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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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 여기 객잔의 3층 창가 자리를 예약해두었습니다.”

제 몸보다 큰 봇짐을 든 미모의 여인. 어딜 가나 느꼈지만, 그녀에겐 시선이 모인다. 사내뿐 아니라 여인에게도 말이다. 지금도 웅성대는 소리가 들린다. 워낙 청각이 예민해져 듣기 싫은 이야기도 들리긴 했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면 그만이다.

“고생했다.”

작은 칭찬.

그녀는 쑥스럽다는 듯이 작게 미소를 짓곤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녀가 예약한 객잔은 호광객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깥에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아보니 요리 실력이 나쁘지 않은 듯했다. 천향옥로단을 취하기 전부터 난 감각이 예민한 편이었다. 지금은 냄새를 맡고서 요리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까지 판단할 수 있었다.

‘향’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3층에 올라가 잠시 앉아 있으니 금방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올려지는 음식들. 설비연이 먼저 객잔 자리를 맡아놓으면 이게 편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젓가락을 먼저 놀리자, 설비연도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한다.

굳이 그런 예의까지 차릴 필요는 없다고 했었지만, 설비연은 이런 예의를 잘 따졌다. 그녀의 행동을 보면 처음에 왜 내게 그리 차갑게 굴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상하관계에서 예를 상당히 중요시했다. 당시엔 막 약관을 넘은 풋내기라 생각했었다나?

뭐 이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작은 일일 뿐이었다.

“하남성에서 온 객잔 중에선 가장 요리를 잘하는 듯하군.”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청탕약육면과 고삼장육 거기에다 각종 채소볶음과 만두까지. 이 객잔에서 자신하는 요리를 전부 시켰다고 하는데, 잡내도 나지 않았고 적당한 불맛까지 입혀져 감칠맛이 상당하다. 최근 며칠 동안 육포만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점소이.”

“옙!”

“똑같은 요리로 다시 내주게.”

난 음식을 모두 먹기 전 점소이에게 주문했다. 점소이가 입을 벌리고 나와 설비연을 번갈아 바라본다. 사실 우리 두 사람은 덩치가 그리 크진 않았다. 아마 지금 상을 한가득 채운 이 요리도 먹지 못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론 부족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내 몸은 아직 성장기라 할 수 있었다. 근육과 뼈를 구성하는 요소는 이렇게 음식으로 채워줘야 한다. 거기다 며칠 동안 육포를 먹었으니 한 번 먹을 때 제대로 먹어야 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고맙소.”

다시금 전투적인 식사에 돌입하려 할 때.

작은 웅성거림이 계단 쪽에서 들려온다.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예쁘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자기 몸보다 큰 봇짐을 메고 있는걸 봐선 상단에 소속된 게 아닌가 싶은데···.’

‘그래? 무슨 일을 하든 얼굴만 반반하면 그만이지.’

대충 상황이 그려진다.

사실 이런 일은 몇 차례 있었다. 객잔에서 설비연의 외모만 보고 접근해오는 사내들. 그녀가 얼마나 긴 송곳니를 품고 있는지 모르는 채 말이다. 그래도 정파의 권역에 들어와서는 이런 일이 잘 없긴 했지만···.

“큼큼!”

청의와 백의를 곱게 차려입은 젊은 사내.

얼굴에 귀티가 흐르는 것을 보니 곱게 자란 것이 분명하다. 거기다 허리에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검을 차고 있었다. 당연히 무림인이리라.

난 젓가락을 멈추고 설비연을 바라본다.

당연히 오랜만에 배를 채우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확 구겨진다. 날 처음 보았을 때 저런 표정을 지었던 것 같았다.

“소저, 안녕하시오?”

“···.”

설비연이 그냥 무시하자 청의 사내가 계속 말을 걸어온다.

“어디 상단에 소속되어 있소? 그리 큰 봇짐을 혼자 들고 다니는 것을 보니 참으로 힘이 좋구려! 하하하! 하체의 힘이 장난 아니겠소.”

청의 사내의 말에 백의 사내가 끼어든다.

“병춘! 소저께 실례가 아닌가! 부끄러워하시는 게 보이지 않는가?”

청의 사내는 그의 말에 아차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젓는다.

설비연은 부끄럽다기보단··· 살기를 억누르는 표정이었지만, 그들은 제멋대로 그녀의 표정을 오해하곤 상황을 이끌어간다.

“이거 미안하오. 난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입이 마음대로 움직여버린다오.”

“우리 친우가 반야문 출신이라 더 그런 편입니다. 소저께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은근슬쩍 어디 출신인지 밝히는 사내.

반야문이라면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꽤 이름이 알려진 문파 중 하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차가운 설비연의 말.

하지만 두 사내는 오히려 더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객잔에서 소저를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그 인연을 쭉 이어가고 싶습니다. 참, 제 소개를 깜빡했군요. 전 점창파의 정식 16대 제자인 주서호라고 합니다.”

“난 반야문의 소문주인 염병춘이라 하오.”

“···.”

염병춘이라···.

당연히 들어본 적은 없지만 재밌는 이름이라 생각됐다. 하는 짓을 보아하니 참 재밌는 놈들이다. 은근슬쩍 출신 성분을 드러내며 자신들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내보인다. 강호 무림이라는 곳은 그 이름이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반야문 또한 중소 문파 중에서는 꽤 규모가 있는 편이고, 점창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식사라도 하는 게 어떻겠소?”

“거기, 소협? 미안하지만 여기 소저분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죄송하지만 잠시 물러나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식값은 저희가 계산하도록 하지요.”

나긋한 말투였지만, 기세를 끌어올려 날 응시한다.

주제를 파악하고 물러나라는 무언의 압박. 그것이 꽤 과하다.

사파의 권역에선 마두들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설비연을 보고 마음에 든다고 하룻밤을 보내자고 직설적으로 말을 했었다. 당연히 설비연에게 쥐어 터지긴 했지만.

모든 정파인이 그렇진 않겠지만, 겉으로는 선한 척하면서 건달패들이나 할 법한 행동을 한다.

드르륵.

그 순간 설비연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의 얼굴에서 냉기가 풀풀 날린다.

“주공, 이 풋내기들을 제가 교육해도 되겠습니까?”

“너무 혼내진 마.”

“예, 주공.”

“주공? 풋내기?”

“풋내기라니? 지금 우리보고 하는 말입니까?”

“날 따라와라.”

설비연이 두 사내를 지나친다. 멍한 얼굴의 주서호와 염병춘.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그녀를 따라간다.

“밖에서 비무라도 하게?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커억?”

설비연은 음식들이 올려진 탁상과 거리를 벌린 후에, 바로 손을 썼다. 그녀의 주먹이 먼저 주서호의 복부에 꽂힌다. 고작 일권에 주서호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토를 하려 했지만, 설비연은 그의 턱을 차올려 바닥에 토사물을 쏟지 않게 했다.

쿠당탕탕!

주서호가 계단을 통해 굴러떨어지고, 그 밑에서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꽤 거리가 있긴 했지만 내 청각이 워낙 예민하기 때문이다.

“감히! 우리가 누군지 알고!”

반야문의 소문주라는 염병춘.

그의 이름 그대로 염병을 하며 설비연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초절정에 이른 설비연이 저런 애송이에게 당할 리가 없었다. 염병춘은 친우인 주서호와 마찬가지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계단을 구른다.

“네년이··· 감히 우리가 누군지 알고···!”

“반야문의 소문주. 점창파의 16대 제자라고 하지 않았나?”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쿨럭!”

일권에 당해놓고도 아직 자존심은 남아 있는 모양이다.

“난 흑룡단 3조 조장 설비연이다. 따지고 싶으면 다시 찾아와라. 하지만 다시 주공의 식사를 방해한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거짓말을! 내가 설 대협을 모를 줄 아느냐! 그분은 안대를 쓰고···!”

“믿는 건 자유지. 난 분명히 경고했다.”

“으윽···.”

“일단 물러나세···!”

“오늘 일은 평생토록 후회할 것이다!”

삼류 악당이나 지껄일 말을 내뱉는다. 후다닥 달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설비연이 위층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죄송하다는 듯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매번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아니다. 얼굴이 예쁜 게 네 탓은 아니지.”

“주공···?”

설비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칭찬이다.”

“그건 아는데···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설비연이 꾸벅 인사하곤, 내 앞에 앉는다.

뭐 그녀가 객관적으로 예쁜 얼굴인 것을 사실이었으니까.

“근데 내가 저런 놈들은 잘 아는데, 아마 여기서 끝날 것 같진 않군.”

“만약 저들이 주제도 모르고 다시 온다면 제가 확실히···.”

“아니. 그땐 내가 직접 해결하지.”

“예, 알겠습니다. 주공.”

설비연은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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