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대체 뭘 주길래 단목 조장이 축객령을 내린 건지 알고 계십니까?”
남궁일몽의 질문에 설비연은 짧게 대답했을 뿐이다.
“모른다.”
냉기가 풀풀 날리는 설비연.
그녀는 몸을 휙 돌려 떠나갔다.
그런 모습에 남궁일몽이 어깨를 으쓱한다. 그에게 저리 쌀쌀맞게 대한 여인은 중원 무림에서 흔히 볼 수 없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본래 성격이 여유로운 남궁일몽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조원을 모아야겠어.’
이미 그를 주군으로 모시는 이들이 무림맹에 몇 있긴 했지만, 그들은 자기네들의 문파나 가문에서 제대로 된 무공을 배웠다. 남궁일몽은 단목장룡의 방식을 따를 생각이다.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히지 못했지만, 재능이 보이는 자들.’
남궁일몽은 무(武)의 새로운 길이 열린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 * *
단목장룡이 무림맹에 도착한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그는 해남도로 떠난 상태에서 신경 써 주지 못한 조원들의 무공을 봐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취수혈정을 취해 내력이 늘어났으며 영약의 힘으로 세맥의 불순물을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었다. 환골탈태라 부를 수준은 아니긴 했지만, 확실히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게 단목장룡이 조장의 본분을 다하고 있을 때.
다른 이들 또한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남궁일몽은 단목장룡처럼 되기 위해서, 제대로 무공을 익히지 못했지만 재능 있는 이들을 찾아 외성을 탐색했다.
설비연은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묘한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조원들과 함께 지옥 수련에 들어갔다. 조원들은 난데없는 지옥 수련에 비명을 질러 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림맹엔 한 사내가 도착했다.
그는 주위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한숨을 내쉬며 내성의 중심부로 향한다. 타인의 시선이 왜 집중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소문은 이미 무림맹을 넘어 중원 전체에 퍼졌을 수도 있었다. 소문이라는 것이 막으려 발악할수록 더 빠르게 확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인 점은 이제까지 그에게 대놓고 시비를 걸거나 당시 상황을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무림맹의 중심부에선 조금 달랐다.
맹주전.
무림맹에 수장이 있는 곳.
맹주전엔 은영전과 무림맹 장로들이 있다. 무림맹의 장로들은 각자 독립적인 의결권을 가지고 있으며 각 지역이나 문파의 이익을 대변하여 소리 낼 수 있는 자리였다. 실제 무림맹의 의사 결정은 맹주전에서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그곳에 도착한 점창파의 장로 고검야 거연창은 맹주전에 들어가자마자 왈칵 표정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흘흘흘.”
백발 수염을 곧게 기른 한 중년인의 웃음.
그의 시선은 고연창을 향하고 있었다. 명백한 비웃음이다.
“고 장로, 어찌, 몸은 괜찮으시오?”
“…….”
그의 이름은 위지무외. 위지세가 출신의 무림맹 장로다. 꽤 오랫동안 무림맹에서 장로직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또 삼십 년 전 용봉지회에서 거연창에게 패배하여 십육 강에서 탈락한 경험도 있었다.
‘하필이면 이놈과 제일 먼저 마주치다니…….’
무림맹의 새로운 장로로 정주로 오게 된 거연창.
만약 ‘그 일’만 없었더라도 당당히 어깨를 펴고 그를 마주했으리라. 하지만 까마득한 후배에게 패배한 거연창은 차마 지금 이 순간 당당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때의 패배를 생각하면 아직도 발작을 일으킬 정도였다.
“흘흘! 오랜만이오. 맹에서 같은 장로가 되어 만나다니 정말 반갑소!”
“…반갑소.”
거연창은 말을 섞어 보았자 기분만 더러워질 것을 알았기에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첫 만남 때부터 거연창과 질긴 악연을 이어 온 위지무외는 그를 그냥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허어, 어딜 그리 바삐 가시오? 맹주께서는 단주들과 회의를 하고 계시오. 아마 꽤 기다려야 할 것이오.”
“그렇소? 그럼 앞에서 기다리면 되겠군.”
맹주실로 향하는 거연창.
그 뒤를 위지무외가 따른다. 그는 짐짓 걱정되는 척하며 거연창의 몸을 살핀다.
“몸은 괜찮소?”
“괜찮소.”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정말 괜찮소?”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것이오?”
거연창의 날카로운 말투에 위지무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말을 왜 그리 섭섭하게 하시오? 걱정해 주는 것이 아니오?”
“걱정은 필요 없소.”
거연창의 단호한 말에도 위지무외는 멈추지 않았다.
“이름이 단목장룡이라 했던가?”
“…….”
움찔.
거연창이 그의 이름을 듣자 몸을 떨었다. 위지무외가 눈을 빛낸다.
“정말 그 아이에게 패배한 것이오?”
거연창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답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긴장한 낯빛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소문대로 단목장룡이라는 아이에게 패배한 것이다. 점창의 장로이자, 이제는 무림맹의 장로가 된 거연창이 말이다.
‘정말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
위지무외의 눈이 깊어진다.
사실 점창파의 평판이 깎이는 일이라 무림맹에선 쉬쉬하고 있던 일이다. 거연창이 무림맹에 도착함으로 인해서 묻어 두려고 해도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위지무외가 이리 접근한 이유는 거연창을 골려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단목장룡이라… 흑룡단에 있을 인재는 아닌 듯하군.’
그래도 확실한 게 좋아 거연창에게 확실한 대답을 들으려던 위지무외였지만, 맹주실의 문이 열리고 단주들이 밖으로 나온다. 위지무외에게 시달리기 싫었던 거연창이 벌떡 일어서 맹주실 앞으로 갔다.
위지무외는 입맛을 다시다가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새로운 무림맹주와의 회의를 끝마친 황룡단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