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오호라? 정말 적극적으로 조원의 수련을 봐주고 있군. 그래… 그렇군. 단목장룡은 저리 적극적으로 수하를 단련시키며 수련하는 것이군. 생각해 보니 용봉지회 때도 당옥정의 수련을 봐주었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면 아버지께서도 가르침을 내리시면서 새로이 배우는 점이 있다고 하셨었지.’
끄덕끄덕.
남궁일몽이 눈을 빛내며 오 조의 비무를 지켜본다.
당시엔 자신의 재능을 칭찬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런 말이 아니다. 하수를 가르치며 자신의 무공을 되돌아본다. 천룡각의 무사부들이 각도들을 교육하며 무공의 경지가 상승했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어 본 적이 있다.
단목장룡의 재능은 진짜다.
남궁일몽은 현 정파의 후기지수 중 단목장룡에 가장 근접한 재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단목장룡의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혹자는 이런 말을 했다.
노력도 재능이라고.
남궁일몽은 노력엔 소질이 없다. 그 천재적인 재능으로 천룡각에서 자존감만 채우며 놀고 있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배우려 했다. 단목장룡이 가진 노력의 재능을 말이다. 그가 어떻게 수련하는지. 그 수련은 어떤 효과가 있을지. 모든 것을 따라 하겠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가 한다면 자신은 두 배… 아니, 세 배로 한다. 그래야만 그와의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다.
뭐 따지자면 이것도 노력의 재능이라 할 수 있을까?
‘단목장룡은 이미 흑룡전에서 날 만났을 때, 내가 하수라는 걸 파악했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와 비무하지 않은 것이겠지.’
솔직히 말하면 단목장룡에겐 별다른 의도가 없었다.
그 또한 남궁일몽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좋은 비무 상대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당시엔 흑룡단주에게 보고하는 것이 먼저였기에 그냥 지나쳤을 뿐이다.
하지만 흑룡단에서 호적수 단목장룡을 기다리며, 그를 따라잡기 위해 수련해 왔던 남궁일몽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특히 단목장룡의 몸에서 자연스레 흐르던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느낀 것이 컸다.
‘으음……! 그러고 보니 오 조의 단목위와 조연연은 외성에서 데려왔다고 했던가? 재능이 없어 보이진 않았는데 말이야. 그나마 괜찮은 이들을 데려온 것이구나. 확실히 그 편이 수련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
남궁일몽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종이에 적는다.
그렇게 그가 호적수 단목장룡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을 때였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지?”
“……?”
열심히 비무를 관전하던 남궁일몽의 시선이 돌아간다.
“설 조장님?”
설비연은 마치 처음 단목장룡을 보았을 때처럼 서늘한 눈빛으로 남궁일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일몽의 입장에선 당연히 의아하다. 설비연에 관한 것은 남궁일몽도 알고 있었다. 천룡각에선 무림맹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화젯거리였으니까. 그중 북해빙궁 출신의 미녀 설비연은 꽤 유명했다.
하지만 소문으로 듣는 것과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또 다른 기분이다.
남궁일몽은 사실 누군가에게 저런 시선을 받아 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오 조원들의 비무를 관전하고 있었습니다만.”
남궁일몽의 목소리도 자연스레 낮아진다.
“주공께 허락은 받은 건가?”
주공?
“흑룡단주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
설비연이 갑자기 입을 다문다.
남궁일몽의 예리한 시선에 은근히 귀가 붉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
“흑룡단주님께 이런 것까지 보고해야 하는 건지 몰랐군요. 단목 조장껜 양해를 구했습니다. 저도 슬슬 조원을 모집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
단목장룡의 허락을 받았다는 말에 설비연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든다.
처음 단목장룡의 전각에 찾아와서 그의 싸늘한 시선에 몸이 굳었던 것이 엊그제 같았다. 단목장룡이라면 이런 것을 싫어하리라는 생각에 남궁일몽이 보이자마자 달려온 것이다.
설비연은 남궁일몽에게 더 따지지 않고, 남궁일몽에게서 시선을 떼고 비무장을 바라본다.
‘무슨…….’
황당했다.
순간적으로 살기마저 내보이던 그녀. 뭔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었다. 천룡각에서의 남궁일몽이라면, 용봉지회 결승 이전의 남궁일몽이라면… 아마 여기서 실력 행사를 했을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한 번의 패배로 달라진 상태. 한 번 더 상황을 곱씹는다.
그러던 중…….
문득 남궁일몽의 뇌리에 기묘한 가정이 떠오른다.
‘설마 이 여자도……?’
자신과 같은 목적인가?
설비연 또한 어린 나이에 흑룡단의 조장이 되어 초절정에 이르렀다고 들었다. 사실 그녀의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구파일방에서도 대제자급, 그러니까 훗날 장문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만이 가진 재능이다.
‘그렇군. 해남도로 같이 갔다고 했으니 그의 재능을 여실히 느꼈겠구나. 날 경쟁자로 여기는 것이야.’
피식.
남궁일몽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재밌다.
참으로 재밌어!
‘경쟁자가 누구든… 난 지지 않는다. 나만이 단목장룡의 유일한 호적수다.’
남궁일몽 또한 질 수 없다는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비무에 집중한다.
물론, 설비연은 그의 착각처럼 그를 분석하겠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주공께 명을 받고 행동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그와는 동등한 입장이 되었고, 아마 임무를 받더라도 따로 받게 될 것이다. 조장급만 따로 임무에 차출하는 경우는 해남도같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없었으니까.
‘참, 이젠 주공이 아니구나…….’
복잡한 마음.
이성을 연모하는 마음? 아니, 이건 연모와 조금 다른 감정이다. 그 끝은 같을지 모르겠으나 지금 설비연의 마음과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는다면…….
충성심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두 사람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는 단목장룡은…….
‘신경 거슬리게 왜 저리 빤히 보는 거지? 이제 비무 관전을 허락하지 말아야겠군.’
속으로 혀를 찰 뿐이었다.
* * *
“우와아아아! 왔다! 왔다! 왔다!”
팔딱 뛰는 당옥정을 보며 혀를 차는 사천당문의 내당주 당용아.
“…옥정아, 뭐 하니?”
“고모님! 장룡에게서 회신이 왔어요! 임무에서 돌아왔나 봐요! 비밀 임무라 해서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돌아왔다고요!”
“…전에는 저언혀 걱정되지 않는다더니?”
당옥정은 당용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단목장룡으로 가득 차 있었다.
“꺄앗! 얼른 가서 회신해야겠다! 고모님, 잠시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얼른 쓰고 올게요!”
“그러… 벌써 갔네.”
피식.
당용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
하지만… 그녀의 웃음은 금방 시들해지고 말았다.
제안
현재 오 조의 실력은 비슷비슷했다.
단목위가 무공을 익힌 기간이 가장 길었지만, 나이도 셋 중 가장 많았기 때문에 새로운 무공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이새붕과 조연연보다는 느린 편이다. 이새붕은 처음 무공을 배울 때부터 내 지도를 받았기에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두 사람에 밀리지 않을 수 있었고, 셋 중 무공을 익힌 시간이 가장 짧은 조연연이 두 사람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은 셋 중 재능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방증했다.
뭐 그렇다고 할지라도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한 번의 깨달음으로 벽을 뚫어 경지가 상승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아무튼, 세 사람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열심히 했다는 걸 보여 줬다.
비무에서 그들이 보여 준 집념과 열정이 흡족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잘해 주었구나. 고맙다.”
“아닙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대답한다.
땀을 뻘뻘 흘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세 사람. 난 그들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암천회에서 받아 온 상품들.
혼자서 그것을 독식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미리 비무장 구석에 두었던 커다란 목함을 가져왔다. 그 안에는 돈이 있어도 쉬이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 몇 있었다.
그중 하나는…….
“비무로 노력을 증명했으니 선물을 주어야겠지. 받아라.”
세 사람에게 취수혈정(聚髓血精)을 한 알씩 쥐여 준다.
깜짝 놀란 눈으로 두 손바닥에 올려진 것을 바라보는 세 사람.
아마 그것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영약이라는 것을 눈치챘으리라. 일 년의 공력을 가진 영약이라도 그 값어치가 상상을 초월한다. 내공이라는 건 무인에게 가장 중요한 힘 중 하나였으니까.
“이것은 취수혈정. 해남도에서 얻어 온 영약이다. 피를 맑게 해 주면서 내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더군. 이것을 취하면 체질에 따라 오 년에서 칠 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
“……!”
취수혈정은 총 다섯 개를 받아 왔다.
영약의 기운을 최대로 흡수한다면 칠 년. 그러니까 내가 그것을 취하면 그 정도의 내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영약의 기운 모두를 단전에 쌓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영약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아마 세 사람은 칠 년의 공력을 모두 흡수할 수 없으리라.
나머지 두 개는 추후 상황을 보고 사용할 생각이다.
“저… 조장님…….”
말끝을 흐리며 날 바라보는 이새붕.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충 예상이 간다. 이런 귀한 것을 자신이 취하는 것보다, 내가 취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품고 있으리라. 하지만 조장인 내가 준 것이기에 그렇게 말하기도 쉽지 않으리라.
단목위나 조연연의 표정도 비슷했다.
선의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세 사람의 성정이 이런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안다. 하지만 난 지금 영약이 필요 없다. 아마 지금 그걸 취하면 부작용만 생겨나겠지. 너희가 강해지는 게 날 도와주는 거다.”
내 말은 저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난 천향옥로단을 취했기에 지금 다른 영약을 취할 수 없다. 내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도 다룰 수 있는 수준에서 취해야지, 나찰마궁의 뢰극찰처럼 단전에 내력을 과도하게 쌓는다면 오히려 부족한 것만 못하다.
“모두 가부좌를 틀어라.”
조원들이 각오를 다지듯 열정적으로 답한다.
“조장님,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조장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저도요! 조장님! 더 열심히 할게요!”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이새붕.
부조장인 그가 가부좌를 틀자 단목위와 조연연도 그를 따라 앉았다.
첫 시작은 이새붕부터였다.
내력이 현저하게 부족한 세 사람이었으니 이 정도의 영약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