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236)

* * *

“주공께서 수련하고 계시니 그냥 좀 꺼져줬으면 좋겠는데? 당신들은 생각이라는 것도 없나? 기본적인 예의가 있다면 밤에 찾아오진 않았을 텐데 말이지.”

설비연 특유의 차가운 말투.

처음 단목장룡과 만났을 때 보여줬던 그 싸늘한 표정으로 앞의 네 사람을 쏘아본다. 그 눈빛에 오늘 낮에 호되게 당했던 주서호와 염병춘이 찔끔한다. 고통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다시 뱃속의 음식을 토해낼 것 같은 기분이다.

그녀의 말에 반야문주 염운경과 점창파의 장로 거연창이 인상을 찌푸린다.

고작해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설비연의 말투가 상당히 거슬렸다. 그들이 어디서 저리 어린 여인에게 저런 소리를 들어봤겠는가? 난생처음 겪는 상황이다.

“참으로 입이 험하구나! 부모에게 예를 배우지도 못했나?”

거연창의 말에 설비연의 눈이 가늘어진다.

“댁 같은 놈한텐 예를 차리지 말라고 하셨거든.”

“뭐라?”

거연창의 눈썹이 푸들푸들 떨린다.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도 모자란 판국에 일을 더 키우고 있다. 저 여인이 정말 흑룡단의 설비연이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것은 점창파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다.

염운경 또한 분노하여 소리친다.

“정말 말버릇이 고약하구나! 무림의 선배로서 적당히 교육해주려 했거늘!”

“···.”

설비연이 잠시 뒤를 돌아본다.

단목장룡은 같은 시간에 매일 명상을 했다. 그 이유를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설비연이 그를 보호해줄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하로서 본분은 다해야 한다. 난동을 피우다간 단목장룡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었다. 무림인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 운기조식을 할 때였다.

‘지금은 참는다.’

설비연이 품속에서 무언갈 꺼내 휙 던졌다.

흑룡단원의 패. 거기엔 설비연의 이름이 양각되어 있었다.

“난 설비연이다. 그 애송이들을 팬 것을 따지고 싶으면 흑룡전에 와서 따져.”

“···!”

패를 받아든 염운경.

그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이것인 무림맹에서 발급한 진품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거연창은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설비연? 북해빙궁? 그게 어쨌단 말인가? 그리고 흑룡단? 이제 흑룡단의 시대는 저물었다. 정사대전이 한창이던 40년 전에는 무림맹의 힘이 그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새로운 무림맹주의 탄생. 거기에다 구파일방 출신이었다. 제갈강량이 맹주이던 시절에는 오대세가가 무림맹의 주축이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거기에다 대 점창파가 몰락한 문파 출신에게 겁을 먹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저 여인이 설비연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다.

“흑룡단의 설비연은 과거 한쪽 눈을 잃었다. 사칭하려 했다면 더 조사해보지 그랬나?”

거연창이 검을 뽑으며 말한다.

이미 그는 진심으로 싸우려 하고 있었다.

웅성웅성.

무림인들의 싸움은 흔하지 않았다. 일정 거리를 두고 구경꾼들이 모여 속닥이고 있다. 몇몇 이들은 반야문의 문주인 염운경을 알아보았다.

“염 대협이야···!”

“저 여자는 누구지? 설마 여인 한 명을 합공하려는 건가?”

“에이, 설마···?”

예민한 무인의 청각은 그들의 대화를 잡아낼 수 있었다.

염운경은 일부러 내공을 담아 크게 외친다. 이미 거연창이 저 여자는 설비연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거기에다 모욕적인 언사까지 들었기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간악한 년! 무림맹을 사칭한 죄가 얼마나 큰지 아느냐!”

“사칭? 무림맹을 사칭한 거야?”

“그러고 보니 저 여인의 얼굴이 좀 무섭게 생긴 것 같기도···.”

웅성거림이 커진다.

애초에 설비연은 정치 쪽에서 그리 수완이 뛰어나지 못하다. 그랬다면 처음 단목장룡과의 만남에서 그리 심한 말을 내뱉지 않았을 것이고, 2조 조장인 광풍개와 싸우지도 않았을 터였다.

“나중에 싸우는 게 어때?”

이미 늦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단목장룡의 감각은 설비연의 예상을 뛰어넘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객잔 옆에서 비무할 수는 없었다. 그는 점창파의 장로 고검야(孤劍爺) 거연창. 직위만 장로인 어중간한 위치가 아니다. 장로 중에서도 상위의 실력을 자랑한다.

설비연이라도 쉽게 승부를 낼 수 없는 고수.

그렇다고 패배할 생각은 없었지만.

“점창의 장로가 나서니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가 참으로 우습군!”

스리슬쩍 염운경이 좌중을 선동한다.

서평현에서 그의 입지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기에 설비연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눈이 많아졌다.

“설마 사파의 여인인가?”

“그럴 수도···.”

설비연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무림맹에서 겪어봤지만 저런 놈들이 상대하기 가장 귀찮다.

‘일단 객잔과 멀어져야겠군.’

설비연이 그렇게 생각하고 앞으로 달려나간다. 객잔과 거리를 벌리고 빨리 점창의 장로를 쓰러트리려 계획했다.

하지만 설비연의 계획은 틀어졌다.

거연창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쾌검···!’

순식간에 설비연을 따라잡은 거연창이 검을 내질렀다. 설비연이 피하지 못했다면 단번에 목숨이 날아갈 공격. 진득한 살기가 검날에 깃들어 있었다.

설비연이 눈을 가늘게 뜬다.

스멀스멀. 그녀의 곁에 냉기(冷氣)가 맺힌다. 차가워진 공기에 염운경의 얼굴이 굳는다. 설마설마했는데···.

‘빙공···!’

거연창도 그 냉기를 느꼈지만, 물러섬이 없다.

이대로 물러나면 점창파의 명예가 무너진다.

“넌 도망갈 수 없다.”

“···.”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잘못을 사죄하면 사정을 봐줄 수도 있다. 나 또한 피를 보고 싶지···.”

으득.

설비연은 거연창의 말을 듣지도 않고 다시 달려나간다. 일단 객잔에서 거리를 벌린 후에 싸울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설비연의 모습에 거연창은 지체하지 않고, 검을 던진다.

사일검(射日劍).

해를 쏜다는 의미를 가진 무공. 점창파가 자랑하는 최고의 비검술이다.

슈웃-!

거연창의 허리춤에 있던 검 한 자루가 짧은 파공성을 내며 순식간에 설비연의 등에 도달한다. 몇몇 이들은 그녀의 허리가 꿰뚫린 것처럼 보여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아악!”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사일검을 피할 수는 없었을 터. 그렇다면 충격음이 들려야 정상인데 마치 천이 잘리는 듯한 절삭음이 들렸다.

거연창은 설비연이 있는 쪽을 바라본다.

그녀의 앞에는 처음 보는 사내가 서 있었다.

“···?”

거연창이 고개를 갸웃한다.

순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거연창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사일검의 묘리를 담아 공간을 꿰뚫었던 검. 그것이 반으로 쪼개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사일검을 쳐낸 것이 아니라··· 베었다고?’

유성검룡

사실 검을 던지는 행위는 검을 사용하는 무인에게 금기시되는 수단이다. 잘만 던지면 제법 효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평생 검을 수련한 이들이 맨손으로 싸워봤자 얼마나 잘 싸우겠는가?

하지만 점창파는 소지한 검의 개수를 늘리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점창의 개파조사가 창안한 사일검. 최고의 비검술 중 하나라 평가받는 그것을 실전에서도 활용하기 위해 그들은 사일검을 중심으로 검법을 발전시켰다.

그들의 검법은 다채로웠다.

사일검을 사용하지 않을 땐, 두 개의 검을 사용하는 쌍검술을 활용하여 적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 검 하나를 던지더라도, 또 하나의 검이 남아있기에 싸우는 데 지장이 없었다.

사일검.

그것이 점창파의 무인들이 허리춤에 검을 두 개씩이나 차고 다니는 이유였다. 사일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무공을 익힐 만큼이나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일검이···.

‘베였다? 막아낸 것도 아니고?’

현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점창의 장로 고검야 거연창은 절정을 넘어서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평생을 비검술을 수련하며, 사일검을 갈고 닦았다. 그런 사일검이··· 너무도 쉽게 막혔다.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가?

그가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연히 거연창의 검을 막아낸 것은 단목장룡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명상에 완전히 몰입하려 할 때, 소란을 듣고 바로 뛰쳐 나왔다.

‘사일검인가.’

회전을 주지 않고, 직선으로 곧게 나아간다.

힘과 속도가 대단하여 몸에 맞는다면 뼈까지 뚫릴 위력.

하지만 공교롭게도 검에 담긴 힘 덕분에 단목장룡은 거의 힘을 쓰지 않고 그 검을 잘라냈다. 아니, 베어냈다. 검강은 강철마저 쉬이 베어낼 수 있었다. 현재의 단목장룡은 원하면 바로 검강을 발현할 수준에 올라 있었다.

‘적절할 때 활용하면 허를 찌를 수는 있겠지만···.’

단목장룡이 평가하는 사일검의 평가는 딱 거기까지다.

만약 던진 검에 내공까지 실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면, 검을 던지든 길가에 널브러진 자갈을 던지든 큰 위협이 되리라. 설비연에게 검을 날린 중년 무인의 수준이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아마도 지금 단목장룡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면, 거연창은 분개하여 남은 하나의 검을 다시 던졌으리라.

잠깐의 침묵이 지나간 후.

거연창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넌 누구지?”

“장··· 단목장룡이다.”

“단목?”

“단목세가라고?”

반야문의 부자가 멍하니 중얼거린다.

그들이 서평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은 맞다. 하지만 명문가라 불리는 단목세가와 비교할 수 있느냐? 당연히 아니었다. 다행인 점은 점창파라는 이름이 단목세가보단 더 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설마 작년 화산 용봉지회의 우승자···?”

염병춘.

그는 한창때의 후기지수다. 강호를 떠들썩하게 하는 또래 무인들의 활약상을 들으며 자신도 언젠간 그런 인물이 되기를 꿈꾸곤 한다.

그리고 단목장룡은 최근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가장 높게 쳐주는 인물이었다.

역대급 천재라 불리던 남궁세가의 둘째 남궁일몽을 결승에서 멋지게 꺾고, 유성검룡이라는 별호를 받아 새로운 무림오룡으로 등극했다. 또한, 들리는 소문으로는 흑룡단에 들어가 조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소협의 별호가 유성검룡이 맞으시오?”

염병춘이 목소리를 떨며 묻는다.

그의 옆에 서있던 점창파의 제자인 주서호도 침을 꿀떡 삼키고 있다.

“맞다.”

“···!”

그렇다면 정말···.

‘저 여자가 설비연이 맞다는 거잖아! 그리고 단목세가라니···!’

반야문의 문주 염운경이 두 주먹을 꽉 쥔다. 일이 꼬여도 많이 꼬였다. 물론, 그들의 편에 점창파가 있긴 하지만 단목세가도 결코 만만한 가문은 아니었다. 그들이 점창에게 따지지 않고, 반야문에게만 시시비비를 가리려 들면 반야문만 난감해지는 것이다.

염운경이 재빨리 아들에게 물었다.

- 저 사내와 오늘 객잔에서 시비가 붙은 게 맞느냐?

“예···.”

염병춘의 대답에 염운경이 눈을 찌푸린다.

어찌 이 일을 해결해야 할까? 점창파만 믿고 있기엔 일이 점점 커지는 듯하다. 저 여인이 흑룡단의 설비연인지 아닌지까지만 해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일단 싸움을 말려야 해.’

염운경이 생각의 정리를 마쳤지만.

단목장룡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점창파에서 왜 설 조장을 공격한 거지?”

“···지금 뭐라 했느냐?”

거연창 또한 자신의 사일검이 막힌 것에 당황하여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의 저 버릇없는 반말엔 절대 침묵할 수 없었다. 그는 점창의 장로, 정파의 명숙이었다. 아무리 단목장룡이 화산 용봉지회에서 우승했다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

“왜 설 조장을 공격했냐고 물었다. 죽고 싶은 건가?”

“뭐라···? 지금 네놈이··· 네놈이 지금···.”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설비연의 말투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단목장룡은 그보다 더했다.

“허어! 단목 소협! 지금 무슨 말이오! 이분은 점창의 장로이신 고검야 거연창 대협이시오!”

“당신도 죽고 싶나?”

아들뻘인 단목장룡에게 염운경이 움찔한다.

단목장룡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사람을 건드리는 걸 가장 싫어한다. 설비연은 지금 그의 수하였다. 제대로 빙정까지 취하게 된 설비연이 점창의 장로에게 패배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화가 나는 건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는 명상까지 방해받았다.

“크, 크흠···!”

염운경이 헛기침하며 거연창을 바라본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점창파가 같이 분노해주면 그 뒤를 따르면 된다.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어린놈이 분수도 모르고 입을 나불대는구나. 단목세가의 이름이 지금 너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으냐?”

“여기서 단목세가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뚜벅뚜벅.

단목장룡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간다.

“나도 묻지. 점창파라는 이름이 널 지켜줄 수 있을 거 같아?”

“헙!”

열 걸음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다.

거연창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놈···!”

단목장룡의 이글거리는 눈빛.

그 눈빛에 거연창의 몸이 본능적으로 긴장한다. 저것은 한낱 후기지수의 눈빛이 아니었다. 꽤 강호를 경험했다고 자부하는 거연창도 긴장하게 만든다.

그는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그를 정말 죽여야 할지 말이다.

천향옥로단을 취하고 나서 늘어난 것은 그쪽 욕구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과거였다면 죽일 필요까진 없다고 적당히 교육해주려 했겠지만, 단목장룡은 진심으로 그의 죽음을 고려하고 있다. 본보기. 자신의 사람을 건든다면 몇 배로 돌려줘야 함부로 덤비지 못하리라.

그것이 구파일방 중 점창파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 살기가 느껴졌음일까?

단목장룡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지만 거연창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그의 검에서 짙은 푸른색의 강렬한 기운이 맺힌다. 단목장룡의 눈빛에 긴장하여 검강까지 뽑아낸 것이다. 그를 한낱 후기지수로 생각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본 단목장룡은 생각을 마쳤다.

그 또한 검을 뽑았다.

하지만 거연창과 달리 그의 검에선 어떠한 빛도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네 선택을 존중하겠다.”

그 말에 거연창이 압박감을 참지 못하고, 보법을 펼친다. 그의 눈빛은 기성 고수인 거연창도 긴장하게 만든다. 언제 그가 공격할지 몰라 긴장하고 있을 바에는 먼저 공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단 무인의 본능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단목장룡은 그에 맞춰 발을 놀렸다.

타닷!

거연창과 단목장룡의 첫 격돌.

멀찍이 서서 두 사람을 지켜보는 군중들은 당연히 거연창이 유리하다 생각했다. 그의 검에 맺힌 푸른 광채는 한눈에 봐도 위협적이었으니까. 그에 반해 단목장룡의 검엔 아무것도 맺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검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쿠우웅!

“무슨?”

인간의 몸보다 훨씬 작은 검끼리 부딪쳤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굉음. 그 굉음에 무공을 익히지 않은 대부분 군중들은 귀를 막고 뒤로 물러섰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염운경 또한 그 위력에 깜짝 놀랐다.

단목장룡의 유성일락.

충돌하는 순간에만 빛을 발하는 유성환상검의 첫 번째 절기가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커헉···!”

딱 한 번의 격돌로 거연창은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본래 검강의 발현 유무가 초절정을 나누는 기준인 이유는 명확하다. 다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검을 휘두르는 순간에만 검강을 발현했다. 그 순간에 검강을 꺼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하다는 걸 안다는 듯이 말이다.

또한, 온몸에 전해지는 이 충격.

이 힘은 대체···.

“허업!”

목에서 피가 울컥하고 올라왔지만, 거연창은 쉴 수 없었다. 단목장룡의 검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또 좀전의···.’

제발, 그것이 아니길 바랐건만.

쿵!

단목장룡의 검은 또 마지막 순간에만 유성처럼 찬란한 빛을 발했다. 거연창은 머리가 아닌 이제껏 무공을 익혀온 본능으로 검을 휘두른다. 단전의 내력을 최대한 활용한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저 유성에 깔려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는다.

그런 공포가 그를 움직이게 했다.

쿵! 쿵! 쿵! 쿵!

검과 검의 격돌이 아닌, 내공의 격돌.

그의 유성일락을 마주할 때마다 거연창은 내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팔과 다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으며, 그의 검은 움푹 패여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는 검을 놓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저 움직임을 놓치면 죽는다···!’

백금검(百禽劍).

그는 죽기 살기로 검을 휘둘렀다. 고작 몇 합의 부딪침으로 거연창은 패배와 죽음을 떠올리고 있다.

‘저 기술은 내력의 소모가 클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버티면···!’

그런 희망을 품고 단목장룡의 검을 막아낸다.

하지만.

그 실낱같은 희망은···.

‘대체 언제 끝나느냔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유성일락의 위력에.

점차 무너지고 있었다.

“크읏···!”

이제는 더 막아낼 수 없다고 생각한 거연창. 그가 바닥을 구른다. 나려타곤. 무림인들이 가장 수치스러워하는 회피 동작이다. 특히 구파일방 같은 출신의 무인들은 그것을 펼쳐 목숨을 구걸하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죽음을 앞둔 무림인들이 그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단목장룡의 검이 자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만 같은 공포에, 그 또한 과거 정사대전에서 정파인들이 무수히도 많이 펼쳤던 나려타곤을 펼쳤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안도감을 느꼈다.

마냥 그의 검격을 피해냈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전의 내력을 뭉텅이로 갉아먹는 저 무시무시한 단목장룡의 유성일락. 그것을 더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다. 부딪칠 때마다 찬란한 빛을 내는 그 검은 몇 번 마주하지 않았지만, 거연창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대체 저 젊은 놈이 얼마나 내력이 많길래?

그리고 잠깐의 안도감이 사라진 이후엔 당연히 모멸감과 부끄러움이 찾아온다.

수많은 이들이 나려타곤을 펼치는 것을 보았다.

‘점창의 이름을 더렵혔구나···.’

나려타곤을 펼치는 순간 그는 온갖 생각을 했다. 죽음이라는 것에 가까이한다면 주마등처럼 삶의 모든 순간이 스쳐 간다고 했던가. 마치 그것처럼···.

“···!”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던 거연창.

그는 그 순간 목도하고 말았다.

단목장룡은 그가 바닥에서 구르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거연창에게 검을 찔러넣고 있었다. 거기다 그의 검은 환한 광채를 발하고 있다. 어김없이 펼쳐지는 유성일락. 이미 발바닥을 바닥에서 뗀 거연창은 그것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죽기 살기로 검을 들 뿐.

스걱.

이제까지 들리던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 거연창의 내력은 이미 고갈됐다. 단목장룡이 검이 부딪치는 순간에만 검강을 발현하여 내력을 아낀 것도 있겠지만··· 보통은 검강은 회심의 일격에만 사용하곤 한다.

그러니까.

단목장룡의 일격 하나하나가 거연창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일격 수준이었다는 말이었다.

“커헉···!”

아릿한 고통이 가슴에 전해진다.

이미 목이 잘려버린 건가? 인정사정 보지 않는 단목장룡이라면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생각이 끊이질 않았고, 눈물로 인해 흐릿해졌지만, 희미한 달빛이 보인다.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다.

덜덜덜!

거연창이 목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본다. 단목장룡의 검이 보인다. 그리고 그의 검을 막아내지 못한 자신의 애검이 깔끔하게 사선으로 잘려져 있었다.

“쿨럭!”

거연창의 입에서 피가 솟구친다. 외상은 크게 없었지만, 그의 검을 막아내며 내상이 생겼다.

‘어, 어지러워···.’

거기에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내상을 입은 것도 있겠지만, 단목장룡의 감정이 격해져 천향옥로단의 향이 자연스레 흩뿌려진 영향도 컸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를 좀먹는 독이라 할 수 있다.

“살려··· 살려···. 쿨럭!”

제대로 말도 내뱉지 못하는 거연창.

그 모습에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반야문의 문주인 염운경은 그다음이 자신의 차례라는 걸 알았기에 감히 말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단목장룡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말 점창파의 장로를 죽일 것인가?

설비연조차도 그의 과격함에 깜짝 놀라고 있을 때.

단목장룡의 신형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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