장 강한 전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가문이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남궁일몽의 등장에 단목청야가 당황한다.

대체 왜? 이 사람이 여기에 있지? 본래 단목청야였다면 그의 존재를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는 무림 정세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시기가 맞지 않았다.

그가 호법당의 입당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남궁일몽은 흑룡단에 들어왔다.

당시 꽤 화제가 되었으나 당시의 단목청야는 무림의 정세까지 파악할 여유는 없었다. 무림맹의 법전을 외고, 무공을 수련하는 데에 시간을 모두 쏟았다. 또 그는 시험에 합격하고 바로 기초 교육을 받았다.

남궁일몽이 강호 무림에서 유명하긴 했지만, 몇 달 동안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는다. 남궁일몽이 아니더라도 무림맹엔 크고 작은 화젯거리가 끊이질 않았으니까. 더군다나 그가 무림맹에 있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만간 서신을 보내 안부를 물어야겠다고 생각한 단목청야였다.

“형님……?”

더군다나 그의 표정이 좋지 않다.

매사에 여유로운 남궁일몽이 화를 내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뭐 하는 거냐고 묻고 있다.”

“그게…….”

이 일을 설명하려면 길다.

더군다나 대체 왜 남궁일몽이 저런 표정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단목청야가 당황하고 있을 때.

단목장룡이 입을 연다. 남궁일몽이 있거나 없거나 그의 대답은 똑같았을 것이다.

“형님, 전 황룡단으로 가지 않습니다.”

“…….”

남궁일몽은 예의 무뚝뚝한 표정을 지은 채로 팔짱을 끼고 단목청야를 바라보고 있다. 단목청야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단목장룡의 재능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어릴 적부터 봐 온 혈육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재능을 두려워하기보단 오히려 달가워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남궁일몽은 다르다.

천룡각에서부터 보아 왔던 그의 무위와 배경.

그 모든 것이 단목청야의 이상향에 닿아 있는 인물이었다.

“그, 그렇구나…….”

“그런데 형님은 호법당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황룡단에 들어오라고 한 겁니까?”

“그건…….”

모든 사실을 지금 털어놓을 순 없었다.

단목장룡이 오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단목청야는 단목세가의 미래를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자신만의 출세를 위해 동생을 마음대로 이용하려 한다고 말이다.

따지고 보면 단목장룡을 이용하려는 것이 맞긴 했지만, 그가 그린 커다란 미래에는 단목장룡 또한 찬란하게 빛난다. 무림맹주라는 직책은 모든 정파의 무림인이 우러러보는 자리였으니까.

하지만 아직 먼 미래일 뿐.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단목청야였지만…….

남궁일몽의 눈빛에 당황하고 말았다. 천룡각에서 자처하여 그의 수하가 되었다. 남궁일몽의 앞에선 거짓을 고한 적이 없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참으로 부담스럽다. 그가 저러는 이유를 알아야 속 시원히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단목청야가 남궁일몽의 눈치를 본다는 걸 알아챈 단목장룡.

그가 남궁일몽에게 말했다.

“육 조장님, 잠시 자리를 비켜 주셨으면 좋겠군요. 형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남궁일몽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단목장룡이 황룡단으로 가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의 소신대로 무(武)를 추구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것이 단목세가의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전 단목 조장님을 믿고 있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

“……?”

단목장룡과 단목청야의 눈빛. 두 사람 다 남궁일몽의 말에 의아함을 품고 있다. 특히 단목청야는 용봉지회에서 패배했던 그가 동생에게 왜 저리 말하는지 의문이었다.

남궁일몽이 단목장룡의 말대로 떠나가고.

단목청야가 급히 묻는다.

“대체 남궁 형님께서 왜 여기 계시느냐? 설마 남궁 형님도 흑룡단에 들어간 것이냐?”

“예, 제가 임무차 나가 있는 동안 흑룡단에 입단했더군요.”

“허어, 정녕 남궁 형님께서 흑룡단에… 이해할 수 없구나……. 그럼 널 믿겠다는 건 대체 무슨 소리냐? 두 사람이 언제 그리도 가까워진 것이냐?”

“그리 가깝진 않습니다.”

단목장룡은 남궁일몽이 뭘 원하고 있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육 조의 조원을 오 조와 똑같이 구성한 것만 보면 알 수 있다. 아마 나름대로 패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리라. 그것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궁일몽과 심적으로 가까워졌다는 건 아니다. 뭐, 연을 맺어 두면 언젠간 써먹을 때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수준이었다.

“그렇더냐? 남궁 형님은 네게 패배했다고 할지라도 언젠간 안휘성의 패자가 될 분이다. 형님의 뒤엔 남궁세가가 있지. 솔직히 인정하기 싫으나 본가보다 훨씬 대단한 가문이다. 천하제일가라는 명성은 괜히 얻은 것이 아니지. 그러니 남궁 형님과는…….”

“형님.”

“그러……..”

말을 하던 단목청야가 말을 멈춘다.

단목장룡의 시선. 난생처음 보는 눈빛이다. 아무리 단목장룡이 강해졌다고 한들, 달라졌다고 한들. 단목장룡은 그에게 동생일 뿐이다. 남궁일몽은 어려워하면서 단목장룡에겐 왜 형 노릇을 하려 하냐고? 그야 당연히 단목장룡을 어릴 적부터 보아 온 피를 나눈 형제였으니까. 과거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 달랐다.

“흡……!”

온몸을 옥죄는 거대한 기운.

마치 어릴 적에 분노한 태상가주를 마주했을 때와 같은 그런… 아니, 그보다 훨씬…….

단목청야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선다.

동생에게 겁을 먹었는가? 고작해야 눈빛일 뿐인데? 그도 자신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또한, 동시에 묘한 내음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듯했다.

“크윽…….”

그 모습에 단목장룡이 기세를 약간 거둔다.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단목청야의 행동에 짜증이 났다. 적당히 분위기를 잡으려 했는데, 그게 과했던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크… 크으음……! 아니다…….”

단목청야는 당연히 화를 낼 수 없었다.

단목세가에서 망나니 취급을 받던 동생은 여기에 없었다. 단목청야는 단지 그의 눈을 마주하는 것으로 그걸 깨닫고 있었다.

‘내가 장룡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단목장룡은 단목청야가 조금 진정된 것 같자 다시 물었다.

“흑룡단을 나가서 황룡단에 들어가라고 한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

“형님.”

단목장룡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단목청야는 저도 모르게 진실을 내뱉고 말았다.

“위지무외 장로께서 내게 제안하셨다……!”

“위지무외?”

당연히.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무림맹에서 장로는 하나가 아니다. 그들이 무림맹의 중추라고 하지만 모두를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단목청야의 폐부 깊숙한 곳에 들어찼던 숨이 터져 나온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기서 괜한 거짓말을 했다간 일이 크게 잘못될 것 같았다.

“후우우… 그래. 미리 모든 것을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 천천히 널 설득할 생각이었다. 난 네가 흑룡단에 머물 인재가 아니라 판단했다. 흑룡단이 아닌 황룡단이라면… 네 미래와 더불어 본가의 미래를 위해서. 하지만 널 이용하여 내 출세를 바랐던 것은 아니다. 단지…….”

“본가를 오대세가로 만들고 싶으셨겠죠.”

“…맞다.”

그것이 단목청야의 숙원이었다.

오대세가. 누군가는 이미 단목세가는 명문이라고 하겠지만… 오대세가가 아닌 명문의 장남으로 자라나면서 받는 어른들의 기대, 외인들의 시선.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압박감 속에서 살아왔던 단목청야다. 물론, 그 자신도 그것을 원하고 있었고 말이다.

단목장룡이 잠시 침묵한다.

‘위지세가라…….’

사천성에서 만났던 위지풍이 떠오른다. 팽염호와 같이 친우가 되었던 인물. 위지세가에 나쁜 감정은 없었다.

“형님, 용봉지회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제 목표는 평범한 무인들과 다릅니다. 개인적인 출세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

“형님께서 나쁜 의도로 그런 제안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이런 제안은 다시 듣고 싶지 않군요.”

단호한 말.

과거 단목세가에서 그는 주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웅얼댈 뿐이다. 저런 눈빛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 무거웠다. 감히 그를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더냐…….”

“예, 죄송합니다.”

단목장룡의 짧은 인사.

그것으로 이 모든 상황이 종결되었다. 단목청야는 이 이상 말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흑룡단이 해체될 수도 있다는 것과 황룡단에 들어가면 어떤 이점이 있을지. 단목장룡에게 하려고 준비한 말은 산더미였지만, 더는 말하지 못했다.

“…알겠다. 네 의견을 존중하마.”

“감사합니다.”

단목장룡에게 단목청야의 첫인상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그리 싫지 않았다. 눈높이가 맞춰지자 대화가 통하는 느낌이랄까.

단목장룡이 몸을 돌려 오 조의 전각으로 돌아가려 할 때.

“그래도 이 형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거라. 이건 널 설득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널 무시하는 것도 아니야. 단지… 내가 평생을 겪어 온 무림에선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단다. 난 내 길대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 언젠간 네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그가 장황하게 말한다.

“예, 형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드러워진 단목장룡의 눈빛.

그것에 단목청야는 왠지 마음이 놓인다.

그를 설득하는 덴 실패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구나.’

피식.

단목청야의 의도대로 단목장룡을 움직이는 건 실패했지만 나름의 소득을 거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언제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의존했던가? 남궁 형님이 패배해도 난 길을 잃지 않았어. 해 온 대로 하면 된다.’

오대세가를 향한 단목청야의 계획이 빠르게 수정된다.

‘위지 장로님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겠군.’

그의 발걸음이 위지 장로의 거처로 향한다.

발아하는 씨앗

무림맹.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오랜 역사를 가진 정파의 명문들이 합심해서 만든 연합체. 무림맹이 결성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십만대산에 위치한 마교라는 종교 단체 때문이다. 천마를 신으로 받든다는 천마신교. 단일 무력으로는 어떤 명문거파도 상대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이들.

마교가 올 때마다 깨어 있는 자들이 각 문파에 서신을 보내 설득하고, 부대를 창설하고, 마교와 싸우는 과정은 참으로 번거로웠다. 마교와의 전쟁으로 정파의 영웅들이 속절없이 흙에 파묻히자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방주는 모두 입을 모아 연합의 결성을 제안했다.

언제든 무림의 위기가 닥치면 최대한 빨리 정파 무림이 합심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자는 취지였다.

첫 무림맹주는 당시 소림사의 방장이었던 공령대사였다. 무림의 태산북두라는 소림사의 방장답에 공정하고 정의롭게 무림맹을 성장시킨 후 맹주직을 내려놓았다.

무당파, 화산파, 아미파. 구파일방 중에서도 대표격이라 불리던 거파의 장문인들은 공령대사의 의지를 이어받아 무림맹을 이끌었다. 당시 무림맹은 각 문파의 이익보다는 정파 무림의 전체적인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단체였기에 모두 한마음으로 뭉쳐 서로를 도왔다.

마지막으로 치러진 정사대전 또한 무림맹의 존재가 없었다면 아마 많은 문파가 멸문지화를 당했으리라. 이젠 무림맹이 없는 강호 무림은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무림맹이라 해도, 고이면 썩는 게 자연의 이치라 했던가? 과거 무림맹주는 명문거파의 장문인들이 순서대로 맡은 자리에 불과했었다. 지금보다 권한도 그리 크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무림맹의 세력이 커지는 만큼 무림맹주의 발언권이 커졌다. 아무리 각 문파에서 무림맹의 장로로 있으며 맹주의 힘을 견제한다 해도 맹주의 힘은 막강하다. 특히 은영전을 필두로 한 맹주 직속부대는 어떤 거대 문파라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정파 무림이 협의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만큼 겉으로 패악질을 부리진 않지만, 알게 모르게 무림맹주의 출신 문파는 맹주 임기 동안 크게 발전한다고 한다. 거기에 만약 맹주가 구파일방 출신이라면 구파일방의 발언권이 맹 내에서 강해지며, 오대세가 출신이라면 오대세가의 발언권이 강해진다.

그리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아닌 이들은 그 과정에서 당연한 불만을 품었다.

왜 중소문파 출신 중에서는 맹주가 나오지 않는 걸까?

현 정파 무림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만의 것인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황룡단이다. 소위 명문이라 불리긴 하지만, 그 이름 높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엔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모인 집단. 이들은 언젠간 맹주를 배출하고 오랜 과거부터 이어져 온 특정 문파와 가문의 득세를 타파하는 것이 목표였다.

첫 무림맹의 결성 목적은… 당연히 평화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모이면 모일수록 평화와는 멀어져 간다. 넓게 보자면 그들 모두 정파인이었지만, 모두 같은 목적을 지녔다고 할 순 없었다. 출신과 배경으로 각기 다른 공동체를 형성하고, 서로를 견제하는 곳. 그곳이 바로 무림맹이었다.

“그러니까, 하지 못하겠다는 말인가?”

위지무외의 눈썹이 꿈틀한다.

분명히 말이 잘 통하는 아이라고 여겼거늘…….

“정말 죄송합니다. 제 동생은 저와 뜻이 다른 듯했습니다.”

“자네가 바꾸면 되지 않는가? 흑룡단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나?”

흑룡단의 입지가 줄어든 것은 구파일방의 적룡단, 오대세가의 청룡단 그리고 그 외의 세력이 모인 황룡단으로 모여든 게 이유였다. 흑룡단에 지원하는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적룡단의 단주였던 복마진인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맹주직에 오르며 팽팽한 세력 간의 알력 다툼이 더욱 심화됐다.

단목청야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

당연히 현 무림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룡은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확실히… 그 아이는 무언가 달라.’

만약 자신이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출세 가도에 오르기 위해 황룡단이나 청룡단에 들어갔으리라. 흑룡단에는 절대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곳에서 성과를 낸다고 해도 맹의 요직에 오를 순 없다. 정사대전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아니, 오히려 정사대전이 일어난다면 다른 단급 전투단이 더 득세할 가능성이 컸다.

단목청야는 고개를 숙여 사죄의 뜻을 표했다.

“아마 본가의 태상가주께서 설득하더라도 장룡은 뜻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그 정도로 의지가 확고한가?”

“예.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동생은 계속 흑룡단에 머물 것이니까요.”

의심의 눈초리.

위지무외는 의심스러웠다. 흑룡단에서 대체 배울 게 뭐가 있는가? 현 흑룡단주가 마지막 정사대전에서 성과를 냈다고 해도, 사실 다른 단주들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맹주직에 오른 복마진인만 해도 전쟁에서 영웅으로 불렸다. 전쟁에선 시시각각 영웅이 탄생했었으니까.

‘설마 다른 곳과 접촉한 것은 아니겠지?’

해남도에서 성과를 내고 돌아온 단목장룡.

그가 최근 점창파의 장로에게 승리했다는 소문은 무림맹에 퍼진 상태다. 당연히 다른 세력이 눈독을 들이고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남궁세가의 그 천방지축이 흑룡단에 들어갔다고 했지?’

무림맹의 장로는 무(武)보단 정치 쪽에 가깝다.

그렇기에 단목청야의 말을 듣고서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한다. 가장 멍청한 것이 말만으로 그걸 믿는 것이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알겠네. 이해해야겠지.”

“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로님.”

단목청야는 위지무외가 그냥 넘어가려는 듯이 보이자 속으로 안도했다.

혹여나 이 일을 핑계로 이상한 요구를 해 오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무림맹의 장로라 하여 모두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단목청야 자신만 해도 그리 착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됐네. 그 아이의 마음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자네처럼 세상 물정에 밝은 친구와 만나는 것도 오랜만인데, 오래도록 연을 이어 가고 싶군.”

“위지 장로님 같은 분과 연을 이어갈 수 있으면 저에겐 크나큰 영광입니다. 천룡각에서도 장로님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지요. 장로님께 많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단목청야의 아부에 위지무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만 그는 표정과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쯔읏……! 안 그래도 황룡단주와 이야기를 끝내 놓았는데, 만약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면… 크게 후회할 것이다.’

물론, 정치에 이골이 난 위지무외는 그런 것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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